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76)
384화. 숨겨둔 것 (1)
“…이벽!”
한 차례 접전이 오고 간 뒤.
이벽과 혁대웅, 제갈소미, 그리고 월향과 그녀에 의해 되살아난 두 절대자의 시신은 다시 처음과 같은 대치 상태가 되었다.
휘이이.
허나 그 순간.
월향이 다시 죽적을 입에 대었고, 제갈소미의 다급한 외침보다 한발 먼저 이벽의 신형이 땅을 박찼다.
타앙, 쐐애애액.
망설임 없이 직선으로 쏘아졌다.
후우우우웅.
허나 물론, 아무런 방해가 없을 수는 없다. 날아드는 이벽을 향해 권왕의 주먹이 쏘아졌다.
그러나 이벽은.
과감히 그 주먹을 무시했다.
후우욱, 콰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예상대로.
혁대웅이 극척이 뻗어지며 권풍을 상쇄했으며, 동시에 매화검이 이기어술로 쏘아졌다.
사라라락.
매화를 두른 검이 권왕의 좌측을 우회하며 짐짓 월향을 향해 파고들었다.
허나 기실 그것은.
시선을 끌기 위한 유인책이었다.
휘오오오오오.
다행히도 권왕은 걸려들었다.
이내 이벽으로부터 고개를 돌린 권왕이 용권풍의 벽을 일으켰고 매화검의 진로를 틀어막았다.
타앙, 덥석.
그러나 월향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은 권왕 뿐만이 아니었다. 다음 순간, 혈마가 월향을 두 팔로 안아들었다.
타앙, 쐐애애애액.
그리고 냉큼 달아나기 시작했다.
물론, 예의 도마뱀의 형상을 두른 채 땅을 박차는 그 움직임은 쾌속하기 그지없었다. 허나.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취풍쾌검(醉風快劍).
파앙, 파아아앙.
새삼 따라붙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벽의 취풍쾌검은 이미 혈마 혹은 취풍신개의 그것과 동등한 수준의 극쾌에 이르렀으며.
하물며 혼자가 아닌 월향을 안은 채 달아나는 혈마의 움직임은 약간의 어색함을 만들었다.
그리고 동등한 기예들 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속에서, 약간의 어색함은 결코 사소한 차이가 아니었다.
후우우욱.
이내 이벽의 그림자가.
달아나는 혈마의 위를 뒤덮었다.
스윽, 파아아아아아앙.
그 즉시 검을 내뻗었다. 압축된 쾌보의 묘리가 공기를 두드리며 충격파를 일으켰다.
스으윽.
허나 그와 동시에 혈마가 온몸을 웅크렸다. 스스로 충격파를 흡수하며 월향을 보호했다.
타아앙.
혈마의 몸이 땅에 처박혔다.
등거죽의 비늘이 뭉텅 뜯겨나갔으나 시신은 아랑곳 않고 다시 땅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휘이이이.
그리고 그 순간까지도.
월향의 연주는 멈추지 않았다.
“…….”
물론, 이벽은 월향의 화영지정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허나 현재 그녀의 곡조는 매화를 그리고 있지 않았다.
또한 조금 전.
지금과 같은 음산한 곡조가 울려퍼진 순간, 진법과 공명하며 권왕과 혈마의 시신이 차례차례 눈을 떴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따라서.
월향이 말하는 ‘숨겨둔 것’이란 게 무엇이건 간에, 당장 저 연주를 멈춰야만 한다.
파아아아앙.
다시 거리는 금세 좁혀졌다.
시신은 물론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만, 월향을 감싸며 적잖은 손상을 입은 혈마의 속도는 조금 더 느려져 있었다.
후욱.
허나 이벽은 외려 혈마를 조금 앞질렀다. 취풍쾌검의 위력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이미 확인했다.
혈마의 비늘과 강시의 단단한 몸을 넘어 월향을 베기 위해서는 보다 날카로운 검이 필요하다.
고로 이벽은.
적합한 기예를 떠올렸다.
우우우웅.
그 순간 취풍쾌검의 묘리가 사그라들며 이벽의 속도가 조금 주춤했으나 물론 이미 계산한 바였다.
후우욱.
앞질렀던 거리가 다시 좁혀지며 마침내 혈마의 등이 정확히 이벽의 몸 아래에 이르렀다.
사라락.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창공비검(蒼空飛劍).
그 즉시.
나뭇잎이 검을 감싸며, 하나로 모여든 여섯 개의 묘리가 혈마의 등줄기를 파고들려 했다.
움찔.
허나 다시 그 순간.
이벽의 검이 멈추었다.
‘…뭐?’
돌연.
형언하기 어려운 위화감이 이벽의 온몸을 감쌌다. 이대로 검을 뻗는 순간, 외려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는 직감이 스쳤다.
“…정말 미안해요, 소협.”
