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48)
254화. 서천무존 (1)
사락사락.
마차의 지붕을 부수고 솟아오른 이벽의 검이 창공비검의 무리를 품었고, 등천의 영역에 접어들며 투명한 나뭇잎들이 주변을 둘렀다.
휘오오오.
아가리를 벌린 채 저 위에서 아래로 내려꽂히는 구름의 용을 향해 마주 솟구쳤다.
후우우욱.
콰아아아아아아앙.
이내 나뭇잎이 구름과 충돌했다.
서걱, 서걱.
그 순간, 이벽을 두른 나뭇잎들이 여섯 개의 묘리로 춤을 추며 구름을 마구 할퀴었다.
후우우욱.
구름의 용 또한 이리저리 몸부림치며 저항했다. 허나 결국은 나뭇잎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져 허공으로 흩어졌다.
일검의 충돌은.
근소하게나마 이벽의 우세였다.
채애애애애앵.
그리고.
창공에서 검과 검이 부딪혔다.
구름이 흩어진 자리 안쪽에서 당연하다는 듯 검을 쥔 인영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
“이거 놀랍구만. 클클클!”
인영의 정체는 노인이었다.
허나 행색은 퍽 특이했다. 새하얗게 센 머리는 여러 가닥으로 나뉘어 묶인 채 빳빳이 세워져 있었으며.
곰처럼 시커멓고 커다란 체구는.
당연하다는 듯 허공에 떠 있었다.
“…노인장은 누구시오?”
“노인장? 설마 나 말인가? 클클!”
“그럼 여기 댁 말고 누가 있소?”
“클클! 그것도 그렇지. 거 당돌한 소협이로세! 뭐,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니 상관은 없네만! 하여간 노부는 정룡이라 하네!”
“……!”
그것은.
이벽으로서도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이내 이벽은 그 이름에 따르는 별호를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서천무존(西天武尊) 정룡.
그것은 곤륜파의 전대 장문인이자, 천하십대고수의 일원으로 알려진 이름이기도 했다.
채애앵.
이벽은 검을 쳐내었다.
훌쩍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자라 마차 위로 다짜고짜 일격을 가한 절대자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허나 그것은.
상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면으로부터 몇 장이나 떨어진 채, 당연하다는 듯 허공을 딛고 선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했다.
“…….”
서천무존 정룡은.
곤륜파의 절대고수였다.
또한 ‘서쪽 하늘’이라는 그 별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곤륜파는 도가문파의 일원으로서 정도맹에 속해있으되 청해지역의 맨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중원과는 거리가 아주 먼 곳이었다.
고로 중원무림의 역사 속에서도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집단이었다.
최소한.
이벽이 알고 있기로는 그랬다.
씨익.
“클클클, 훌륭하네!”
문득 정룡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피었다. 검은 피부와 대조되는 치아가 환하게 빛났다.
“…뭐가 말이오?”
“그야 물론 자네 말일세! 탁한 연못에 떨어진 잉어가 더럽혀지지도 않고서 그만한 대붕으로 자라났으니 실로 선재가 아닌가?!”
클클, 정룡이 다시 웃었다. 허나 이벽은 그러한 칭찬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이제 와 도인 같은 행세는 집어치우시오. 이런 짓을 해놓고선 잘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는군.”
“이런 짓이라니? 무림인이 칼을 쓰는 게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나? 어찌 되었건 자네는 현재 정도맹과 뜻을 달리하고 있지 않은가?”
“…….”
물론, 무림의 일이라면.
적에게 손을 쓰는 행위 자체가 크게 잘못될 것은 없었다. 다만 문제는 ‘장소’였다.
이벽은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은 산도 들판도 아닌 양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한복판’이었다.
두 사람의 충돌로 인해.
무공을 익히지 않는 이들조차 기겁하게 만드는 굉음과 기의 파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평화롭던 거리에는 한순간 혼비백산한 인파들이 사방으로 흩어진 채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양민들을 괴롭히는 게 당신네들의 정도인진 모르겠지만, 중원에선 그런 짓을 하면 사파라도 욕을 들어먹는 게 보통이라서 말이오.”
“뭐 어떤가? 그냥 좀 시끄러웠을 뿐이지 우리는 결국 이렇게 공중에 떠 있고 아무도 안 다치고 안 죽었잖나?”
정룡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상대는 천하십대고수이며, 또한 도가의 가르침을 통해 등천의 경지에 이른 절대자였다.
그러한 이가.
타인의 삶을 이토록 가벼이 여긴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이벽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불쾌감을 일어나게 했다.
“클클! 보아하니 소협께선 노부가 어지간히 아니꼬운 모양이로군! 젊은 꼰대 같으니라고!”
