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85)
291화. 만월무변곡검
콰르르르르르릉!
하늘을 가로막은 먹구름으로부터 벼락의 폭우가 쏟아지며 일대를 휩쓰는 가운데, 이벽과 송영영의 시선이 부딪혔다.
“나 죽어. 빨리 뭐 좀 해봐.”
“…알겠다.”
짧은 대화가 오고 갔다.
현재, 송영영은 이 장 높이의 허공에 ‘태극의 장막’을 펼친 채, 저 아래에 있는 구 무림맹의 무인들을 벼락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다.
비록 한 움큼의 피를 토하는 모습은 퍽 힘에 부쳐 보였으나.
그러한 신위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입을 연다는 것은…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
이벽은 놀라운 마음을 우선 접어두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했다.
우르릉, 콰아아아아앙―!!
먹구름 속에서.
맹철극의 그림자를 찾았다.
어찌 되었건, 송영영의 가세로 인해 해야 할 일은 간단해졌다. 그녀가 버텨주는 동안, 어떻게든 맹철극을 처리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이미 쓰러뜨렸던 상대다.’
이벽은 과거의 싸움을 복기했다.
과거, 맹철극은.
스스로 뇌기를 다루면서도, 정작 뇌기에 대한 완전한 저항력을 지니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이벽은.
수호대의 초연서로부터 전수받은 팔절구궁필법의 기예, ‘잔월’을 통해 쏟아지는 뇌기를 축적하여 맹철극에게 돌려주었고.
빈틈을 여는 데에 성공했었다.
“……!”
이내 이벽의 눈이 빛을 발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맹철극은 이상하리만큼 ‘다른 경지의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허나.
자신이 남궁천승과 싸우는 동안.
줄곧 하늘에 숨어 힘을 모으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와 같은 약점은 여전히 유효하리란 직감이 스쳤다.
우르릉,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물론 그 와중에도 벼락은 계속해서 내리쳤고, 이벽의 몸을 두른 나뭇잎을 두드리고 있었다.
허나 연달아 뇌기를 토해내며.
구름은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잔월.’
다시, 이벽은 기예를 생각했다.
혜공의 도움으로 이벽은 지니고 있던 세 심법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내었다.
다시 말해.
청강유엽공과 하나가 된 것은 비단 적파심공 뿐만이 아니며, 만월무변심공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또한.
적파심공이 ‘직의 묘리’라는 접점을 통해 청강유엽공에 섞여들었다면.
만월무변심공의 경우.
접점은 ‘곡의 묘리’에 있었다.
하늘의 달을 본뜬 검로로 적과 나를 모두 휘어지게 하는 그 묘리는… 청강유엽검식, 곡검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리고.
남궁천승과의 접전 중에 얻었던 ‘적파직검’과 유사한 깨달음이 다시 한번 반복해서 이벽을 스쳤다.
그리고 이벽은.
청강유엽공의 일부분이 된 만월무변심공의 묘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만월무변곡검(滿月無變曲劍).
사라라락.
다음 순간.
이벽의 몸 주변을 맴돌던 투명한 나뭇잎들 중 일부가 사방으로 훅 뻗어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앙.
“…큭!”
일순 방어가 약해지며, 벼락의 뇌기가 몸을 스쳤으나 이벽은 이를 악물고 버텨내었다.
우우우웅.
그리고 뻗어나간 나뭇잎들이 허공을 가르며 보이지 않는 원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
십수 개의 원이 허공에 맺혔다.
콰르르르르릉!
모습을 드러낸 원들은 그 즉시 몰아치는 주변의 벼락들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빠지지지지직.
당연하게도, 원 안에 갇힌 뇌기들은 우리 안의 성난 짐승처럼 마구 날뛰었다.
찌이잉.
극심한 현기증이 이벽을 스쳤다.
기실 남궁천승과의 충돌에서 이벽의 심력은 이미 한계에 가깝게 소모된 상태였다.
콰르르르르릉!
허나 그 순간.
뇌기는 마치 공기만큼이나 허공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모든 원들이 뇌기를 한계치까지 모으는 것 또한 순식간이었다.
파지지직, 파직.
이내 원들이 은은한 빛을 냈다.
그것은 마치 먹구름 아래로 십수 개의 만월이 동시에 떠오른 듯한 모습이었다.
훅.
이벽이 검을 뻗었다. 그 끝은 물론, 먹구름 속의 맹철극을 향해 있었다.
푸욱.
다음 순간.
그 모든 원들의 정중앙에 좁쌀만 한 구멍이 생겼고, 그 즉시 압축된 뇌기가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파아아아앙, 파아아아아앙.
십수 가닥의 뇌기가 거꾸로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먹구름조차 단숨에 뚫어버린 채, 일제히 맹철극의 몸을 두드렸다.