그리고 혈마의 몸에 안겨있는 월향이 나지막이 말했다. 어느덧 죽적은 입술에서 떨어져 있었다.
* * *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굉음이 터져 나왔다.
아래쪽의 비무대가 폭발했다.
허나 그때 이벽의 시야는 혈마의 몸에 가려져 있었으므로 그 밑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스으으으.
다만.
피어나는 먼지 속에서 혈마의 것이 아닌 ‘또 하나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이내 섬뜩한 예감이 스쳤다.
또한 이유는 명백했다. 먼지 안쪽에서 느껴지는 기감의 종류가 ‘지나치게’ 친숙했기 때문이었다.
부르르.
이벽의 온몸이 떨렸다.
마침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서서히 직감했다. 허나 그것은 동시에 절대로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찰나의 괴리감 속에서.
이벽의 생각이 멈춰버렸다.
타아앙.
그 순간, 혈마가 온몸을 비틀며 방향을 틀었다. 허나 그때까지도 이벽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혈마의 몸이 비켜섬으로써, 이벽은 마침내 비무대를 부수며 땅속에서 솟구쳐오르던 인영을 마주했다.
사라락, 사락.
위를 향해 뻗어진 검은.
나뭇잎을 두르고 있었으며.
그 사소한 움직임 하나하나마저 이벽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했다. 청강유엽검식, 창공비검이었다.
후욱, 콰아아아아아앙.
이내 이벽의 검과 충돌했다.
그때, 이벽의 검에는 미처 혈마의 등을 파고들지 못한 창공비검의 묘리가 맴돌고 있었다.
즉, 다시 말해.
서로 같은 검이 충돌했다.
나뭇잎이 부딪으며 상잔했다.
터어어어엉.
이벽의 몸이 튕겨 났다.
“…커억!”
털썩.
일 장 가까이 밀려난 뒤 가까스로 내려앉았으나, 제대로 된 착지조차 하지 못한 채 이벽은 무릎을 꿇고 말았다.
서로 같은 기예라고 한들.
마음이 흔들린 창공비검과 무념(無念)의 창공비검이 부딪힌 이상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쿨럭!”
툭, 투둑.
이벽은 피를 토했다.
내상은 가볍지 않았다.
앞선 싸움 속에서 입은 내상에 더해 불의의 일격을 허용한 몸이 삐걱거림을 감지했다.
허나 그보다도.
더욱 깊은 것은 두려움이었다.
이벽은 고개를 들고 싶지 않았다. 허나 물론 그럴 수는 없었으므로, 마침내 저만치에 착지한 인영을 확인했다.
사락, 사라락.
나뭇잎이 흩날렸다.
월향이 일으켜 세운 ‘세 번째 시신’은 역시,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문주님.”
낙검문주 이진천의 시신은.
화정촌의 마을 묘터에 묻혔다.
그러한 스승의 시신이 어째서 이곳 제남의 비무대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지, 이벽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러나.
월향, 하오문주 지소약은.
화정촌과는 채 반나절의 거리도 떨어져 있지 않은 회택의 천향루에 그 거처를 두고 있었으며.
마음만 먹는다면.
무림인 따윈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마을에서 시신 하나를 꺼내어 어딘가에 ‘숨겨두는 것’쯤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을 터였다.
부르르.
이벽의 어깨가 경련했다.
해일 같은 감정이 밀려들었다.
월향은 이벽을 배신했고, 혈마의 정체는 취풍신개였으며, 급기야는 죽은 스승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마치 처음부터 계획되었던 양 자신을 몰아세우는 듯했다.
저벅.
허나 이벽의 상태가 어찌 되었건.
이진천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벽은 명백한 살기를 지닌 채 다가오는 스승의 시신을 보았다.
‘…싸워야 한다.’
간신히 생각을 일으켰다.
사라락, 사락.
허나 그렇다고 한들 스승을 감싼 청강유엽공의 나뭇잎을, 자신이 지닌 거의 모든 것의 뿌리에 해당하는 사내의 힘을 무엇으로 넘어서야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야, 이벼억! 이 멍청한 새끼야―!”
허나 그때였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그건 그냥 ‘빈 껍데기’잖아! 승산이 없으면 뒤로 빠져야지 왜 등신처럼 모가지를 쭉 내밀고 있어!”
“……!”
타아앙.
이벽은 몸을 빼내었다.
사저의 처절한 목소리가 날아든 순간, 아주 조금이나마 냉정함이 되돌아왔다.
스윽.
그러자 그 순간.
이진천의 검이 뻗어졌다.
쩌저적, 쩌적.
그리고 십여 자루의 ‘붉은 검’들이 이진천의 주변으로 빠르게 맺혀 들었다.
쐐애애애액.
적파직검이 쏘아졌다.
쩌저저적.
이벽 또한 가까스로 적파직검을 일으켰다. 마주 쏘아진 검과 검들이 허공에서 뒤엉켜 들었다.
