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57)
365화. 취풍쾌검(1)
사라락.
이벽은 ‘나무’가 되었다.
그 순간, 등천의 영역을 이루던 무수한 나뭇잎들이 이벽의 신체를 뒤덮으며 오롯이 한 몸이 되었고.
직후 벼락이 응축된 맹우강의 우수가 복부를 파고들었음에도 이벽은 그다지 큰 충격을 입지 않았다.
파지직.
하물며 그 순간.
산산조각난 도의 파편으로부터 뻗어져 나와 이벽을 구속하던 수십 겹의 뇌기마저 일거에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핫, 하핫.”
맹우강이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소름이 끼칠 지경이군. 칼까지 부숴 먹으면서 간신히 허를 찔렀더니 이제 와서 금강불괴라니… 좀 너무한 거 아닌가?”
“맹우강, 네 덕분이다.”
“…뭐라고?”
“깨달음을 얻은 것은 얼마 전의 일이지만… 실전에서 써보는 건 나도 오늘이 처음이라서 말이다.”
“…….”
이벽은 담담히 답했다.
말마따나 사지와 검을 결박당한 채 그대로 맹공에 노출된 순간, 검선의 매화에서 착안한 깨달음이 뇌리를 스친 것이다.
“어찌 되었건… 지금의 일격은 꽤 훌륭했다. 덕분에 약점 하나를 메꾼 셈이로군.”
“…그래, 어쩔 수 없지.”
파지지직. 콰르릉!
다시 벼락이 맹우강을 두드렸다. 두 손이 하얗게 달아오르며 뇌기가 응축되었다.
“‘몰아붙이면 더 강해진다’라… 하기사 그 정도가 아니고서야 따라잡는 보람이 없겠지. 강해질 테면 얼마든지 강해져라. 약점 따윈 새로 찾아내면 그만이니까.”
“…그런가?”
핫, 이벽이 작게 웃었다.
맹우강의 입 또한 호를 그었다.
“와라, 이벽. 추월해주마.”
잠시 시선이 오고 갔다.
타아앙.
이내 이벽이 쾌보를 밟았다.
콰르릉, 파지지지지직.
그와 동시에 다시 벼락이 내리쳤다. 허나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이벽을 직접 노리지 않았다.
파지지지지직!
주변을 맴도는 도의 파편들이 뇌기를 머금었고, 다시금 수십 가닥의 매듭이 뻗어지며 이벽을 추격했다.
타앙, 파지지지직.
물론 이벽은 피하려 했다.
허나 파편은 개수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으므로, 결국 두어 가닥에 몸이 붙들리고 말았다.
그리고 멈칫한 순간.
파지지지지지직.
다시 수십 가닥이 달려들었다.
조금 전과 같이 몸이 묶여버렸다.
‘그렇군.’
그와 동시에 이벽은 이해했다.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음에도, 일거에 밀려드는 뇌기의 매듭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이미.
적이 머무르는 광범위한 영역 전체를 아우르는 기예이며, 매듭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그물에 가까운 형태였다.
따라서.
쾌보의 기예로 피하려고 한들 더 이상 속도만으로 떨쳐낼 수 있는 성질의 기예가 아닌 것이다.
후두둑, 투두둑.
이벽은 다시 나무가 되었다.
나뭇잎이 온몸을 뒤덮은 순간, 모든 매듭들은 일거에 끊어졌다. 허나 그때 맹우강은 다시 저만치로 멀어져 있었다.
“…….”
“무슨 문제라도 있나?”
맹우강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없다.”
타아아앙.
이벽은 다시 쾌보를 펼쳤다.
이후 같은 양상이 반복되었다.
파지지지직.
이벽이 쾌보를 펼치면 어김없이 매듭이 발목을 붙들었고, 그때마다 이벽은 다시 나무가 되었다.
허나.
사라락, 사락.
본질적으로 ‘나무’는 움직일 수 없다. 따라서 매듭을 끊어내는 것과 쾌보를 펼치는 것은 동시에 이뤄질 수 없었고.