파지지지지지지지직.
이내 뇌기의 빛줄기에 적중당한 맹철극의 그림자가 구름 속에서 마구 경련했다.
비록 그는 이미 죽은 몸이었기에 신음 따윌 흘리지는 않았으나, 예상대로 ‘충격을 입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후우우욱.
다음 순간, 먹구름이 눈에 띄는 속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벼락조차 단숨에 멎어버렸다.
파지지지지지지직.
허나 그럼에도.
이벽의 ‘만월무변곡검’이 축적한 뇌기는 바닥나지 않았고, 계속해서 맹철극을 두드렸다.
이대로라면.
이번에야말로 맹철극을 ‘정말로’ 죽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이벽을 스쳤다. 허나 그때였다.
후우우욱.
“크… 크흐흐, 크하하하핫―!!”
이벽은 발밑에서 괴소와 함께 솟구쳐오르는 하나의 기척을 느꼈다.
또다시 남궁천승이었다.
이벽에게 절초를 파훼당하고.
중상을 입은 채 쏟아지는 벼락에 휩싸였음에도 그는 기어코 스스로를 지켜낸 것이다.
허나.
불과 조금 전까지 온 하늘을 뒤덮었던 날개는 형편없이 찢기고 벼락에 그을려, 마치 죽어가는 매의 마지막 발악과 같았다.
후우우우우욱.
“크하하하핫! 뭘 하나 비룡대주?! 숨통을 끊지 않는 한, 왕좌의 다툼은 끝나지 않는 것이네―!!”
“…그렇군. 잘 알겠소.”
찰나의 순간, 이벽은 판단했다.
광인이건 뭐건, 절대고수의 목숨을 도외시한 ‘마지막 발악’은 가볍게 피해버릴 만큼 녹록지 않았다.
후욱.
그리고 맹철극을 향하고 있던 이벽의 검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아래를 향했다.
파아아아아앙.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맹철극을 찌르고 있던 수십 가닥의 뇌기 또한 일제히 그 방향을 검과 함께했다.
파지지지지지직.
“…크, 으아아아악! 크아아아아!”
수십 가닥의 뇌기에 노출된 남궁천승의 몸이 상승을 멈추었다. 허공에 못이 박힌 듯 멈춰선 채 마구 경련했다.
파지지지직.
세 호흡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이내 만월무변직검의 원 안에 모여들었던 뇌기가 바닥을 드러내었고, 마침내 이벽의 ‘일검’이 끝났다.
파아아앗.
그와 동시에.
“…끄으으.”
남궁천승의 날개가 흩어졌다.
하늘 위로 무수한 깃털의 잔해를 흩날리며, 검게 불타버린 남궁천승의 신형이 추락을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검인가? 자네는 정말… 지루하지 않은 상대였네. 크하핫!”
“…….”
허옇게 익어버린 두 눈이 이벽을 향했다. 그리고 마지막 호흡과 함께, 헌앙한 미소를 지었다.
등천의 절대고수가 제 육신조차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은, 마침내 모든 것이 끝에 이르렀단 뜻이었다.
후욱.
그리고 매가 추락했다.
다시는 날아오를 수 없게 되었다.
허나 숨이 끊어진 적에게 그 이상 신경 쓸 여력은 없다. 이벽은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우우우웅.
“……!”
흩어지기 시작했던 먹구름이.
다시 모여들고 있음을 확인했다.
남궁천승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그 몸이 파괴되기 직전, 맹철극은 가까스로 운신을 회복한 것이다.
후우욱.
이벽은 그 즉시 날아올랐다.
다시 한번 벼락의 지옥이 펼쳐진다면, 송영영에게 의존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허나 그때였다.
이벽이 거리를 좁히자, 맹철극의 주변으로 모여든 먹구름이 철갑처럼 그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호신강기!’
불현듯 이벽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 또한 오 년 전과 마찬가지였다.
맹철극은 먹구름 형태의 뇌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하늘에 띄워 벼락을 뿌리다가도 위기에 처하면 몸에 둘러 스스로를 보호하곤 했다.
허나.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이벽으로선 그 호신강기를 뚫기가 어려웠으나,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벼락지옥이 펼쳐지는 것을 막고자 한다면, 맹철극으로 하여금 호신강기를 유지하도록 근접전을 펼치는 것이 나은 선택일 테다.
후욱.
이내 이벽은 지척까지 이르렀다.
맹철극은 오 년 전 그때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물론, 죽은 자에게는 세월의 흐름 따윈 아무 의미가 없다.
훅.
이벽은 그 즉시 검을 뻗었다.
유의 묘리로 파헤치고자 했다.
파지지지지지직!
“…컥!”
허나.