후욱, 콰아앙, 콰아아아아앙.
검들이 남김없이 상잔했고.
붉은 파편들이 비산했다. 허나.
타아앙.
그 순간, 이진천의 머리 위로 혈마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뱀의 아가리’가 나타났다.
쐐애애애액, 카드득.
대각선으로 쇄도함과 동시에 뱀의 아가리가 혈기의 파편들을 게걸스럽게 삼키기 시작했다.
타앗, 후욱.
이진천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취풍쾌검과는 다르되 ‘극쾌의 묘리’를 품은 나뭇잎의 신형이 이벽을 향해 쏘아졌다.
* * *
비틀.
“헉, 케헥……!”
파진성의 신형이 흔들렸다.
호흡은 턱 끝까지 차올랐으며 핏물을 흠뻑 뒤집어쓴 무복은 온통 시뻘겋게 물들어있었다.
대부분은 적의 피였으나.
일부는 자신의 것이기도 했다.
기실 파진성은 난전 중에 자신이 어디를 어떻게 베였는지조차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아직 쓰러질 정도의 상처를 입지 않았으므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스윽.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파진성은 이내 오른손으로 눈에 흘러내린 피를 닦아내었다.
타앗.
“크아악―! 이 더러운 사파의―”
바로 그때.
악에 바친 기합과 함께 서슬퍼런 검이 날아들었다. 허나 파진성은 고개를 돌리지조차 않았다.
푸우욱.
“커억, 크르륵!”
날아들던 인영은.
늘어놓던 말을 마치지도 못한 채 답답한 신음을 토해내었다. 어느새 사내의 목덜미에는 비수가 틀어박혀 있었다.
털썩.
즉사한 시신이 널브러졌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사내의 얼굴에는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듯 경악이 서려 있었다.
“하아… 살아있어요, 파 소협?”
“케헤헤! 암, 팔팔하고 말고! 쿨럭, 쥐방울 너야말로… 후우! 지쳤으면 적당히, 허억, 빠져있던가 해라! 케헤, 쿨러억! 커헉!”
“…허세 부릴 거면 피나 토하질 말던가.”
공손수가 쓴웃음을 흘렸다.
허나 창백하게 질린 공손수의 안색 또한 그리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전면전이 벌어진 이래.
두 사람은 최선을 다했다.
전장 이곳저곳을 누비며 위기에 처한 아군을 돕고, 십여 개의 목을 베어 넘겼다.
심지어 개중에는.
초절정의 고수 또한 있었다.
비무회 도중 마침내 벽을 넘어선 두 사람은 자신들의 힘이 초절정 이상의 싸움에서도 능히 통한다는 것을 깨우쳤던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상황은 여전히 열세였다.
카아아아아아앙.
“큭―!!”
“가주, 우측을 조심하시오―!!”
저만치 최전선에는.
당가주 당명오와 개방주 철면개, 하오문의 초연서와 고 노야 등을 비롯한 아군의 고수들이 지상과 공중을 오가며 분전하고 있었다.
허나 두어 명을 베어 넘겼음에도.
아군과 대비했을 때, 적진에 존재하는 초절정 이상의 머릿수는 여전히 두 배 이상이었다.
물론, 엇비슷한 경지라고 한들.
한 명 한 명의 실력은 아군 쪽이 우위에 있었다. 마공으로 끌어올린 깨달음은 결국 어설픈 흔적을 남기게 되는 듯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열세인 상황에서도 전선은 무너지지 않았고, 싸움은 얼추 치열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허나.
결국 손 하나는 여러 개의 손을 당해낼 수 없으며, 아군 고수들은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상황은 서서히.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허나 물론 ‘한계’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다. 한 명이라도 무너지는 순간.
주변의 모든 아군들이 함께 무너지게 될 터임을 모두가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케헤.”
또한 그렇기에.
늘어져 쉬고 있을 수는 없다.
후우, 파진성은 호흡을 삼켰다. 울컥 솟구치는 핏물 또한 함께 억지로 씹어 삼켰다.
“그럼 2차 달려볼까, 케헤헤!”
“…뭐, 그래야겠죠? 별로 즐거운 연회는 아니지만요.”
두 사람은 눈을 마주했다. 이내 다시 최전선을 향해 가세하려 했다. 허나 그때였다.
까드드득, 까득.
끼기긱, 끼긱.
전장의 소란 속에서.
섬뜩한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또한 그것은 두 사람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소리이기도 했다.
훅.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후방의 중상자들, 혹은 이미 유명한 달리한 아군들 사이에서 ‘몇몇’이 몸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허나 그 몰골은.
이미 살아있는 이가 아니었다.
“대체 왜… 마교놈들도 얌전히 죽어있는데 오히려 개방도들이 강시로 되살아나고 있는 걸까요?”
“낸들 알겠냐? 케헤, 쿨러억!”
“…에효.”
공손수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