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72)
380화. 낙검문의 제자 (1)
“아아아아아―!”
송영영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삼 장 위의 허공에서 구의 형태로 그녀를 감싼 태극혜검의 영역 사이사이로 검은 불꽃이 용암처럼 출렁거렸다.
우우우웅.
끼기긱, 끼기기긱.
허나 다음 순간.
태극의 벽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태극과 역태극의 묘리가 번갈아 교차하며 빈틈을 바짝 조여들었고 다시 불꽃의 기세가 주춤했다.
허나.
스으으으.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을 감싼 태극들이 시커멓게 그을려갔다. ‘영역 자체의 성질’을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기(魔氣).”
돌연 이벽은.
마침내 불온한 기운의 정체를 이해했다. 보다 정확히는 그밖에 달리 적합한 무언가를 떠올릴 수 없었다.
천마신교의 비전이라 할 수 있는 마공(魔功)은 수련자의 인성을 변화시킨다고 하였다.
어쩌면 그것은.
여타의 공력이나 심공과는 다르게, 후천이 아닌 선천의 영역을 직접 파고드는 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수련자의 심혼을 ‘불태우며’ 무공의 성질을 마공에 걸맞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심지어는.
절대지경에 이른 고수마저도 한 번 심어진 불꽃의 업화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듯했다.
마음의 풍경이 등천의 영역으로 발휘되는 순간, 기어코 불꽃은 그 영역과 함께 존재를 드러낸다.
스승의 나뭇잎이 그러했고.
송영영의 태극이 그러했다.
후욱.
그 순간 다시, 불꽃 속에 휩싸인 송영영의 그림자가 검을 움켜쥐었다.
우우우우웅.
불타버린 태극이 사그라들고.
새로운 태극이 주변을 감쌌다.
스스스스스.
태극과 역태극의 묘리가 교차하며, 영역 내부가 폭풍우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불꽃이 마구 일렁였다.
콰득, 콰드드득.
“아아아아아―!”
물론, 그 안에 있는 송영영의 신형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자기자신의 묘리’에 의해, 송영영의 몸이 마구 짓이겨졌다.
그것은 마치.
검은 불꽃과 태극혜검의 영역이 각자의 방식으로 먼저 송영영을 죽이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하는 듯했다.
타아앙.
그때, 저만치에서 다시금 검존이 날아올랐다. 송영영의 역태극을 향해 검을 내뻗었다.
“큭, 크으으윽―!”
부르르, 검존이 경련했다.
“…….”
검존의 시도는.
그다지 가망이 없어 보였다.
허나 물론, 이벽은 하나뿐인 제자를 살리기 위해 몸부림치는 노인을 말릴 수는 없었다.
더 나아가 이벽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불꽃과 태극혜검 중 어느 쪽이 ‘송영영 본인의 의지’인 지는 퍽 명확했다.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집으로 도망쳐. 정파무림은… 내가 어떻게든 알아서 할 거니까. 딸꾹.
‘…송영영.’
송영영은.
스승과 마찬가지로, 불꽃을 품은 자신을 ‘이미 죽은 목숨’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정말로 그녀가 스스로 죽음으로 뛰어드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 있어야만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었다.
‘…방법이 없나?’
다시, 이벽은 생각했다.
‘역태극’이란 어쩌면 마공에 가까운 힘일지도 모른다. 허나 그와 마찬가지로 창공비검의 역(逆)에 해당하는 낙검이라면.
잠깐이나마 스승의 검은 불꽃을 제어하고 있던 그 일검이라면… 저 장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윽.
마침내 이벽은 업고 있던 서천무존 정룡을 한켠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철컥.
그리고 검을 들었다.
덥썩.
허나 그 순간, 팔목이 붙들렸다.
“야, 이 미친놈아.”
“…….”
사저 제갈소미였다.
“너 지금 뭐 해. 뭐 하려는 건데.”
“…저대로 놔둘 순 없지 않나?”
“…하아.”
제갈소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은 있어? 정도맹주께서도 손을 못 쓰고 있는 판국에… 네가 뭘 어쩔 수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
“…너 잘 났다, 이 자식아. 그래. 저 기괴한 태극을 뚫고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간다고 쳐. 그럼 그다음엔 뭘 어쩔 건데?”
“…….”
물론, 그에 대해서는.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태극을 뚫을 순 있을지언정, 그 너머의 불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벽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아아아.”
그리고.
이벽의 눈빛으로부터 그러한 마음을 읽어낸 제갈소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이벽 같은 놈. 제발 몸 좀 사리라니까 예나 지금이나 말귀를 들어먹는 경우가―”
“응, 알았어, 벽아.”
