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58)
264화. 은원의 덫 (2)
“…….”
이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인신매매를 일삼는 악적들을 쫓아 도착한 장소에서 남궁천수가 튀어나오는지는 물론 알 수 없었다.
허나 말하는 바로 미뤄보아 마치 이벽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또한.
어찌 되었건 과거 남궁천수는 절정고수였으며, 또한 지금의 그에게서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철컥, 이벽은 자세를 고쳐잡았다.
‘…삼장 정도의 거리.’
이벽은 거리를 가늠했다.
그리고 한 호흡이면 쾌보와 쾌검의 연계를 통해 충분히 베어버릴 수 있음을 이해했다.
“핫! 안 되지, 안 돼!”
저벅.
허나 그때였다.
남궁천수가 한 걸음 움직였다.
“읍, 으으읍—!”
팔다리가 묶이고 재갈을 물린 양민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겁에 질린 양민들이 몸부림을 쳤다.
“날 죽이고 싶은가? 얼마든지 해보시게! 허나 주의해야 할 걸세. 주변에 가엾은 목숨들이 퍽 많으니 말야!”
‘…방패막이.’
남궁천수의 의도는 퍽 명백했다.
후우, 이벽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철컥, 허나 이내 검을 거두고 자세를 풀었다.
“핫, 그래! 모름지기 협객이라면 그래야만 하지! 자네는 예전부터 그랬지. 어리석게도 말일세!”
“…정사를 떠나 무인이라면 보통의 마음가짐이라 생각하오만. 뭐, 지금의 그쪽 몰골을 보니 더 이상은 정파 운운하기엔 내가 더 낯이 부끄러울 지경이군.”
움찔.
남궁천수의 미간이 흔들렸다.
“그래서 바라는 게 뭐요?”
이벽은 팔짱을 꼈다.
“뭘 하면 이들을 풀어주겠소?”
이벽으로서도 이 상태에서 일전을 벌인다면 주변의 양민들에게 아무런 피해 없이 남궁천수를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또한 이벽은 행방이 묘연해진 두 여인을 생각했다.
천리향은 그리 머지 않은 곳에서 맡아졌으나, 낯설고 퀴퀴한 냄새로 인해 방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뭐가 있겠나? 내가 원하는 건 자네의 목뿐이야.”
다음 순간, 남궁천수의 눈이 붉게 번들거렸다. 철컥, 그의 검이 이벽을 향해 뻗어졌다.
우우웅.
그리고 그의 검을 감싼 푸르스름한 강기가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
이벽은 조금 놀랐다.
돌연 질감이 달라진 남궁천수의 내력에서 느껴지는 살기는 퍽 익숙한 감각이었다.
“핫, 놀랐나?! 그러게 이 좋은 힘을 어찌 그동안 자네만 쓰고 있었나? 크하핫!”
“…….”
그것은… ‘혈기’였다.
문득 이벽은 고 노야의 말을 떠올렸다. 적파심공은 혈기를 다루는 무공이며, 그 뿌리는 오래 전의 혈교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물론 그 밖에도 혈기를 사용하는 무공은 적지 않으나,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대동소이한 모양이었다.
그중 하나가 우연찮게 남궁천수에게 닿았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허나 어쩌면.
‘…혈마.’
우연치고는 공교로웠다. 어쩌면.
찾고자 했던 ‘단서’일 수도 있었다.
짝짝.
“…훌륭하군.”
이내 이벽은 손뼉을 쳤다.
“정말 강해지셨소, 남궁 관주. 축하드리오. 나 같은 건 이제 당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군.”
“……!”
“그래, 뭘 망설이시오? 멀찍이서 양민들 뒤에 숨어 성취를 자랑한다고 내 목이 썩은 과일 마냥 저절로 땅에 떨어지진 않소. 자 어서, 이리와 가져가시오.”
까닥까닥.
이벽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큭!”
남궁천수가 이를 악물었다.
허나 이내 다시 웃음을 드러냈다.
“크핫! 나도 바보는 아니라네! 헌데… 자네에게 원한이 있는 게 나만은 아니라서 말이지!”
찰랑.
그리고 그때였다.
불현듯 공동 어딘가에서 난데없는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이벽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찰랑찰랑.
소리의 진원지를 찾고자 했다.
허나 이내 방향감각이 꼬여 들기 시작했으며, 몸 안에 흐르는 청강유엽공의 내력이 주춤했다.
‘…진법.’
또한 겪어본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과거, 흑천방에 점거된 사패련으로 향하던 때, 도시 내에서 이벽을 기다리고 있던 무리들이 펼쳤던 사술과 같았다.
