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46)
354화. 파도와 그림자 (5)
“준비됐어요, 파 소협? 이렇게나 무대를 깔아주는데… 기대에 저버리지는 않아야겠죠?”
“케헤헤. 걱정 마라, 쥐방울. 누구누구 덕에 몸은 충분히 풀었으니깐!”
남궁환은 전력을 상실했고, 이내 공손수는 홀로 남은 모용양의 목숨을 거두려 했다.
허나 그 순간, 의혈맹 측에서 다섯 명의 절정고수가 한꺼번에 비무대 위로 올라서며 모용양을 감쌌다.
말인즉슨.
육 대 이의 상황이 된 것이다.
허나 파진성과 공손수는 서로를 마주 보았고 웃음을 흘렸다. 이제와 머릿수 따위에 움츠러들고 있을 이유 따위는 없다.
타아앙.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내 두 사람은 땅을 박찼다.
카아아아아아앙!
“…커억!”
“뭐, 뭣?!”
파도와 그림자가.
다시 적들을 향해 쇄도했다.
“조, 조심해요, 여러분! 결코 흩어져서 싸우면 안 돼요! 적들은 아직 전혀 지치지 않았어요!”
모용양이 다급히 외쳤다.
카아아앙, 카아아아앙.
허나 어찌 되었건, 파진성과 공손수에게 있어 해야 할 일이 달라질 것은 없었다.
두 개의 잔상이 찢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며 비무대 위를 종횡무진했다.
콰아아아앙, 서걱.
“케헤헤! 으헤헤헤헤!”
“컥, 무, 무슨 속도가―!”
넘실대는 여섯 개의 강기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며, 파진성은 연신 검을 휘둘렀다.
빈틈을 파고들며 적들의 몸에 크고 작은 선들을 그어놓았고, 그때마다 유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훅, 서걱.
“…훗.”
그와 같이 대놓고 괴소를 터뜨리지는 않았으나 공손수 또한 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 년 전, 이벽을 따라나선 이래.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서로의 무공을 보완하기 위한 합격술을 연마해왔다.
그것은 이벽, 혹은 언미희에 비해 부족한 실력을 메꾸기 위한 두 사람 나름대로의 노력이었으나.
차례차례 나타나는 강적들 앞에.
그마저 큰 의미를 갖지는 못했다.
허나 현재.
두 사람은 암영각과 해남검파를 오가며 서로의 무공을 깊이 이해했고, 나아가 화정봉에서는 이벽에게 나란히 청강유엽공을 전수받았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눈빛만 보아도 능히 서로가 생각하고 있는 몇 수 앞을 내다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이른 것이다.
심지어 합격술이란 본래, 열세의 상황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로 버티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는 기예였다.
반면.
의혈맹 측 후기지수들의 경우, 공을 세우고자 서로를 밀치며 앞다투어 나서려 했고 외려 서로의 동선을 방해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머지않아 선명해졌다.
카아아아앙, 서걱.
“컥, 크악!”
이후 퍽 놀랍게도.
육 대 이의 상황은 다시금 파진성과 공손수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모양새로 흘러가기 시작했으며.
숫적 우세에 힘입어 의기양양하던 적들은 채 십여 합도 지나지 않아 피투성이가 된 채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종리 소협! 정신 차려요! 단목 소협! 우측! 우측 상단이라구요!”
“크, 흐아아아―!!”
서걱.
허나 물론, 그럼에도.
의혈맹 측 후기지수들 역시 그 지경에 이르고도 적의 역량을 파악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이들은 아니었다.
중앙에 선 모용양의 지휘하에 부랴부랴 진형을 갖추기 시작한 이들은 이내 어설프나마 서로의 빈틈을 메꾸기 시작했으며.
서걱.
파진성 또한 상처를 입었다.
옆구리가 찢어지며 피가 흘렀다.
“멍청이가. 왜 그걸 맞아요?!”
“케헤헤헤! 간지럽지도 않다―!”
허나 상처를 입고도 파진성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후우우욱, 콰아아아아앙.
둘이 하나가 되는 일체감.
그리고 그러한 조화로 말미암아 열세인 전력을 도리어 명백한 우세로 뒤집어버리는 고양감 속에서.
두 사람은 상처의 고통을 잊었고, 체력의 고갈을 잊었으며, 심지어는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관념조차 서서히 희미해졌다.
후우우욱, 콰아아아아아앙.
다만 한 몸이 되어 싸웠다.
서서히 무아지경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시간이 늘어난 것처럼 적들의 공격이 ‘느려 보이기’ 시작했다.
카아아앙, 카아아아앙.
“크, 크아아아―!!”
“은 소협! 뒤가 비었어요―!! 괜히 나서지 말고 제발 수비에만 치중해주세요!”
“…….”
한편.
