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71)
379화. 마지막 한 명 (3)
“이게… 무슨 짓이야, 너.”
혁대웅이 고개를 들었다.
환야의 몸을 안아 들었으나, 심장이 꿰뚫린 그 육신에서는 이미 살아있는 이의 징후가 모두 빠져나가 버린 후였다.
“…….”
허나 송영영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때문에 혁대웅은 도무지 지금의 상황을 헤아릴 수 없었다.
애당초.
만류일원진의 내부에 갇혀있던 송영영이 대체 어떻게 그 영역을 벗어나 환야를 해칠 수 있었는지.
더 나아가서는 눈앞의 송영영이 정말로 ‘아군’인지 어떤지조차 알 수 없었다.
으스스.
또다시 오한이 스쳤다.
한 줄기의 빛도 없는 그 검은 눈동자를 올려다본 순간, 혁대웅은 마치 무한한 깊이의 호수를 바라보는 듯한 섬뜩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물밑에서.
아주 오랫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무언가 거대한 것’이 마침내 눈을 뜨려 하고 있다.
그것은 조금 전.
문자 그대로 언덕만 한 크기의 거대한 뱀을 마주했을 때조차 느낀 적이 없는 위압감이었다.
그나마 비슷한 기억을 찾자면.
비무대 위에서 자신을 향해 뻗어지던 ‘권왕의 주먹’을 목도했을 때와 다르지 않은 압도감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주륵.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탓.
그때, 송영영이 움직였다.
움찔.
그 즉시 혁대웅이 반응했다.
훅, 재빨리 뒤로 물러서는 한편 환야의 시신을 한켠에 내려놓았다. 도로 창대를 쥐었다.
‘목숨의 위협’에 맞서는.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후욱.
허나 송영영의 움직임은 혁대웅을 노린 게 아니었다. 신형이 좌측 상단을 향해 빛살처럼 쏘아졌다.
타앙.
그리고 다음 순간 다시.
방향을 틀며 아래로 쇄도했다.
슥. 퍼어어어어어억.
착지와 동시에 송영영의 검끝이 지면을 내려찍었다.
“카악, 크아아아아악―!”
“……!”
아니, 엄밀히는.
검과 지면 사이에 당연하다는 듯 몸뚱아리 하나가 꿰여있었다. 그리고 그 몸의 주인은 만신창이가 된 채 달아나던 혈마였다.
그제서야 혁대웅은.
송영영의 존재감으로 인해 스승의 원수인 혈마의 존재를 잠깐이나마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황당한 사실을 깨달았다.
버둥버둥, 타아앙.
허나 다음 순간.
관통당한 옆구리의 거죽을 스스로 찢어발기며 혈마가 다시 몸을 튕겼다. 훅, 삽시간에 일 장 밖으로 멀어졌다.
후우욱.
그리고 더는 ‘진법을 펼칠 이’가 남아있지 않으므로, 달아나는 혈마의 발을 붙들어둘 수단 또한 없었다.
“…….”
허나 혁대웅은 움직이지 않았다.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조차 없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슥.
다음 순간 혈마가 나아간 방향을 향해 송영영이 왼손을 뻗었다. 그 앞으로 태극의 장막이 일어났다.
끼기기긱, 끼긱.
그리고 그 즉시.
음양의 위치가 서로 뒤집히며 태극이 거꾸로 회전했다. 역태극의 묘리가 펼쳐진 것이다.
휘오오오오오오.
장벽이 흡입력을 일으켰다.
대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극, 그아아아아아―!”
달아나던 혈마의 몸뚱아리가 흡입력에 휩쓸린 채 송영영을 향해 다시 끌어당겨지기 시작했다.
사사사삭.
혈마가 마구 몸부림을 쳤다.
허나 무슨 짓을 한들 역태극의 흡입력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으며, 거리가 좁혀지는 것 또한 순식간이었다.
휘릭.
“그아아아아아―!”
이내 송영영의 지척까지 다다른 순간, 도주를 포기한 혈마가 몸의 방향을 돌렸다.
거대한 뱀의 머리가 나타나며.
송영영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콰드드드득.
가녀린 체구를 집어삼켰다.
아니, 그렇게 보였으나 기실 뱀은 허공을 물어뜯었을 뿐 송영영은 이미 그 자리를 뜬 이후였다.
훅, 퍼어어억.
다음 순간.
환영처럼 날아오른 송영영의 신형이 혈마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칼끝이 등을 관통했다.
