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57)
263화. 은원의 덫(1)
“…조심해요! 정 소저!”
훅.
당려옥이 비수를 집어던졌다.
채앵.
다음 순간, 비수와 비수가 공중에서 충돌했다. 흠칫, 정연화가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후욱.
그리고 정연화에 의해 구출되어 웅크리고 있던 여인들 중 하나가 훌쩍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날렵한 몸놀림으로 이장 가까이 거리를 벌린 뒤 저만치에 착지했다. 명백히 무공을 익힌 움직임이었다.
“과연… 듣던 대로 눈썰미가 대단하시네요. 당가의 꽃, 잠영난봉 당려옥 소저.”
“……!”
그리고 여인이 말했다.
당려옥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분명 다른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넝마 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던 당려옥의 시선에는 다른 여인들이 유독 그녀의 눈치를 보며 벌벌 떨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쪽은 누구시죠?”
당려옥이 물었다.
“유감이지만 소저처럼 내세울 만한 무명은 없네요. 저는 이 모가장의 장주인 모란이라고 한답니다.”
꾸벅,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
공간 내부에 긴장이 흘렀다.
슥, 그때 정연화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차가운 눈빛이 스스로를 모란이라고 소개한 여인을 향했다.
“…당신, 이 여인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
“무슨 짓은요? 그저 약간의 교육을 하고 있었을 뿐이랍니다. 딱히 밥도 안 굶겼고 잠도 잘 재워줬어요.”
모란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좀 지저분하긴 하지만… 어차피 가축이 되어버린 이상 자신의 처지를 하루라도 빨리 자각하는 게 본인들에게도 낫지 않겠어요?”
콰아아앙!
정연화의 발이 땅을 굴렀다.
“당신… 죽어 마땅한 악귀로군.”
“어머, 무서워라. 헌데 소저가 그렇게 제게 큰소리치고 있을 상황은 아니지 않을까요?”
모란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흥! 그게 무슨 헛소리—?!”
정연화가 곧장 쏘아붙이려 했다. 허나 바로 그때였다. 휘청, 정연화의 몸이 흔들리며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타앙.
“…큭!”
정연화가 발을 구르며 황급히 균형을 되잡으려 했다. 허나 일순 현기증을 느꼈고, 결국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고 말았다.
풀썩.
“정 소저……!”
흠칫, 당려옥의 눈이 흔들렸다.
주저앉은 정연화의 뺨에서 피 한 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당려옥은 비수를 던져 정연화를 암습하려던 모란의 비수를 쳐내는 데에 성공했다. 허나.
‘아주 조금’ 긁힌 모양이었다.
“뭐, 너무 걱정은 마세요. 즉사에 이르는 독은 아니니까요. 그쪽의 금광선봉 정연화 소저께서도 ‘해주셔야 할 일’이 있거든요~”
그리고 모란이 말했다.
역시… 예의 비수에는 독이 발려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아.”
당려옥은 한숨을 내쉬었다.
객잔의 음식에 섞여 있었던 독을 포함해, 상대 역시 독을 다루는 것에 적잖은 조예가 있음을 이해했다.
허나 당가 비전의 해독제인 만해환이 여전히 정연화의 입 안에 있는 이상, 중독이 심해질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필요한 것은.
‘약간의 시간’ 뿐이다.
저벅.
이내 당려옥이 걸음을 떼었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며, 이내 정연화보다 한 걸음 앞서 모란을 마주했다.
“모란 소저…라고 했나요? 독 만지는 솜씨가 제법이시네요~ 어디서 수련 좀 하셨나 봐요?”
“어디 천하의 당 소저만 할까요?”
훗, 두 여인의 마주 웃었다.
독심을 품은 눈빛이 부딪혔다.
“헌데 모란 소저, 대체 뭘 생각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어서 도망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어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장주인 제가 장을 버리고 대체 어디로 도망을 치겠어요?”
모란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 그게요. 저희랑 함께 있던 사내가… 사실은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거든요~”
“아, 비룡대주요?”
“……!”
“안 됐지만, 당 소저. 오히려 그게 저희가 바라는 바랍니다. 바로 이곳이… 비룡대주의 무덤이 될 테니까요.”
부르르.
