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59)
265화. 은원의 덫 (3)
“…….”
퀴퀴한 공기 속.
무언의 긴장이 감돌았다.
당려옥과 정연화는 스스로 납치되기를 자처한 끝에 이곳 모가장의 지하 공간에까지 도달하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납치 감금되어 있던 여인들을 발견하여 구속을 풀어주기에 이르렀다.
허나.
미처 탈출을 시도하기도 전, 여인들 사이에 숨어있던 ‘적’이 본색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두 여인은 이내 스스로 흑시의 구성원이자 ‘맹의 일원’이라 밝힌 모가장주 모란과 대치하게 되었다.
도시에서 시작된 미행에서부터 일련의 납치 과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이벽을 낚기 위한 ‘함정’이었던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려옥은 이벽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하늘을 날며 천하십대고수와 손속을 겨룰 정도의 절대자를 걱정한다는 건 말 그대로 ‘건방진 일’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이내 모란이 말했다.
“말 그대로예요. 꽤 성심성의껏 준비하신 것 같지만… 소저께서 무엇을 준비했건 간에 비룡대주는 이미 함정 따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거든요~”
훗, 당려옥이 웃음을 흘렸다.
“그야… 양민들을 인질 겸 방패로 내세운다면 분명 비룡대주도 애를 먹겠죠.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겠네요.”
“…….”
슥, 당려옥이 손가락을 뻗었다. 모란과 그의 곁에 선 흑의인을 가리켰다.
“당신들, 모두 죽을 거예요. 얼마나 대단한 이들을 동료로 모아뒀건 간에, 그것도 비룡대주의 분노를 사서 아주 처참하게요.”
그 순간, 모란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눈빛이 서서히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당 소저.”
“네, 모 소저.”
“…날 화나게 해서 무언가 꿍꿍이를 펼쳐볼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아요.”
당려옥은 모란을 바라보았다. 탁해진 여인의 눈빛에서 뿌리 깊은 증오가 비추었다.
“말했듯이… ‘맹의 뜻’을 따르는 이상 우리는 적이 아녜요. 그러니 거듭 당 소저를 죽일 이유가 없죠. 당가와 척을 질 이유도 없구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무척 화가 난 상태거든요.”
“…….”
“당 소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는 것에 대해 혹시 상상해본 적 있어요?”
목소리는 강바닥처럼 서늘했다.
“팔다리를 자르고, 혀를 뽑고, 얼굴을 갈아서…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어도 ‘당가의 꽃’이라는 이름표가 붙으면 비싸게 사줄 사람이 의외로 없지 않거든요.”
“…어머나, 무서워라.”
당려옥은 짐짓 어깨를 떨었다.
허나 내심 미소를 지었다. 독기를 감추지 못하는 상대는 오히려 다루기가 편하다.
“허나 소저, 나 역시 싸우자고 하는 말이 아녜요. 그쪽이 정말로 ‘맹의 뜻’을 따르는지야 솔직히 알 수 없지만… 이 상황에서 헛소리로 소저의 화를 돋워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
“그러니까, 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할 뿐이에요. 소저, 다시 말씀드릴게요. 살고 싶다면 더 늦기 전에 혼자서라도 얼른 도망치세요.”
당려옥은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소저, 비룡대주에게 적잖은 원한이 있나 본데… 근 오 년 간 비룡대주는 무림을 떠나 잠적해 있었으니 그 원한이 생긴 건 아마 오 년 전의 일이겠죠?”
“…그래서요?”
“그래요. 오 년 전의 비룡대주라면 어떻게든 허를 찔러서 해치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허나… 지금의 그는 더 이상 그런 범주를 벗어나 버렸어요.”
훗, 당려옥이 코웃음을 쳤다.
알고 있는 사실로 우위를 점한다.
“모란 소저, 대체 언제부터 우리를 노리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사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모르죠?”
“…….”
“뭐, 시도는 좋았지만요. 너무 섣불렀어요, 소저. 무엇보다 비룡대주가 오 년 전 그때 그대로의 수준일 거라 생각한 게… 당신의 패착이에요.”
콰아아아아아앙!