“꺽… 끄륵……!”
가슴을 관통당한 혈마가.
피를 토하며 부르르 떨었다.
허나 그마저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뜯겨나간 사지마저 다시금 재생시키는 역천의 괴물이라 할지라도.
심장을 관통당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듯했다.
서걱.
다시 송영영이 검을 거두었다.
털썩.
마침내 혈마의 몸이 널브러졌다.
숨이 끊어진 순간, 등천의 힘에 해당하는 비늘은 모두 종적을 감추었으며 시신은 다시 ‘하오문도 안겸’의 모습이 되었다.
“…….”
혈마의 최후는.
그토록 허무했다.
아군의 조력자인 환야에 이어, 적의 수괴인 혈마마저도 송영영의 손에 의해 목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도 혁대웅은 지금의 자신이 대체 무엇을 해야하는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허나 급변하는 상황은.
생각할 시간조차 허락지 않았다.
화아아아아악.
다음 순간 섬뜩한 감각과 함께 혈마의 시신을 주시하던 혁대웅의 고개가 다급하게 움직였다.
다시 송영영을 향했다.
부르르르.
송영영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경련하는 어깨 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 즉시.
뿌리 깊은 기억이 혁대웅을 스쳤다. 스승이 숨을 거두었던 그 날, 분명 그와 같은 힘이 주변을 맴돌고 있었음을 떠올렸다.
스스스스.
불꽃이 존재감을 키우며.
대기를 살라 먹기 시작했다.
훅, 서걱.
다음 순간, 송영영이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일검이 검은 불꽃의 한가운데를 베고 지나갔다.
화르르륵.
허나.
검로에 의해 잠시 주춤하는 듯했던 불꽃은 금세 다시 날개처럼 시커멓게 피어올랐다.
스스스.
공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으으, 으……!”
송영영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크.”
혁대웅은 침음했다.
불길한 감각이 뇌리를 스쳤다.
허나 송영영이 환야를 죽인 까닭, 그리고 저 검은 힘의 정체에 대해 여전히 자신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저벅.
이내 혁대웅이 일어섰다.
걸음을 떼며 다가서기 시작했다.
“…이봐, 소저. 뭐라도 좋으니까 설명을 좀 해보던가 해요. 내 도움이 필요해요? 헌데 지금 난 당신이 적인지 아군인지도 잘―”
“아아아아아아―!”
허나 그 순간.
송영영이 괴성을 내질렀다.
움찔.
혁대웅이 몸이 흔들렸다.
으스스스스.
온몸의 털이 일제히 곤두섰다.
‘…쳐야 한다!’
그 순간.
먼저 치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강렬한 직감이 혁대웅의 뇌리를 두드렸다.
후우욱, 콰아아아앙.
그 즉시 혁대웅의 창이 뻗어졌다.
“…헉!”
허나 바로 다음 순간 후회했다.
고작해야 괴성을 내지른 것만으로, 섣불리 창을 내뻗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휙.
그러나 그 순간.
뻗어지는 충격파를 향해 송영영의 왼손이 뻗어졌고 그 즉시 태극의 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훅, 스으으.
쏘아 보낸 극척의 힘이.
허망하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
물론, 다급하게 쏘아진 혁대웅의 일격 또한 딱히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었다. 허나.
눈으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하물며 검도 아닌 맨손으로 쉽게 막아낼 공격 또한 아니었다.
타아앙.
그 순간 다시.
송영영이 땅을 박찼다. 혁대웅을 일견조차 하지 않은 채 삽시간에 삼 장 위의 하늘로 날아올랐다.
훅.
창공에서 검을 휘둘렀다.
우우우우웅.
그 순간, 칼끝에서 무수한 태극이 일어났다. 크기를 부풀리고 서로 맞물리며 ‘영역’을 형성했다.
태극혜검의 기예가.
송영영의 반경 일 장을 감쌌다.
스스스스스.
그리고 태극 안에서.
불꽃이 시커멓게 타올랐다.
* * *
“야, 곰탱이―!”
“……!”
저만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혁대웅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화아악.
어느새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환야가 숨을 거두면서 만류일원진 또한 발동을 멈춘 것이다. 그리고 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저 제갈소미였다.
타아앙.
“사…사저어!”
혁대웅이 땅을 박찼다. 단번에 거리를 좁힌 뒤 제갈소미의 양어깨를 붙들었다.