‘비룡대주’라는 말을 입에 담는 순간, 모란의 표정이 흥분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당려옥은 놓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모란 소저께서는 꽤 많은 걸 알고 계시는 것 같네요.”
“그럼요. 두 분 소저께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답니다. 두 분이 아니었다면… 비룡대주를 이곳까지 유인하는 데 꽤 애를 먹었을 테니까요.”
“…….”
유인.
당려옥은 침음을 삼켰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계획되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허나 저들은 이쪽의 정체를 처음부터 모조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당해버렸네.’
덜컹, 타앙.
그때 여인의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흑의인이 곁에 내려앉았다.
“오셨어요, 가가?”
“네, 장주님.”
“중천검 대협께서는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십니다.”
“그렇군요. 아, 목숨을 잃은 부하들은 안타깝게 됐어요. 두 여협께서… 제 생각보다는 강했던 모양이네요.”
“…어차피 상품을 빼돌려서 제 놈들 멋대로 뒷돈을 챙기던 놈들입니다. 언젠가는 처리하려고 했죠.”
당려옥은 사내를 유심히 살폈다.
“…쳇.”
그리고 혀를 찼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함부로 확신할 수는 없었으나, 맴도는 기세에서 자신 혼자서는 이기기는 어려운 상대임을 직감했다.
어쩌면 절정고수일 지도 모른다.
허나 어째서 고작해야 인신매매 따윌 일삼는 집단에 저런 고수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후훗, 궁금한 게 많은 표정이네요. 많은 걸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뭐, 저희의 소속이라면 흑시(黑市)라고만 해두죠.”
“……!”
당려옥의 미간이 흔들렸다.
그것은 과거, 사파무림을 점거하려다 비룡대주에 의해 몰락한 것으로 알려진 혈교세력에 얽혀있던 이름임을 떠올렸다.
“…어쩜, 묻지도 않은 걸 먼저 말씀해주시다니, 모란 소저께선 퍽 상냥한 분이시군요?”
“그럼요.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친해지고 싶어요. 왜냐하면 당 소저와 저는 적이 아니거든요.”
“…….”
그 순간.
줄곧 당려옥의 머리 한켠을 짓누르고 있던 찜찜함이 와락 기지개를 켜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말이 나온 김에… 저도 한 가지 묻고 싶은걸요. 당가나 독왕께선 어째서 자꾸만 비룡대주를 두둔하는 거죠? 뭐, 이제 와선 아무래도 상관없지만요.”
그리고 그런 당려옥의 내심을 짐작한듯 모란의 눈이 호선을 그으며 말을 이었다.
“이것은 ‘맹의 행사’랍니다. 그러니… 어서 제 곁으로 오세요. 그러면 소저만큼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끔 돌려 보내드릴게요.”
“…….”
“아, 하지만 그쪽의 정 소저는 살려드리지 못하겠네요. 비룡대주가 보는 앞에서… 아주 고통스럽게 죽어주셔야 하거든요.”
* * *
이벽은 ‘신호’를 기다렸다.
허나 장원의 마당에 숨어든 이후 반 시진 이상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두 여인이 향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에서는 아무런 소란도 일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일각이 흘렀다.
이내 이벽의 마음속에 서서히 불안이 자라났다.
어쩌면 무언가가 잘못되어 소란을 일으킬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다면.
철컥, 이벽을 검을 잡았다.
그 즉시 마당을 가로질렀다.
설령 장원을 통째로 무너뜨리고 다소의 피해가 생기는 한이 있더라도 당려옥과 정연화가 잘못되어선 안 된다.
훅.
이벽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은 아무런 불빛조차 없이 어두컴컴했으며, 여전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내부로 들어섬과 동시에, 장원 내에 감돌던 알 수 없는 냄새는 더욱 심해졌다.
천리향의 냄새가 가려질 정도였다.
‘…타는 냄새?’
이벽은 미간을 찌푸렸다.
천리향의 정확한 방향을 가늠하고자 감각을 좀 더 예민하게 끌어올리려던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앙—!
다음 순간, 천지가 뒤흔들렸다.
쩌저적, 쿠구구구구구.
그리고 건물 전체가 흔들리며 동시에 바닥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
후욱.