“…….”
허나 이벽은 검을 내렸다.
상대는 섣불리 싸움을 택하기에는 승부를 점칠 수 없는 강자였으며, 무엇보다 충돌은 도시에 피해가 갈 것이었다.
“보아하니 노인장과는 대화가 안 통할 것 같군. 나는 말이 통할 만한 사람을 찾아가는 와중이니 이만 비켜주시겠소?”
이벽이 말했다.
흠, 정룡이 수염을 쓸었다.
“싫구먼!”
“…….”
“딱히 자네를 베어버려야 할 이유는 없네만… 어째 오랜만에 호승심이 일어난단 말이지!”
우우웅.
문득 주변의 기운이 요동쳤다. 다시, 정룡의 몸 주변으로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따까리 해보겠나? 으응?”
“…….”
노인에게서는.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호기가 맹렬하게 흘러넘치고 있었다. 정룡이 검을 앞세우자 이윽고 구름은 다시 ‘용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
문득 이벽은 떠올렸다.
그것은 곤륜을 상징하는 비전무공으로 널리 알려진 이름이었으나, 동시에 그 실체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허나 현재, 이벽이 마주하고 있는 것은 말 그대로 ‘구름의 용’이었다.
이벽의 나뭇잎과 마찬가지로.
등천의 경지에 이른 자의 힘은… 한평생 그가 익혀왔던 무공을 주변 공간에 ‘실체화’하는 경지에 이른다.
쩌어억.
용이 다시 이를 드러냈다.
다음 순간, 이벽은 원하건 원치 않건 결국 싸움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자, 다시 한번 받아보시게!”
“…나잇값 못하는 노인이로군.”
후우우우욱.
이내 용의 머리가 이벽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벽 또한 나뭇잎을 두르며 창공비검을 내뻗었다.
피할 수 없다면.
물론 맞서 싸울 뿐이다.
또한, 조금 전 최초의 충돌에서 이벽의 창공비검은 분명히 구름의 용을 파훼해냈다.
고로 피할 이유는 없었다. 허나.
훅.
“……!”
충돌 직전.
눈앞에서 용의 머리가 흩어졌다.
이벽의 검에 의해 흩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름이 되어 흩어진 것이다.
“클클! 미안하네만, 정면으로 부딪쳐주는 건 조금 전 한 번이 마지막이었네!”
그 순간, 이벽은 위기를 느꼈다.
즉시 우측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둥글게 말려있던 용의 허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후욱.
다음 순간.
허리에서 머리가 ‘자라났다’.
쩌어억, 새로 나타난 용의 머리가 이벽을 향해 입을 벌렸다. 거리는 지나치게 가까웠다.
‘…이런.’
피하기는 늦었다.
찰나의 순간, 이벽은 검에 집중했던 나뭇잎을 온몸에 두른 뒤 충격에 대비했다.
콰아아아앙!
이내 용과 부딪혔다. 그리고.
카드드드득.
이벽의 신형이 용에 삼켜졌다.
삽시간에 용의 머리를 지나 뱃속에 이르렀다. 용의 몸 안쪽은 온통 날카로운 이빨투성이였으며.
심지어 그 넓이는 꼬리로 향할수록 점점 좁혀들었다. 그것은 마치 종유석으로 빽빽하게 들어찬 동굴과 같았다.
카드드드드득!
이벽을 두른 나뭇잎들이 이빨에 부딪히며 마구잡이로 깎여나갔다. 이대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후욱. 파아아앙!
다음 순간, 빈틈을 찾은 이벽의 몸이 용의 허리를 가르고 위로 솟구쳐올랐다.
물론, 창공비검이었다.
“….”
이벽은 저만치에 멀어지는 용의 꼬리를 바라보았다. 후우,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쨌건 탈출이 늦지는 않았다. 차림새가 엉망이 되었을 뿐, 상처는 없었다. 다만 문제라면.
‘…단번에 장단점을 분석당했다.’
정룡 역시 이벽의 창공비검이 지닌 위력을 체감했기에, 정면승부를 피해 ‘깎아 먹는’ 방식을 취할 모양이었다.
“클클클! 잘했네! 계속 가겠네!”
그리고 지친 기색조차 없이, 저만치에서 곡선을 그리며 선회한 용이 다시 이벽에게로 쇄도했다.
훅, 콰아앙!
콰아아아앙!
이후 격돌이 이어졌다.
예상대로 이벽은 난처해졌다.
머리나 발톱을 베려고 하면, 그 순간 구름이 되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전혀 다른 위치에서 다시 새것이 돋아났다.
물론 그것은.
기의 형상에 불과하다.
