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286)
292화. 정도맹의 사자 (1)
남궁천승이 죽었고.
맹철극 또한 목이 떨어졌다.
두 절대고수의 시신이 추락하여 땅 위에 널브러졌으나 반면 이벽과 송영영의 경우에는 두 발로 땅 위에 내려섰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승패는 명백하게 나뉘어졌다.
이후 살아남은 무인들에 의해 전투에 대한 뒷수습이 시작되었다.
구 무림맹에 속한 소림과 개방의 경우, 사상자는 비교적 드물었다.
난전 중 적의 검에 의해 목숨을 잃은 몇몇이 있었으나, 맹철극의 벼락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는 극히 드물었다.
그것은 물론, 그들 모두를 한자리에 모은 뒤 머리 위에서 태극의 장벽을 펼쳐 벼락을 막아낸 송영영 덕분이었다.
반면.
“…….”
남궁세가를 비롯한 의혈맹 측 무인들의 경우 ‘살아남은 이’를 찾기가 드물었다.
맹철극이 펼친 벼락의 지옥 속에서… 목숨을 잃은 것은 오히려 대다수가 의혈맹 측의 무인들이었다.
남궁천승은.
그 마지막의 마지막 힘까지 온전히 이벽을 향해 쏟아내었고, 한 명의 무인으로서 죽음을 맞이했다.
허나.
가주이자 대표로서 따르는 이들을 보호하지는 않았고, 그 결과 많은 무인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에 살아남은 의혈맹의 무인들은 넋을 잃은 채 순순히 포로가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대승이었다. 허나.
전장을 수습하는 구 무림맹 측에 흐르는 분위기 역시 무겁게 내려앉기는 마찬가지였다.
북두천존이 칩거한 이래, 소림을 대표하던 다음 대의 고수였던 공진이 중상을 입은 채 사경을 헤매게 되었고.
개방주 철면개 또한 심각한 내상을 입은 채 한동안 요양에 전념해야만 했다.
상대는 의혈맹이 아니라.
그 일부인 남궁세가에 불과했다.
허나 그 한 번의 싸움만으로 구 무림맹은 사실상 지니고 있던 모든 전력을 소모하고 말았으며.
심지어는 그 승리조차.
‘자신들의 손’으로 일궈낸 게 아니었다.
“…….”
잇따른 절대자들의 신위 앞에서.
자신들의 힘은 너무나 무력했다.
그것은 익히 알고 있던 사실임에도, 막상 ‘머리 위에서’ 펼쳐진 천외천의 광경은 뇌리에 틀어박힌 채 무인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시 소림의 밤이 깊었다.
“이거야 원, 대접이 변변치 못해 송구하오. 귀한 손을 모시는데… 퍽 면목이 없구려.”
외팔의 선승, 혜공선사가 말했다.
열흘 전, 대환단의 힘으로 말미암아 이벽에게 ‘세월’을 전수해준 이래 노승은 줄곧 요양하고 있었노라 했다.
애써 미소 짓는 안색은 이전보다도 더욱 말라붙은 듯했으나, 다행히 거동에 문제는 없는 듯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선사. 소림이고 개방이고… 이거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군요.”
이어 철면개가 쓰게 웃었다.
그 역시 수개월, 혹은 그 이상을 꼼짝없이 요양에 전념해야 할 만큼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허나.
문제는 여전히 산재해 있으며, 또한 몸 상태가 어떻든 간에 미룰 수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
이벽은 침묵했다.
일단은 자신이 섣불리 나설 만한 자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그들이 둘러앉아 있는 장소는 혜공의 처소라 할 수 있는 주지승방이었으며.
마주한 ‘손님’은 물론.
태극무봉 송영영이었다.
덥석.
불현듯 송영영이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렸다. 한 모금을 들이켠 뒤 미간이 설핏 찌푸려졌다.
“…텁텁해.”
툭, 찻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진짜 변변치 않네요.”
“…허헛.”
혜공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새 찻잎을 구하지 못한지도 퍽 오래되었다오. 넓은 아량으로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소.”
“그래도 천하의 소림이 이건 너무 궁상 같은데…….”
“…허헛!”
그리고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송영영은 과거, 비룡대원으로서 이벽, 그리고 철면개와 함께 했던 동료였으나 물론, 그 이전에 ‘정도맹주 태극검존의 제자’였다.
그러한 그녀가.
