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38)
346화. 용들의 싸움 (1)
산동, 제남의 비무대.
“잘 지냈소, 남궁 소협?”
이벽과 검존에게 포권한 뒤 비무대 위로 올라선 창성은 남궁환을 향해 인사를 건네었다. 허나.
“하! 네까짓 것이 내 상대라고?! 같잖구나 일섬룡! 네놈 따윈 더 이상 이 몸의 삼초지적도 되지 못한다!”
남궁환은 콧방귀를 뀌었다.
“하핫, 예전에는 그래도 서로 존칭을 나누던 사이인데… 못 본 사이 꽤 거칠어지셨군 그래. 하기야 마공 따위에 손을 댄 이상 자업자득인 일이겠지.”
철컥.
이내 창성이 검을 빼 들었다.
자세를 낮춘 채 한껏 당겨진 검끝이 남궁환을 겨누었다. 물론, 점창의 절기 사일검법의 기수식이었다.
“뭐, 남궁 소협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기꺼이 선공을 취할까 하오만. 괜찮으시겠소?”
“하핫! 크하핫! 멍청한 말코 나부랭이가 지 주제도 모르고 죽음을 재촉하는―”
우우웅.
다음 순간, 창성의 검끝으로 빛무리가 어렸다. 당연하다는 듯 강기가 일어난 것이다.
“하압!”
타아앙.
창성이 땅을 박찼다.
“…큭!”
일순 남궁환의 눈이 당황이 서렸다. 자세를 풀며 부랴부랴 검을 마주 내뻗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후우욱.
남궁환의 몸이 한껏 밀려났다.
“창성… 감히 네까짓 놈이……!”
뿌드득.
남궁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느덧 그의 검에도 검붉은 강기가 서려 있었다. 허나 창성의 갑작스런 기습에 대처하는 것이 조금 늦고 말았고.
그 결과 내상을 입고 만 것이다.
물론,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다.
허나 이벽이 아닌 창성 따위에게 타격을 입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 남궁환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는 충분했다.
“오냐! 잘 알겠다 일섬룡! 내 이벽 저놈을 찢어 죽이기 전에 우선 네놈의 피로 목을 축여―!”
남궁환이 일갈했다. 허나.
타앙.
“하핫! 피로 목을 축이다니, 그야말로 어엿한 마교도가 되셨구려! 허나 싸울 때는 혀보다는 검이 먼저 움직이는 편이 낫지 않겠소?!”
그 말이 채 끝맺어지기도 전, 창성의 신형은 이미 남궁환의 지척까지 파고들어 있었다.
후우욱.
다시 창성의 찌르기가 쏘아졌다.
“크윽!”
콰아앙, 콰아아앙.
물론 남궁환 역시 두 번씩이나 같은 방식으로 내상을 입을 만큼 어리숙하지는 않았다.
분노는 온몸의 신경을 죄여 오는 듯했으나, 그와는 별개로 손은 익숙한 검로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남궁세가의 대연검법이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이후 강기의 충돌이 이어졌다.
말인즉슨, 여전히 후기지수에 불과한 모두 두 사람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 절정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과연 만만치 않군.’
또한 창성은 생각했다.
남궁세가의 대연검법은 흡사 그물과 같이 넓게 펼쳐진 검로를 통해 상대로 하여금 초식을 펼칠 공간 자체를 빼앗아버리는 검이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과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순식간에 거리를 빼앗겨버릴 것만 같다. 그리고 일단 그렇게 되어버리면, 그만큼 찌르기의 위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콰아아아아앙.
고로 창성은 집중했다.
손에 쥐고 있는 한 자루의 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찌르기 한 번 한 번에 오롯이 전력을 다했다.
찌이이이익.
그리고 그러한 창성의 검은.
매 순간마다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남궁의 그물이 채 펼쳐지기도 전 그 틈새에 구멍을 벌려놓았다.
그렇게 싸움의 우열은.
번번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크으… 으아아악―!!”
창졸지간에 십여 합이 흘렀고, 남궁환이 괴성을 내질렀다. 분노를 넘어 답답함이 치밀어올랐다.
강기라고 해봐야 놈의 검은 고작 한 줄기 갈대처럼 얄상하기 그지없었으며.
또한 놈이 펼치는 검은 그저 똑같은 검로의 찌르기를 반복할 뿐인 저급한 검에 불과하다.
헌데 그 얄팍한 검을.
도무지 꺾어놓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는 있었다.
기실 창성의 사일검법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다를 게 없는 찌르기의 반복 속에 ‘미세한 차이’를 섞어놓음으로써 외려 상대의 대처를 어렵게 하는 데에 그 묘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아아앙.
또한 그것은.
이름 높은 점창의 독문무공으로써 천하 무림 내에도 어느 정도는 알려진 사실이었다.
허나 이성이 마비된 남궁환은.
그러한 것조차 생각지 못했다. 그저 악에 받친 채 미친 듯이 검을 내뻗을 뿐이었다.
“하핫, 어떻게 된 거요 남궁 소협? 나 따위는 삼초지적도 안 될 거라더니… 삼초는 이미 진작에 지난 것 같소만!”