먹구름을 파고든 순간, 예상 이상으로 강렬한 뇌기가 검신을 타고 이벽을 향해 역으로 파고들었다.
심지어는.
타아아앙.
안쪽의 육신에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강시 특유의 강철같은 육신을 베지 못하고 도로 튕겨 나와버렸다.
또한 그것은.
맹철극을 두르고 있는 먹구름이 더는 호신강기 따위가 아니라 ‘등천의 영역’에 해당하는 힘이었기 때문이었다.
파지지직.
어찌 되었건 뇌기는 강렬했고.
찰나의 순간 이벽은 경직되었다.
후욱.
그리고 바로 그 틈을 타, 맹철극의 도가 휘둘러졌다. 그리고 이벽은 쳐내기에는 늦었음을 직감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적파직검(赤派直劍).
쩌저저저적, 퍼어어어어억!
허나.
몸이 경직되었다 해도.
쓸 수 있는 검은 남아있었다. 한순간, 몇 겹으로 뭉쳐든 나뭇잎들은 붉은 검이 되어 맹철극을 두드렸다.
퍼어억, 퍼어어어억!
먹구름을 파고들지는 못했으나.
찰나의 균형을 흔들어 놓기에는 충분했고, 이내 맹철극의 도 또한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그 한 수의 교환을 시작으로.
이내 접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파지지지지직!
검과 도가 맞닿을 때마다 뇌기가 이벽의 몸을 파고들었으나, 그때마다 적파직검이 맹철극을 두드렸고 빈틈을 빈틈으로 메꾸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십여 합이 흘렀다.
싸움은 얼추 동수를 이루었다.
허나 이벽의 미간은 서서히 찌푸려졌다. 문제는 먹구름뿐만이 아니며, 그 자체로 이미 강철과 같은 강시의 육신 또한 퍽 난처했다.
“허억… 헉!”
육체의 호흡이 가빠졌고.
현기증이 머리를 조여들었다.
‘시간을 끌면… 어렵다.’
심신의 체력이 바닥나고 있다.
그것은 일찍이 이벽이 남궁천승을 상대로 유리함을 점하던 것과 흡사한 상황이었으나, 입장은 정반대가 되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정말로 한계에 이르기 전에.
어떻게든 타개책을 찾아야 한다. 계속해서 접전을 이어가는 한편, 이벽은 생각을 거듭했다.
스윽.
허나 다시 그때였다.
불현듯, 소리도 없이 하나의 인영이 맹철극의 등 뒤 어깨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송영영?”
다시, 그녀였다.
허나 송영영은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송영영의 검이 유려한 태극을 그리며 맹철극의 등을 파고들었다.
파하학!
그리고.
등을 지나 배에 이르기까지.
무형의 태극이 맹철극의 상체를 ‘통과’하고 지나갔다. 비록 겉으로는 아무런 상처를 입히지 못했으나.
비틀.
충격이 없지 않은 듯, 맹철극의 몸이 흔들렸다. 또한 그 길목을 따라 한순간 먹구름이 걷히며 맹철극의 복부가 바깥으로 드러났다.
주르륵.
“…뭐해? 빨리.”
“……!”
다시 입가로 피를 흘리며 송영영이 말했다. 물론, 이벽은 그 의미를 이해했다.
태극이 애써 뚫어낸 길을.
도로 막히게 놔둘 이유가 없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적파직검(赤派直劍).
쩌저저저적.
퍼어어어어억―!!
다음 순간, 먹구름 사이로 썰물처럼 모습을 드러낸 맹철극의 복부를 향해 붉은 검들이 파고들었다.
퍼억, 퍼어어어어억, 퍼어어억!
부딪치고 부딪치고 또 부딪쳤다.
죽은 자의 저주받은 육신은 마치 바위를 두드리듯 단단했으나, 이내 조금씩 파이고 깎여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후우우욱.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고.
온몸을 감싼 먹구름이 흩어졌다.
그리고 가슴이 환히 드러났다. 마침내 강시의 생명력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우우우웅.
이내 이벽은 최후의 일검을 끌어올렸다. 허나 노릴 것은 가슴이 아니었다.
오 년 전, 이벽은 이미 맹철극의 심장을 관통했던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적은 다시 ‘되살아났다’.
고로 이번에는.
다른 곳을 노린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창공비검(蒼空飛劍).
후우욱, 서걱.
여섯 개의 묘리가 감도는 검이 맹철극의 목을 향해 파고들었고, 먹구름에 보호되지 않은 그 목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베어졌다.
툭.
잘린 머리가 떨어졌다.
저 아래를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으며, 이내 머리를 잃은 육신 또한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허공에는 이벽과 송영영만이 남게 되었다.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혔다.
“…쿨럭.”
송영영이 다시 피를 토했다.
마침내 일전이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