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60)
266화. 은원의 덫 (4)
콰아아아앙!
이벽의 신형이 튕겨 나갔다.
푸슈슈슉.
콰아앙, 콰아아아앙!
“크하하! 으하하하핫!”
남궁천수가 괴소를 흘렸다.
그리고 곧장 하늘로 뛰쳐 올랐다.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자 혈기에 물든 창궁무애검법의 강기가 사방으로 빗발쳤고, 곳곳에 파묻혀 있던 화탄들이 강기에 부딪혀 폭발을 거듭했다.
훅.
이벽의 몸이 잔상을 남겼다.
흩날리는 강기들을 쫓아 걷어내었으며, 때로는 터져 나오는 화탄의 위력을 몸으로 막아서기도 했다.
“크, 으으……!”
“으… 으아아악!”
물론, 진법에 의해 이성을 빼앗긴 채 사방에 널브러져 있는 양민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이벽이 상처를 입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사락사락.
물론, 등천의 영역에 해당하는 나뭇잎이 이벽의 몸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강기로도 뚫지 못한 이벽의 영역을 화탄의 위력으로 뚫을 수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콰아아아아앙!
어쨌거나 요란한 폭발은 거듭되었고 이벽의 몸은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
소란 속에서 이벽은 생각했다.
어쨌거나 매설된 화탄이 무한정 있지는 않을 것이므로, 무리해서 남궁천수를 뒤쫓을 필요는 없다.
기실 지금의 이벽에게 있어 남궁천수 ‘따위’를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누군가를 살린다는 것은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며, 하물며 지켜야 하는 목숨들은 수십에 달했다.
고로 이벽은 행여나 애꿎은 목숨이 다치지 않도록 충격을 무마하고 양민들을 지키는 것에 집중했다.
푸슈슉, 콰콰아아앙!
“크하하, 크핫 어떠냐 이노옴—!!”
남궁천수는 미친 듯이 웃었다.
악에 받친 까마귀처럼 사방으로 활개하며 미친 듯이 검강을 내뿜었고, 화탄을 터뜨렸다.
“…남궁 관주, 언제까지 이런 무의미한 짓을 반복할 셈이오?”
허나 어느 순간, 저만치로 튕겨 나가던 이벽의 무덤덤한 얼굴과 눈을 마주쳤다.
움찔.
남궁천수의 어깨가 흔들렸다.
말마따나 화탄을 터뜨려도, 강기를 쏟아부어도, 인질을 앞세워도 여전히 놈은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치 허깨비와 싸우는 것 같았다.
기실 가슴 한켠에서 남궁천수는 이미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진즉에 깨달은 후였다.
지난 오 년간의 수련을 통해 놈을 찢어 죽이기에 충분한 힘을 손에 넣었다 생각했으나.
놈과 자신의 사이는 오히려 더욱 벌어져 있었고, 그 차이는 함정이나 인질 따위로는 좁힐 수 없을 만큼 깊고 엄중했다.
화탄 혹은 내력.
어느 한쪽이 고갈나는 순간, 자신은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 목이 떨어지고 말 것임을 직감했다.
“이… 이 찢어 죽일 놈—!! 네까짓 버러지만도 못한 천한 것이 감히 이 남궁천수를, 대 남궁세가의 핏줄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느냐—!!”
허나 인정할 수 없었다.
뿌드득, 남궁천수는 이를 갈았다.
몸안의 혈기를 쥐어짜자 눈앞이 붉게 물들며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두려움을 마비시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내 남궁천수는 그제야 놈의 손발을 묶기 위해 준비한 버러지들마저 단 한 마리도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눈치채었다.
“……!”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듯했다.
“…하!”
남궁천수는 다시 웃음을 뱉었다.
허나 그것은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억지로 쥐어짜던 조금 전의 괴소와는 다른 웃음이었다.
“크하! 으하하하하!”
그 순간, 남궁천수는 상쾌함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 절대로 이길 수 없음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가슴 속에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던 정파 무인으로서의 마지막 무언가가 끊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 이 몸이 우스워 보일 만도 하군! 참으로… 네놈은 천하만민을 수호하는 협객이고, 나는 버러지 하나 죽이지 못하는 잡졸이 되어버렸구나! 크핫, 크하하핫!”
“…….”
“네놈이… 네놈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대 남궁세가의 긍지 높은 무인이었던 나를! 그러니 네놈은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해—!!”
남궁천수가 다시 악을 내질렀다.
이벽은 굳이 응대하지 않았다. 결과는 이미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며, 애당초 승부랄 것도 없었다.