비무대 한구석에 우두커니 선 남궁환은 어두운 눈빛으로 적과 아군들의 싸움을 바라보았다.
부르르.
검을 쥔 손이 경련했다.
입가로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허나 현재, 가진 힘을 모두 소모해버린 자신은 더 이상 이 비무대 위에서 ‘아무도 아니게’ 되었음을 모르지 않았다.
심지어는.
장렬하게 죽을 기회조차 놓치고 말았다. 다만 적에게도, 그리고 아군에게도 완벽한 ‘관심 밖’이 된 것이다.
흘끗.
시선이 아군의 진영을 향했다.
물론, 권좌에 앉은 의혈맹주 권왕 황보혁은 자신 따윈 더 이상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으며.
나란히 앉은 노인 또한.
무관심함은 다르지 않았다.
으드득.
다시, 남궁환은 이를 악물었다.
천하십대고수, 검왕 남궁한일.
그 이름은 대 남궁세가의 자부심이자, 자신의 몸에 흐르는 위대한 재능의 증거이기도 했다.
비록 그에 대해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어렴풋한 그림자뿐이었으나, 줄곧 동경의 대상이었다.
허나.
아버지 남궁천승이 원수에 의해 목숨을 잃고, 대 남궁세가가 절멸의 위기에 놓였음에도.
노인은 세가로 돌아오지 않았다.
심지어는 불과 며칠 전까지, 남궁환은 그가 이곳 제남에 나타났다는 이야기조차 전혀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세가의 적통이자 오룡삼봉의 일원이자 친손주인 자신을… 검왕은 만나주지조차 않았다.
스윽.
다시 남궁환의 고개가 움직였다.
시선이 반대편의 적측을 향했다.
무당의 검존과 나란히 권좌에 앉아 남궁세가의 검왕과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마주하고 있는 것은.
물론, 원수 이벽이었다.
놈을 죽이고자 했다. 허나.
검을 섞어보지조차 못했다.
이를 악물고 원한을 곱씹으며.
오늘의 복수를 위해 살과 뼈를 갈아왔으나, 놈은커녕 놈을 따르는 한낱 수하들조차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핫, 하핫.”
문득 웃음이 나왔다.
자존심은 걸레가 되었고, 천하제일검가의 자부심은 똥통에 처박혔다. 정말로 꼴이 우습게 되었다.
카아아아아앙.
다시, 남궁환은 전투의 현장을 바라보았다. 놈의 수하들은… 마치 이제 막 날아오르려 하는 용과 같았다.
허나.
자신 또한 용이었다.
분명 전력을 다해 싸웠다면.
이기지 못할 적은 아니었다.
‘왜?’
이내 남궁환은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지?’
카아아아앙.
“조, 좋아요! 조금만 더 버티면 이길 수 있어요! 제 놈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내력이 무한할 리 없어요!”
다섯의 사내에게 둘러싸인 채.
분전하는 모용양을 바라보았다.
울컥.
그리고 그 순간 마침내.
남궁환은 ‘패배의 이유’를 찾았다.
저 계집이다. 저 계집이 멋대로 비무대 위로 튀어나오지만 않았다면… 자신이 이렇게 비참한 꼴이 되었을 리 없다.
하물며 현재.
계집은 자신이 사력을 다해 힘을 소진시켜 놓은 적들의 목을 주워 먹고자 튀어나온 ‘아군’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
‘…적과 아군?’
다시 그 순간.
남궁환은 생각했다.
어쩌면 이 비무대 위에는, 아니, 이 제남 일대에는 더 이상 자신의 ‘아군’ 따윈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우우웅.
그 순간 남궁환의 두 눈이 시커멓게 가라앉았다. 이성이 흐트러졌고, 생각이 검게 물들었다.
감히.
대 남궁세가의 창천옥룡인 자신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고 개새끼들과 붙어먹은 계집이 증오스러워졌다.
‘더러운 모용가의 계집.’
변방의 촌년 따위에게.
위대한 혈통이 부정당했다.
부르르.
남궁환은 분노했다.
이벽을 증오했고, 그 수하들을 증오했고, 검왕 남궁한일을 증오했으며, 모용양을 증오했다.
그리고 증오가 한계까지 치솟자.
외려 남궁환은 다시 냉정해졌다.
아무리 증오하고 또 증오한다 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권좌에 앉은 이들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이들이었다. 허나.
‘죽일 수 있는 이들 또한 있다.’
자신을 이 모양 이 꼴로 추락하게 만든 이들 중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놓을 수 있다.
비틀.
다시 그때였다.
한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며 남궁환의 몸이 흔들렸다. 기절하듯 의식이 멀어진 것이다.
허나 그것은.
말 그대로 한순간에 불과했으며, 채 몸이 쓰러지기도 전 남궁환은 의식과 균형을 되찾았다.
