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67)
375화. 예상 밖의 정체 (3)
움찔.
“……!”
혁대웅의 어깨가 흔들렸다.
저 아래, 지면 위를 네 발로 선 적과 눈이 마주한 순간 등줄기 위로 차가운 오한이 스쳤다.
타아앙.
그 즉시 혁대웅은 몸을 비틀었다.
후우우우우욱.
이내 신형이 쏘아졌다. 내력으로 급격히 무게를 늘린 몸이 지면을 향해 급강하를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찰나의 순간 맹우강의 곁을 스치듯 지나쳤으나, 마침내 ‘놈’이 모습을 드러낸 지금 이 순간.
이미 모든 기력과 팔 하나를 잃고 무력화된 맹우강에 대한 것은 더는 문젯거리조차 아니게 되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핫, 하아아압―!”
아래를 향해 거듭 극척의 초식을 내려찍는 한편, 혁대웅의 거구가 마침내 지면에 착지했다.
콰아아아아아앙.
“환야 어르신, 괜찮으세요?!”
“…덕분에 무사하오. 걱정 마시오.”
환야를 등지고 선 혁대웅이 황급히 뒤를 바라보았다. 이내 등 뒤에서 담담한 대답이 들려오자 찰나의 안도감이 스쳤다.
아니, 그러나 물론.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스윽.
이내 다시 정면을 향했다. 거칠게 피어오른 먼지 너머, 맞은편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혈마.”
네 발로 기듯 엎드린 사내는.
당가의 일전에서 끝끝내 목숨을 끊지 못한 채 놓쳐버린 바로 그 악적이자.
‘스승의 원수’였다.
허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시, 혁대웅의 눈이 흔들렸다.
아직 ‘뱀의 형상’이 되지 않은 상대의 모습과 차림새가 퍽 눈에 익었기 때문이었다.
맹우강의 말마따나.
그는 적의 일원이 아니라.
외려 ‘아군’이었던 사내였다.
“안 대협… 이라고 했었나요?”
혁대웅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키킥… 키키킥!”
혈마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자 멋들어진 콧수염이 함께 흔들렸다. 사내의 정체는, 하오문 수호대의 표사 안겸이었다.
“…….”
말인즉슨.
스승의 원수인 혈마가… 스승이 이끌고 있던 하오문 수호대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니, 그러나.
그것이 대체 ‘언제부터였는가’는 알 수 없는 일이며, 또한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것 역시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다.
기실 자초지종 따위는.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철컥.
혁대웅은 창을 움켜쥐었다.
‘이길 수 있나? 아니면…….’
눈앞의 적은.
이벽과 함께 힘을 합치고도 끝끝내 해치울 수 없었던 맹적이었다. 하물며 놈의 발을 묶어주던 이벽이 없다면.
자신의 경신법으로는.
놈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전장의 소음 속에서.
혁대웅은 홀로 고요해졌다.
머리가 방법을 찾아 회전했다.
물론, 혈마 또한.
혁대웅의 한 수가 만만치 않음을 알고 있기에 섣불리 공격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스으으.
위태로운 침묵 속에서.
혈마의 눈이 움직였다. 동공이 위아래로 찢어지며 뱀의 형상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 순간.
혁대웅은 혈마의 눈이 움직이는 방향을 읽어내었다. 찰나의 순간, 시선은 혁대웅 자신이 아니라 등 뒤를 향하고 있었다.
“하아압―!”
후우욱, 콰아아아아아앙.
그 즉시 혁대웅이 창을 뻗었다. 기습적으로 뻗어진 극척의 충격파가 일대의 땅을 부수며 쇄도했다.
타앙.
허나 그 순간.
혈마의 네 발이 가볍게 땅을 박차며 이 장 가량을 튀어올랐다. 혁대웅의 일격은 그 몸을 스치지조차 못했다.
스스스.
그리고.
허공으로 날아오른 혈마의 몸 주변으로 핏빛을 닮은 붉은 안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훅.
다음 순간, 안개는 비늘이 되었다. 마침내 혁대웅이 기억하는 ‘붉은 도마뱀의 형상’이 드러났다.
사아아아아.
뱀이 울부짖었다.
휘릭, 타아앙, 타아아앙.
이내 허공에서 끝없이 방향을 틀며 기괴막측한 동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혁대웅으로선 눈으로 좇는 것조차 쉽지 않은 속도였다.
훅, 타아앙, 타아아아앙.
돌연 혈마가 꽁무니를 보였다.
짐짓 물러서는 듯했으나 바로 다음 순간, 다시 방향을 꺾으며 상공으로 튀어 올랐다.
타아아아앙.
‘역시 그렇군.’
혁대웅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것은 일견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방향성이 없는 무작위의 움직임처럼 보였다.
허나.
그 의도를 짐작하고 있던 혁대웅은 놈이 일부러 자신을 혼란시키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보다 엄밀히는.
놈이 다가서려 하고 있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등지고 선 환야였다.
타아아앙, 타앙, 타아앙.
기실 놈은.
줄곧 ‘안겸’으로서 전장 속에 섞여 있다가, 환야가 모습을 드러낸 지금 이 순간 기다렸다는 듯 그 배후를 치려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환야를 노리고 있음은 명백하다.