허나 그때 혁대웅이 나섰다.
“어차피 막아봤자 소용도 없을 거고… 그러니까 조심히 갔다 와. 나도 송 소저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많거든. 전쟁은 우리가 끝내놓을 테니까 걱정 말고.”
혁대웅이 미소를 지었다.
이쪽의 사정과 관계없이.
아군 무인들과 의혈맹 세력 간의 전면전은 여전히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허나 어찌 되었건 권왕과 검왕이 목숨을 잃은 시점에서.
전쟁은 끝난 것이다.
퍼억.
“누가 감히 하늘 같은 사저가 말씀하시는데 끊어먹으래? 하여튼 큰 놈이고 작은 놈이고.”
“아야야… 하하.”
제갈소미가 혁대웅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세 사형제 사이에 찰나의 눈빛이 오고 갔다.
“이벽 너, 뒤지면 뒤진다. 알지?”
“…알고 있다.”
“흥, 좋아.”
그리고 이내 세 사형제가 각자의 방향을 향해 산개하며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휘이이이.
그 순간, 돌연.
난데없는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 * *
“……!”
피리 소리는.
심혼을 뒤흔드는 듯했다.
마치 삼도천 저편에서 들려오는 듯한 음산한 곡조는 세 사람의 걸음을 일제히 멈추게 했다.
아니,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음색’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이런 미친―!”
다음 순간 제갈소미가 기함했다.
후우우우우.
비무대를 중심으로 넓게 펼쳐져 있던 만류일원진의 잔해가 피리 소리에 실린 내력을 중심으로 다시 ‘공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희끄무레한 안개가 내려앉았다.
찰나의 순간 진법이 발동에 접어들었다. 아니, 그러나 그것은 이미 만류일원진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진법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제갈소미의 눈이 흔들렸다.
기실 그녀는 스스로 만류일원진의 핵심이 되는 역할을 수행했으나, 진법의 전체 구조를 온전히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가 아니다. 당장 이 진법을 멈추지 않으면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날 것임을 직감했다.
타앙.
그 즉시 땅을 박찼다.
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쫓아 안개가 서린 비무대 위로 파고들었다.
타앙.
“사, 사저?!”
부랴부랴 혁대웅이 뒤를 따랐다.
“…크.”
잠시, 하늘 위의 송영영을 바라보며 갈등하던 이벽 또한 결국은 사형제들의 뒤를 따랐다.
표정은 퍽 굳어있었으며.
짚이는 것은 물론 없지 않았다.
허나 그와 동시에 ‘확인하고 싶지 않은’ 불길한 예감이 가슴 한켠을 두드렸다.
혁대웅의 말마따나.
수호대의 표사 안겸이 혈마가 뒤집어쓰고 있던 ‘가면’이었다면… 어쩌면 ‘하오문주’ 또한.
“…….”
타앙.
그리고 이내.
세 사람은 드넓은 안개 속 비무대 한구석에서 홀로 죽적을 불고 있는 여인을 발견했다.
휘이이이.
이벽의 예상대로.
그녀는 하오문주 월향이었다.
타앙.
허나 이벽이 뭐라 말을 꺼낼 새도 없이, 그 즉시 제갈소미가 월향을 향해 쇄도했다.
콰아아아앙, 쐐애액.
“커어억―!”
허나 그와 동시에.
하늘 저편에서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인영 하나가 지척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훅, 타앙.
이벽이 그 즉시 땅을 박찼다. 추락하는 인영의 몸을 공중에서 받아들었다.
인영의 정체는 어떻게든 송영영의 태극 안으로 파고들기 위해 애를 쓰던 태극검존이었다.
“진인! 괜찮으시오?”
“쿨럭! 조, 조심하게! 노, 놈이―!”
노인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퍼어어어어엉.
다음 순간.
검존이 추락한 것과 같은 방향에서 노도와 같은 기세의 충격파가 뻗어져 왔다.
“……!”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충격파는 정확히 제갈소미를 향해 쏘아지고 있었으며, 그 모양은 ‘용권풍’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후우우웅.
“크아아압―!”
그 순간 혁대웅이 창을 뻗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극척의 일격이 뻗어졌다. 충격파와 충격파가 부딪히며 거친 폭발을 일으켰고, 안개가 흔들렸다.
후우욱, 타아앙.
그리고 그 틈을 타.
충격파를 쏘아 보낸 장본인이 비무대 위로 내려앉았다. 월향을 지키듯 그 앞을 막아섰다.
“…쳇.”
제갈소미가 혀를 찼다.
그 정체는 권왕 황보혁이었다.
* * *
타아앙.