이 자리에 있는 의미는 명백했다.
‘…정도맹의 사자(使者).’
허나 그녀의 태도는 묘했다.
싸움이 끝난 이래, 구명의 은에 감사를 표하는 소림과 개방의 무인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많이 강해졌군, 송영영.”
이내 이벽이 입을 열었다.
휙, 그러자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송영영의 고개가 움직이며 이벽을 향했다.
“왜, 불만 있어?”
“그게 무슨 말이지?”
“대주, 너는 그렇게나 힘에 취해있으면서… 너만 계속 강해지고 난 이만큼도 강해지면 안 돼?”
“…….”
이벽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오 년 만에 재회한 송영영에게서는 알 수 없는 가시가 느껴졌고, 당연하다는 듯 세월의 거리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험!”
그때, 철면개가 헛기침을 했다.
“어쨌거나… 소저께는 내 개방의 방주로서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겠소. 제자들의 목숨을 생각하면 이 은을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
“그래? 그럼 내가 가르쳐줄게.”
다시, 송영영이 말을 받았다.
“항복해.”
“그, 그게 무슨……?”
“지금 온다면 받아는 줄게.”
철면개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다.
허나 이내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정도맹의 차원에서 개방주에게 건네는 이야기’임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산동으로 갈 거야.”
본론은 갑작스러웠다. 허나.
그에 담긴 의미는 가볍지 않았다.
그리고 방 안에 당혹감이 번졌다.
산동이란.
‘황보세가의 본가’가 자리한 땅이자, 의혈맹이 지배하는 영역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지역임을 모르는 이는 물론 이 자리에 없었다.
“조만간 놈들을 ‘마교의 후예’로 선포하고… 장문인과 나, 곤륜의 무존, 그리고 몇몇 할아버지들이 놈들의 한복판에 직접 찾아갈 거야.”
“……!”
“그리고 그걸로 끝. 황보혁은 그날로 머리가 떨어질 거고, 그 이후로 황보라는 성씨 또한 강호무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게 될 거야.”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높낮이가 뚜렷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목소리로.
‘권왕의 목’을 입에 담았다.
그것은 마치 주머니 안의 물건을 꺼내듯 대수롭지 않은 일을 이야기하는 어투였다.
“그리고 다시 그 이후의 일 말인데… 의혈맹의 세가들은 물론, 조금이라도 놈들에게 협력했던 잔당들 또한 모두 뿌리를 뽑을 거야.”
허나 송영영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다.
“뭐, 시간은 꽤 걸리겠지. 현재의 의혈맹을 생각하면 뿌리 뽑아야 할 ‘성씨’들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하지만.”
“…….”
“마교에 협력한 이들을 살려둘 수는 없잖아. 땅에 떨어진 중원의 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땅끝까지 쫓아 목을 베어야지.”
슥.
송영영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무림을 깨끗이 정화하는 거야.”
* * *
“…….”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이벽과 철면개, 그리고 혜공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닫고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송영영이 늘어놓은 이야기는 ‘너무 앞서나가’ 있어서 어느 부분을 어떻게 되물어야 할지 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다만 어딘가에서.
피비린내가 맡아지는 듯했다.
“그러니까 항복해.”
다시 송영영이 말했다.
“기회는 지금뿐이야.”
“…….”
후룩.
그리고 송영영이 다시 찻잔을 들었다. 한 모금 들이켠 뒤 미간이 설핏 찌푸려졌다.
“역시 맛없어.”
“…시주의 말씀은.”
그리고 그제서야.
혜공이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하자면… 검존께서 친히 나서서 황보세가를 정벌하기로 결심하셨다는 말이오?”
“응, 맞아요.”
“…….”
이내 노승의 얼굴에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말을 고르듯, 잠깐의 침묵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오. 물론, 검존의 경지를 의심하는 것은 결코 아니오만, 그자들이 숨겨놓은 전력이 대체 얼마나 될지―”
“알아요, 물론.”
허나 송영영이 말을 끊었다.
“여기서 스님이나 거지 아저씨에게 자세히 이야기해 줄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이 일을 아주 오랫동안 준비했고, 모든 건 순식간에 끝날 거예요.”
“…….”
천하의 황보세가를 친다는 말을 거듭 반복하면서도 그녀의 표정에는 일말의 동요조차 없었다.
송영영에게 있어 승리는 물론, 권왕의 죽음마저도 이미 ‘결정된 사항’인 듯했다.