그때, 다시 충격이 일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그리 머지 않은 어딘가에서 화탄이 폭발하며 공간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어때요? 소저의 생각보다 싸움이 길어지고 있지 않나요? 과연… 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당려옥이 화사하게 웃었다.
“제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그쪽의 부하를 보내어 직접 전황을 확인해보시고 오셔도 괜찮아요. 물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과연 당가의 꽃이란 이름값은 하는군요. 허나 그 입이 귀까지 찢어지고도 계속 그렇게 떠들 수 있을까요?”
으득, 모란이 이를 악물었다.
허나 당려옥은 모란의 눈에 일말의 불안이 스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무언가가 계산대로 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물론, 당연한 일이었다.
이벽이 함정이나 매복 따위에 패배할 리 없다. 당려옥은 여전히 이벽을 걱정하지 않았다.
고로 이대로 잠자코 시간을 끌기만 해도 결국은 이기는 싸움이다.
허나.
흘끗, 당려옥은 정연화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중심으로 모여든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인들을 바라보았다.
모란의 말마따나.
잡혀 온 양민들이 싸움의 현장에 인질로서 묶여있다면… 그들의 목숨은 물론 위태로울 것이며.
스스로가 아닌 그들을 지키기 위해 이벽은 아주 조금이나마 궁지에 몰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은.
무의미하게 짐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그러한 양민들을 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스스로 잡혀들어온 것이다.
물론, 평소의 자신이라면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면서까지 이런 짓을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허나.
아미에서 이벽과 재회했던 때, 당려옥은 자신을 바라보던 이벽의 눈빛을 생각했다.
—당 소저, 지금 대체 뭘 하고 계신거요?
“…….”
그리고 문득, 마음을 깨달았다.
조금은… 그때의 일을 만회할 만한 무언가를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내가 미쳤지, 진짜.’
하아, 당려옥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이내 다시 웃음을 띄운 뒤 모란을 향했다.
“한 가지 제안할게요. 모란 소저.”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상대가 초조해하는 틈을 타 어떻게든 현혹시킬 수 있다면 그만이다.
“이 당려옥의 몸을 내어드릴 테니… 저를 인질로 삼으세요. 훗날을 위해… 당신들 모두 이 자리에서 벗어날 시간을 벌어드리죠.”
* * *
“모란 소저, 조금 전 왜 우리 당가가 자꾸만 비룡대주를 두둔하느냐고 물었었죠?”
당려옥이 말을 이었다.
“애초에… 과거 비룡대주가 사파무림으로 향하기 전, 그 뿌리가 우리 당가에서부터 시작되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죠?”
당려옥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과거, 패왕가의 위상이 흔들리던 무렵, 비룡대주 이벽은 하오문을 등에 업고 사파무림에 혜성처럼 나타난 후기지수였다.
허나 그 정체는 사실 운남 선우세가의 전 소가주였던 선우벽이며, 선우세가는 당가와 매우 가까운 세력이기도 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당가가 중원 남서지역 무림세가들의 실질적 우두머리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인 것이다.
“비룡대주 이벽은… 본래부터 사파무림을 차지하기 위해 맹의 뜻에 따라 본가에서 키워낸 ‘간자’였어요.”
“……!”
모란의 눈이 흔들렸다.
당려옥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일찍이 그 재능을 발견해낸 우리 당가는 놈을 천하제일의 후기지수로 키워내기 위해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죠.”
“…….”
“허나… 놈의 성장은 어느 순간, 우리의 예상을 앞질러버렸고, 당가의 통제를 벗어나 버렸어요. 아마도… 사패련주 패왕 혁군악의 눈에 띄어 제자가 된 모양이더군요.”
그것은 물론 즉석에서 지어낸 헛소리에 불과했다. 허나 당려옥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교묘하게 짜 맞춰 넣었다.
애당초 천하십대고수인 사패련주 패왕 혁군악의 제자 정도가 아니라면야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강해지는 것은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뭐, 우리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건 아니에요. 실은 놈에게 몰래 본가의 비독을 먹여놨었거든요. 오 년 전, 놈이 느닷없이 잠적해버린 것도 바로 그 독이 서서히 몸을 잠식한 때문이었지요.”
