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18)
224화. 무거운 새벽 (4)
촤아악.
이벽의 등에서 피가 솟구쳤다.
혈마가 다가오는 것을 직감한 순간, 이벽은 그 즉시 혁대웅을 밀쳐내며 함께 땅을 굴렀다.
그리고 그 판단이.
두 사람의 목숨을 살렸다.
그저 땅에 내려앉은 것만으로, 혈마를 중심으로 사방을 향해 칼날 같은 충격파가 번져나간 것이다.
다만.
목숨은 건졌으되, 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탓에 이벽의 등은 피범벅이 되었다.
“벼, 벽아……?”
“…괜찮다.”
그것은 부지불식간의 일이었다.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혁대웅이 멍한 목소리를 내었다. 이벽은 즉시 답했다.
탓, 그리고 두 발로 일어섰다.
찌릿.
등줄기에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일었으나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설령 그게 아니라고 해도.
가만히 ‘잡아먹힐 수’는 없다.
그리고 이벽은 뒤를 돌아보았다.
“…….”
불과 방금 전까지 두 사람이 몸을 숨기고 있던 공간은 충격파에 의해 엉망으로 부서져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혈마가 서 있었다.
이진천의 검에 꿰뚫린 배의 상처를 부여잡은 채,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스으으으.
허나 이벽은 눈치챘다.
목천의 시야 속에서, 엉망이 된 주변의 모든 식물들이 서서히 ‘메마르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했다.
형체와 생기를 잃고.
이내 먼지가 되어간다.
그것은.
혈마를 둘러싼 주변의 ‘보이지 않는 뱀’이 정기를 흡수하는 동시에 공간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는 모양새였다.
그야말로.
‘하늘에 다다른 재앙’이었다.
‘…이 틈에 도망친다면—.’
이벽은 생각했다.
허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휙, 혈마의 고개가 꺾어졌다.
그리고 이벽과 눈이 마주한 순간, 무수한 혈관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움찔.
이벽의 몸이 흔들렸다.
그것은 먹이를 향해 입맛을 다시는 뱀의 미소였으며, 동시에 이벽은 도망따윈 절대로 불가능함을 직감했다.
스윽.
혈마의 손이 뻗어졌다.
쩌어억.
그리고 보이지 않는 뱀이 그 흉측한 아가리를 벌렸다. 훅, 이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
도망은커녕 또다시.
판단할 시간조차 없었다.
철컥, 이벽은 검을 뽑았다.
“혁대웅, 도망가라. 어서.”
“벼, 벽아, 그게 무슨……?”
“지금뿐이다, 혁대웅. 부탁이니 잔말 말고 가라. 아무 의미도 없이 같이 죽을 이유는 없지 않나?”
저벅.
이벽은 검을 들고 나아갔다.
물론, 자신의 알량한 검으로 저 뱀을 벨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허나 지금의 혁대웅에겐 창조차 없었다.
고로.
스스로 뛰어들어 혁대웅이 도망칠 한순간을 벌 수 있다면… 그것이 그나마의 희망이었다.
움찔.
그러나 다시 그 순간.
혈마의 표정이 흔들렸다.
뱀의 아가미가 이벽을 향해 다가오던 움직임을 멈추었으며, 혈마의 고개가 휙 꺾여졌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또한.
낯선 기운을 감지한 이벽 역시 위를 올려다보았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으며, 그곳에 자리한 이진천을 발견했다.
이진천은.
조금 전 창공비검을 펼친 그 상태 그대로 여전히 저 높은 창공에 머무르고 있었다.
허나 달라진 게 있다면.
하늘을 향해 솟구쳤던 검의 방향이 아래로 틀어졌으며, 그 끝이 다시금 혈마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우웅.
이진천의 검이 떨었다.
먼동이 트는 새벽빛 아래, 푸른빛을 내던 이진천의 검이 서서히 ‘검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그것은 마치.
나뭇잎이 불에 그슬리는 듯했다.
“……!”
무언가가.
이진천의 검에서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는 이진천의 몸 주변을 감싸고 있던 흐릿한 안개의 형상마저 이내 시커멓게 물들어갔다.
그 순간, 이벽은 넋을 빼앗겼다. 바로 앞에 절대로 이길 수 없는 포식자를 두고도 도망치기는커녕, 하염없이 이진천을 바라보았다.
검은 기운은 이질적이었다.
