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29)
337화. 패왕유엽 (2)
산동으로 향하는 길목.
화정봉에서의 일전 이후, 마차를 타고 달리는 내내 참선에 잠겨있던 혁대웅은 돌연 이벽에게 비무를 요청해왔다.
검선이 남긴 화두 속에서.
‘무언가의 단서’를 얻은 것이다.
물론, 마찬가지로 검선의 매화에 몰두하고 있던 이벽 또한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이내 야산의 어둠 속에서.
사형제는 서로를 마주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파스스스스.
“…….”
그리고 이벽이 적파직검을 쏘아보낸 순간, 혁대웅의 창끝이 빛을 뿜었다.
초식은 섬전과 같았다.
허나 그 일격이 뻗고 지나간 자리 위로는 땅이 움푹 패여 들었고 나무들이 산산조각으로 으깨어졌다.
이벽의 적파직검 또한.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특유의 파편조차 남기지 못한 채 가루가 되어 모조리 흩어져버린 것이다.
“…아, 이게 아닌데.”
허나 그만한 공능을 토해내고서도 정작 혁대웅은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벽아, 미안한데 좀… 다채롭게 공격할 수 있어? 그냥 정면으로 파고드는 건 너무 쉽잖아?”
“…다채롭게라.”
“진심으로, 나를 해칠 기세로 공격해봐. 솔직히 너, 내 약점에 대해선 잘 알고 있잖아?”
“…….”
이벽은 잠시 침묵했다.
물론, 내력이 없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혁대웅과 비무를 나눈 횟수는 셀 수도 없었으므로, 약점이라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혁대웅, 깨달음을 붙들기 위해 싸우는 건데 공연히 널 다치게 하면 안 되지 않나?”
“…어쭈?”
훗, 이벽이 웃었다.
이내 혁대웅 또한 마주 웃었다.
“걱정 마, 사제의 귀여운 공격쯤 몇 대 몸으로 맞아도 침 바르면 다 나으니까.”
“…그렇단 말이군.”
쩌저저적.
다시 적파직검이 일어났다.
“그럼 다시 가겠다.”
“그래, 이 앙증맞은 사제 녀석아.”
적파직검을 일으키는 한편.
이벽은 다시금 혁대웅의 일격이 스치고 지나간 땅 위의 흔적을 일견했다.
그것은 분명 경천동지의 일격이었다. 자칫 스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든 무사하기는 힘들 터였다.
허나 그와 동시에.
그것은 당가에서 함께 혈마를 몰아붙이던 때, 이미 몇 번이고 목도한 적이 있는 힘이기도 했다.
즉 다시 말해.
‘새로운 깨달음’은 아닌 것이다.
스윽.
이벽의 검이 허공을 그었다.
우우웅.
동시에 주변에 맺힌 적파직검들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허나 이번에는 곧장 혁대웅을 향해 쏘아지지는 않았다.
스스스스.
다만 열 자루 가량의 적파직검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그 끝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충돌은 한 번에 불과했으나.
이벽으로 하여금 패왕의 힘을 상대로 정면을 파고드는 것이 무의미함을 깨닫게 하기는 충분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깨달음을 초식으로 정립하기 위해, 혁대웅은 나름대로의 ‘위기’를 필요로 하는 듯했다.
그리고 지금의 혁대웅을 위기에 빠뜨리기 위해서는, 자신 또한 어느 정도는 진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후욱.
다시, 이벽이 검을 휘둘렀다.
쐐애액.
그 순간 적파직검이 쏘아졌다.
사방팔방으로 산개하며 저마다 무작위의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엄밀히는.
그런 것처럼 보였다. 허나.
후웅, 쐐애애액.
기실 그 한 자루 한 자루의 움직임은 물론 모두 이벽의 통제하에 놓여있었다.
이벽은 당가의 가주 십절군자 당명오가 이기어술로써 열 자루의 암기를 수족처럼 다루던 모습을 떠올렸다.
‘나쁘지 않군.’
후웅, 쐐애애액.
이내 검들은 서로 다른 방향과 속도를 지닌 채 혁대웅을 향해 서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훅, 콰아아아아앙.
“하압!”
그 순간 혁대웅이 창을 내질렀다.
허나 그 일격은 단 한 자루의 적파직검도 맞추지 못한 채 애꿎은 허공으로 뻗어나갔다.
“이 정도면 충분히 다채롭나?”
“…하핫, 꽤 성가시긴 하네.”
사형제가 다시 눈을 마주했다.
패왕의 창이 제아무리 경천동지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맞추지 못해선 의미가 없는 것이다.
후욱.
다음 순간.