우우우웅.
“……!”
그리고 그 순간.
남궁환은 분명 한 톨도 남김없이 고갈되었던 단전에 한 줌의 내력이 회복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허나 자초지종은 생각할 것도 없었다. 각오가 선 순간, 위대한 가르침이 자신에게 ‘힘’을 내어준 것이다.
“핫, 하핫!”
남궁환은 웃었다.
비록 그 대가로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했으나, 그게 무엇인지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으므로 아까울 이유 또한 없었다.
카아아아아앙.
다시 싸움의 현장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남궁환의 뇌리를 스쳤다.
그것은 너무 단순하고도 쉬운 일이어서, 어째서 조금 전까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지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저벅.
남궁환이 걸음을 떼었다.
* * *
카아아아아앙.
“…으으윽!”
모용양은 이를 악물었다.
주변의 후기지수들을 지휘함으로써 협공의 틀을 갖추고 간신히 평수를 맞추었다. 허나.
후기지수들은 자꾸만 자제력을 잃었고, 결국 이와 같은 팽팽함마저 그리 오래갈 수 없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카아아아앙.
“…커억! 이이이익!”
“제발 자중하세요! 진을 벗어나선 안 돼요! 서로가 쓰러지면 결국 자신도 당할 수밖에 없다구요!”
적들의 공세는.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끝없이 몰아치는 파도와 같았으며, 그 앞에서 자신들은 한낱 쪽배와 같았다.
분전하는 한편.
이내 모용양은 조금 전, 남궁환이 얼마나 힘겹게 자신을 보호하려 했는가를 이해했다.
같은 두 사람을 상대로.
현재, 주변을 둘러싼 다섯 명보다도 조금 전 자신을 지켜주던 남궁환의 검 하나가 몇 배는 더 든든했다.
스스로 상처를 입으면서도.
남궁환은 자신을 지켜주었다.
‘…가가.’
모용양이 시선을 돌렸다.
저만치에 우두커니 선 남궁환을 일견했다. 조금 전 그는, 자신을 걷어찼고 미끼로 이용했다.
물론, 화가 났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그것이야말로 최선의 수였음을 모용양 또한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스스로가 남궁환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나아가 남궁환은.
즉시 자신을 구하려 했다.
다만… 잘 안되었을 뿐이다.
창천옥룡 남궁환.
예나 지금이나 그는 모용양에게 있어 천하의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빛이 나는 사내였다.
허나 본래 모용가의 삼녀이며 재능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던 자신은 대 남궁세가의 적자와 결코 이어질 수는 없는 운명이었다.
허나 천하가 뒤집혔고.
그는 자신의 것이 되었다.
그러니 설령, 사내가 남궁가의 재부흥을 위해 자신을 이용하려 할 뿐이라고 해도 좋다.
천하가 어떻게 망가지고 정파무림과 천마신교의 구분이 없어지는 날이 오더라도.
모용양은 동경하던 사내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내조에 힘쓰며 잘해나갈 자신이 있었다.
허나 그를 위해 우선은.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
카아아아아아앙.
모용양의 상념이 끊어졌다.
적의 계집은 빈틈이 드러날 때마다 번번이 날카롭게 자신을 치고 들어왔다.
“하아아앗―!”
카아아아앙.
허나 그 비수는 빠르고 날카롭되, 막아내지 못할 만큼 무겁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변의 조력에 힘입어.
모용양은 어떻게든 위기를 넘기며 자신의 목숨을 간수해왔다. 허나 늘어나는 상처마저 어찌할 수는 없었다.
저벅.
그리고 그때였다.
모용양은 문득 불길한 예감을 느꼈고, 찰나의 틈을 타 시선을 돌렸다.
우두커니 서 있던 남궁환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가가―! 위험하니 이만 내려가세요! 지금의 가가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구요!”
즉시 모용양이 앙칼지게 외쳤다.
타아앙.
허나 그 순간 남궁환이 땅을 박찼다. 섬전과 같은 속도로 전투의 현장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
모용양의 눈이 흔들렸다.
분명히 더는 움직일 힘도 없어야 할 남궁환이, 돌연 경신공을 펼친 것이다.
허나 이내 이해했다. 그 잠깐 사이 남궁환은 어느 정도의 내력을 회복한 것이다.
‘아아……!’
모용양은 감탄했다.
역시나 똑같이 위대한 가르침을 이었다 해도, 창천옥룡의 재능은 자신들 따위와는 비할 수 없이―
후욱, 덥석.
허나 그때였다.
삽시간에 다가선 남궁환이 모용양의 목줄기를 움켜쥐었다. 그대로 몸을 들어 올렸다.
“…커억! 가, 가가?!”
“크크… 크크크크!”
남궁환의 검은 눈이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