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 Heaven examination RAW novel - chapter (394)
402화. 창생과 창공 (2)
휘오오오.
전쟁이 멈춘 들판 위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치열했던 혈전은 북두천존 혜능, 그리고 아미의 무인들이 합류한 시점에서 정도맹과 구 무림맹, 사패련을 비롯한 연합 측으로 무게가 기울었으며.
의혈맹주 권왕 황보혁의 죽음이 선포된 순간, 살아남은 의혈맹의 무인들은 하나둘 무기를 버린 채 투항을 택했다.
그렇게 마침내.
전쟁은 수습 단계로 접어들었다.
사라락.
허나 그즈음.
상공 저편에서 나뭇잎이 일었다.
휘오오오오.
“…….”
그리고 찰나의 순간.
하늘과 땅 사이를 뒤덮으며 대하(大河)를 이룬 나뭇잎의 물결 속에서 뭇 무인들은 피아를 가릴 것 없이 넋이 나가고 말았다.
사라락, 사락.
그것은 마치.
인세의 전쟁이나 승패의 향방 따윈 아무런 의미도 없게끔 만드는 대자연의 흐름 그 자체와 같았으며.
동시에 강물을 이루는 무수한 나뭇잎 한 장 한 장 모두가 절대지경의 깨달음이 함축된 기예와 같았다.
“…이건 또 뭔 상황이냐.”
케헤, 파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전장을 종횡하며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은 이후, 땅 위에 주저앉아 호흡을 고르고 있던 찰나였다.
물론 앞서 이벽으로부터 청강유엽공의 구결을 전수 받은 입장이기에.
하늘을 뒤덮은 나뭇잎의 강이 이벽으로부터 비롯된 기예임을 어떻게든 알아볼 수는 있었다.
사락, 사라라락.
아니, 그러나.
저것은 ‘기예’ 따위가 아니었다.
마치 제방을 무너뜨리며 일거에 쏟아지는 홍수처럼, 가진바 힘이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파진성의 시선이 하늘을 훑었다.
이내 저만치에서 나뭇잎에 둘러싸인 이벽의 그림자와 더불어 몇몇의 인영을 발견한 파진성이 창백한 미소를 지었다.
“…케헤, 웃음도 안 나오네.”
철컥.
이내 다시 칼을 잡았다. 돌처럼 딱딱해진 몸을 가누며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려 했다.
꾸욱.
“…멈춰요. 파 소협.”
허나 그때 소매가 잡아당겨졌다.
“뭐 어떡하려구요?”
물론 등을 맞대고 앉아있던 공손수였다. 내력의 결핍으로 하얗게 질린 안색이 서로를 마주했다.
“어쩌긴 뭘 어째? 우리 전(前) 대주가 또 옛날처럼 살짝 맛이 간 것 같은데… 뭐라도 해보긴 해봐야지.”
“…….”
꾸욱, 공손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가지 마요.”
“…뭐?”
“우리 힘으로 오라버니를 도울 수 있다는 티끌만큼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저건 터무니없는 것도 도가 지나치잖아요.”
움찔.
파진성의 미간이 작게 흔들렸다.
가능성이 있건 없건, 이벽이 위기에 처한 이상 공손수가 몸을 사릴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바르르.
허나 공손수의 잘게 떨리는 손을 본 순간, 파진성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쥐방울, 너.”
파진성의 표정이 굳었다.
차마 그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한편.
이미 투항하여 무릎을 꿇은 의혈맹의 무인들 사이에도 넋이 나간 듯한 눈으로 이벽을 주시하고 있는 사내가 한 명 있었다.
“…핫, 하핫.”
돌연 사내는 마른 웃음을 흘렸다.
하늘을 메운 나뭇잎의 강 아래, 무림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하나같이 침묵에 빠진 이 상황이 퍽 유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능히 ‘천하제일의 힘’이었다.
“하하핫, 으하하하핫―!”
웃음은 이내 괴소로 자라났다.