허공을 배회하던 적파직검들이 일제히 멈춰선 채 혁대웅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쐐애애액.
쏜살처럼 쏘아졌다.
“핫, 어딜!”
콰아아아아앙.
허나 혁대웅 또한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창끝이 빛남과 동시에 적파직검 한 자루가 산산조각으로 으깨어졌다.
쐐애애애액.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또한 시작에 불과했다.
혁대웅은 계속해서 창을 내뻗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적파직검을 하나씩 분쇄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제아무리 이기어술로 하여금 검로를 왜곡한다 한들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을 향해 날아들 수밖에는 없으므로.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면.
요격은 어렵지 않은 것이다.
쩌저저적.
허나 그 정도는 이벽 또한 이미 예측하고 있었으며, 애당초 그리 쉽게 수비를 파고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쩌저저저적.
다시 이벽의 주변으로 적파직검이 형성되었다. 부서지는 만큼, 다시 채워넣으면 그만인 것이다.
쐐애애애액.
그리고.
앞서 쏘아보낸 검들이 모두 파훼되기도 전, 새로운 검들이 혁대웅의 전방위를 압박하고 들어갔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이후 공격과 요격이 반복되었다.
다시, 세 번째로 형성된 열 자루의 검들마저 혁대웅의 창끝에 의해 모조리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후우우욱, 콰아아앙.
허나 물론, 끝은 아니었다.
그리고 적파직검의 형성과 파괴가 반복될 때마다 충돌지점은 서서히, 허나 분명히 혁대웅에게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크.”
혁대웅이 미간이 찌푸려졌다.
전륜패왕창은 분명 천하의 어떤 신공절학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사파제일의 무공이다. 허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파의 무공임에도 불구하고.
그 투로는 지나치게 정직했다.
다만 완벽에 가까운 공수의 조화와 천지를 갈라놓는 듯한 위력으로 그 모든 단점을 상쇄할 뿐인 것이다.
또한 이벽은.
그러한 혁대웅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으며, 본인이 원했던 대로 집요하게 그 부분을 파고들었다.
콰아아아아앙.
물론, 이것이 실전이었다면.
혁대웅에게는 날아드는 적파직검을 하나하나 상대하기보다는 검의 주인인 이벽을 직접 노린다는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다.
허나 지금 이 순간, 혁대웅은 이벽을 노리지도, 하물며 쏟아지는 검들로부터 달아나려 들지도 않았다.
다만 제자리를 지키고 선 채.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아직… 아직이야.’
혁대웅은 이를 악물었다.
화정봉에서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으되, 그와 같은 깨달음은 여전히 머릿속에만 맴돌고 있을 뿐 육신의 감각으로 이어지질 않고 있었다.
물론,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럴 때면, 결국은 몸이 이해하게 될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빠른 방법임을 혁대웅은 잘 알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그리고 마침내.
끝도 없이 솟아나는 이벽의 붉은 검들은 혁대웅의 반경 일 보 안쪽까지 파고들어 오기 시작했다.
분명, 그 한 자루에 실린 힘은 그리 대단치는 않았다. 허나 그럼에도 혁대웅은 손발이 꼬여 드는 것을 느꼈다.
우우우웅.
서로 뒤엉키며 사각을 파고드는 그 섬세한 검로 속에서, 혁대웅은 사제인 이벽의 괴물같은 재능을 새삼 실감했다.
우드득.
‘나도… 할 수 있어!’
혁대웅이 창대를 움켜쥐었다.
허나 그즈음, 마침내 적파직검은 더는 요격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가까워져 버렸다.
덥썩, 후우우웅.
“크아아압―!!”
그러자 그 순간, 혁대웅은 두 손으로 창대를 움켜잡았다. 창끝을 위로 향한 채 창대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전륜패왕창, 집륜의 초식이었다.
훙훙훙훙훙훙.
그리고 회전하는 창대 위로.
물레바퀴의 형상이 겹쳐졌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이내 지척까지 다가선 세 자루의 적파직검이 물레바퀴의 철벽 앞에 속절없이 갈려나갔다.
훙훙훙훙훙훙.
“크… 으아아아아―!!”
허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창대를 회전시킴과 동시에, 혁대웅은 창을 쥔 팔과 허리를 휘두르며 전후좌우 일대를 모조리 원의 그림자로 뒤덮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한 순간, 창이 네 자루로 늘어난 것 같은 눈의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야말로.
물샐 틈 없는 철벽의 방어였다.
콰아앙, 콰아아아아앙.
마침내 사각을 파고들던 나머지 적파직검마저 그 철벽을 넘지 못한 채 모조리 상쇄되고 말았다.
훙훙훙훙.