훅, 후우욱.
“하아아앗―!”
다시 혁대웅의 창이 쏘아졌다.
콰아아아앙, 콰아앙.
허나 혈마는 하늘을 나는 뱀처럼 기이한 각도로 몸을 틀며 예의 충격파를 번번이 피해내었다.
서걱.
아니, 그러나.
회피는 완벽하지는 않았다.
비늘 몇 개가 떨어져 나갔다.
사라라락.
기실 그 순간.
혁대웅의 등 뒤에 자라난 물레바퀴는 이미 수십 장의 나뭇잎이 되어 흩어진 후였다.
그 한 장 한 장이 모두.
‘작은 물레바퀴’에 해당하며.
뻗어지는 창끝에 그림자를 맺히게 함으로써, 초식의 위력을 여러 갈래로 분화시킨다.
타아앙.
허나 자잘한 상처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혈마가 다시 몸을 틀었다.
다음 순간, 혁대웅의 머리 위 일 장 부근에서 환야를 향해 사선으로 파고들려 했다.
후우우우웅.
“하아아압!”
그러나 이미 그러한 움직임을 예상하고 있던 혁대웅의 창이 넓은 범위로 휘둘러졌다.
후우웅, 후우우응.
창의 그림자가 줄기줄기 분화하며 종횡하는 수십 자루의 창의 궤적을 만들어냈다.
창의 궤적들이 모여.
‘구의 형태’를 이루었다.
훅, 콰아아아아앙.
날아든 혈마가 구와 충돌했다. 거죽이 뜯겨나가는 충격과 함께 혈마의 몸이 튕겨 나갔다.
사아아아아아.
혈마가 울부짖었다.
생각과는 달리 혁대웅을 속여넘기는 것에 실패하자 분노를 느끼는 듯 했다.
“…다시 나타나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하마터면 골치 아플 뻔했어. 허나 원하는 대로는 안 될 걸. 절대 그렇게는 못 놔두지.”
훗, 혁대웅이 작게 웃었다.
추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허나.
한 자리에 가만히 머무르고 있는 환야를 지키는 일이라면 자신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흥분하지 말자. 버티면 된다.’
꽈아아악.
다시 창대를 움켜쥐었다.
상대는 천 번을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은 스승의 원수이지만, 지금은 자리를 고수하는 것만이 유일한 상책이다.
부르르르르.
“크으… 카아아아악!”
허나 다시 그때였다.
저만치에 착지한 혈마가 육성으로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파르르, 온몸의 비늘이 잘게 떨렸다.
후우욱.
다음 순간.
돌연 비늘에 감싸인 그 붉은 몸체가 터무니없는 기세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뭐, 뭐야?”
후우우욱, 콰아아아아아앙.
그 즉시 혁대웅은 창을 뻗었다.
그리고 좀 전과는 달리, 혈마는 제자리에 가만히 멈춰있었으므로 공격을 적중시키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스륵.
허나 그러한 공격은 다시 혈마의 비늘 두어 장을 긁어내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
지금, 혈마의 형상은 단지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그 견고함마저 더욱 굳건해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스스.
속도와 기민함을 포기하고.
압도적인 힘으로 적을 짓누른다.
그 순간, 혁대웅은 과거 자신을 씹어 삼키려 들던 ‘거대한 뱀의 머리’를 떠올렸다.
혈마가 지닌 기예의 형태는.
‘도마뱀’ 하나뿐만이 아닌 것이다.
심지어 그때와는 달리, 지금의 놈은 머리뿐만이 아닌 온몸을 뱀으로 화할 정도의 충분한 여력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이후 혁대웅은 거듭 창을 내뻗었으나 제대로 된 충격을 주지는 못했으며.
계속해서 부풀어 오르는 뱀의 형상은 외려 떨어뜨린 비늘조차 다시 메워버렸다.
“큭……!”
허나 저런 것이 날뛰면.
자칫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전선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
후우우우욱.
바로 그때였다.
돌연 물안개가 내려앉으며 혁대웅과 혈마를 포함한 일대를 드넓게 감싸버렸다.
“…헉, 허억!”
그리고 가쁜 숨소리가 들렸다.
혁대웅은 등 뒤를 돌아보았다.
“소협, 정말 미안하오. 허나… 지금은 다소 무리한 부탁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소. 조금만 버텨주시겠소?”
환야가 말했다.
그 즉시 혁대웅은 이해했다.
조금 전, 맹우강의 벼락을 막아낸 물안개로 하여금 혈마와 자신을 이 공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끔 묶어버린 것이다.
허나 동시에.
환야는 여전히 비무대 쪽을 향하고 있었다. 제갈소미가 내부의 핵을 맡고 있다고 해도.
만류일원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또한 여전히 위치를 고수해야 하는 듯했다.
물론, ‘두 개의 거대한 진법’을 동시에 지탱하는 것이 쉬운 일일 리 없다.
“…아니, 오히려 좋아요.”
이내 혁대웅이 답했다.
스스스스스.