그것은 청강유엽공이 아니었으며, 정도의 기운 또한 아니었고, 하물며 혈기조차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이진천의 검에 감도는 무리는 분명히 청강유엽검식의 무리였다. 이진천은 다시 한번 창공비검을 펼치려는 듯했다.
허나.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
반대로 ‘떨어져 내리려’ 한다.
고로 모든 동작은 거꾸로였다.
후우우우.
문득 바람이 일었다.
어느덧 시커먼 어둠에 삼켜진 이진천의 검을 향해 온 대기가 빨려들듯 요동치고 있었다.
사아아아.
그때였다.
혈마가 입을 열어 울부짖었다.
역시 인간의 음성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사이한 짐승의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타앙.
그리고 그대로 날아올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진천의 ‘일검’이 완성되기 전에 먼저 집어 삼켜버리려는 심산인 듯했다.
허나.
후욱.
그 순간, 이진천이 움직였다.
마침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건 역시 창공비검이었다. 허나.
시커멓게 불에 탄 낙엽은… 날아오르지 못하고 너울거리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부르르.
이벽은 다시 전율했다.
목천의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검의 속도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감각이 어그러졌으며, 또한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이진천의 시커먼 어둠 속으로 빨려드는 듯했다.
시간과 공간마저.
예외는 아니었다.
‘저건… 창공비검이 아니다.’
그리고 불현듯 깨달았다.
그것은 이미 선우세가의 가르침의 범주를 한참 넘어선, ‘별개의 깨달음’이자 ‘다음 단계의 검’이었다.
발검도 회검도 아니며.
날아오르는 검조차 아닌.
아래로 떨어지는 낙엽. 그것은.
“…낙검(落劍).”
그 순간.
낙엽과 붉은뱀이 충돌했다.
후욱.
허나 거짓말처럼 충돌음은 일지 않았다. 아니, 소리마저 어둠 속에 삼켜진 것이다. 그리고.
“……!”
바로 다음 순간, 이벽은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몸을 막았다. 닥쳐올 충격에 대비했다.
파아아아아앙.
이내 굉음이 하늘을 두드렸다.
어둠이 폭발하며, 빨아들인 모든 것을 일제히 토해내었다. 광풍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쿠우우우우우웅.
응축된 굉음이 공기를 찢었다.
마치 하늘이 흔들리는 듯했다.
‘…진천(振天).’
후욱.
그때, 광풍을 이기지 못한 이벽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덥석.
허나 날아가려는 이벽의 몸을 혁대웅이 붙들었다. 그대로 혁대웅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혁대웅.”
“벽아, 이게… 대체 뭘까? 하하.”
혁대웅이 허탈한 웃음을 흐렸다.
말마따나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펼쳐진 것은 더는 ‘무인 간의 싸움’이라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하늘에 오른 이의 충돌은.
말 그대로의 ‘재앙’이었다.
“우리… 말도 안 되게 약하구나.”
“…….”
“그래도 저거, 우리 문주님이 이긴 거 맞지? 헌데… 저 시커먼 힘은 대체 뭐냔 말이야?”
이벽은 답하지 못했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이 주변을 빨아들이던 것은 잠깐의 시간에 불과했으나, 아직까지도 토해낼 게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혈마의 붉은 기운은 빠르게 존재감을 잃어갔다. 명백히 이진천의 우세였다. 허나.
“…….”
안도감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형언할 수 없는 서늘함이 스쳤다.
그것은 마치 ‘있어선 안 될 힘’처럼 느껴졌으며, 혁대웅 또한 비슷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문득.
이벽은 이진천이 이러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혈마를 상대로 섣불리 꺼내 들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들은… 이진천을 돕는답시고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걸지도 모른다.
퍼어어억.
그때, 마침내 하늘에서 무언가가 추락했다. 이벽과 혁대웅의 바로 앞에 널브러졌다.
짓이겨진 핏덩어리의 정체가.
혈마임을 알아보긴 쉽지 않았다.
꿈틀.
“……!”
허나 그때 혈마가 움직였다. 그만큼이나 사람의 형체를 잃어버리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이다.
스스스.
다음 순간.
혈마의 몸이 뱀처럼 땅을 기었다. 추격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근처를 빠져나갔다.
타악.
그리고.
한발 늦게 이진천이 내려섰다.
“…쯧.”
혈마가 멀어진 방향을 보며, 이진천이 작게 혀를 찼다.
“결국은… 또 이렇게 되는구만. 참으로 천년의 미꾸라지 같은 놈이로구나.”