“그리고 솔직히 현재의 소림이나 개방이 그런 부분까지 신경 써 줄 처지는 아니지 않아요?”
“…으으음.”
혜공이 침음했다.
“그러니까 어서 와서 숟가락이나 얹어요. 다시 말하지만, 항복을 하려면 지금뿐이에요.”
허나 송영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정도맹의 사자로서 구 무림맹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모든 게 끝나고 난 이후에는… 받아달라고 울고 짜고 보채도 아무 소용 없을 테니까.”
“…….”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
또한 그녀는 거듭 ‘지금’을 강조하고 있었다. 불현듯 이벽은 그 말이 지닌 의미를 생각했다.
“…송 소저.”
허나 그때였다.
철면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인즉슨… 의혈맹과의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 항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들 역시 정도맹의 ‘정화 대상’에 포함된다는 뜻이오?”
“……!”
그리고 그 순간.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이번 일은.”
송영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원인을 따지고 보면 애당초 과거의 무림맹이 제 일을 하지 못한 탓이야, 거지 아저씨.”
“…….”
“무림맹은 놈들의 씨앗이 정파무림에 스며든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결국은 놈들의 계획에 이리저리 놀아나기만 하다가 정파무림이 세 조각으로 분열되는 것을 막지 못했지.”
혜공의 눈이 흔들렸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황보세가를 필두로 한 무림세가들이 온갖 빌미를 만들어 무림맹으로부터 갈라져 나간 것부터 이미.
‘마교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당시의 무림맹주였던 북두천존 혜능은 그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혜공 자신 또한 무인이 아닌 학승으로서, 무림의 향방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의혈맹이 탄생했고, 뒤이어 정도맹 또한 탄생했으며, 무림맹은 사실상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허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의혈맹의 잔당들과 마찬가지로 모조리 ‘목을 베겠다’고까지 말하지는 않을게.”
그리고 다시 송영영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 항복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소림과 개방이 무림세력으로 ‘명맥이나마’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어.”
“…크윽.”
철면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허나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정확히는 무슨 말을 한들, 힘이 없는 자의 목소리는 강호 무림에서 큰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땅에서 마교도를 몰아내기 위한 싸움이라면 물론 검존의 뜻에 반할 생각은 없소이다. 외려 이 늙은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기꺼이 힘을 보태고 싶소.”
이내 다시 혜공이 말했다.
“그럼 문제없네요. 항복해요.”
“허나… 그대들도 모르지 않겠지만, 저들 모두가 마교도가 아니라 실상 대부분은 그저 ‘이용당하고 있는’ 중생에 불과하지 않소?”
“근데요?”
“검존께서 놈들의 수뇌를 손수 단죄하신다면… 그 이후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이들의 피까지 흘릴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소?”
“핫.”
그러자 송영영이 코웃음을 흘렸다. 허나 표정에는 일말의 웃음기조차 없었다.
“스님. 우스워요.”
“…무엇이 말이오?”
“그렇다면 스님은 마교도와 마교도가 아닌 이가 한 데 섞여 있다면 한 눈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나요?”
“…….”
“아니면 하나하나 사정을 봐가면서 죽일 만큼 적들이 만만해요? 애당초 비룡대주가 오지 않았더라면 이미 이곳 소림은 남궁세가에 짓밟혔을 건데?”
검은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애당초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에 늘 그런 식이었으니… 소림과 개방이 ‘지금과 같은 꼴’이 된 거잖아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사파무림에 숨어있던 혈교의 잔당을 뒤쫓는 것까진 좋았어요. 헌데 정작 이웃한 이들이 그보다 더 무서운 마교인지도 모르고 신개와 천존, 두 분 모두 대화 운운하며 스스로 적진에 찾아갔다가… 화를 자처했잖아요?”
“……!”
“어리석어요. 바보 같아.”
빠지직.
그 순간, 철면개의 손에 쥐어져 있던 찻잔이 소리를 내며 금이 갔다.
“송영영. 그만.”
허나 그 순간 입을 연 것은 이벽이었다. 가급적 나서지 않으려 했으나,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는 듯했다.
“말이 심하군.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 대강 알겠지만… 선을 넘지는 마라.”
“…대주.”
그리고 송영영의 시선이 이벽을 향했다. 그제서야 처음으로 그녀의 표정이 미미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