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5)
25화. 출(出)
“이해할 수가 없네, 정말.”
제갈소미가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는 낙검문의 제자인 거지, 하오문도가 아니잖아? 왜 꼬맹이 너한테 그 패를 떠맡기는 거야?”
“…….”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그건 너와 관계도 없는 무림의 은원 속에 너를 밀어 넣는 짓이라고. 문주 그 인간, 무슨 생각으로—”
“그야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때 혁대웅이 끼어들었다.
“문주님이 우리에게 무슨 일을 맡기건, 결코 우리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어. 난 그렇게 믿어.”
“…곰탱이 너 진짜.”
“믿지 않을 거라면 애초에 따라나서지도 않았어. 그건 사저도 마찬가지잖아?”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혁대웅이 제갈소미를 향해 웃었다.
일순 말문이 막힌 제갈소미가 움찔 흔들렸다.
짜악!
“이게 요새 점점 말이 길어지네. 이제 막내 아니라고 사저 말도 잘라먹고 아주 막 나간다 이거지?”
“아하하…….”
혁대웅의 등짝을 두드린 제갈소미가 다시 이벽을 향했다.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쩌겠어. 까라면 까야지.”
“…….”
“꼬맹이, 내 말 명심해라. 밖에 나가서 절정고수랍시고 나대다가 비명횡사하는 수가 있다. 네 실력의 삼할, 아니, 오할은 숨겨라.”
“…알겠다.”
그것은 무림에서 통용되는 흔한 격언으로, 이벽 역시 이미 알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벽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하는 말이 아냐. 아마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네 무공을 알아보고서 선우세가를 떠올리는 이가 나올 수도 있다고.”
“그건… 확실히 곤란하군.”
이벽은 여전히 선우세가의 검을 사용하며, 선천의 힘은 청강유엽공을 따른다.
무엇보다 이벽은 어젯밤 이진천으로부터 청강유엽검식의 ‘완성’을 목도 하고야 말았다.
즉, 이제와서 그 검을 버릴 수도 없게 되었으며, 굳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선우세가에서 비롯된 가르침이지만, 그 깨달음들은 오롯이 자신이 얻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능한 한 선우세가와는 어떤 식으로든 얽히고 싶지 않다.
“그니까 가급적 힘 쓰지 말고. 정말로 써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뒤처리 확실하게 하고. 알겠냐?”
이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제갈소미의 말은 좀처럼 끝을 보이지 않는다.
이후로 한참 동안이나 각종 주의사항들이 이어졌다.
“으와~ 사저 잔소리 길어지는 거 봐~ 완전 애엄마야~ 벽아. 자기 전에 이 닦고 쉬야 하고 군것질하지 말고~”
“아 처돌았나, 이게!”
짝! 짜악!
제갈소미의 손바닥이 또다시 불을 뿜었다.
등짝을 두들겨 맞으면서도 혁대웅은 아하하 웃었다.
이벽과 시선을 마주쳤다.
“갔다 와, 벽아. 몸조심하고.”
“응, 다녀오겠다.”
한 마디면 충분하다.
혁대웅의 흔들림 없는 시선을 잠시 마주하다가, 이벽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지, 이벽? 첫 번째도 보신, 두 번째도 보신. 죽어라고 몸 사려라.”
꾸벅, 마지막으로 제갈소미에게 고개를 숙인 뒤 이벽은 처소를 나섰다.
딱히 짐이랄 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옷가지 몇 벌을 동여맨 것, 그리고 허리춤의 검 한 자루가 전부였다.
그 외의 여비나 식사 따위는 전부 그쪽에서 알아서 해결해 줄 거라고 이진천은 말했다.
하지만 ‘그쪽’이란 게 어떤 이들을 가리키는 말인지, 지금의 이벽으로선 그조차도 알 수 없다.
끼익!
이벽은 대문을 나섰다.
다시 해가 저물고 있다.
지난밤, 이진천에 손끝에서 펼쳐진 청강유엽검식은 마치 꿈결과 같았다.
조금은 알 것 같다.
이진천은 이벽에게 검수로서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와 더불어 성취를 위한 여정을 제공해준 것이다.
이벽은 문 앞에 서서 잠시 낙검문을 돌아보았다.
이곳, 낙검문에 정착한 지도 얼추 반년 이상이 훌쩍 지났다.
퍽 많은 일들이 있었—
타다닷!
“형님!! 저기 있다! 형니이이임!!”
이벽이 회상에 잠기려던 그때, 저만치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상념을 끊어놓았다.
길을 따라 크고 작은 두 개의 인영이 나란히 달려오고 있었다.
장석두와 왕수련이었다.
이내 이벽의 앞에 도달한 왕수련이 허리를 숙이고 하악 하악, 가쁜 숨을 몰아쉰다.
