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17)
223화. 무거운 새벽 (3)
“…….”
이벽은 생각했다.
이진천의 검은… ‘완벽’했다.
직, 쾌, 강, 그리고 곡, 변, 유.
조금의 모자람도 치우침도 없이, 청강유엽검식에 담긴 여섯 개의 무리는 오롯이 완성되어있었으며.
다시 하나로 모여들어.
‘창공비검’으로 수렴했다.
그것은 단 하나의 초식임과 동시에, 선우세가의 모든 움직임을 함축하고 있는 가르침이었으며.
그 움직임은 나뭇잎과 같아.
그 어떤 성난 물길도, 천지를 흔드는 비바람도 그 흐름을 타고 노는 나뭇잎을 해칠 수는 없었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허나.
서걱, 파스스스.
혈마와 이진천의 충돌.
교차하고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두 인영의 모습 속에서… 이벽은 조금씩 나뭇잎이 바스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실재하는 소리는 아니었으며, 다만 이벽의 마음속에 울리는 소리일 뿐이었다.
허나 그것은 즉.
이진천의 수세를 의미했다.
이벽은 알 수 있었다.
청강유엽검식, 그리고 창공비검에 관해서라면 천하의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진천이 펼친 완벽함에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또한… 알아볼 수 있었다.
쿠우우우우웅.
그때, 또다시 두 인영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리고 땅을 뒤흔드는 충격이 퍼졌다.
“……!”
그리고 그 순간.
마침내 이벽은 눈으로 보았다.
충돌의 순간, 이진천의 검은 혈마를 베려 했으나.
그 검은 혈마에게 닿지조차 못했다.
검이 뻗어진 순간.
주변의 공간이 흡사 보이지 않는 뱀의 아가리처럼 이진천의 온몸을 위아래로 ‘찍어눌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기세 따위가 아니라.
명백히 실체화된 힘이었다.
허나 그러한 것이.
대체 어떠한 이치로 가능한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이벽은 직감했다. 붉은 모래로 뒤덮인 저 공간은… 이미 ‘혈마의 영역’이다.
‘…아니, 어쩌면.’
불현듯 생각이 스쳤다.
목천의 경지조차 초월하여.
등천(登天). 즉, 하늘로 나아가는 무공이란.
육체를 넘어, 병장기를 넘어, 주변의 ‘공간 자체를 자기 자신의 무리로써 점거’하는 데에 있을지도 모른다.
공간의 흐름을 강제하고.
자연 속의 기운을 통제하며.
나아가서는 천하를 뒤덮는다.
목천의 시간. 그리고.
‘…등천의 공간.’
부르르.
이벽은 전율했다.
마침내… 힘을 잃기 전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쿠우우우우웅.
다시, 충돌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뭇잎은 혈마의 공간 속에서 시시각각 생기를 빼앗기고 시들어가는 듯했다.
이유는 퍽 명백했다.
이진천의 검은 완벽했으나.
그것은 그저 하나의 몸, 그리고 한 자루의 검 안에서 완성된 ‘일신상의 완벽함’에 불과했기 때문이었으며.
바꿔 말해.
고작해야 ‘목천의 기예’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어떡하지, 벽아?”
그때 혁대웅이 말했다.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담겨있었다.
마침내 접전이 흐를수록 이진천의 기세가 흐트러지고 있음을 혁대웅 역시 알아본 모양이었다.
“…….”
역시 초조함을 느끼는 가운데.
동시에 이벽은 위화감을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어쩐지 이진천이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스쳤다.
혈마의 존재감은 분명 압도적이었다. 허나.
—천하에는 참으로 기인이 많아. 헐헐! 아마 그 가르침을 창안하신 일대종사께서 살아 계신다면… 이 거지로서도 감히 승부를 자신할 수 없을 것 같네.
과거, 취풍신개는 말했다.
말마따나 이진천이 ‘하늘에 이르지 못한’ 무인이었다면… 낙검진천신공과 같은 가르침을 스스로 창안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혹은 어쩌면.
지금의 이진천에게는… ‘전력을 다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어찌할 방법 따위는’ 없다.
지금의 자신으로는, 이진천을 대신하여 혈마의 단 일 합을 대신 받아주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아니, 그 이전에.
저것은 이미 초식이나 합으로 구분되는 싸움의 영역조차 아니었다.
허나.
