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30)
338화. 패왕유엽 (3)
“…대체 뭐지, 지금 그건?”
이벽이 침음했다.
검선의 매화에서 비롯된 깨달음을 체득하기 위해 혁대웅은 스스로 ‘궁지에 몰리기’를 원했고.
이내 그 바람대로 이벽은 적파직검으로 하여금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혁대웅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발아래의 허를 찌름으로써, 전륜패왕창의 견고한 수비를 무너뜨리는 데에 성공했다.
허나.
부서진 물레바퀴의 파편들은.
다음 순간 나뭇잎으로 거듭났다.
말인즉슨 패왕가의 무공을 상징하는 등천의 영역이… 한순간 청강유엽공의 그것으로 형체를 바꾼 것이다.
물론, 불가능할 이유는 없었다.
낙검문의 사형제들은 모두 옛적에 단전을 잃어버린 몸이며, 낙검진천신공의 공능으로 말미암아 내력을 다룬다.
그렇기에.
등천의 영역이 근거하고 있는 묘리를 전환하는 것이 비단 이벽에게만 허락한 일은 아닌 것이다.
허나.
그러한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조금 전, 혁대웅이 펼친 한 수는 무언가가 이상했다.
적파직검이 지척까지 파고든 순간, 돌연 혁대웅의 창끝은 분화하며 십여 대의 그림자를 만들어냈고.
하나하나가 초식을 품으며.
적파직검을 모두 상쇄시켰다.
그리고 그러한 공능은 분명 청강유엽공이 지닌 여섯 개의 묘리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뭐긴, 네 무공 내 무공이지.”
핫, 혁대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패왕… 유엽공이라고 이름 붙이면 되려나? 너무 단순한가? 아하핫!”
“…….”
“벽아, 자세히 잘 봐봐.”
험, 혁대웅이 헛기침을 했다.
사라락, 사락.
그리고 혁대웅의 나뭇잎이 다시금 그 기척을 드러냈다. 이벽은 안력에 신경을 집중했다.
“……!”
다시,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혁대웅을 둘러싼 나뭇잎들이 흡사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 마냥 격렬하게 ‘회전’하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다.’
다시 이벽은 생각을 달리했다.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이 아니라.
외려 나뭇잎 한 장 한 장이 각자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회전의 묘리.”
“응, 맞아.”
혁대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이벽은 묘리를 짐작했다.
혁대웅의 영역은 분명 나뭇잎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허나 그 안에 담겨있는 것은… 여전히 패왕가의 묘리였다.
말하자면.
나뭇잎 한 장 한 장이 모두.
‘작은 물레바퀴’가 된 것이며.
또한 전륜패왕창의 원동력에 해당하는 물레바퀴의 갯수가 늘어난 만큼, 혁대웅의 창 또한 그림자를 빚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
말마따나 그것은.
‘무공의 합일’이었다.
“왜, 화정봉의 그 영감님 말야. 꽃이나 나뭇잎이나… 본질적으로는 별로 다를 게 없다고 했었잖아?”
다시 혁대웅이 말을 이었다.
검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나뭇가지 위로 피어난 검선의 매화로부터, 혁대웅이 얻은 것은 다름아닌 ‘힘의 응축’에 대한 실마리였다.
“따지고 보면… 꽃이건 나뭇잎이건 결국은 나무의 양분이 응축된 ‘힘의 결정체’ 같은 거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그러한 묘리는.
물레바퀴의 형상으로 회전력을 축적하여 일거에 힘을 폭발시키는 전륜패왕창의 묘리와 분명한 ‘접점’이 있었다.
그렇게.
혁대웅은 지난 사흘간.
접점을 파헤쳤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깨달음을 ‘연결고리’ 삼아, 마침내 패왕의 힘과 청강유엽공의 나뭇잎을 하나로 엮어낸 것이다.
“뭐, 머리로는 이해했어도 몸으로 체득하는 건 감의 문제니까… 그래도 네 덕분에 어떻게든 된 것 같네, 하핫.”
