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16)
222화. 무거운 새벽 (2)
덜컹.
약방을 나선 이벽은 그 즉시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냉큼 검을 집어 들었다.
우웅.
이후, 상단전에 접어든 선천의 힘을 회수하여 목천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물론 마음과 같아선.
‘쾌보’를 통해 내달리고 싶었다.
허나 지금의 이벽은 선천의 힘을 두 갈래로 나누는 능력을 잃었으므로, 내력의 운용과 목천의 힘을 동시에 다룰 수 없으며, 고로 목천의 기예를 사용할 수 없었다.
우우웅, 타앙.
이벽은 내력의 고리를 일으켰다.
청강유엽공의 내력이 몸 안에 흐르기 시작한 순간, 이벽은 그 즉시 경신법을 펼쳤다.
타다닷.
새벽의 마을을 내달렸다.
‘소리’가 느껴졌던 방향을 향했다.
이내 몇 호흡도 지나지 않아 이벽은 마을을 둘러싼 목책과 이어진 입구에 다다랐다.
“……?!”
그리고 그때였다.
어스름한 시야 너머로, 입구 어귀에 주저앉은 두 개의 인영을 발견했다.
또한 그 모양새는.
아주 낯이 익었다.
“혀… 혁대웅? 사저……?!”
그들은 다름이 아니라, 앞서 술에 취해 먼저 약방을 떠났던 제갈소미와 혁대웅이었다.
타앙.
이벽은 그 즉시 거리를 좁혔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무슨 일이 있었나?”
“벼… 벽아. 큭!”
혁대웅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딘가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뭐긴 뭐겠어? 문주님 가시는 걸음에 발목 좀 붙잡아보려다 대차게 걷어차인 거지.”
그때, 제갈소미가 말했다.
허탈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었다.
느닷없이 술을 건네며 미래계획 따위를 물어오던 이진천의 언행에서 무언가 유달리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던 제갈소미는.
술에 취한 혁대웅을 깨워 취기에서 벗어나게 한 뒤, 함께 몰래 낙검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하여, 이곳에서 진법을 설치한 뒤 기다리고 있었노라 했다.
“…….”
그것은.
사 년 전, 야음을 틈타 다시 마을을 몰래 떠나려 했던 이벽을 막아섰던 것과 같은 이치였다.
물론, 제갈소미 역시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그저 과민함에 불과했으면 차라리 좋았을 터였다. 허나.
이진천은 모습을 드러내었고.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타앗.
이내 두 사람은 그 즉시 이진천을 막아섰고, 이 새벽에 어딜 말도 없이 떠냐는 거냐며 행방을 캐물었다.
“…이거 참, 우리 대제자는 역시 눈치가 빠르구나. 내가 깜빡하고 있었네.”
이진천은 머쓱한 듯 웃었다.
그리고 잠시 지지부진한 대화가 이어졌으나, 결국 제갈소미와 혁대웅이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쿠우웅.
그리고 그즈음, 어딘가에서 땅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이진천의 표정이 일변했다. 두 사람은 물론 막아서려 했다. 허나.
“…미안, 진짜로 가봐야겠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두 사람은 진심이 된 이진천을 막아설 수 없었다.
퍼억.
“…큭!”
제갈소미의 진법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혁대웅의 창은 일격에 제압당했다.
“많이 늦었다. 들어가서들 자거라.”
그리고.
쓴웃음을 남기고서.
이진천의 몸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신형은 연기처럼 흩어졌으며, 두 사람은 감히 추적의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
그렇게, 두 사람은 제자리에 주저앉은 채 이벽이 나타나기 전까지 얼마의 시간이 흐르도록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 인간, 어쩌면… 다시는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
다시 제갈소미가 말했다.
이벽의 얼굴이 흔들렸다. 허나.
“…그럴 리는 없다.”
이벽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벽은 취중의 대화를 기억했다. 분명히… 이진천은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말했다.
퍼억.
“아, 시끄러!”
제갈소미가 땅을 두드렸다.
“내가… 그 인간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 봐왔는지 알아?! 너희들이랑은 달라! 내 눈은 절대로 못 속인다고!”
퍼억, 퍼억.
맨주먹이 연신 땅을 두드렸다.
“그건… 등신 같은 무인들이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생사결을 각오한’ 얼굴이었다고!”
“……!”
쿠우웅.
그때였다.
다시, 먼 곳에서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소리가 전해져왔다. 소리는 퍽 희미했으며 방향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허나.
이벽은 생각했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목천의 영역으로써 예민하게 돋운 감각이라면… 충분히 되짚을 수 있을 것이다.
“…….”
하늘과 하늘의 충돌.