“모, 몸은 괜찮아? 다친 데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아니 왜, 사저가 적들 사이에 있냐고! 내가 진짜 얼마나―”
“아, 시끄러!”
뻐억.
제갈소미의 주먹이 혁대웅의 배를 파고들었다. 커윽, 혁대웅이 숨을 들이켰다.
“자질구레한 얘긴 나중에 해! 깔끔하게 설명 좀 해 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응?”
“모, 모르겠어 나도…….”
“…….”
제갈소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 그게 말야! 맹우강이랑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혈마가 나타나서― 아, 근데 그 정체가… 적이 아니라 오히려 하오문도였어.”
“…잠깐, 혁대웅. 뭐라고?”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혁대웅의 눈이 제갈소미의 등 뒤를 향했다. 어느새 무존을 들쳐 업은 이벽이 다가와 있었다.
“…벼, 벽아! 너도 무사했구나! 아, 아니,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말야! 근데 권왕은? 뭐가 어떻게 된―”
“…죽었다. 송영영에게.”
“…….”
“그보다… 혈마가 뭐라고?”
“…아, 그래. 너를 따른다던 하오문 수호대의 안겸이라는 작자… 그자가 바로 혈마였어!”
“……!”
이벽의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쉬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으나, 물론 이 판국에 혁대웅의 말을 의심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근데… 갑자기 태극무봉이 나타나더니 환야 어르신을 해치고… 또 혈마를 죽이고, 그리고 지금 보이는 저 상태야.”
그리고 이내.
혁대웅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 저편을 향했다.
우우우웅.
삼 장 바깥의 하늘.
어느새 태극혜검의 영역은.
하나의 거대한 구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는 시커먼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또한 송영영의 모습은.
불꽃 속에 온몸이 삼켜진 채 가녀린 형상만이 등잔불 너머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파스스스.
다음 순간, 태극의 벽이.
시커멓게 그슬리기 시작했다.
“……!”
이내 이벽은 생각했다.
그 모습은 역시… 검은 불꽃에 휩싸인 채 시커멓게 메말라가던 스승의 ‘낙엽’을 닮아 있었다.
타아앙.
그리고 그때였다.
저만치에서 인영이 날아올랐다.
“제자야! 안 된다! 안 돼!”
다급하게 허공을 뛰쳐 오르는 작은 체구의 노인은 정도맹주, 태극검존 태허진인이었다.
스윽.
삽시간에 송영영을 감싼 영역 지척까지 다가선 검존의 검이 망설임 없이 태극을 파고들었다.
우우우웅.
태극의 벽을 따라.
태극검이 파고들었다.
“큭… 크윽!”
검존이 침음했다. 주륵, 입가를 타고 선혈이 흘러내렸으나 노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스으윽.
마침내.
태극의 벽 사이로 약간의 균열이 일어났다. 훅, 검은 불꽃이 기세를 일으켰으나 검존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불길에 휩싸인 제자를.
끄집어내려 했다. 허나.
빠지직, 끼기기기긱.
터어어어엉.
“…커윽!”
그 소맷자락이 채 불꽃에 닿기도 전, 검존의 몸이 태극의 벽에서 거칠게 튕겨졌다.
쐐애애액, 타아앙.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그 순간, 송영영을 감싼 태극의 벽들이 거꾸로 회전하며 역태극의 묘리를 띄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평생을 태극에 몸 바쳐 왔던 검존은 그 알 수 없는 묘리 앞에 찰나의 순간조차 버티지 못했다.
“…….”
또한 그 말인즉슨.
송영영은 스승인 검존이 안으로 들어와 ‘자신을 구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시 이벽은 생각했다.
그날, 혈마와의 일전에서 한켠에 널브러져 있던 복면인의 정체가 정말로 송영영이었다면.
결국 스승의 심장을 뚫은 것 또한 그녀였다는 뜻이 된다. 허나 이벽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날의 복면인은.
검은 불꽃에 휩싸인 채 고통 속에 죽어가던 스승을 ‘편하게’ 해준 것이며.
스승 이진천 또한.
스스로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노라 말하며, 또한 자신의 ‘사적인 문제’에 나서지 말라 당부하였다.
그렇기에 이벽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혈마가 아닌 그때의 복면인을 원수라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송영영은 그와 같은 검은 불꽃에 휩싸인 채 태극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저 태극의 영역은.
그날, 스승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편하게 끝내기’ 위한 송영영 최후의 몸부림일 지도 모른다.
“아아아아아―!”
그 순간.
다시 신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