혁대웅이 머리를 긁적였다. 허나 이벽은 여전히 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검선의 매화로부터 이벽은 꽃과 나뭇가지, 그리고 검선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지고한 경지를 목도했고.
그러한 실마리로부터, 등천의 영역과 온전히 한 몸이 되기 위해 스스로 나무로 거듭나는 길을 몰두하고 있었다.
허나.
같은 기예를 목도하고도 혁대웅은 나무가 아닌 ‘꽃’ 그 자체를 보고 있었으며.
불과 사흘만에.
절기를 이어붙인 것이다.
“혁대웅, 새삼 괴물같군.”
“뭐라는 거야? 고작해야 검 몇 번 섞어봤다고 무당의 무공을 보고 베껴버리는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아?”
“…그건 조금 다르다.”
이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엽유검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은, 애당초 청강유엽공 유의 묘리가 무당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며.
하물며 혜공선사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적파직검이나 만월무변곡검 또한 하나로 엮어낼 수는 없었을 터였다.
처억.
“뭐, 아무렴 어때?”
그때, 다시 혁대웅이 말했다.
동시에 창끝이 이벽을 향했다.
“벽아, 어떡할래? 네가 원한다면 이대로 좀 더 계속할 수도 있고. 가능하면 내 것도 보고 베껴 보는 건 어때?”
“…뭐라고?”
혁대웅의 입꼬리가 움직였다.
“조금 전에 말했잖아. 내가 얻은 깨달음은… 어쩌면 너한테도 도움이 될 거라고 말야.”
핫, 혁대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리고 무공에는 무공. 네 가전무공 덕에 성취를 이뤘으니 돌려주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 * *
“……!”
이벽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허나 혁대웅의 뜻은 명확했다.
“뭐… 강요는 않겠지만 말야. 조금이라도 더 강해질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물불 가리고 있을 처지는 아니잖아?”
다시 혁대웅이 말했다.
사락, 사라락.
혁대웅의 나뭇잎이 회전했다.
물론, 사파제일의 무공이 지닌 묘리를 그저 보는 것만으로 따라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허나.
지금 이 순간, 그러한 묘리는 혁대웅의 재능으로 말미암아 나뭇잎이라는 형태로 재해석되어 발현되고 있었으며.
다시 그것은 이벽에게 있어.
‘먹기 좋게 다져진’ 것과 같았다.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 순간, 직감이 스쳤다.
쾌의 묘리, 그리고 강의 묘리.
청강유엽공을 구성하는 여섯 개의 묘리 중, 이벽에게는 여전히 알맹이를 채우지 못한 묘리가 두 개 남아있었다.
또한 패왕가의 무공은.
사파를 천대하는 정파인들조차 천하제일의 자리 하나를 내어주지 않을 수 없을 만큼의 ‘강맹한’ 기예였다.
철컥.
판단을 마친 순간.
이벽은 즉시 검을 고쳐 쥐었다.
“사양은 안 하겠다. 아니, 외려 부탁하고 싶군. 이래서 사형제가 좋다는 건가?”
“…이제 와서 사형 취급이니?”
핫, 두 사람이 마주 웃었다.
우우웅, 사락사락.
이내 두 사람은 다시 기세를 드높였다. 각자의 나뭇잎이 서로 다른 모양을 그리며 흩날리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안 다치게끔 주의할 테지만… 힘 조절이 잘 안 될지도 몰라.”
무학의 깨달음은.
말로 전수되지 않는다.
고로 이번에는 이벽이 ‘궁지에 몰릴’ 차례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알아서 피할 테니 쓸데없는 배려는 안 해줘도 된다. 진심으로 싸우지 않으면 얻을 것도 못 얻을 것 같은 기분이군.”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럼 우리 사제의 실력을 믿고 절반 정도만 진심으로 할까?”
“응, 그게 좋겠군. 어차피 속도는 내가 더 빠르니 여차하면 피하면 그만이다.”
“하핫, 조금 얄미우려고 하네.”
타아앙.
혁대웅이 오른발을 내뻗었다.
흡사 땅이 뒤흔들리는 듯했다.