허나 그때였다.
“종 문주! 지금이오—!!”
버럭, 남궁천수가 외쳤다.
찰랑.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시 장내의 어딘가에서 방울 소리가 들렸다.
“……!”
다시 진법이 요동쳤다.
청각을 파고드는 불쾌한 감각에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술사는 여전히 양민들 사이에 섞여 몸을 감추고 있었다.
다만 이벽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으므로, 남궁천수와 마찬가지로 굳이 술사를 섣불리 추적하려 들지는 않았다.
허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오판이었다.
“크… 아아아악!”
다시 양민들이 일어섰다.
성난 짐승처럼 이벽을 향해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이벽은 다시금 검풍으로 밀쳐내려 했다.
허나 그때였다.
퍼억.
“……?!”
그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이벽의 지척까지 달려든 사내 하나가 자신의 복부를 이벽의 검에 노출시켰다.
그것은 ‘의도된 행동’이었다.
물론, 애초에 이벽은 그저 밀쳐내려 했을 뿐이므로 사내의 몸이 베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퍼어어어어엉.
다음 순간.
사내가 ‘폭발했다’.
후두두둑.
굉음과 함께 사지와 머리가 사방으로 흩어졌고, 피와 육편들이 이벽에게로 우수수 쏟아졌다.
철퍽, 철퍽.
“……!”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크하… 으하하하하! 드디어 볼만한 얼굴을 보여주는구나! 자, 네 손으로 직접 버러지의 목숨을 끊은 소감이 어떻더냐?!”
삽시간에 눈앞에서 목숨 하나가 끊어졌다. 이내 이벽은 이해했다.사내는… 몸에 화탄을 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일순, 이벽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그것은 이벽으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악랄함’이었다. 허나 적들은 마음을 추스를 틈을 주지 않았다.
타다다닷.
“…큭!”
다시금 양민들이 달려들었다.
이벽은 정신을 붙들었다. 저들 중 어느 누가 몸 안에 화탄을 두르고 있는지 알아낼 재간이 없다.
타앙.
고로 이벽은 솟구쳤다.
쳐내지 않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
파샤샤샤샥.
“크하핫! 어딜 달아나려 하느냐?! 저 버러지들을 지켜줘야 하지 않느냐? 응?!”
“……!”
허나 그마저도 예상했다는 듯, 남궁천수의 강기가 곧장 양민들에게로 빗발쳤다.
훅, 퍼어어억.
이벽은 서둘러 강기를 뒤쫓았다.
빠르게 파훼하려 했다. 허나 그보다 먼저 양민 하나가 훅 땅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스스로 강기에 부딪혔다.
퍼어어어어억.
그리고 그 역시 폭발했다.
후두두둑.
쏟아지는 피와 육편 소속에서.
일순 이벽의 평정심이 흔들렸다.
사술에 조종되어 영문도 모르고 스스로 죽음을 향해 뛰어들기 시작하는 양민들을 바라보았다.
“…남궁천수, 당장 그만두시오! 이따위 쓰레기 같은 짓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크하하핫! 의미?! 내가 더러워진 만큼 네놈을 더럽힐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느냐?!”
남궁천수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으득,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허나 분노나 후회 따윈 나중 일이다. 어떻게든 남은 이들을 지켜낼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후우욱.
이벽은 다시 양민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뻐억, 뻑, 검을 휘둘러 하체를 두드렸다.
여의치 않다면 뼈를 부러뜨려 아예 거동이 불가능하게끔 만드는 수밖에 없다.
타앙.
허나 그때, 또 한 명이 대뜸 달려들었다. 폭발의 징조를 느낀 순간, 이벽은 만월무변심공을 일으켰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만월(滿月).
퍼어어어엉.
이벽의 검이 원을 그렸다.
달려든 사내의 복부에서 터지는 화탄의 힘이 급격히 원 안으로 응축되었다.
후욱, 터엉.
이내 양민의 몸이 충격에 의해 저만치로 날아갔다. 적잖은 중상을 입었으나 어떻게든 목숨만은 건진 듯했다.
서걱.
“……!”
허나 그때.
강기가 이벽을 스쳤고.
옆구리가 피로 물들었다.
그것은 만월무변심공을 일으킴과 동시에 청강유엽공이 사그라들며 몸을 두르고 있던 등천의 영역이 사라진 탓이었다.
“크핫… 크하하하핫!”
남궁천수가 괴소를 흘렸다.
“…그래, 그랬군! 그게 네놈의 약점이었어! 예나 지금이나 큰 그림을 읽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달라진 게 없구나! 으하하핫!”