“…….”
이진천은 혈마를 추적하려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색은 창백했으며.
손발이 잘게 떨리는 듯했다.
탱그랑.
이내 그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이벽과 혁대웅은 잠시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태산의 거목처럼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이진천의 ‘약해진 모습’은.
둘 모두에게 처음이었다.
고요함 속에서.
불안감이 서서히 자라났다.
“쿨럭.”
문득 이진천이 기침을 했다.
“쿨럭… 쿨럭!”
한 움큼의 피를 토했다.
동시에 그 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안색은 창백했으며 서 있는 것조차 힘겨운 모양이었다.
“…스승님.”
이벽이 말했다.
핫, 이진천이 웃었다.
“…스승이라.”
피가 흐르는 입가에 웃음을 띤 채 초점이 흐릿한 눈이 이벽과 혁대웅을 향했다.
“내가 정말로 스승이 맞느냐?”
이벽은 말문이 막혔다.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정녕 내가 너희들의 스승이 맞긴 하냐고… 그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네, 문주님.”
그때, 혁대웅이 답했다.
잠깐의 침묵 끝에 말을 이었다.
“이런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주님께선 오래전, 제 목숨을 구해주셨던 그때부터 제게는 스승님이자 또 한 분의 아버지셨습니다.”
“…….”
크핫, 이진천이 다시 웃었다.
“…그래, 듣기 나쁘진 않구나. 헌데… 왜 이렇게 지지리도 말을 안 듣느냐, 이 제자 녀석들아?”
쿨럭.
이진천이 다시 피를 토했다.
스윽, 그리고 몸이 기울어졌다.
* * *
벌떡.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벽과 혁대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진천에게로 다가가 몸을 부축하려 했다. 허나.
“오지 말거라.”
이진천이 말했다.
어투는 단호했다.
움찔, 두 사람이 멈춰선 사이 이진천은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고 섰다.
“나는 뭐…, 이만 되었다.”
“……?”
“집에 가서… 씻고 자거라. 그리고 오늘 일은 잊거라. 내일부터는 다시 밥을 해 먹고, 잡일을 하고, 애들도 가르치고… 그냥 그렇게 사는 거다.”
두 사람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여전히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허나 그것은.
무언가 아직, 말로써 꺼내지지 않은 ‘숨겨진 사실’이 남아있었기 때문임을 직감했다.
이벽은 묻고 싶지 않았다. 허나.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혁대웅이 물었다. 그러자.
“실은… 난 이미 죽은 목숨이다.”
이진천이 답했다.
“아마도… 하루 이틀 정도가 남은 시간의 전부겠지. 너희들에겐 그저 ‘감감무소식’으로 사라지려 했지만… 이 마당에 그건 무리일 것 같구나.”
대수롭지 않은 일을 털어놓듯.
이진천은 가볍게 말을 이었다.
“뭐, 딱히 후회랄 건 없구나. 제자놈들 술버릇도 확인했고 가르칠 것도 대강 다 가르쳤으니… 너희 역시 칼밥이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먹고는 살 수 있을 테고.”
“대, 대체 무슨…….”
혁대웅이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런 농담은 딱히 웃기지도 않아요. 좀 지쳤다고… 멀쩡한 사람이 죽긴 왜 죽어요? 야… 벽아. 너도 뭐라고 좀 해봐.”
“…….”
허나.
이벽은 여전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이진천의 표정과 맞닿은 순간, 농담 따위가 아님을 이해했다.
낙엽이란.
‘죽어가는 나뭇잎’이다.
혈마를 짓이긴 어둠은 깊고 탁했다. 어쩌면 이진천은… ‘사용해서는 안 될 힘’을 사용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자신과 혁대웅을 구하기 위해서.
“쿨럭.”
이진천이 다시 피를 토했다.
“말해두지만… 너희들 탓은 아니니까 쓸데없이 자책하지는 말고. 그저 때가 되었을 뿐,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리고 서서히.
이진천의 호흡이 가빠졌다.
“이쯤에서… 내 역할이 끝날 건… 후우,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일일 뿐이니까.”
“…….”
이진천이 쓴웃음을 보였다.
이제는 퍽 익숙해진 얼굴이었다.
“그러니 너희가 날 스승으로 생각한다면… 쓸데없이 더 이상 알려고 하지도 말고, 나서려고 하지도 말거라. 알겠냐?”
“…….”
“왜 대답이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