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155)
159화. 휴가
“…….”
비룡대의 해산.
갑작스런 이야기였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벽은 곧바로 부정하려 했다. 허나 공손수의 눈을 다시 마주한 순간, 섣부른 즉답을 멈추었다.
‘그렇군.’
눈빛은 가볍지 않았다.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어쩌면… 이와 같은 자신의 결정은 그저 같은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남궁세가를 치기 위해 한 번 흩어졌다 다시 모였죠. 물론, 우리의 힘이 적에 비해 터무니없이 역부족이었기 때문이에요.”
공손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헌데… 다시 이런 식이 되어서 정작 중요한 순간을 함께 싸울 수 없다면… 냉정하게 말해서 더는 함께하는 의미가 없을지도요?”
“…케헤.”
파진성이 웃었다.
“…뼈가 아프네. 쬐끔은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다시 짐덩이로 전락하고 있잖아, 이거.”
“뭐, 힘이 모자란 우리 잘못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책을 하기에도 좀 애매하지 않아요?”
아하하, 공손수가 웃음을 흘렸다.
말마따나 비룡대는 충분히 강해졌다. 오히려 강해지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른 편이었다.
오룡삼봉을 꺾었다는 것은 결국 천하에 존재하는 무수한 후기지수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었다는 뜻이다.
단지.
어느덧 이벽이 상대해야 하는 적들은 이미 강호무림의 정상에 위치한 절대강자들이 되었으며 일행에게는 절대적인 시간이 모자랐다.
그뿐이었다.
“뭐,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우리가 오라버니도 아닌데 하루아침에 강기를 쭉쭉 뽑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
“하지만 소환단까지 받아먹고 죽을 때까지 따라붙겠다느니, 낯간지럽게 뱉어놓은 말들도 있고 하니까…….”
“…케헤.”
“오라버니가, 아니 ‘대주님’께서 정식으로 명령해주세요. 우리,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공손수와 파진성이 침묵했다.
같은 눈빛으로 이벽을 향했다.
“…….”
이벽은 다시 생각했다.
사패련을 나서서 호남무림, 암영각을 거쳐 소림, 남궁세가,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번번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면서도 어떻게든 함께하고자 했고, 매번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분명한 것은, 일행들이 함께해주지 않았더라면 결코 여기까지 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허나.
운이 좋았던 것이기도 했다.
말마따나 언미희에게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면 계속해서 운이 좋으리라 보장할 수는 없다.
또한.
의혈맹주 황보혁과의 ‘담판’의 결과가 어떻게 되건, 그다음을 섣불리 기약할 수도 없다.
“…아니.”
이벽은 고개를 저었다.
“해산은 하지 않는다. 다만.”
“다만 뭐요?”
“당분간의 휴가라고 해두지.”
“…푸핫!”
공손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방안에 들어찬 무게감이 서서히 누그러졌다.
“…케헤, 휴가라. 휴가 좋지.”
그리고 파진성이 말했다.
“갑작스럽지만 뭐,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안 그래도 슬슬 해남에 달라진 이 몸을 다시 확인시켜줄 때가 되긴 했지. 케헤헤!”
“네, 알겠어요, 오라버니.”
그리고 다시 공손수가 답했다.
“열심히 강해지고 있을게요.”
“…….”
“하지만 휴가라고 해놓고 너무 오랫동안 안 찾으면 중원 끝까지 쫓아가요. 우리 암영각 알죠?”
피식, 이벽은 작게 웃었다.
문득 남은 할 말이 생각났다.
“그 이전에 한 가지만 부탁하지. 운남성 회택이란 곳까지 언 소저를 호위해줬으면 한다.”
“아, 네. 그야 뭐…….”
“헹, 명령을 하라니까 끝까지 부탁을 하고 자빠졌냐? 심지어 그런 건 안 시켜도 알아서 한다고.”
공손수가 말끝을 흐렸으며 파진성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대화가 일단락되었다.
다시 침묵이 일었다.
분위기는 조금 미묘해졌다.
해산이 아니라고 한들, 지난 육 개월간의 동행은 퍽 갑작스러운 시점에서 일단락되었다.
“…대주.”
그때였다. 줄곧 조용히 있던 송영영이 입을 열었다. 표정은 옅었으나, 편치 않은 기색이었다.
“그래서 무당엔 언제 올 건데?”
“…그게 무슨 소리지?”