“…뭐가 그리 즐겁소?”
허나 물론.
당하고만 있을 이유는 없었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잔월(殘月).
다음 순간, 이벽의 검이 그린 원 안에서 화탄의 위력이 급격히 응축되었다. 그리고 작은 점이 되어 훅 쏘아졌다.
퍼어억.
“크하하! 크핫— 커억!”
쏘아진 직선이 먼 거리에서 괴소를 내뿜고 있던 남궁천수의 오른쪽 옆구리를 관통했다.
비틀.
남궁천수의 몸이 흔들렸다.
타앙, 이벽은 그 즉시 땅을 박찼다. 이 틈을 타 남궁천수의 목을 베어버려야 한다.
찰랑.
허나 그 순간 다시 어딘가에서 방울 소리가 울렸고, 양민들이 기어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퍼억, 퍽.
급기야 양민들은 서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크, 이벽은 침음을 삼키며 황급히 선회했다.
퍼어어어억.
다시 한번 만월을 펼쳤다.
또 한 명의 폭사를 막아내었다.
푸슈슈슈슉.
“크… 크하핫! 으하하하핫!”
그리고 그사이.
몸을 추스른 남궁천수가 재차 날아올랐다. 왼손으로 복부를 틀어막은 채 강기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혈기에 잠식되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
이내 이벽은 생각했다.
남궁천수를 추격하여 베는 것은 한 호흡이면 충분하다.
다만 그사이 사술에 의해 ‘폭발’이 일어난다면 또다시 몇 명의 목숨이 사라지게 될 것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허나.
‘…모두를 구할 수 없다면.’
이벽의 눈이 가라앉았다. 차가운 분노 속에서, 마침내 어려운 판단을 내리려던 찰나였다.
“그만! 멈추세요!”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멈칫.
그 순간, 고삐 풀린 짐승마냥 마구잡이로 서로를 공격하던 양민들이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추었다.
우르르, 일제히 무너져내렸다.
“…….”
동시에 이벽과 남궁천수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꺾어졌다.
그곳에는.
두 명의 여인과 한 명의 흑의인이 서 있었다. 그리고 이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것은 두 여인 중 한 명이 다름 아닌 당려옥이었으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채 또 한 명의 여인에 의해 목에 비수가 겨누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군요. 과연, 당 소저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군요.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간 낭패를 볼 뻔했어요.”
모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게요. 내가 뭐랬어요?”
당려옥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내 모란의 시선이 저만치의 남궁천수를 향했다.
“남궁 대협. 수고하셨어요. 이만 검을 거두고 이쪽으로 와주시겠어요?”
“…크윽, 크으윽! 아직, 아직이오, 장주! 나는 놈을……!”
부르르, 남궁천수가 몸을 떨었다.
혈기를 주체하기 어려운 듯했다.
“진정하세요. 놈을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은 저도 백분 이해하지만… 어떻게 해도 승산이 없다면 이 자리에서 목숨을 던질 필요가 없잖아요?”
“하핫, 장주의 말이 백번 옳소.”
그리고 모란의 말에 답한 것은 남궁천수가 아닌 낯선 사내의 목소리였다.
그 순간, 무너진 양민들 사이에서 사내 한 명이 불쑥 몸을 일으켰다. 히죽, 이벽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반갑소, 비룡대주, 나 귀혼파의 종인욱이오. 이전에도 뵌 적이 있소만… 아마 기억은 못 하시겠지?”
“…….”
물론, 이벽의 기억에는 없었다.
허나 ‘귀혼파’라는 이름은 귀에 익었다. 역시 과거, 흑천방에 점거된 사패련으로 향하던 와중 이벽을 막아섰던 세력의 이름이었다.
“…비룡대주.”
그때, 다시 모란이 말했다.
이벽이 재차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당려옥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저 여인이야말로 실질적인 우두머리임을 이해했다.
“소저는 누구시오?”
“…모가장주 모란이라고 해요.”
“그쪽도 내게 원한이 있소?”
“…역시 알아보지 못하시는군요. 뭐, 무림이란 게 그렇지요. 강자의 칼질에 약자가 벌레처럼 죽어 나가는 건 일상이니까요.”
“…….”
여인의 미소 안쪽에서 이벽은 바로 자신을 향한 뿌리 깊은 증오와 원독을 엿보았다.
이내 이벽은 그 눈빛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음을 이해했다. 기억 속에서 그 정체를 끄집어내었다.
“당신은… 칠독문주의 딸이로군.”
“…훗.”
모란이 가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