—더는 깊이 들어오지 않아도 좋네. 자네의 몫은 미래의 무림이지, 현재의 무림이 아닐세.
—바람이 있다면… 그래, 내 제자놈과는 퍽 나이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사이좋게 지내주시게나.
다시금.
늙은 거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과거, 이벽은 황보혁으로부터 등을 돌려 도망쳤고.
취풍신개는… 돌아오지 못했다.
또한 무림을 떠난 지금, 그가 자신에게 남긴 마지막 바람조차 지키지 못했다.
꾸욱.
이벽은 주먹을 말아쥐었다.
두 번 다시, 그런 후회를 맛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생각에 몰두했다.
이진천이 수세에 몰리는 이유는.
공간 그 자체의 힘에 짓눌려… 청강유엽공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아주 잠깐이라도.
‘공간’을 열어준다면.
“……!”
이벽은 불현듯 과거 사패련에서 치렀던 흑천방주 맹철극과의 결전을 떠올렸다.
창공비검이 그 모든 힘을 오롯이 쏟아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구도’를 생각했다.
“…혁대웅.”
마침내 이벽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혁대웅을 돌아보았다. 그의 손에 쥐어진 무쇠의 창을 바라보았다.
“투창을… 할 수 있겠나?”
“……!”
혁대웅의 눈썹이 흔들렸다.
* * *
“…할 수 있어.”
혁대웅이 답했다.
“저기까지 닿는 데 얼마나 걸리지?”
“반 호흡… 아니, 그 절반이면 충분해.”
“…….”
고작 그 정도의 시간으로.
길이만 구 척에 달하는 무쇠의 창을 날려 십 장의 거리를 격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허나.
상대는 당연하다는 듯 목천의 시간 속에서 숨을 쉬며, 이내 주변의 공간 자체를 점령해버린 천외천의 존재였다.
“하지만 벽아. 나도 약한 소리 하기는 싫지만… 솔직히 말할게. 지금의 내 경지로는… 미완성의 초식이야.”
다시 혁대웅이 말했다.
그리고 혈마를 바라보았다.
“…저걸 해치우기는커녕, ‘맞출 수 있을지’조차 자신이 없어.”
“아니, 맞출 필요는 없다.”
이벽이 답했다.
이내 결심을 세웠다.
“내가 신호를 주면, 그 즉시 창을 던져라. 노리는 것은… 두 사람의 정중앙, 즉, 놈이 밟게 될 ‘발아래의 땅’이다.”
“……!”
혁대웅은 즉답하지 못했다.
기실 이벽과 달리 목천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혁대웅의 눈에는 싸움의 양상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사형제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도박이라 해도 다른 방법이 없으며, 돌아설 수도 없다.
“…알았어.”
이내 혁대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꾸욱.
혁대웅이 두 손으로 창대를 움켜쥐었다. 크게 호흡을 들이켠 뒤, 조용히 내력을 일으켰다.
휘오오오.
이내 창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것은 평소처럼 위아래로 휘둘러지며 원을 그리는 거대한 회전이 아니었다.
일점으로 파고드는 가시처럼, 창은 손바닥 안에서 고요하게 회전했다.
우우웅.
이내 강기가 서리자 혁대웅은 창대를 어깨 뒤로 한껏 잡아당겨 투창의 자세를 취했다.
“…….”
이벽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혁대웅의 창은 한 자루뿐이고, 기회 역시 단 한 번뿐이며, 이후에는 혈마에게 이쪽의 위치가 노출될 것이다.
그 한 번의 기회로.
접전에 구멍을 뚫어, 혈마의 빈틈을 찌름과 동시에 이진천에게 유리한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찌잉.
목천의 영역 속에서 집중이 길어지자 서서히 두통이 일었다. 허나 서둘러선 안 된다.
이벽은 숨을 죽였다.
침착하게 싸움을 지켜보았다.
쿠우우우우웅.
순간, 두 인영이 재차 부딪혔다.
휘청.
다시 공간에 짓눌린 이진천의 몸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다급히 여러 개의 잔상을 남기며 휘어졌다.
곡과 변의 묘리였다. 허나.
혈마는 마침내 붙잡은 승기를 놓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 역시 몸이 밀려났으나 충격 따윈 없다.
타앙.
발이 땅을 디뎠다.
재차 이진천을 추격하려던 그때였다.
“지금이다, 혁대웅!”
“크… 흐아아압!”
기합과 함께 혁대웅이 힘껏 팔을 내뻗었다. 그리고.
