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12)
218화. 스승과 제자 (1)
“그래서 네 검은 도로 낚았더냐?”
“……!”
이진천이 물었다. 허나.
이벽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검이란 물론 선천의 힘을 다루어 내력을 일으키는 능력, 즉 낙검진천신공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 년 전, 이벽은 ‘하늘’에 이르는 법에 대하여 가르침을 구했고, 이에 이진천은 창공비검으로써 이벽의 창공비검을 파훼했다.
그리고 선택지를 제시했다.
그것은 이벽 스스로 경험을 되짚어 깨달음을 찾거나, 혹은 ‘검’을 잃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쌓거나의 경우였다.
그리고.
이벽은 기꺼이 후자를 택했다.
그날 이후, 이진천에 의해 주어졌던 선천의 힘들은 이벽의 몸 안 어딘가에서 얼어붙어 버렸으며.
동시에 그 힘을 녹일 방법을 찾아 선천의 힘을 회복하는 것은 이벽의 과제가 되었다.
또한.
선우협을 비롯한 선우세가 무인들과의 뜻하지 않은 재회, 그리고 악몽의 청산을 계기로 이벽은 그 실마리를 얻었다.
선천의 힘은 마음의 힘이며.
마음은 곧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낙검문의 사형제들, 그리고 화정촌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벽은 날마다 조금씩 유대를 느꼈고.
다시 그때마다 조금씩.
한 올의 힘이 녹아 이벽에게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사 년이 지난 현재.
매일매일의 힘들이 모여 어느덧 이벽은 적지 않은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허나.
그럼에도 그것이.
‘예전과 같다’는 뜻은 아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마침내 이벽이 답했다.
“핫, 그만큼이나 뜸을 들이고선 꽤 흐리멍덩한 대답을 주는구나. 아니면 아닌 거지 네가 모르면 그걸 누가 알겠느냐?”
이진천이 코웃음 쳤다.
“…확인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다시 이벽이 답했다.
말마따나 그저 하루하루 쌓여가는 선천의 힘을 직감했을 뿐, 그것이 검으로 펼쳐졌을 때 어느 정도의 힘일지를 가늠해볼 기회는 없었다.
마을은 대체로 평화로웠고.
내력은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
‘…아니, 그러나.’
허나 그 순간, 이벽은 스스로의 대답에 작은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였다.
“막내야. 혹시 너… 목적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건 아니냐?”
“……!”
“나 원, 맡겨둔 물건도 아니고 깨달음 내놓으라며 보채던 녀석이… 등 따시고 배불러지니 딴생각이나 하고 있었구만 그래?”
움찔,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허나 이진천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막내야, 대체 어떻게 된 거냐? 무림의 은원이 두려워 하늘의 힘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평범해질 수 없다던 녀석은 어딜 간 거야?”
“…….”
이벽은.
할 말을 잃었다.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스스로에게 가장 놀란 것은 이벽 자신이었다.
‘기회가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은… 절실하지 못한 이의 입바른 핑계에 불과했다.
분명히 절실했을 터였다. 헌데.
사 년이란 세월은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바꿔놓았으며.
검을 되찾는 것의 우선순위는.
모르는 새에 뒤로 밀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벽은 고개를 숙였다.
가르침을 베푼 이진천에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으나… 뭐라도 할 말을 찾아야 했다.
“…훗.”
허나 그때였다.
“으하하핫! 푸하하!”
이진천이 웃었다.
후련함을 담은 웃음이 계곡을 쩌렁하게 울렸다. 턱, 그리고 이진천의 손이 이벽의 어깨에 얹어졌다.
“잘했다, 막내야.”
“…네?”
“그러게 내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느냐? 네 나이에 맞는 즐거움을 찾아보라고 말이다.”
“……!”
“딱히 네게 그릇된 길을 제시하지는 않았다만… 어찌 되었건 검이 없어도 사람은 충분히 살아진다. 그렇지 않느냐?”
이진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마따나 근래의 이벽은 검을 잡은 날보다도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불안했기에, 힘이 절실했다.
따라서 절실함이 사라졌다는 것은… 불안 역시 적잖이 풍화되었음을 의미했다.
몸이 무림에서 멀어지자.
마음 또한 함께 멀어졌다.
악몽을 꾸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걸로 되었다 막내야.”
“…….”
“네게는 모두 지난 일이니… 아무 걱정 말거라. ‘이 마을에 있는 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훅.
이벽은 즉시 이진천을 돌아보았다. 그것은 말과 목소리에서 묘한 그림자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란히 앉은 사내의 옆모습은.
퍽 서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문주님, 그게 어떤—”
철썩.
허나 그때였다. 무언가 차가운 것이 이벽의 뺨에 와 닿았다. 흠칫, 이벽은 반사적으로 몸을 빼냈다.
퍼덕퍼덕.
“…….”
그것은.
이진천의 낚싯바늘에 매달린 물고기였다.
“헌데 막내야. 검을 놓는 건 좋은데… 그 대신 뭐라도 밥값을 해야지, 이렇게 하루 종일 한 마리도 낚지 못해서야 어떡하겠느냐?”
끌끌, 이진천이 웃었다.
다시 언제나와 같은 표정이었다.
“나라고 마냥 한가해서 네게 낚시를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니란다. 결국은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치는 게… 스승으로서의 책무일 테니 말이다.”
“……!”
이벽은 조금 놀랐다.
그것은 이진천이 스스로를 문주나 약장수가 아닌 ‘스승’이라 칭한 것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알겠느냐? 내 누누이 얘기하지만… 물고기를 낚으려면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저 바늘을 던져두고선 가만히 기다린다고 냉큼 와줄 리가 있겠느…냐?!”