“후우… 후! 하핫! 벽아, 이 정도로는… 안 돼! 조금 더! 나를 당황케 만들어 봐!”
“…걱정마라. 아직이다.”
허나 거기까지도.
이벽의 예상한 범위 내였다.
전륜패왕창의 방어는 흠잡을 데가 없으며, 예의 초식이 앞서 혈마의 이빨마저 능히 버텨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고로 이벽은.
줄곧 ‘한 자루’를 숨겨두었다.
까닥.
이내 이벽의 왼손이 움직였다.
퍼어어억.
“…헉!”
동시에 혁대웅이 신음을 삼켰다.
발치 앞의 땅속에서 돌연 적파직검 한 자루가 지면을 뚫고 솟아오른 것이다.
타아앙.
당황한 혁대웅이 땅을 박찼다.
그 즉시 회전하는 창대를 하단으로 내뻗으며 솟구치는 적파직검을 막아내려 했다.
카아아아앙.
허나 아주 조금 늦고 말았다.
반쯤 파고든 적파직검은 산산조각으로 으깨졌으나, 그 여파로 인해 창대의 회전이 아주 조금 더뎌지고 말았다.
쩌저저적, 쐐애액.
그리고 그때는 물론.
이벽에 의해 새로 형성된 적파직검들이 혁대웅을 향해 곧장 쏘아지고 있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크으!”
다시 몇 자루의 검들이 회전이 더뎌진 창대 위를 두드렸다. 앞서 벌어진 빈틈이 채 메꿔지기도 전, 충격이 거듭해서 쏟아부어졌다.
쩌저저적.
이내 회전의 기세가 꺾이며, 그 위로 겹쳐진 물레바퀴의 형상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파아아아아아앙.
“커억―!”
다음 순간, 마침내 물레바퀴가 산산조각이 났다. 충격에 못이긴 혁대웅의 몸이 허공 저만치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런, 괜찮나 혁대웅?”
이벽은 즉시 공세를 멈추었다.
혁대웅의 말마따나 다채로운 공격으로 빈틈을 공략한 결과 정말로 ‘피해’를 입혀버린 것이다.
우뚝.
“핫… 하핫!”
허나 그때였다.
웃음소리와 함께, 밀려나던 혁대웅의 몸이 허공 저만치에 못 박힌 듯 멈춰 섰다.
“괜찮냐고? 그렇고말고! 한 대 맞고 나니까 역시 정신이 번쩍 드네. 고마워, 벽아. 이 충격이 필요했어!”
“……!”
그리고 그 순간, 이벽은 깨달았다. 혁대웅의 기세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또한 무엇보다도.
산산조각 난 물레바퀴의 파편들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혁대웅의 주변에 맴돌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라락, 사락.
심지어 그 파편들은.
바람을 타고 ‘흩날리기’ 시작했다.
‘…나뭇잎!’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마침내 청강유엽공의 영역이.
혁대웅에게서 발현된 것이다.
쩌저적, 쐐애애액.
다음 순간, 이벽은 다시금 적파직검을 일으켰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혁대웅을 향해 쏘아 보냈다.
우우웅.
허나 그때, 혁대웅은 이미 허공에서 몸을 가눈 채 균형을 회복한 상태였다.
처억.
날아드는 적파직검을 향해.
혁대웅이 기수식을 취했다.
후우우우웅.
“하아아앗―!”
마침내 적파직검이 당도했고.
혁대웅 또한 마주 창을 뻗었다.
그 초식은 물론, 조금 전 이벽의 적파직검을 하나하나 요격하던 전륜패왕창, 극척의 초식이었다.
콰아아앙, 콰앙, 콰아아아앙!
“……!”
허나.
펼쳐진 결과는 전혀 달랐다.
뻗어진 창대는 물론 단 한 자루뿐이었으나, 한 순간 창끝이 분화하며 무려 십여 자루의 그림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자들은.
저마다의 방향을 향해 극척의 초식을 뿜어내며, 사각을 파고들던 열 자루의 적파직검을 단번에 모두 파훼해버렸다.
후두둑, 후둑.
“…후우.”
분화한 창의 그림자들과 열 자루의 적파직검은 서로를 완벽히 상쇄하며 나란히 종적을 감추었다.
혁대웅이 호흡을 내뱉었다.
퍽 만족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후우욱, 탕.
혁대웅이 지면 위로 내려섰다.
이후 찰나의 고요함이 스쳤다.
“…대체 뭐지, 지금 그건?”
이벽이 물었다.
“뭐긴, 네 무공 내 무공이지.”
핫, 혁대웅이 어깨를 으쓱했다.
“패왕… 유엽공이라고 이름 붙이면 되려나? 너무 단순한가? 아하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