허나 물론.
그러한 사술에 오감이나 내력의 흐름을 방해받기에는 지금, 이벽의 경지는 이미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되었다.
우웅.
이벽은 심신을 가다듬었다.
이내 멀쩡한 감각을 되찾았다.
움찔.
“큭… 으으윽! 우아아악!”
허나 진법의 영역 내에 자리하고 있던 것은 이벽 뿐만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주변에 널브러져 떨고 있던 양민들이 괴성과 함께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투둑, 툭.
손발을 묶은 매듭을 스스로 ‘끊어내었다’. 그리고.
벌떡.
“크아아아악—!”
자리를 박참과 동시에 이벽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
훅, 후욱.
사방에서 공격이 밀려들었다.
허나 무공을 익힌 흔적은커녕 무기조차 들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휘둘러지는 공격이었다.
물론, 이벽이 그러한 공격에 당해줄 이유는 없었다. 허나 한 가지는 명백했다.
그저 사술에 놀아나고 있을 뿐, 이들은 여전히 무인이 아닌 양민들이다. 고로 이벽은 섣불리 검을 꺼내지 못했다.
파샤샤샤샥.
허나 그때였다.
이벽의 머리 위로 붉게 물든 깃털들이 쏟아져 내렸다. 물론, 남궁천수의 강기였다.
훅.
이벽은 뛰어올랐다.
다시금 팔절구궁필법의 만월을 통해 강기들을 한데 모아 흘려버리려 했다.
“핫! 그렇게 될 것 같나?!”
후우욱.
허나 다음 순간, 그런 이벽의 움직임을 읽어내듯 깃털들이 허공에서 휘어졌다.
‘…목천의 기예!’
그리고 그대로 이벽의 검로를 비껴나 버린 깃털들이 이벽의 옆을 지나쳤다.
후두둑.
발아래의 양민들을 향했다.
“크핫! 자, 어떻게 할 텐가 협객?! 죄 없는 양민들을 지켜야 하지 않겠나?! 크하핫!”
“……!”
이벽은 이를 악물었다.
돌이켜보면, 남궁천수는 과거 이벽을 쓰러뜨리기 위해 본인을 따르던 제자들에게마저 망설임 없이 강기를 퍼붓던 사내였다.
사락사락.
이내 이벽은 눈을 감았다.
주변 나뭇잎의 존재를 느꼈다.
훅.
다음 순간, 허공에 머물고 있던 이벽의 몸이 사라졌다. 우글우글 몰려든 양민들 사이로 다시 파고들었다.
후욱, 탁, 타앙.
“크아아악—!!”
한 바퀴 검을 휘두르며, 몰려드는 양민들을 검풍으로 밀쳐내었다. 이성을 잃은 양민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쾅, 콰아앙.
이내 목표를 잃은 깃털들이 땅을 파고들었다. 허나 전부는 아니었다. 그리고.
후욱.
“크아압—!!”
남궁천수의 기합과 함께 남은 깃털들이 다시 한번 방향을 틀었다.
양민들을 밀쳐내는 틈을 타 빈틈이 열린 이벽에게로 쏘아졌다.
퍼버버벅!
이내 이벽의 몸에 꽂혀 들었다.
“크하… 크하하하핫—!”
그 즉시 남궁천수에게서 의기양양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놈에게 중상을 입혔다.
마침내 놈에게 지난 대가를 치르게 할 때가 된 것이다. 이 순간만을 상상하며 지난 오 년을 악귀처럼 버텨왔던 것—
“크하! 크하하…핫?”
허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깃털이 이벽의 몸을 파고들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혀있음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
물론, 그것은 나뭇잎이었다.
투명한 나뭇잎들은 이벽의 몸을 감싼 채 흐름을 이루고 있었고, 강기가 파고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후욱.
다시 이벽의 검이 움직였다.
쾅, 콰앙.
그리고 벌레를 쳐내듯 핏빛의 깃털들을 쳐내었다. 이내 깃털들은 허공에서 흩어졌다.
물론, 이벽은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채였다.
“…이, 이게 대체 뭔—”
남궁천수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허나 그 순간, 이벽의 무심한 시선과 눈을 마주했다.
오싹.
남궁천수는 위기를 직감했다.
그 순간, 납치한 버러지들은 모두 놈의 주변에 몰려들어 있었으므로 주변에 써먹을 ‘고기방패’가 없다.
“…오히려 잘 됐군.”
그리고 이벽이 말했다.