“그럼 들어와, 벽아.”
“그렇게 하지.”
타앙.
이내 이벽 또한 땅을 박찼다.
쩌저저적.
신형이 쏜살같이 쏘아지는 한편, 주변의 나뭇잎들이 겹쳐지며 적파직검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훅, 쐐애애액.
이내 신형보다 앞서 열 자루의 검들이 혁대웅에게로 쏘아졌다. 허나.
후우웅.
“핫, 그 장난은 이미 파악했어!”
그 즉시 혁대웅이 창을 내뻗었고, 다시금 창끝의 그림자가 줄기줄기 분화하며 적파직검에 맞섰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검과 창이 모조리 상쇄되었다.
훅, 타앙.
허나 물론 서로가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다. 이 보 가량의 거리에서, 이벽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후우우우욱.
물론, 창이 이벽의 뒤를 쫓았다.
타앙, 타앙.
허나 허공에서 이벽의 몸이 틀어졌다. 발밑에 깔린 나뭇잎을 짓밟으며 신형이 잔상을 남기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크, 더럽게 촐랑거리네!”
혁대웅의 미간이 흔들렸다.
말마따나 뻗어지는 창은 줄기줄기 그림자를 펼쳐냈으나, 그중 단 하나도 이벽을 스치지는 못했다.
어찌 되었건 여전히 속도에 있어 혁대웅의 창이 이벽을 따라잡을 수 없음은 퍽 명백해 보였다.
타아아, 콰아아앙.
허나 동시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창의 그림자를 넘어 반격할 수단이 마땅치 않음은 이벽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승패를 위한 싸움이 아니다.
그리고 몸으로 부딪쳐 직접 그 위력을 겪어보는 것만이, 성취를 향한 빠른 길임을 이벽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타앙.
다음 순간, 판단을 마친 이벽이 허공에 멈춰 섰다. 물론, 어김없이 십여 자루의 창끝이 쏘아졌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만월무변곡검(滿月無變曲劍).
사라락.
허나 그 순간, 이벽의 주변으로 나뭇잎들이 퍼져나가며 몇 개의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후우욱.
“뭐, 뭐야, 이건……?”
원 안에 빨려 들어간 혁대웅의 창들이 갈대처럼 휘어졌다. 제자리에 멈춘 이벽을 맞추지 못하고 사방으로 빗나갔다.
욱씬.
허나 그것만으로도.
이벽은 약간의 충격을 느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혁대웅의 찌르기는 천하의 혈마마저도 흠씬 짓이겨놓은 바로 그 공격이었다.
아마도 본래대로라면 경로를 틀어놓기는커녕, 외려 만월무변곡검이 파훼당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허나.
하나의 일격이었을 초식이 십여 개의 그림자로 분화됨으로써, 하나하나의 위력 또한 약화된 것이다.
‘예상대로로군.’
물레바퀴가 나뭇잎이 된 것이.
꼭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쩐지 조금씩 알 것도 같군. 계속해서 두드려보겠나?”
“…하핫, 그렇단 말이지?”
후욱, 콰아아아앙.
다시금 창이 쏘아졌다.
허나 이번에는 이벽을 향해 쏘아지는 그림자의 개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콰아아아아앙, 휘청.
동시에 이벽의 몸이 흔들렸다.
난점을 이해함과 동시에, 혁대웅은 그 즉시 분산된 힘을 다시 합쳐서 쏘아 보낸 것이다.
혁대웅은 다시 한번.
기예의 이해도를 넓혔다.
“어째 이거 또 내가 도움을 받아버렸네. 어때 벽아? 계속해서 버틸 만해?”
“…딱 좋다, 계속해라.”
“그래, 그럼 그렇게 할게.”
대화는 평온했다. 허나.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뒤따르는 창의 기세는 무자비했다. 공기를 찢어발기며 만월무변곡검의 원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쿨럭.”
허나 이벽은 피하지 않았다.