허나 결국.
그러한 경지에 이르고도 완전한 해독에는 실패한 이벽은 다시 정파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 즉시 사천으로 향해 당려옥, 즉 자신을 납치했다. 물론, 당가로부터 ‘해독제’를 얻어내기 위한 인질로서였다.
“말하자면… 지금의 저는 놈에게 있어 소중한 인질이자 생명줄인 셈이에요. 그러니 저를 잘 이용한다면 부하들과 함께 달아나는 것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그리고.
당려옥은 말을 마무리했다.
“…….”
그리고 공간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곰곰이 생각하면 허점이 많은 내용이었다.
허나 내심 초조함에 젖어 든 모란의 귀에는 끼워 맞춰진 그 헛소리가 마치 감춰져 있던 비사처럼 느껴졌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때, 다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흠칫, 모란의 표정이 흔들렸다.
어쨌거나 지금,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이미 비룡대주는 중천검 남궁천수에게 제압되어 이곳에 끌려왔어야 했다.
“저기, 모란 소저? 제가 만일 비룡대주의 편이었다면요. 이대로 그냥 가만히 소저의 동료들이 전멸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으면 그만이었겠죠?”
다시 당려옥이 말했다.
“정말로 안타까워서 그래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소저가 이 자리를 벗어나 다시 한번 훗날을 도모해서 비룡대주를 죽여준다면 저희에게도 큰 이득이니까요.”
“…….”
“소저의 말마따나… 우리는 적이 아니잖아요? 아님 뭐, 옷이라도 홀라당 벗으면 제 말을 믿어주시겠어요?”
콰아아아앙!
폭음이 거듭 터져 나왔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고 오겠습니다.”
이내 모란의 옆에 시립하고 있던 흑의인이 말했다. 허나 모란이 팔을 뻗어 사내를 저지했다.
“…괜찮아요, 가가. 같이 가죠. 당 소저의 말대로라면 이 이상 시간을 끌었다간 자칫 상황이 크게 안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군요.”
“…….”
당려옥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모란이 다시 당려옥을 향했다.
“하지만 그렇군요. 당 소저, 조금 전 소저께서 직접 말씀하신 대로 해주시겠어요?”
“…네?”
“시치미 떼지 말아요. 당가의 무인이 옷 속에 독이나 암기를 얼마나 숨기고 있는지 모를 일이잖아요?”
모란이 웃었다.
당려옥도 마주 웃었다.
“네, 그야 뭐, 어려울 것도 없죠.”
스륵.
옷자락이 흘러내렸다.
툭, 탱그랑.
비수와 함께 몇 자루의 암기들이 함께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당려옥은 나신이 되었다.
“…자, 잠깐!”
그때, 정연화가 끼어들었다.
허나 모란의 독에 의해 여전히 움직임이 편치 못한 그녀로서는 돌아가는 상황에 끼어들 여력 따윈 없었으며.
또한 지금 이 순간, 당려옥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허나 그 순간, 당려옥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당려옥의 웃는 얼굴에서, 정연화는 그녀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이해했다.
“미안해요, 정 소저. 지금은 그쪽까지 챙겨줄 여력은 없네요. 뭐, 너무 걱정은 말아요. 혹시 죽더라도 시신 정도는 챙겨줄게요~”
“……!”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말을 마친 당려옥이 아무 말 없이 혀를 들어 슬쩍 입의 안쪽을 드러내 보였다.
정연화의 눈빛이 흔들렸다. 허나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훅, 당려옥이 돌아섰다.
저벅.
그리고 당려옥이 모란에게로 다가섰다. 스윽, 그리고 이내 당려옥의 목에 모란의 비수가 겨누어졌다.
“그럼 실례할게요, 소저. 스스로 인질을 자처하셨으니… 딱히 불만은 없죠, 소저?”
“그럼요. 이렇게까지 친절을 베푸는데 아직까지 절 의심을 하시나요? 소저께서는 영 속고만 사셨나 봐요.”
“무림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요?”
호홋, 두 여인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