그리고 다시 정면을 향했다. 어느새 작은 언덕만 한 크기로 자라난 뱀을 마주 바라보았다.
으스스.
소름이 돋았다. 허나.
동시에 웃음이 스쳤다.
도망칠 수 없게끔 발이 묶여버린 이상,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원수를 갚는 수밖에’는 없게 되었다.
“힘 싸움이라.”
그리고 패왕의 힘은.
정면승부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 * *
후우우우우욱.
이벽의 검이 쏘아졌다.
권왕의 옆을 스치듯 지나친 뒤 취풍쾌검의 충격파를 통해 방향을 틀어 등 뒤를 노린 것이다.
그 순간, 권왕의 주먹은.
여전히 전면을 향하고 있었다. 고로 이벽은 배후를 파고드는 자신의 일검을 막을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서걱.
이내 검끝이 권왕의 등을 찔렀다.
후우우욱.
허나 그때였다.
돌연 맞은편에서 ‘바람’이 불었다.
비록 그 기세는 그리 날카롭지 않았으나, 물론 ‘자연현상’ 따위는 아니었다.
후욱.
마치 보이지 않는 손처럼.
바람이 이벽의 몸을 밀쳐내었다.
슥.
또한 그로 인해.
겨우 끄트머리만을 파고든 이벽의 검 또한 함께 밀려나며 일격이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떻게?’
허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바람을 다룬다는 것은 즉, ‘절대지경의 힘’을 의미한다. 허나 진법의 공능 안에서 등천의 영역을 사용할 수 있을 리―
스윽.
그러나 다시 그때였다.
이벽과 권왕의 눈이 마주쳤다.
“……!”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마주친 것은 물론, 육안과 육안이었으나 권왕의 눈빛 속에서 이벽이 읽어낸 것은 ‘심안’의 기척이었다.
타아앙, 쐐애애애액.
그 즉시.
이벽은 다시 쾌보를 펼쳤다. 권왕의 좌측을 도로 스쳐 지나가며 검신을 뻗었다.
측면을 파고든다.
이 한 수마저 실패로 돌아가는 순간, 상황은 ‘정말로 어려워질 것’임을 직감했다.
타아앙.
“하압―!”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검존 또한 땅을 박차며 일검을 내뻗어왔다. 그 역시 같은 결론에 이른 것이다.
스윽.
쇄도하는 이벽과 검존을 향해 권왕의 두 손이 각각 내뻗어졌다. 그리고 일제히 태극의 원을 그었다.
훅, 퍼어어엉.
그리고 그 태극 안에서.
가벼운 ‘권풍’이 불어닥쳤다.
그것은 그리 위력적인 공격은 아니었으나 찰나의 순간 두 사람을 주춤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스으윽.
그리고 그 순간.
권왕의 발이 지면에서 가볍게 떠올랐다. 바람을 타고 미끄러지듯 일 장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
뒤쫓기에는 늦었다.
마침내 이번의 한 수마저 실패로 돌아갔음을 이해한 이벽과 검존 사이로 침묵이 스쳤다.
후우우욱, 탁.
그리고 저만치로 물러선 권왕이 다시금 지면으로 내려앉았다. 신형을 감싸듯, 잔잔한 바람이 주변을 스쳤다.
허나 그 바람은.
진법이 펼쳐지기 전, 그의 주먹에서 쏘아지던 용권풍과는 결을 달리했으며, ‘정순’하기 짝이 없었다.
후우욱.
권왕이 잠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바람의 결을 만지듯,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리 나쁘진 않군.”
“…허헛!”
검존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으허헛, 허헛! 허허허, 이것 참!”
만류일원진이 발동된 이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었으나, 길어봤자 이 각을 넘기지 않는 정도였다.
허나 그 사이에.
권왕은 검존의 검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태극의 묘리를 이해하여 도가기공과 태극권을 터득했고.
급기야는.
그 안에 자신만의 무리를 조합해.
다시금 등천의 영역을 이루었다. 지금 이 순간, 권왕은 어엿한 ‘도가의 절대자’로 거듭난 것이다.
물론 그것은.
거듭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무림의 역사 속에서는 때때로 상식을 부정하는 인외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곤 했으며.
상대가 그와 같은 존재임을.
검존은 너무 늦게 알고 말았다.
“미안하네, 소도장.”
다시 검존이 말했다.
“수치를 무릅쓰고 묻네만, 혹시 남은 수가 있나? 부끄럽게도… 이 늙은이는 태극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네.”
“…….”
물론 이벽 또한.
진법 안에서 활용 가능한 모든 기예를 동원했으나, 고작해야 권왕의 등에 ‘긁힌 상처’를 내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얼추 대등함을 이루던 승부의 무게추는 마침내 권왕을 향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벽과 검존은 진법이 펼쳐진 이래 여전히 상처 하나 입지 않은 상태였다.
허나.
권왕은 계속해서 터무니없는 속도로 강해지고 있으며,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진법은 말 그대로 ‘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터였다.
“…진인, 내게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벌어주시겠소?”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벽에게는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마지막 가능성’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위기의 순간.
이벽의 뇌리에 스친 것은 어둠 속에서 혈마를 베던 스승 이진천의 그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