다만 그 안쪽에서 정룡의 몸과 검이 그만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휘어지는 용의 몸처럼.
자유자재로 허공을 누비고, 몇 번이고 그 각도와 위치를 바꾸며 모든 방위에서 상대를 농락한다.
그것은 역시.
극한에 이른 ‘곡의 묘리’였다.
“…….”
또한 그것은 정확하게도.
아미를 떠나기 전, 공능자와의 싸움을 복기하던 이벽이 우려했던 바로 그 상황이었다.
공능자의 쾌검을 앞지를 수 없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벽이 지닌 곡의 묘리는 정룡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훅, 후욱.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스치고 선회하며 다시 되돌아오길 반복하는 용의 궤적을 가까스로 읽어내어 피할 뿐이었다.
쾅, 콰아아앙.
어떻게든 반격을 시도하는 순간.
오히려 그 빈틈을 타 이벽이 용의 이빨과 발톱에 노출되었다. 몸을 두른 나뭇잎에 의해 상처를 입지는 않았으나.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문득 이벽은 아래를 향했다.
저만치의 지면을 바라보았다.
상대는 ‘공중전’에 너무나 익숙했다. 차라리 땅을 밟는다면, 그만큼 상대가 활용할 수 있는 방위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허나.
물론, 도시 한 복판에서 양민들에게 이 이상의 피해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면.
‘장소를 옮긴다.’
훅, 이벽이 몸을 돌렸다.
저만치로 달아나려 했다.
“클클클, 뭘 하는 겐가?”
허나 그때였다.
“이 노부를 상대로 감히 등을 보이는 겐가? 그 오만함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가르쳐줘야겠군 그래!”
이벽의 생각을 대강 눈치챈 듯, 등뒤에서 정룡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콰아아아아!
다음 순간, 이벽의 정면에서 용의 머리가 나타났다. 허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아!
훅, 이벽이 뒤를 돌아보았다.
용의 꼬리에서 또 하나의 머리가 자라나며 등 뒤를 압박해오는 것을 확인했다.
‘…쌍룡!’
어느새 정룡은.
양손에 쌍검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이벽의 모든 방위를 칭칭 휘감은 용이 두 개의 머리를 앞세운 채 앞뒤로 달려들었다.
“…큭!”
순간, 이벽은 직감했다.
하나의 머리만으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두 개씩이나 되면 어느 방향으로 빠져나가려 한들 뿌리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파앙.
찰나의 순간, 이벽의 신형이 등 뒤로 쏘아졌다. 꼬리 쪽의 머리를 상대로 정면돌파를 택했다.
서걱, 파아아아앙.
창공비검이 머리를 베었다.
허나 예상대로 이벽은 또 하나의 머리를 무시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카가가강, 서걱.
“……!”
옆구리에 실선이 그어졌다.
곡의 묘리로 몸을 비틀었음에도 용의 머리는 그조차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따라붙었으며.
공격에 집중하는 사이 상대적으로 약해진 방어를 뚫고 마침내 이벽의 몸에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클클클! 칼 두 개를 꺼내고도 겨우 긁힌 상처 하나란 말이지? 과연, 소름끼치는 대붕이구만 그래!”
정룡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싸움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침묵 속에서 이벽은 잠자코 정룡을 노려보았다.
“…후우.”
불현듯 다시 한숨이 나왔다.
물론, 고전하는 것은 당연했다.
등천의 힘을 얻은 이래, 처음으로 ‘천하십대고수’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같은 경지라고 해도 그 경지에 머무른 채 갈고닦은 세월의 차이를 간과할 수는 없으며.
무엇보다도.
청강유엽공이 지닌 여섯 개의 묘리는 그 뿌리에 해당하는 도가문파의 절기 앞에 좀처럼 맥을 추지 못했다.
창공비검이 있다고 해도.
‘닿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
이벽은 문득 진법의 환영 속에서 상대했던 풍마를 떠올렸다.
‘목숨을 버리고 나서야’ 가까스로 쓰러뜨릴 수 있었다.
허나 물론.
이것은 환영도 진법도 아니므로, 목숨은 하나뿐이며 그와 같은 전략을 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동귀어진까지는 아니더라도… ‘팔 하나’ 정도의 각오를 지니지 않으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스윽.
이벽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철컥, 철컥.
허나 그때였다.
“뭐, 이 정도로 할까? 클클클!”
돌연, 정룡이 검을 거두었다. 두 자루의 검이 등 뒤의 칼집에 얌전히 꽂혀 들었다.
“…뭐요?”
“재미는 충분히 봤으니 이쯤에서 그만하잔 말일세. 뭐하면 내가 졌다고 생각해도 좋네!”
정룡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