“친구로서 내가 초대하면 오겠다고 했잖아. 날 혹하게 하려고 거짓말한 거야?”
“…….”
문득 기억이 스쳤다.
과거, 기습적으로 찾아든 남궁세가와 모용세가의 무인들에게 둘러싸였을 때, 송영영을 회유하던 남궁환에 맞서 이벽은 분명 그런 말을 했었다.
“…그렇군. 이번 의혈맹과의 일이 잘 수습되고 나면 그때 들르도록 하지.”
“진짜지? 꼭 와.”
물론, 무당의 제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허나 뱉은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하며, 빈말 또한 아니었다.
“저기, 새삼스러운 질문이긴 하지만… 소저는 왜 그렇게 오라버니를 무당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냥.”
“케헤헤, 소림에 의혈맹에 무당에… 누구는 불러주는 데가 끝도 없어서 좋겠어, 아주?”
파진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문득 송영영이 공손수와 파진성을 향했다. 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오고 싶으면 너희도 와도 돼.”
“…어? 진짜요?”
“응, 밥은 많아.”
“…….”
눈빛은 진지했다.
일순 말문이 막힌 공손수가 눈을 껌뻑였다. 그때, 파진성이 송영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케헤헤! 진심이야? 괜찮겠어? 우리 같은 사마외도를 도문 안에 들여놔도? 아님 혹시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 많이 외로우신가? 으헤헤—”
뻐억.
“커윽.”
다음 순간, 송영영의 주먹이 파진성의 늑골을 파고들었다. 파진성이 비척비척 허물어졌다.
벌떡, 탓, 탓.
“…흥.”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송영영이 총총 방을 떠나버렸다.
“…끄윽, 컥, 뭐, 뭐야……?”
“…의외로 정곡이 아니었을까요?”
공손수가 답했다.
“장문인의 직전제자라면 배분상으로는 사실상 중견급이니까요… 또래의 제자들과 쉽게 어울릴 수는 없겠죠.”
“…케헤.”
“…….”
‘친구’라.
어감은 퍽 어색했다. 허나.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왔다.
* * *
“헌데 오라버니, 언니한테도 직접 이야기는 할 거죠? 상황이 좀 그렇긴 해도… 말도 없이 가버리면 꽤 섭섭할 텐데.”
“…물론이다.”
언미희는 위층에 있었다.
의원에 맡기는 대신, 객잔 삼 층의 별실을 빌린 뒤 인근의 도시에서 왕진 의원을 불러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남궁세가를 탈출한 이래, 이벽은 두어 번 정도 언미희에게 얼굴을 내밀었으나 그리 제대로 된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그것은 언미희의 안정과 회복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지만, 이벽으로서도 해야 할 말이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허나 이제는 때가 되었다.
“그것 말인데, 안 그래도 두 사람에게 ‘호법’을 부탁하려 했다. 가능하다면 지금 괜찮겠나?”
“……!”
두 사람의 눈이 흔들렸다.
“케헤! 어려울 것 없지.”
“…그래요. 그럴 생각이시라면야.”
이내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선 뒤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향했다.
철컥.
이벽이 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물론 언미희였다.
“……!”
문 앞에 선 세 사람을 본 언미희의 안색이 작게 흔들렸다. 공손수가 어색하게 웃었다.
저벅.
“잠시 실례하겠소.”
이벽은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을 바깥에 남겨둔 채 곧장 방 안으로 들어섰다. 철컥, 이벽은 도로 문을 닫았다.
“…고, 공자?”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소. 다른 용무가 없다면 시간 좀 내어줬으면 좋겠군.”
“…아, 네에.”
이벽의 어투는 단호했다.
언미희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 그야 물론 괜찮고 말고요. 저야 이제는 남는 게 시간이니까요. 아하하…….”
“…….”
그리고 두 사람은 자리에 마주 앉았다. 오고 가는 눈빛 사이로 어색함이 흘렀다.
“몸은 좀 어떻소?”
“…멀쩡해요.”
이벽이 묻자 언미희가 답했다.
허나 무의미한 문답이었으며, 전혀 멀쩡하지 않음은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남궁세가 측에서 걸어두었던 내력의 금제라면 이미 해결되었으나,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그녀의 안에 자리한 심마였다.
심법이란 곧 마음의 힘이다.
마음이 갈피를 잃으면, 내력 또한 길을 잃어버리게 되며 이와 같은 상태에서의 무리한 운용은 내상, 그리고 주화입마로 직결된다.