반면 장석두는 멀쩡하다.
덥석, 이벽의 두 손을 붙잡았다.
“다행입니다! 혹시 이미 떠나셨을까 봐 죽어라고 달려왔는데 아슬아슬했군요!”
“…왜?”
이벽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작스레 마을을 떠나게 되었지만, 두 사람과의 인사라면 이미 오전 중에 나눈 참이었다.
“왜는요, 섭섭합니다, 형님! 인사 두 번 하지 말란 법 있습니까? 아하핫!”
너스레를 떠는 장석두.
“험, 섭섭하단 건 물론 농담이구요. 잘 다녀오십시오, 형님! 그리고 이거…….”
그리고 장석두가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안을 열어보자 말린 육포가 차곡차곡 포개어져 있었다.
“별건 아니지만요! 혹시라도 여행 중에 먹을 게 없다고 굶지는 마시구요, 아하핫!”
“…고맙다.”
“뭘요! 대단치도 않은데요! 그리고 다시 돌아오셨을 때에는 꼭! 깨달음을 얻고서 기다리겠습니다!”
탕, 장석두가 가슴을 두드렸다.
장석두는 현재 토납법을 익히고 있지만, 아직 자연의 기운을 깨닫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무공을 입문하는 아이들이 흔히 부딪히곤 하는 벽이다.
극복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피식, 이벽은 마주 웃었다.
“…오빠.”
왕수련이 소매를 잡아당겼다.
시선을 돌리자 작은 의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흘러내렸다.
간신히 숨을 고른 왕수련이 작은 병을 내밀었다.
“이거, 금창약이에요.”
“…이런 건 어디서?”
“그런 건 몰라도 돼요! 아무튼 다치지 말고… 꼭 멀쩡하게 최대한 빨리 돌아와야 해요. 알겠죠?”
왕수련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장석두와는 달리 표정이 썩 좋지 않다. 하지만 마음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주님과 사저와 사형이 있고, 동생들이 있다. 소중히 여기고 소중히 여겨진다.
이벽은 실감했다.
자신이 돌아올 곳은 여기 이곳, 화정촌의 낙검문뿐이다.
이벽은 왕수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녀오마. 건강해라.”
* * *
이벽은 회택에 도착했다.
천향루를 찾는 것은 어려울 것 없었다.
길게 늘어선 거리의 중앙에 불빛이 화려한 전각이 자리하고 있다.
회택 내의 가장 큰 주루이자 해가 저물고 밤이 되어서야 오히려 밝고 활발해지는 곳.
이벽은 정문으로 다가섰다.
양옆으로 덩치 큰 무사들이 가로막고 있다.
이벽이 다가오자 흘끗 쳐다보고는 웃음을 흘렸다.
“집에 가라, 꼬맹아.”
“젖먹이가 올 데 아니다~”
“…낙검문에서 왔소만.”
“뭐? 뭔데 그게?”
“…….”
이벽은 패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무사들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훠이훠이, 쫓아내는 시늉을 한다.
“가라 가. 네 녀석이 어느 마을 어느 집 아들인지 알고 싶지도 않다~”
“보아하니 계집 궁둥이 좀 두드려보자고 돈푼 좀 모아왔나 본데. 이걸 어쩌나, 그 돈으론 어림도 없을걸?”
그리고 저들끼리 낄낄거린다.
이벽은 직감했다. 이 자리에서 입씨름을 한들 소용도 없을 것이고, 길게 말을 섞고 싶지도 않다.
이벽은 패를 갈무리했다.
그리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타앗, 자리를 박차고 뛰어오른 뒤 그대로 대문을 뛰어넘었다.
안쪽의 마당에 착지했다.
훅, 콰한 술냄새가 밀려들었다.
전각 안쪽에서부터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말소리와 주변을 둘러싼 형형색색의 등불들.
고작 담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도 마치 고요한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세상과 같다.
쾅!
“네, 네 녀석 누구냐!”
“침입자다! 그 녀석 잡아!”
그때 등 뒤에서 대문이 거칠게 열렸다.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좀 전의 무사들이 달려드는 기척이 느껴진다.
챙! 챙!
이에 안쪽의 전각 문을 지키던 무사 둘이 칼을 뽑으며 헐레벌떡 마주 달려 나왔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한 놈? 그것도 애송이잖아?”
“바, 방심하지 마라! 놈이 담장을 뛰어넘었다! 신법을 보아하니 예사 놈이 아니다!”
칼을 꺼내든 네 명의 무사가 이벽을 둘러쌌다.
그러나 이벽이 느끼기에 그 수준은 높지 않다. 칼을 꺼내지 않아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듯하다.
허나 싸우러 온 게 아니다.
훅, 이벽은 기세를 내뿜었다.
선천의 힘에 의해 형성된 내공 중 아주 약간을 겉으로 드러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무사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본인들의 상대가 아님을 절절히 깨닫는다.