탓, 이벽이 땅을 박찼다. 그대로 남궁천수를 베려 했다. 팔이나 다리 하나쯤은 날릴 생각이었다.
“…이익!”
훅, 남궁천수가 몸을 뺐다.
그 역시 ‘새로운 공부’에 힘입어 목천의 영역에 눈을 떴으므로, 물러서는 속도는 퍽 민첩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벽을 따돌릴 수는 없었고, 한 호흡 만에 일장까지 거리가 좁혀지고 말았다.
“…하핫!”
그러나.
이벽의 몸이 방금 전까지 남궁천수가 서 있던 자리 위를 지나치던 무렵이었다.
남궁천수의 입가에 다시 웃음이 피어났다.
“…자네는 여전히 괴물 같군! 허나 이 정도로 당할 만큼 이 남궁천수가 어리숙할 줄 알았나?!”
다음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또다시 이벽의 발아래에 놓인 바닥이 폭발했다. 휘청, 이벽의 몸이 흔들렸다.
* * *
콰아아아아앙—!!
흠칫.
당려옥의 어깨가 흔들렸다.
굉음과 함께 공간 전체가 흔들리며 푸스스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이것으로 벌써 두 번째였다.
벽 너머의 공간 어딘가.
머지 않은 곳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화약.’
조금 전부터 지하에 감돌던 ‘매캐한 냄새’의 정체를 당려옥은 그제야 눈치챘다.
그것은 무림에서는 좀처럼 통용되지 않는 힘이었다. 허나.
“왜 그러세요, 당 소저?”
모가장주 모란이 말했다.
“딱히 어려울 것도 없잖아요? 어서 이리 제 곁으로 오세요. 기왕이면 그쪽 소저를 마저 제압해서 끌고 와주면 더 좋구요~”
“…대체 왜 그래야 하죠?”
“그야… 개인적인 원한이라서요. 아, 물론 그쪽 소저가 아닌 비룡대주에게요.”
모란이 작게 미소를 보였다.
“비룡대주를 죽인다고 해도… 그냥 죽이는 것으론 성에 차질 않아요. 거느리고 있는 여인이 눈앞에서 능욕당하고 찢겨 죽는 모습 정도는 보여주고 싶거든요.”
“…….”
“아, 물론 그렇다고 당 소저에게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없으니 걱정 말아요. 우린 ‘같은 편’이니까요.”
조금 전.
스스로를 흑시의 일원이라 소개한 모란은 곧이어 이것이 ‘맹의 행사’라는 말과 함께 자신과 당려옥은 ‘적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
물론, 그 의미는 명백했다.
‘의혈맹.’
말인즉슨.
흑시는 의혈맹의 뜻을 따르므로, 마찬가지로 의혈맹의 일원인 당가와는 적대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
문득 당려옥은 등 뒤에서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돌렸고, 정연화와 눈이 마주쳤다.
모란의 독에 당해 주저앉았음에도 납치된 여인들을 지키듯 핏발을 세운 정연화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당려옥은 서늘함을 느꼈다.
분명 당가는 아미를 쳤다. 허나.
그것은 무림 세력 간의 다툼일 뿐, 양민에게 해를 끼칠 이유는 없으며 또한 산공독 이외의 극독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정도를 표방하는 세력으로서, 아니, 무림인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도의 선이었다.
인신매매 따윌 일삼는 이들과 하나로 묶인다면, 그것은 이미 정도도 뭣도 아닌 것이다.
“…….”
허나.
당려옥은 모란이 아무 근거도 없는 헛소리를 하고 있노라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애초에.
이곳 하남에서 소림의 존재감이 급속도로 위축되었다고 해도.
달리 뒷배가 없다면 세력 간의 다툼이 한창인 지역에서 인신매매 따윌 대대적으로 저지를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당금의 무림에서 그럴 만한 뒷배가 되어줄 수 있는 집단은 물론 ‘두 개의 맹’ 뿐이었다.
“…훗.”
당려옥은 웃었다.
“훗… 오호홋, 호호호호!”
“응? 뭐가 그렇게 재밌으신지요?”
“이거 실례했네요! 하지만… 우습잖아요? 호홋! 모란 소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말이죠?”
“화탄에 인질, 진법가, 그리고 초절정의 고수까지… 그래요. 비룡대주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이 모여 참 열심히도 준비를 하셨네요.”
허나.
모란의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그 말에 놀아날 이유는 없었다.
“헌데… ‘고작 그런 것들’로 비룡대주를 이미 다 잡은 물고기마냥 말씀을 하시니 우스울 수밖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