어쩌면 정말로 이진천, 그리고 그에 필적하는 누군가가 생사결을 벌이고 있는 거라면.
목천의 기예조차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의 자신이 가세한들 아무런 의미는 없을 것이다. 허나.
“…다녀오겠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벽은 다시 땅을 박차려 했다.
“자, 잠깐, 벽이 너…! 문주님을 추적할 방법이 있는 거야?!”
그때 혁대웅이 다급히 말했다.
“그, 그럼 같이 가자, 벽아!”
끙차, 혁대웅이 허둥지둥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저만치에 내동댕이쳐져 있던 창을 주워들었다.
“…괜찮겠나?”
“그, 그야 물론이지! 문주님한테 한 대 맞긴 했지만… 충분히 뒹굴었으니 이미 멀쩡하다고!”
“…….”
이벽은 말리고 싶었다. 허나.
입장상 자신과 혁대웅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므로 말릴 명분 따위는 없었다.
“…얘들아.”
그때 제갈소미가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들지 않았다. 맨땅을 내려친 두 주먹에서 살갗이 벗겨지고 핏방울이 떨어졌다.
“…부탁 좀 하자.”
처음 듣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저가 되어가지고 등신같이 약해빠져서… 아무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
“…….”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래도 제발… 우리 문주님 좀 데려 와줘. 응? 그 인간… 어찌 되었건 우리 은인이잖아?”
“응, 물론이지 사저. 나만 믿어.”
혁대웅이 즉답했다.
* * *
타다다닷.
이벽과 혁대웅은 달렸다.
쿠우웅.
굉음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두 사람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이벽은 목천의 영역을 끌어올렸다.
쿠우웅.
한껏 예민해진 감각을 통해 소리가 들려오는 진원지를 가늠하고 방향을 수정했다.
“이쪽이다.”
“…응, 알았어, 벽아. 네가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야.”
그렇게.
반 시진 가량을 나아가자 더는 목천의 감각에 기대지 않아도 충분히 길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소리는 뚜렷해졌다.
타다다닷.
그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반 시진을 전력으로 달렸다.
산과 산을 넘었고,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숲을 헤치며 나아갔다.
물론, 이벽은 경공을 펼치는 정도로는 지치지 않았으며.
또한 낙검진천신공의 끊이지 않는 내력의 흐름에 의거하는 것은 혁대웅 역시 마찬가지였다.
쿠우우웅.
허나.
진원지로 다가갈수록 소리는 천지를 뒤흔들듯 무거워졌고 사방의 나뭇가지들이 마구 흔들렸다.
스스스.
문득, 온몸이 털이 곤두섰다.
그와 동시에 이벽은 깨달았다.
본능이… 이 이상 나아가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또한 혁대웅도 같은 느낌을 받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두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기에, 나아갈수록 스스로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쿠우우우우웅. 찌릿!
다음 순간.
굉음과 함께 약속이나 한 듯, 두 사람의 걸음이 동시에 제자리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혈기!’
마침내 이벽은.
풍겨오는 기운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것은.
지금 선 자리에서 더 깊이 들어가는 순간, 저 너머의 누군가 역시 자신들의 존재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으리란 것이었다.
“…장난이 아니구나, 정말.”
혁대웅이 말했다.
“어째 가면 갈수록… 점점 범의 아가리로 직접 머리를 들이미는 기분인걸……?”
“…그럼 다시 되돌아가겠나?”
이벽이 되물었다.
내심 혁대웅이 이대로 돌아서 주기를 바랐다. 저 너머에 대체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한 사람이건 두 사람이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리란 점이었다.
“…핫.”
혁대웅이 코웃음쳤다.
“벽아. 개소리하지 마.”
“…….”
“문주님을 다시 모셔오겠다고 사저와 약속했어. 그러니까… 범의 아가리건 뭐건, 나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어.”
턱.
다음 순간, 혁대웅의 손이 이벽의 어깨에 얹어졌다.
“벽아, 너야말로 돌아가고 싶으면 가도 돼. 아니, 명령이니 이만 돌아가. 나이가 같아도 내가 사형이야.”
“…….”
“상황이 어떻게 되건… 만에 하나 싸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은 마을에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어?”
이벽은 답하지 않았다.
이 이상 입씨름을 해봤자 의미가 없음을 이해했다. 문득 오래전의 일이 떠올랐다.
“실언했군. 그냥 같이 가지.”
“…이벽, 너.”
“예전에는 둘이서 진짜 범을 상대로도 어떻게든 버텼으니, 이번에도 어떻게든 될지도 모르지 않나?”
“……!”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핫, 혁대웅이 다시 웃었다.
“그래, 같이 가자. 예나 지금이나 더럽게 말 안 듣는 사제 녀석 같으니.”