쐐애애애액.
콰콰콰콰콰콰!
회전하는 창이 쏘아졌다.
무쇠의 회전은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며, 걸리적거리는 수풀 따위를 종잇장처럼 모두 짓이겼다.
그리고.
예상보다도 빠르게 공간을 격했다.
움찔.
창이 혈마의 영역 지척까지 나아간 순간, 혈마의 고개가 이쪽을 향했다. 허나.
“…….”
그 순간.
이벽은 혈마에게서 ‘비웃음’이 스치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혈마는 다시 이진천을 향했다.
혁대웅의 전력을 다한 공격은.
신경 쓸 거리조차 아닌 듯했다.
“…….”
그리고 그것은.
다행히도 예상대로였다.
콰아아아앙—!!
이내 창이 붉은 모래밭의 한가운데에 틀어박혔다. 폭음과 함께 훅, 사방으로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다.
물론 혈마를 맞추지는 못했다.
다만 진로를 막아섰을 뿐이었다.
후욱.
허나 혈마는 여전히 이진천을 향한 추적을 포기하지 않은 듯, 그 신형이 모래 먼지를 뚫고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후우욱.
다시 아래로 하강했다.
날아드는 독사처럼, 붉은 섬광이 이진천을 향해 대각선으로 쇄도했다.
꾸욱.
이벽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해내었다.
이진천, 그리고 그 검을 믿었다.
후욱.
그리고 다음 순간.
모래 먼지 속에서, 또 하나의 신형이 날아올랐다. 그것은 물론 이벽이 기대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창공비검(蒼空飛劍).
아래에서 위로.
나뭇잎이 날아올랐다.
비로소 여섯 개의 무리가 온전히 응축된 극한의 일검이 하늘을 덮은 뱀을 향해 뻗어졌다.
“……!”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찰나의 시간 속에서, 솟구치는 이진천의 몸 주위를 두른 ‘안개와 같은 형상’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직감했다.
명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바로 저 흐릿한 형상이야말로.
자신과 이진천이 이룬 창공비검의 경지를 가르는… ‘등천의 경지’에 해당하는 깨달음의 발현이었다.
움찔.
혈마의 몸이 허공에서 주춤했다.
적잖이 당황한 듯, 황급히 몸을 비틀어 피하려 했다. 허나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퍼어억.
이진천의 검이.
혈마의 몸을 꿰뚫었다.
* * *
“이, 이겼다……!”
혁대웅이 외쳤다.
불끈, 주먹을 쥐어 보였다.
비록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으나.
먼 곳에서 서서히 동이 트고 있었으며, 이진천의 검이 적의 몸을 관통했음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했다.
“벽아, 잘했어! 우리가—?”
허나.
옆을 돌아보았을 때, 혁대웅은 이벽의 표정이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있음을 발견했다.
“왜, 왜 그래 벽아?”
“…….”
이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하지 못했다.
분명히 이진천의 검은 혈마의 몸을 꿰뚫었다.
비록 심장이나 단전을 정확히 찌르지는 못했으나 복부 한켠을 관통당한 시점에서 승부는 이미 끝난 것이다.
허나.
혈마의 붉은빛이 꺼지지 않았으며, 그 주변의 공간에 감도는 압력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스윽.
“……!”
다음 순간.
혈마의 고개가 꺾여졌다.
그것은 ‘보통 사람의 목’이라면 가능할 리 없는 각도였으며, 그 시선은 정확히 이진천과 혁대웅이 숨은 곳을 향했다.
오싹.
‘…죽는다!’
이벽은 직감했다.
꿈틀, 다음 순간 혈마의 몸이 비틀어졌다. 스윽, 몸을 관통한 검을 옆구리를 통해 빼내었다.
그것은 마치.
뱀이 허물을 벗는 듯했다.
후욱.
그리고 신형이 흐릿해졌다.
한 줄기 붉은 섬광이 쏘아졌다. 찰나의 순간, 이벽은 판단을 내릴 시간조차 없었다.
퍼어억.
온 힘을 다해 혁대웅을 밀쳤다.
목천의 영역 속에 있었으므로, 내력조차 일으키지 못한 상태였다.
쿠우웅.
두 사람은 함께 뒹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직후였다.
퍼어어어어억.
“…커억.”
이벽의 바로 등 뒤에서 굉음이 일었다. 이벽은 등이 불에 지져지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