뼛속 깊이 파고드는 충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으로는 반격의 기회를 고민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십여 초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마침내 만월무변곡검의 원이 산산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벽아, 알지? 다칠 것 같으면 무리하지 말고 일단은 물러서.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천천히―”
“아니, 계속해라. 쿨럭!”
“…알았어.”
사라락.
다시, 이벽의 나뭇잎이 움직였다. 허공 위로 재차 원을 그렸고, 혁대웅의 창끝이 파고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앙.
“……?!”
허나 그때였다.
“뭐, 뭐야, 이거?!”
혁대웅이 당황한 소리를 내었다.
다시 형성된 원 안으로 창을 내뻗은 순간, 무언가가 조금 전과 달라졌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앙.
“커억!”
허나 이미 늦고 말았다.
혁대웅의 신형이 거칠게 흔들렸다. 창에 담긴 위력이 본인에게로 고스란히 되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핫, 미안하군.”
이벽이 작게 웃었다.
기실 두 번째로 형성한 원은.
만월무변곡검이 아닌 일엽유검이었다. 허나 두 기예 모두 원의 형태를 띄고 있기에 얼핏 구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쩌저저저적.
그리고 혁대웅의 빈틈을 타.
다시금 적파직검이 형성되었다.
“…힉!”
혁대웅의 안색이 바뀌었다. 삽시간에 주변을 둘러싼 수십 자루의 붉은 검을 돌아보았다.
“왜 그러나, 혁대웅? 조금 전에 이 ‘장난’은 이미 다 파악했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너무 많잖아 이거. 벽아. 한꺼번에 이렇게까지 많이 만들 수 있는 거였어?”
“응, 원래 그랬다.”
충분히 거리가 가까워지면, 한 자루 한 자루를 이기어술로 섬세하게 통제할 필요조차 없으며.
남궁천승과의 싸움에서 겪어보았듯, 영역 안에서 동시에 형성할 수 있는 적파직검의 개수는 이벽으로서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준비해라.”
“…자, 잠깐! 벽아!”
혁대웅이 다급하게 외쳤다.
허나 이벽은 기다리지 않았다.
쐐애애애액.
다음 순간, 수십 자루의 적파직검이 일제히 혁대웅을 향해 파고들었다. 위기의 순간, 혁대웅의 눈빛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덥석.
혁대웅이 창대를 고쳐잡았다.
“…전륜패왕창, 광참.”
후우우웅.
창이 전방위로 휘둘러졌다.
당연하게도, 찌르기만이 전륜패왕창의 전부는 아니며, ‘베기’의 초식 또한 있는 것이다.
후우우욱.
허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휘둘러짐과 동시에, 다시금 창끝에서 그림자가 줄기줄기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한순간, 수십 자루의 창끝이 저마다 곡선의 궤적을 그리며 혁대웅을 중심으로 거대한 구(球)를 이루었다.
서걱,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구와 격돌한 순간.
수십의 검은 모두 으스러졌다.
파스스스.
“…….”
“…….”
그리고 잠시.
둘의 시선이 부딪혔다.
“그러게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걸 알고 있는데… 왜 무의미한 엄살을 부리나?”
훗, 이벽이 웃었다.
“하핫… 하하하핫!”
혁대웅 또한 웃었다.
“그럼 다시 가겠다.”
“응, 그래. 이참에 가진 거 전부 토해내 봐. 또 무슨 기괴막측한 수를 숨기고 있니, 우리 사제?”
콰아아아아아앙.
다시 충돌이 이어졌다.
이후, 오고가는 공격 속에서 사형제는 서서히 즐거움에 젖어들었다.
물론, ‘깨달음을 나눈다’는 당초의 목적을 잊지는 않았으나 어찌되었건 두 사람의 비무는 예나 지금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낙검문의 오랜 밤들처럼.
두 사람은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동시에 서로의 무공을 분석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서로가 서로의 벽이 되었고.
다시 서로가 그 벽을 넘어섰다.
“…우린 완전히 잊혀진 것 같죠?”
“케헤, 미친 괴수들 같으니…….”
그리고.
외곽 한켠에서 두 사람의 비무를 지켜보던 파진성과 공손수가 나란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