이벽의 몸이 가볍게 떠올랐다. 창공비검의 묘리를 통해 추락을 멈춘 것이다. 허나.
“끄… 으으으읍!”
“아아아악! 으으으으—!!”
문득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무너진 바닥 저 아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심지어 비명 소리로 보아 한두 명이 아닌 듯했다.
‘…납치된 양민들!’
후욱.
다음 순간, 이벽의 몸이 아래로 쏘아졌다. 그리고 가속화된 시간 속에서 이벽은 판단을 내렸다.
저 아래에 몇 명이 있건.
무너지는 바닥의 잔해로부터 모두를 안전하게 피신시킬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훅, 서걱.
이벽은 검을 뽑았다.
그 순간, 가까운 곳에서 함께 추락하던 무너진 바닥의 파편이 두 조각으로 양분되었다.
허나 시작에 불과했다.
슥, 서걱.
추락하는 이벽의 몸이 나뭇잎처럼 허공을 노닐었고, 창공비검이 여섯 개의 묘리를 번뜩이며 파편들을 베고 또 베었다.
그렇게.
후두둑.
이내 이벽이 추락을 마치고 지하의 바닥에 닿았을 즈음에는 모든 파편들은 자갈과 먼지의 크기로 잘게 쪼개어져 있었다.
후두둑.
“으윽, 으으으……!”
그리고 웅크린 인영들 위로 자갈과 먼지들이 쏟아졌다.
움찔움찔, 겁에 질린 인영들이 몸을 떨었으나, 물론 먼지나 자갈에 맞아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없었다.
이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상대로 지하에는 퍽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대한 동공이었으며, 언뜻 보기에도 수십을 넘는 인원들이 팔과 다리를 묶이고 재갈을 물린 채 사방에 방치되어 있다.
언뜻 보아도 무공을 익히지 않은 양민들이었다. 허나 당려옥이나 정연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내 이벽은 묶여있는 양민들을 풀어주고 대화를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허나 그때였다.
“하핫, 왜 그러나 비룡대주?!”
슈슈슈슉.
다음 순간, 들어본 듯한 목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감각이 느껴졌다. 이벽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새의 깃털 모양을 한 강기의 다발들이 내리꽂히고 있음을 확인했다.
팔절구궁필법(八節九宮筆法).
만월(滿月).
후욱.
이벽의 검이 원을 그었다.
이내 강기들이 원안으로 빨려들었고, 하나로 뭉쳐진 강기들은 이벽에 의해 유도되어 맨땅을 파고들었다.
물론.
굳이 만월무변심공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충분히 피하거나 쳐낼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었다.
허나 그랬다간 주변의 양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을 터였다.
타앗.
“크하핫! 자네는 여전하군 그래!”
그때 정면 저만치에서 인영 하나가 내려앉았다. 물론, 강기를 쏘아 보낸 장본인일 터였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이벽의 미간이 흔들렸다.
“당신은… 남궁천수로군.”
“핫, 이거 영광이군. 천하의 비룡대주께서 이 몸을 아직까지 기억해주시고 있을 줄이야!”
사내, 중천검 남궁천수가 웃었다.
“…퍽 지긋지긋한 악연이오.”
이내 이벽이 말했다.
그는… 남궁세가의 방계 출신 절정고수이자, 숭무관이란 독자적인 세력을 이끌던 관주이기도 했다.
그리고 과거, 이벽과는 두 번의 충돌을 일으켰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숭무관주로서 사패련이 주춤한 틈을 타 호남무림을 삼키고자 했던 입장이었으며, 직접적으로 이벽과 검을 부딪치지는 않았다.
허나 두 번째 만남은 달랐다.
이벽이 언미희를 납치해 간 남궁세가로 향하던 때 그는 남궁세가의 무인으로서 숭무관의 제자들과 함께 이벽을 막아섰다.
그리고.
이벽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핫, 비룡대주께서는 퍽 당연한 말씀을 하는군 그래. 그럼 시간이 지났다고 원한이 저절로 사라지기라도 할 거라 생각했나?”
“…….”
“암, 어림도 없는 일이지! 내 지난 오 년 간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자네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걸세!”
이벽은 남궁천수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번들거리는 두 눈에 비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광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