“크아아아―! 건방진 새끼!”
후우욱.
다음 순간.
도발에 반응한 남궁환이 무리한 검을 내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창성의 눈이 빛났다.
훅, 찌이익.
“……!”
남궁환의 어깨를 덮은 옷자락이 찢어졌다. 또한 드러난 살갗 위로 미세한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남궁환의 동작이 커진 그 순간, 창성의 검이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쯧, 아깝게 되었군.”
창성이 혀를 찼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허나 물론 공세를 멈추지는 않았다. 이미 놓친 기회를 아쉬워해 본들 아무 의미는 없다.
다시, 접전이 이어졌다.
‘이… 빌어먹을 새끼!’
한편 남궁환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지금의 일격은, 조금만 비껴갔더라면 어깨가 아니라 목덜미를 파고들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그제야.
온몸을 감싼 분노가 주춤했다.
남궁환은 비로소 눈앞의 창성을 ‘이벽과의 싸움에 앞서 치워버려야 하는 방해물’이 아닌 ‘어엿한 적수’로 인정했다.
콰아아아아앙.
또한 이내 점창의 날카로운 송곳 앞에 자신의 대연검법은 제힘을 내기 어려움을 이해했다.
고로 ‘다른 검’을 써야만 한다.
허나 이와 같이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는 상태에서 함부로 검로를 트는 것은 위험천만한 짓이다.
으득.
남궁환은 입술을 깨물었다. 창성의 등 뒤로, 천년의 원수 이벽이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지금쯤 놈은 분명.
비웃고 있음에 틀림없다.
으드득,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다.
타앙.
이내 남궁환은 땅을 박찼다.
일단 물러섬으로써 싸움을 소강상태로 만들고 검로의 전환을 꾀하려 한 것이다. 허나.
후우우욱.
“핫, 설마 지금 달아나는 거요?”
“…크으윽!”
남궁환이 몸을 내빼려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창성이 한발 다가서며 깊숙이 찌르고 들어왔다.
콰아아아앙.
대경한 남궁환이 황급히 발을 멈추고 검을 내뻗었다. 어떻게든 공세를 쳐내었으나 결국 거리를 벌리는 데에는 실패했다.
“하핫, 송구하오만 보내드릴 수는 없겠소. 그래서야 소협께서 내게 선뜻 선공을 내어주신 성의가 무색해지지 않소?”
물론, 창성으로선 남궁환에게 ‘다른 검’을 펼칠 기회를 줄 이유는 없는 것이다.
“…크으!”
남궁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허나 상대를 탓할 수도 없다.
말마따나 결국은 최초의 방심으로 허망하게 접근을 허락한 것이 이와 같은 결과를 불러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냐, 일섬룡! 네놈이 그렇게까지 원한다면야… 격의 차이란 게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콰아아아아아아앙!
다시 남궁환이 일갈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대연검법을 펼쳤고, 이후 다시 십여 초에 걸쳐 단조로운 접전이 이어졌다.
또한 그것은.
남궁환은 짐작조차 못 하는 사실이었으나, ‘진법을 위한 시간을 번다’는 정도맹 측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핫.”
창성이 웃음을 흘렸다.
* * *
“호오, 일섬룡의 검이 제법 날카롭군 그래? 과연, 정도맹 역시 나름의 저력이 있는 집단이구려.”
황보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난세는 재능을 꽃피우게 한다.
당연하다는 듯 강기를 통해 자신의 검로를 펼치는 창성과 남궁환의 접전은 이미 절정의 초입조차 넘어선 수준이었다.
불과 오 년 전, 약관 미만의 나이로 절정에 오른 이벽이 천하제일 후기지수라 일컬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퍽 무상한 일이기도 했다.
“뭐… 한때 ‘오룡’이란 이름으로 이 몸과 함께 묶였던 것을 생각하면 저 정도는 해주는 게 외려 당연한 노릇이지만 말이오.”
핫핫,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물론, 절정 따윈 지금의 황보준에게 있어서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쳐 온 하잘것없는 수준에 불과했다.
기실 방탕함에 가려져 있었을 뿐, 황보준의 무공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오룡들과는 한 데 엮이기 어려운 수준이었던 것이다.
또한.
아버지, 권왕 황보혁의 ‘위대한 가르침’에 힘입어 황보준은 더더욱 지고한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천하십대고수 혹은 그에 준하는 이들 외에 자신의 상대가 될 이는 천하 무림에 더는 남아있지 않다.
최소한.
황보준 본인의 생각은 그러했다.
“…….”
다만. 그러나.
한순간, 황보준의 시선이 비무대 너머를 향했다. 맞은편에 앉은 낙검신룡 이벽, 그리고 그 옆에 선 거구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패왕의 혈통이라.’
뿌드득.
일순 주먹이 움켜쥐어졌다.
황보준의 시선이 검게 물들었다. 조금 전, 제남의 성문에서 있었던 일이 다시금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당장 비무대 위로 뛰쳐올라 하찮은 접전을 반복하는 두 녀석을 일거에 처죽여버리고 싸움에 나서고 싶은 충동이 스쳤다.