철썩.
때마침 이진천이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그 끝에는 어김없이 또 한 마리의 물고기가 걸려있었다.
“…….”
퍼덕퍼덕.
낚싯대에 걸린 물고기가 꼬리를 흔들었다. 과연 물고기에게 마음이랄 게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다지 헤아리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굳이 미끼를 사용하지 않고서 그렇게까지 어렵게 낚시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이벽은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러나 어쩌면.
이진천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정말로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방법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벽은 다시금 이진천의 낚싯대를 바라보았다.
사 년 전.
이벽의 창공비검은 같은 초식을 펼치는 저 낚싯대 앞에 무참히 패배했다.
“…다시 부탁드리겠습니다.”
“핫, 오냐! 얼마든지 지켜보거라.”
그리고.
이진천의 낚싯대는 계속해서 물고기를 건져 올렸다.
허나.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음에도 대체 무엇이 어떻게 되어 그런 일이 가능한 건지, 이벽은 보고도 영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 순간, 이벽의 어깨가 떨렸다.
* * *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조금 ‘다른 시각’ 속에서 살펴봐야 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즉, 다시 말해서.
“…목천(目天)의 영역.”
이벽이 무심코 입을 열었다.
그저 낚싯바늘을 던지고 물고기를 건져 올릴 뿐인 저 간단한 일련의 동작들은.
‘목천의 기예’일지도 모른다.
“핫, 이제서야 눈치챘느냐? 생각이 느린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그때 이진천이 말했다. 그리고.
이벽은 마침내 상황을 이해했다.
낚시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 이전에… ‘목천의 영역’을 되찾았는가에 대한 여부를 시험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물론.
지난 사 년의 시간 동안 이벽 스스로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
이벽은 눈을 감았다.
잠자코 선천의 힘을 일으켰다.
그것은 과거와 같이, 그저 생각만으로 이벽의 뜻에 따라 스스로 움직여주는 힘은 아니었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오로지 이벽 스스로의 의지로써 직접 다뤄야만 했다.
우우웅.
이내 내력의 고리가 형성되었다. 청강유엽공의 내력이 이벽의 혈로 안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몸 안을 채우는 내력의 감각은 퍽 충만했다.
적어도 내력의 운용에 한해서는, 무림을 돌아다니던 그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감각이 스쳤다.
허나 물론.
목천의 영역을 다루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예의 ‘느려진 시간’ 속에 접어들기 위해서는 선천의 힘을 끌어올려 상단전을 활성화시켜야 함을 떠올렸다.
그리고.
우우웅.
“…큭!”
이벽은 신음을 뱉었다.
내력의 운용과 목천의 영역.
두 가지의 공능을 모두 펼치기 위해서는… 선천의 힘을 ‘두 갈래로 찢어야’만 하는 것이다.
허나 과거와는 달리.
선천의 힘은 스스로 갈라지지 않으므로, 그 과정 또한 이벽의 의지로 해내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우우우웅.
선천의 힘은.
좀처럼 두 갈래로 나뉘려 하지 않았으며, 이벽의 시도를 번번이 무산케 했다.
허나 오늘만큼은.
쉬이 물러날 수는 없다.
으득.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우우우웅.
다시금 내달리는 선천의 힘의 경로를 막아섰다. 그리고 스스로 칼날이 되어, 밀려드는 선천의 힘과 맞섰다.
찌직.
“…허억!”
허나 충돌의 순간.
이벽은 다시 신음을 내질렀다.
선천의 힘을 억지로 잘라내려 하자, 마치 온몸이 두 동강 나는 듯한 고통이 이벽을 덮쳤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고통에 익숙해진 이벽에게조차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고통이었다.
찌르르.
마음이 울었다. 그리고.
일순 주변의 나뭇잎들이 화마에 불타오르는 듯한 환영에 휩싸였다. 언제인가 꿈에서 본 듯한 풍경이었다.
퉁.
허나 그때였다.
이마에 가벼운 충격이 스쳤고, 그 덕에 이벽은 환영에서 벗어났다.
“허억, 헉……!”
이벽은 숨을 몰아쉬었다.
“막내야, 지금 뭘 하는 게냐?”
그리고 이진천이 말했다.
이벽의 이마에 꿀밤을 먹인 이진천은 퍽 뚱한 얼굴로 이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억… 예?”
허나 호흡을 가다듬는 한편, 이벽은 이진천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아니, 막내야 너… 이건 검이 아니라 낚시라니까? 물고기랑 생사결이라도 펼칠 생각이더냐?”
“……?”
“…되었다. 천천히 생각하거라.”
하아, 이진천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휙, 낚싯바늘이 다시 물속으로 던져졌다.
“…….”
이벽은 당황했다.
그저 목천의 힘을 일으키려 했을 뿐이다. 헌데 ‘무언가를 잘못했다는 식’의 반응이 되돌아왔다.
허나 조금 전, 이진천은 ‘이제서야 눈치챘느냐’고 말했다.
고로 목천의 영역에 접어드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은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
이벽은 다시 웅크리고 앉았다.
어느덧 수북이 쌓인 낚시 바구니.
그리고 이진천의 모양새를 잠자코 바라보며,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
마침내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낚시 중인 이진천의 동작에서는 아무런 내력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이진천의 말마따나 물고기를 낚는 것은 검이 아니므로 내력은 불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두 갈래일 필요가 있나?’
쿠웅.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감각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