이벽은 번번이 발이 묶였다.
이벽이 맹우강의 뇌기를 파훼했듯, 맹우강 또한 이벽이 지닌 기예들간의 맹점을 파고든 것이다.
타앙, 콰르르르릉!
그렇게 맹우강은.
다시금 ‘교착 상태’를 유지했다.
이벽의 발목을 묶으며 이리저리 달아나면서도, 그 눈만은 약점을 찾아 날카롭게 빛났다.
절대고수 간의 싸움이란.
어떻게든 상대의 영역과 기예를 먼저 제압해내는 이가 결국 승리를 쟁취하게 되는 것이다.
타앙, 콰르르르르릉!
허나 물론.
이벽 또한 아무런 생각도 없이 계속해서 붙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적파직검이 힘을 쓰지 못하는 이상, 결국 이벽 또한 거리를 좁히지 않고서는 맹우강을 쓰러뜨릴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파직, 파지지지직.
이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매듭은 도의 파편을 매개로 한다.
고로 주변에 퍼져있는 파편들을 모조리 제거해버린다면 더는 이 성가신 기예를 펼칠 수 없을 터였다. 허나.
‘…그렇게 놔둘 리는 없겠군.’
뇌기를 흠뻑 머금은 채 허공에 흩뿌려진 파편들은 이미 맹우강의 영역과 하나가 되어있었다.
결국은 그 또한.
가능성이 희박한 이야기였다.
콰르르르릉, 파지직!
물론, 그럼에도.
전황은 이벽에게 나쁘지 않았다.
흘끗.
이벽은 비무대 저 아래에서 펼쳐지고 있는 제갈소미와 송영영의 경합을 내려다보았다.
‘시선을 분산한다’는 당초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맹우강이 약자가 아닌 것은 외려 다행한 일이었다.
“……!”
허나 그 순간.
아주 작은 위화감이 스쳤다.
물론, 그것은 진법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미세한 기세였다.
그러나 이내 이벽은 깨달았다.
마침내… 이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를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쐐애액.
허나 다시 그때였다.
날카로운 파공성을 감지한 이벽이 황급히 고개를 꺾었다. 허나 그럼에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서걱, 주륵.
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렀다.
“하핫, 동료가 신경 쓰이나? 뭐, 나야 고마운 노릇이지. 기왕 방심하는 김에 조금만 더 해줬으면 좋겠군.”
저만치에서 맹우강이 웃었다.
이벽이 다시 나무의 기예를 거두고 쾌보를 펼치려던 바로 그 순간, 이기어술로 파편 하나를 쏘아 보낸 것이다.
“슬슬 너의 그 ‘금강불괴’를 파훼할 방법도 알 것 같으니 말야. 아무래도… 단단해지면 그만큼 몸이 무거워지는 모양이지?”
마침내.
반복되는 접전 속에서, 맹우강은 이벽이 ‘금강불괴’와 쾌보를 동시에 펼칠 수 없음을 확신한 것이다.
말마따나.
이벽은 실책을 직감했다.
거리를 좁히는 것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나무가 지닌 금강불괴의 공능에 너무 맹신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금강불괴?’
허나 다음 순간.
찰나의 의문이 이벽을 스쳤다.
그것은 맹우강의 기예나 그 파훼법에 대한 것이 아니라 외려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이었다.
분명, 이벽이 나무의 기예를 실전에서 사용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하물며.
제남에 당도하기에 앞서 혁대웅과 함께 서로가 가진 기예를 나눌 때조차, 이벽은 시도해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것은 애당초.
나무의 기예에 금강불괴의 공능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렇다면.
조금 전, 위기의 순간 화영변검이 아닌 나무의 기예를 택한 스스로의 판단은 무언가가 이상했다.
금강불괴까지는 아니라 해도.
최소한 나무의 형상이 ‘충격을 막아주리란 확신’이 없었더라면… 그런 선택을 내렸을 리 없는 것이다.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다.’
콰르르르릉, 파지지지직!
그때 다시 벼락이 떨어졌다.
매듭이 이벽을 봉쇄하려 했다.