이벽과 혁대웅이 걸음을 멈추었다. 제갈소미의 양옆에 선 채 마침내 권왕 황보혁을 마주했다.
“…….”
이벽의 미간이 흔들렸다.
회잿빛 동공은 텅 비어있었으며.
황보혁의 좌측 가슴에는 여전히 ‘칼이 지나간 자리’가 시커멓게 굳은 상처로 남겨져 있었다.
송영영의 일검에 심장을 관통당한 황보혁은 분명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허나 물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 움직이는 것은… 이제 와서 딱히 새삼스러울 것조차 없었다.
다만 그것이.
‘권왕 황보혁’이기에 문제였다.
휘오오오오, 펄럭.
황보혁의 소매가 펄럭였다.
두 팔에 고요한 바람이 서렸다.
휘이이이이.
그리고 그 주변으로.
월향의 죽적 끝에서 흘러나오는 무거운 곡조가 죽은 이의 육신을 감싸는 듯했다.
“…문주.”
이벽이 침음했다.
화아악.
그 순간.
제갈소미의 검이 매화를 피웠다.
지금 당장 저 연주를 멈추지 못하면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후욱, 사라라락.
제갈소미의 손이 뻗어졌다.
우우웅.
가지가 뻗어나가듯 이기어검이 쏘아졌다. 꽃 무더기에 둘러싸인 검이 스산한 기운을 가르며 나아갔다.
허나 물론.
그 검이 월향에게 닿기 위해서는 먼저 권왕이란 바람의 장벽을 넘어서야만 했다.
타앙, 휘오오오오오.
검이 지척까지 다가든 순간.
기다렸다는 듯 권왕의 손끝이 뻗어졌고 그 끝에서 천지를 잇는 용권풍이 일어났다.
후우욱.
그리고 제갈소미의 검 한 자루는 허무하리만큼 쉽게 용권풍에 휩쓸린 채 전진을 멈추어버렸다.
아니, 그러나.
검이 막혔다고 한들, 그것이 곧 ‘기예가 파훼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라락.
다음 순간 제갈소미의 검을 삼킨 용권풍의 바람결 속에서 무수한 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권왕의 용권풍은 말 그대로 꽃바람이 되었다.
화아아아악.
그리고 바로 그때.
꽃잎들이 산개했다.
후두두둑.
사방으로 흩어지며 황보혁의 곁을 지나친 꽃잎들이 다시 월향을 향해 일제히 모여들었다.
현란하지만 동시에 날카롭다.
화산의 매화는 결코 허상이 아니며, 가녀린 몸 하나를 도륙내기엔 차고도 넘치는 힘이었다.
사라라락.
퍼버버버벅, 퍼버버버벅.
허나 꽃잎들은.
결국 월향에게 닿지 못했다.
꽃잎이 지척까지 다가선 순간, 또 하나의 인영이 스스로 월향의 주변을 감싸며 ‘방패막이’가 된 것이다.
“…….”
심지어는.
방패막이를 자처한 인영은 꽃잎에 노출되고도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다.
아니, 그 괴물의 형상은.
‘인영’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했다.
스스스스.
그것은 ‘붉은 도마뱀’이었다.
권왕과 마찬가지로 송영영에 의해 가슴을 관통당한 혈마의 시신이 다시금 눈을 떴고, 월향을 감싼 것이다.
“이거… 진짜 선 넘는 거 아냐?”
혁대웅이 말했다.
강시술을 모르지는 않는다.
허나 생전의 기예를 지닌 채 되살아나는 ‘절대고수’의 시신 같은 것은 무림사에도 기록된 바가 없었다.
“…….”
물론 이벽은.
직접 경험한 바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처음은 흑천방주 맹철극이었고, 다음은 검왕 남궁한일이었다.
“…후우.”
다음 순간, 마침내.
월향이 피리를 입에서 떼었다.
“슬픈 날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여인이 처연한 미소를 보였다.
스윽.
그리고 권왕 황보혁과 혈마의 시신이 움직였다. 월향을 지키듯 양쪽으로 시립했다.
“…문주.”
“네, 수호대주님.”
마침내 이벽이 나섰다.
“이렇게 된 이상 의미는 없을지도 모르겠소만. 그래도 일단은 여쭙겠소. 당신은 누구시오?”
“어머.”
월향이 입을 가렸다.
“조금 의외네요. 허나 대주께서 원하신다면야… 몇 번이고 얼마든지 다시 해드리지요. 자기소개 따위 어려울 게 무에 있겠어요?”
스윽.
월향의 손이 가슴에 얹어졌다.
“인사 올리겠어요. 저는 기녀 월향, 그리고 천향루주이자… 모자란 몸이나마 하오문을 이끌고 있는 지소약이라고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