“나는 침입자가 아니오.”
“…….”
“용건이 있어 찾아왔다고 했소만, 말을 들어 먹을 생각을 않으니 내가 어떻게 해야한단 말이오?”
저벅!
이벽이 걸음을 뗐다.
그러자 정면의 무사들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차마 포위를 풀지는 못한 채, 그러나 감히 달려들 엄두를 내지도 못한다.
“그, 그만. 알겠소. 멈추시오.”
“소협, 좀 전의 일은 내가 사과하겠소. 내 얼른 루주님께 보고를 올릴 터이니—”
타앙!
그때였다.
전각의 이 층 창문에서 인영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제비처럼 가볍게 착지했다.
타앗!
그대로 지면을 박찬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그 방향은 정확히 이벽을 향하고 있다.
쐐애액!
그리고 정면의 무사들 사이로 강맹한 주먹 하나가 파고들었다.
결코 방심할 수 없는 공격이다.
이벽은 한쪽으로 피했다.
그러나 그 순간 인영의 팔이 굽어졌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팔꿈치가 이벽을 향해 파고든다.
“히익! 아, 아가씨! 잠깐!”
“늦었다! 도망쳐!”
이벽이 다시 한번 공격을 피해내는 사이 무사들이 부산을 떨며 두 사람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큿!”
또 한 번의 공격이 무산으로 돌아가자 새로 나타난 인영이 가볍게 신음을 흘렸다.
탓, 한 발자국 디디며 힘을 얻은 인영이 재차 이벽에게 파고들었다.
주먹과 발이 현란하게 뻗어졌다.
탓, 타닷!
이벽은 보법을 밟았다.
상대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았다.
상당한 수준에 이른 권각술의 고수로 가볍게 제압할 만한 상대가 아니다.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셈이냣!”
인영이 외쳤다.
놀랍게도 여인의 목소리였다.
뿐만이 아니다. 이벽은 마침내 인영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심지어는 이벽과 그리 차이가 나지도 않는 소녀다.
휙!
다시 공격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반격을 해도 될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벽은 고민 끝에 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투웅!
다음 순간, 주먹과 검집이 부딪쳤다.
검을 뽑는 대신 검집 채로 내력을 실어 부딪힌 것이다.
내력과 내력이 부딪히며 주변으로 파장이 일어났다.
“크윽.”
소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검집과 부딪힌 그 상태로 뻗어진 팔이 잘게 경련했다.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녀의 몸이 다시 자세를 갖추었다.
움츠러드는 기세를 도로 끌어올린다.
“잠깐. 멈추시오, 소저. 나는 싸우자고 온 게 아니라 용건이 있어 찾아왔을 뿐이오.”
이벽은 얼른 말을 꺼냈다.
“흥! 웃기지 마라! 그렇다면 똑똑히 신분을 밝히고 정문으로 들어서면 될 것이지 어디 남의 마당에 함부로 뛰어들어선 흉흉한 기세를 뿜어대느냐!”
“신분패를 보여주었음에도 제대로 봐주질 않으니 내가 달리 어떻게 해야 하겠소?”
“…뭐?”
소녀의 시선이 꺾어졌다.
저만치의 무사들을 향했다.
소녀의 시선을 받은 무사들이 가볍게 경련했다.
이벽은 패를 꺼냈다.
소녀의 눈앞에 내밀어 보였다.
패를 바라보는 소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의아함에서 황망함. 그리고 마지막은 창백한 색깔로.
이벽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실례지만 공자께서는 이 패의 주인과는 어떤 관계십니까?”
“문주님으로 모시고 있소.”
“…….”
휙, 소녀의 고개가 꺾어졌다.
저만치에 뭉쳐있는 무사들을 향했다. 저벅저벅, 무사들에게 다가선다.
퍽, 퍼억, 퍽! 퍼억!
“크억! 죄, 죄송합니다요!”
“사, 사, 살려주십쇼, 아가씨!”
“아, 아가씨! 저희는 억울합니다요! 침입자라는 말만 듣고선 그냥— 크아악!”
“…….”
삽시간에 무사들이 쓰러졌다.
척 보기에도 본인의 두 배쯤 되어 보이는 무사들을 가축 다루듯 맨 주먹으로 두드려 팼다.
이내 네 명 모두가 땅 위를 뒹굴었고, 소녀가 다시 이벽을 향했다.
꾸벅, 허리를 숙였다.
“결례를 끼쳐 정말 죄송합니다, 공자. 부디 저희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이 녀석들은 제가 단단히 혼쭐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
이미 혼쭐이 난 것 같은데.
“이 녀석들 모조리 당분간 음식을 씹을 수 없도록 턱주가리를—”
“아, 아니, 그럴 것까지는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