물론, 맹우강에게는 이벽이 의문에 빠지건 말건 사정을 헤아려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우웅, 사라락, 사락.
이벽은 다시 나무가 되었다.
파지지직.
그 즉시 매듭은 모두 끊어졌으나, 이벽은 기예를 풀지 않은 채 나무의 상태를 유지했다.
“…핫, 그렇다고 거북이마냥 숨어버리란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말야. 설마 겁을 먹은 건 아니겠지?”
콰르르르르릉!
다시 움직이지 않는 나무 위로.
맹우강의 벼락이 마구 쏟아졌다.
콰르르릉, 콰르르르릉!
물론, 금강불괴의 공능을 지녔다 한들 맹우강의 벼락은 무턱대고 몸으로 버티고 있을 만큼 만만한 공격이 아니었다.
카드드드드득!
이내 나무의 외벽이 시커멓게 그슬렸고, 이벽의 신경을 타고 저릿한 통증이 파고들었다.
허나 그럼에도.
이벽은 기예를 풀지 않았다.
‘…어쩌면.’
과거, 이미 몇 번이고 경험했듯.
지금의 이 위화감은… 퍽 ‘중요한 의문’일 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스쳤다. 몰아치는 벼락 속에서, 이벽은 침착하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분명 ‘어떤 기억’이.
무의식 속에 있었다.
즉, 나무의 기예 그 자체는 분명 매화검선이 보여준 한 수에서 착안한 깨달음이지만.
정작 ‘금강불괴’의 단서는.
별개의 기억에서 비롯한 것이다.
과거, 이벽은 분명.
금강불괴와 같은 공능을 지닌 적과 싸워본 적이 있으며, 심지어는 그리 오래된 기억조차 아니었다.
사아아아아.
“……!”
다음 순간, 마침내.
‘뱀의 형상’을 떠올렸다.
그것은 혈마의 기억이었다.
* * *
사아아아아.
돌연, 당가의 정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혈마는 이내 ‘거대한 뱀’의 형상을 품었고.
이벽과 독왕 당평세를 동시에 상대하며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였었다.
전력을 다한 창공비검조차.
고작해야 비늘 몇 장을 긁어내는 데에 그쳤다. 그 견고함은 분명… ‘금강불괴’ 그 자체였다.
“…….”
허나 ‘등천의 영역’이란.
본질적으로 형체가 없으며 다만 절대고수의 심력을 통해 그 안에 형체를 불어넣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혈마와 한 몸이었던 그 뱀은.
본질적으로, 나무의 형상을 빌려 등천의 영역과 하나가 된 지금의 이벽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쿠웅.
일순 묵직한 충격이 스쳤다.
아니, 그러나 이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들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직감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좀 더 깊은 영역’임에 틀림없다.
고로 이벽은 직감이 보내는 신호를 따라 생각을 계속해서 되짚어나갔다.
콰르르르릉, 콰르르릉!
“대체 뭘 하고 있나 이벽? 설마 이 몸을 상대로 금강불괴의 한계를 시험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물론 그 와중에도.
맹우강의 공세는 이어졌다.
“핫, 뭐 좋다. 얼마든지 어울려주지. 물론, 그 한계를 내가 먼저 발견해버리면 너는 퍽 난처해지겠지만 말야!”
“…….”
“이러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지는군 그래! 내가 호신강기에 숨어 허우적대던 그때와는 입장이 퍽 달라졌어. 안 그런가? 하핫!”
파지지지직!
말마따나.
충격은 슬슬 위험한 수준이었다.
이대로는 곧 나무의 형상을 잃고, 뇌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 것임을 이벽은 직감했다.
허나 그럼에도 이벽은 기예를 풀지 않았다. 지금, 상념을 멈춰버리면 다음을 영영 기약할 수 없다.
또한 뇌기에 노출된다 해도… 화영변검의 기예가 있다면 그럭저럭 충격을 무마할 수 있을 터였다.
‘…화영변검!’
다시 생각이 과거로 돌아갔다.