‘이런, 안 되지.’
허나 다음 순간.
황보준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위대한 가르침을 이은 이래, 종종 별것도 아닌 일에도 마음은 쉬이 평정을 잃어버리곤 했다.
허나 그래선 안 된다.
제 마음 하나 다루지 못해서야 평생 아버지 권왕의 경지에는 근처조차 다다를 수 없는 것이다.
“…소저?”
이내 황보준이 시선을 돌렸다.
나란히 선 ‘정인’을 돌아보았다.
황보준의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피었다. 허나 정작 비무대 위를 바라보는 제갈소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소저, 적들이 두렵소?”
“…아뇨, 뭐.”
“그대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 따윈 없소. 설마 이 황보준이 제 여인 하나 지키지 못할 정도로 얼빠진 녀석으로 보이시오?”
“…….”
황보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목덜미의 고운 살결을 바라보는 눈빛에 문득 끈적함이 서렸다.
애당초 위대한 핏줄을 잇기 위해 선택된 계집이었을 뿐, 그 옛날부터 그다지 맘에 차지 않는 선머슴 계집이었다.
고로.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외려 혼례를 미룰 수 있기에 ‘잘 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허나 몇 년의 시간이 지나.
이렇게나 먹음직스럽게 무르익은 채 제 발로 다시 돌아와 주었다. 기쁘지 아니할 리가 없다.
“그대가 다시 내게 돌아와 주어… 내 얼마나 기쁜지 모르오. 그 옛날의 방탕하고 무도했던 애송이는 이제는 어디에도 없소.”
“…그렇군요.”
황보준은 다시금 자신의 마음을 말로 풀어놓았다. 허나 그럼에도 제갈소미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아니면… 아직도 그대는 스스로에게 천하제일가의 안주인이자 뭇 교인들의 어머니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요?”
“…….”
제갈소미는 답하지 않았다.
지난밤, 황보준이 다시금 자신을 찾아왔을 때 제갈소미는 퍽 진심으로 당황했다.
설마 이제 와서 정인 운운하며 옛 관계를 다시 꺼내오리라고는 그녀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허나 다행히도.
이어지는 몇 마디 대화와 몸을 훑는 노골적인 눈빛으로부터 무언가 수상한 점을 눈치챈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보다 정확히는.
황보세가에 있어 ‘반쪽짜리 무가’인 제갈가 따윈 무슨 짓을 하건 ‘특별히 신경을 쏟을 거리’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자신의 지난 과거를 물어오는 황보준에게, 제갈소미는 검을 익히기 위해 세가를 떠났으나 결국은 변변찮은 성취 외에는 이루지 못했노라 하였다.
임기응변이었으나.
황보준은 믿어주었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자신은.
여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진법과 비도술 외 가전무공을 전수해주지 않는 세가를 원망하여 집을 나선 것이 사실이었다.
또한 그때의 치기 어렸던 자신의 모습을 황보준 또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누누이 말하지만… 그대의 무에 대한 재능은 이 황보준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소. 그저 운이 없어 올바른 가르침을 만나지 못했을 뿐, 천재는 천재를 알아 본다 하지 않소?”
다시 황보준이 말했다.
목소리는 짐짓 상냥했으나 그 순간 제갈소미는 마치 짐승의 혓바닥에 핥아진 듯한 소름을 느꼈다.
물론, 내색하지는 않았다.
기실 여인이라면 줄을 설 것이 분명한 이 사내가 왜 구태여 자신을 ‘선택’했는지는 옛날부터 궁금했던 일이었다.
허나 이제는 알 수 있었다.
황보가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핏줄에 타고 흐르는 재능의 온전한 보존과 계승이다.
그렇기에.
오대세가의 일원이면서도 ‘역모’를 걱정해야 할 만큼 무공이 강하지 않은 제갈가의 여식이면서.
나름의 무재를 타고난 자신을.
‘적절한 씨받이’로 점찍은 것이다.
“물론, 원치 않는다면 구태여 강해지지 않아도 좋소! 어쨌거나 제갈가의 명맥은 이 황보가의 비호하에 대대손손 번영할 터이니.”
“아, 네. 황송한 말씀 감사해요.”
제갈소미가 고개를 숙였다.
“…하핫!”
이내 자신이 몇 마디 말로 여인을 감동시켰노라 생각한 황보준은 남몰래 입술을 핥았다.
어찌 되었건.
아버지 권왕이 직접 지목한 계집이므로, 마음 내키는 대로 가지고 놀면서 망가뜨릴 수는 없다.
허나 중요한 것은 결국 핏줄이므로, 무사히 대를 잇고 나면 질릴 때까지 즐기다 적당히 사고를 위장해 처분하면 될 일이다.
좌우지간.
그 모든 열매를 즐기는 것은 눈앞의 ‘반란분자들’을 모두 쳐죽인 이후의 일이 될 것이며.
또한 그리 멀지 않은 일이었다. 이내 황보혁은 다시 비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허나 고개를 숙인 제갈소미의 신경은 실상 황보준이 아니라 그의 부친인 황보혁에게 쏠려있었다.
‘…어렵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