즉, 더는 무공을 익힐 수 없다.
그로 인해 ‘시간이 남게’ 되었다.
“…….”
그리고 다시 대화는 끊겼다.
언미희는 남궁세가의 별채에서 마주쳤을 때보다도 오히려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벽은 그 심정을 짐작했다.
“나는 황보세가로 가게 되었소.”
“네? 그게 무슨……?”
이벽은 취풍신개의 제안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언미희의 안색은 딱딱해졌다.
“또한… 소저가 천향루로 돌아가는 길에는 파진성과 공손수가 함께하기로 해주었소.”
“…….”
언미희는 섣불리 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이벽은 이번에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소저.”
마저 할 말을 이었다.
“일전에 내어드렸던 소환단 말인데… 아직 가지고 있소?”
“……!”
“만일 남궁세가에 빼앗겼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만일 괜찮다면 떠나기 전에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두고 싶군.”
그렇게.
이벽은 ‘진짜 용건’을 꺼내었다.
과거, 이벽은 소환단을 얻었다.
그리고 일행에게 나누어주었다.
이후 섣부른 복용으로 주화입마에 빠진 파진성을 구해냈으며, 그 과정에서 파진성은 생각지도 못한 기연을 얻게 되었다.
또한.
섬서에서 있었던 당가와의 일전을 치른 이후 공손수에게도 같은 일을 시도했으며, 이내 이벽은 확신을 얻게 되었다.
타인의 마음을 비추는 것.
낙검진천신공의 공능이었다.
“솔직히 말하지. 사문의 비전이라곤 해도 두 사람과는 경우가 다르니 지금의 소저에게 과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소. 허나… 최소한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오.”
“…공자, 저는.”
마침내 언미희가 말을 꺼냈다.
“다행히 남궁세가에서 제 물건에 손을 대진 않았네요. 하지만 솔직히… 이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무도를 계속 익힐 수 있을지 어떨지도요. 다만.”
“…….”
“…공자와 여러분들께 갚을 수도 없는 폐를 끼치는 것만큼은, 정말로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네요.”
꾸벅, 언미희가 고개를 숙였다.
“사과를 드리는 것도 좀 웃기긴 하지만… 죄송해요, 정말로. 아하하.”
태도는 퍽 완고했다.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거절은 받지 않겠소.”
“…네?”
허나 완고한 마음을 먹은 것은 이벽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벽은 다시 말을 이었다.
“말하지 않았소?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폐라고 할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닐뿐더러, 이대로 소저를 방치하고 떠나면 나도 편하지만은 않겠지.”
“…….”
“내 생각에, 소저는 지금 밑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 같소. 그건 퍽 고통스러운 일이지.”
이벽은 생각했다.
심마의 원인은 타인으로선 알 수 없으며, ‘마음의 돌’을 치우는 것 역시 결국은 스스로만이 가능한 일이다. 허나.
“또한 내 경험상… 일단 바닥으로 가라앉아버리고 나면 일어나는 건 혼자 힘으로는 잘 안 되는 것 같더군.”
“……!”
이벽은 몇 번이고 구해졌다.
이진천에게 목숨을 구해지고, 성씨를 하사받았으며, 낙검문의 막내사제가 되었고, 왕수련에게 목숨을 구해졌으며, 다시 이진천의 낚싯바늘에 의해 계곡의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졌다’. 또한.
그러한 과거에 대해서는 이미 비룡대의 세 사람에게 털어놓았었고, 물론 언미희 역시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문주님과 사형제들에게 도움을 받았듯 지금의 소저에게는 그러한 계기가 필요하고, 문밖에 서 있는 저 두 사람도 아마 생각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요.”
“…하아.”
언미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좀… 치사한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오?”
“갑자기 그렇게 공자의 과거 얘기를 꺼내버리면… 제가 어떻게 함부로 반박을 못 하잖아요?”
핫, 이벽은 작게 웃었다.
“어쨌거나 신세를 주고받는 건 동료 사이에선 당연한 일이니, 지난 일들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뻔뻔해져도 좋을 것 같단 얘기요.”
“…….”
“또한 앞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니오? 또 모르지, 추후 나나 혹은 다른 일행들이 소저의 신세를 지게 될지는.”
“…하아.”
언미희가 허탈하게 웃었다.
“도무지 그럴 것 같진 않지만요.”
“아님 말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