그리고.
두 사람은 내력을 거두었다.
가능한 한 기척을 죽인 채 경공이 아닌 보통의 걸음걸이로 한걸음 씩 나아갔다.
철벅.
허나 숲길을 걷고 있음에도.
마치 피 웅덩이를 밟는 듯한 감각이 스쳤다. 실재하지 않는 피 냄새가 자욱하게 맡아졌으며.
주변은 두려울 만큼 고요했다.
나무가, 벌레가, 그리고 모든 짐승들이 살아있는 재앙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찌릿.
혈기의 압력은 점점 심해졌다.
등줄기가 땀으로 흥건해졌으며, 이내 매 걸음걸음마다 이를 악물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쿠우우우우웅.
“……!”
그리고 다시 굉음이 터졌다.
그 순간, 이벽은 팔을 뻗었다.
함께 걷던 혁대웅을 제지했다.
숲에 내려앉은 깊은 어둠 속, 십 장 바깥 즈음에 펼쳐져 있는 탁 트인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허나 그것은.
결코 자연스런 공터가 아니었다.
본래는 평범한 숲의 일부였으나, 그 반경에 자리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부스러져 먼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동식물을 포함해, 그 안에 살아있는 것은 무엇도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그저.
쿠우우우우웅.
붉은 빛과 푸른 빛.
깜빡이는 두 개의 점이.
반복해서 충돌하고 있었다.
“잠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응, 그러네. 솔직히 그밖에 할 수 있는 게 뭔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벽은 선천의 힘을 유도했다.
목천의 영역에 접어든 뒤, 또렷해진 시야로 예의 ‘점’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이벽의 눈에 비친 점들의 모습은 서서히 형체를 갖추었으며, 마침내 인영의 모습이 되었다.
움찔.
허나 붉은 인영의 모습을 바라본 순간, 이벽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동시에 그것을 과연 ‘인영’이라 말할 수 있을지, 이벽은 확신할 수 없었다.
체구는 그리 크지 않았다. 허나.
혈기는 피 안개처럼 넘실댔으며.
창백한 피부 위로 도드라진 핏줄의 모양새는… 마치 수십, 수백 마리의 붉은 뱀으로 온몸을 두른 듯했다.
슥, 후우욱.
사내는 공간을 종횡무진했다.
그 움직임을 좇는 것은 목천의 영역에 접어든 이벽의 눈으로도 결코 쉽지 않았다.
또한 그 손과 발이 움직일 때마다, 잘게 쪼개어진 먼지들이 계속해서 부스러지고 또 부스러졌다.
또한.
그 움직임은 초식도 뭣도 아닌.
극한에 이른 살의(殺意) 그 자체였다.
부르르.
이벽은 몸을 떨었다.
타인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자.
이벽이 알고 있는 말들 중, 그런 존재를 형언하기에 적합한 말은 오직 딱 한 가지뿐이었다.
그야말로.
‘…혈마.’
이벽은 사 년 전 일을 떠올렸다.
흑천방의 뒤에 숨어 음모를 꾸미고 있던 혈마는 분명 이진천의 손에 죽었으며, 그것은 퍽 싱거운 최후였다.
허나. 하지만.
저것이 ‘혈마’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 혈마란 말인가?
“…헉, 후우.”
이벽은 가빠지는 호흡을 애써 가다듬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푸른 쪽의 인영을 바라보았다.
퍽 당연하게도.
사내는 이진천이었다.
후욱.
그는 한 장의 나뭇잎이 되어.
혈마의 살육지대 위를 날아다녔다. 검과 발, 그리고 온몸에서 여섯 개의 묘리가 아무런 제약도 없이 빗발쳤다.
청강유엽검식.
절기, 창공비검이었다.
후욱.
접전은 치열했으며 끼어들기는커녕, 눈으로 좇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지금의 자신은 물론.
과거의 자신이었을지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게 없었을 것이었다.
허나.
이벽은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이라도 이진천을 도울 수 있을 실마리를 찾고자,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리고.
“……?”
문득.
이벽은 접전이 펼쳐지고 있는 공터 내에 두 사람을 제외한 또 한 명의 인영이 있음을 발견했다.
혈마와 이진천이 뒤엉키는 사이.
외곽 쪽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복면인이 한 명 있었다.
‘…저건 누구지?’
쿠우우우웅.
허나 그때였다.
다시 충돌음이 일었다.
훅, 동시에 이벽의 시선이 움직였다. 복면인을 일견하며 다시금 혈마와 이진천을 향했다. 그리고.
서걱.
아주 조금.
허나 분명히.
나뭇잎의 끄트머리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이벽의 귓가에 생생히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