그날, 이벽이 혈마의 거대한 뱀을 무찔렀던 것 또한 다름 아닌 화영변검의 기예였다.
그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을 것 같았던 혈마의 비늘을 산산이 흩날려버린 것은, 붉은 꽃이었다.
허나 그것은.
싸움의 끝이 아니었다.
이후, 혈마는 다시 팔다리와 꼬리를 지닌 ‘도마뱀’의 형상을 띈 채 이벽과의 접전을 이어갔으며.
혁대웅이 나타나기 전까지.
‘극쾌’의 속도로 이벽을 압박했다.
“……!”
분명.
도마뱀이 된 혈마의 기괴막측한 움직임은 기이할 만큼 쾌보의 묘리를 닮아있었다.
다만 두 발을 활용할 뿐인 자신과는 달리, 혈마는 마치 ‘온몸을 통해 보법’을 펼치는 듯했으며.
사아아아.
그렇기에 결국.
달아나는 놈을 뒤쫓지 못했다.
‘온몸으로… 쾌보를 펼친다?’
쾌보의 묘리란.
두 발의 용천혈을 지면에 밀착시킨 뒤, 기의 압축과 해방을 통해 극한의 속도를 얻어내는 기예이다.
허나.
등천의 영역과 신체가 오롯이 하나가 된다면… 몸 안의 혈 또한 ‘몸 바깥으로 확장’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스스스.
다시, 그 순간.
이벽은 자신의 혈로가 피부를 벗어나 나무줄기 안쪽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것은 나무와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혈로였다.
허나 그렇기에.
그 모두가 ‘용천혈’이 될 수 있다.
‘…그렇군.’
그리고 그렇다면.
능히 쾌보를 펼칠 수 있다.
아니, 그러나 발이 아닌 온몸으로 펼치는 무공이라면… 그것은 더는 보법이라 한정 지을 수 없으며.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검공’이 될 수도 있다.
부르르.
새로운 가능성 앞에서.
이벽은 작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마침내 청강유엽검식의 마지막, 쾌의 묘리에 새 이름을 붙일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허나 물론.
혈마의 움직임에서 착안했다 한들, 스승의 원수인 혈마의 이름을 붙일 생각은 없었다.
또한 그 ‘자유분방함’은.
고작해야 쾌보 따위가 아니라.
오래전, 이벽에게 쾌보의 단초를 전수해주었던 전(前) 개방주 취풍신개의 움직임, 바로 그것이기도 했다.
―에이, 기예 도둑놈 같으니!
‘…걸개.’
그 순간, 권왕 황보혁에 의해 스러지고 말았던 늙은 거지의 지저분한 미소가 스쳤다.
콰르르르르르릉!
그리고 몰아치는 벼락 속에서.
찰나의 희열이 이벽을 통과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취풍쾌검(醉風快劍).
콰르르르릉, 번쩍!
쩌어억.
다음 순간.
몰아치는 벼락에 의해 나무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아니, 최소한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타아아아앙.
허나 그 순간.
나비가 허물을 뿌리치듯, 갈라진 안쪽에서 이벽의 신형이 쏘아졌다. 맹우강을 향해 쇄도했다.
“핫! 거북이 놀이는 그만뒀나?”
파지지지지직!
물론, 맹우강은 이벽을 상대로 한순간도 방심 따윌 하지 않았으므로, 그 즉시 벼락의 그물을 형성했다.
타아아아아앙.
“……!”
허나 그 결과는.
조금 전과는 퍽 달라졌다.
그물은 이벽을 구속하는 데에 실패했으며, 삽시간에 이벽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휘익.
“…무, 무슨?”
당황한 맹우강이 주변을 살폈다.
서걱.
허나 다시 그때.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맹우강은 자신의 왼쪽 옆구리가 피에 젖어 들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다.
섬뜩.
허나 상처 그 자체보다도.
그 순간, 맹우강이 두려움을 느낀 것은 그 상처가 의미하는 것이었다. 말인즉슨, 옆구리를 베고 지나간 이벽은.
이미 ‘등 뒤’에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