부르르.
사내의 등줄기에 전율이 흘렀다.
기실 사내는 자신의 손으로 이벽의 목을 베고자 이 자리에까지 다다른 입장이었다.
오로지 그 일념만을 위해.
세가를 떠나 이곳 황보세가로 향했으며, 내어진 가르침이 마공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마공의 도움에 힘입어 능히 이벽을 능가하는 힘을 손에 넣었노라 생각했다.
허나.
그것이 터무니없는 오만함이었음이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만난 이벽은.
이미 천하십대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 명의 절대자가 되어있었으며, 마공 따위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검으로 경천동지의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마침내.
‘천하제일인’이 된 것이다.
“하하하핫! 크하하하하하핫!”
사내는 미친 듯이 웃었다.
애당초 자신이 이벽을 죽이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다만 사내는.
오래전부터 자신이 나고 자란 세가와 그 검을 천하무림에 널리 증명하고자 했고,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이벽에 의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어졌다.
사라라락.
“……!”
허나 다음 순간.
사내의 웃음이 뚝 멈추었다.
이내 서서히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일대를 메운 청강유엽공의 흐름이 결코 정상이 아님을 마침내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건 사내는.
평생 동안 이벽과 같은 무공을 익혀온 입장이기에, 지금의 이벽이 처한 상황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청강유엽공의 순수함이.
무언가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다.
“…감히.”
타아앙.
그 순간, 사내는.
홀린 듯이 땅을 박찼다.
저만치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우우우웅.
대기가 무겁게 요동쳤다.
침묵 속에서 혁대웅의 손에 쥐어진 무형의 창이 압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무게를 더해갔고.
언미희의 주먹 위로는 금빛과 흰빛이 한 데 뒤엉켰다. 언가권과 소림의 기예가 한 손에 응축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권 안에 두 개의 묘리를 동시에 담는다는 것은 무학의 상식을 벗어나는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팔이 터져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허나 언미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은 스스로를 도외시한 채, 다만 자신이 이룬 경지로써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강한 일격’을 쥐어 짜내고 있는 것이다.
스윽.
그리고 다음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혔다. 끄덕,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욱.
“크하압―!!”
“하앗―!”
이내 창과 주먹이 뻗어졌다.
퍼억, 휘오오오오오오.
패왕의 무형창, 그리고 백금빛의 일권이 일거에 쏘아졌다. 두 갈래의 공력이 이벽을 향해 나아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목전에서 서로 충돌했다.
퍼어어어어어엉.
파사삭, 사라라라락.
그 순간, 나뭇잎의 강이 격랑처럼 흔들렸고 이내 좌우로 갈라지며 ‘이벽을 향한 길’이 열렸다.
후욱.
그리고 그 안을 향해.
송영영이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벌어진 길을 따라 신형이 표홀하게 솟구쳤다.
사라라락.
허나 길은 빠르게 좁혀들었다.
채 일 장도 나아가기 전에, 절대지경의 나뭇잎들이 다시금 송영영의 앞길을 메우기 시작했다.
화아악.
그러나 다시 그 순간.
지척에서 매화가 피어났다.
송영영의 뒤를 따라 나뭇잎 사이로 파고든 제갈소미의 이기어검이 줄기줄기 꽃을 쏟아낸 것이다.
사라라락, 카아앙.
매화와 나뭇잎이 상잔하며 잠시의 시간을 끌었고, 그 사이 송영영이 다시 일 장을 나아갔다.
서걱, 카아아아앙.
허나.
화산의 정수를 담은 매화로도 몰아치는 여섯 개의 기예를 상대로는 그 정도가 한계였다.
타아앙.
이내 기운을 잃은 매화검이 나뭇잎에 휩쓸린 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휘오오오오.
다시 나뭇잎이 쇄도했다. 그러고도 송영영과 이벽의 거리는 아직도 일 장가량이 남아있었다.
“…흥.”
허나 송영영의 안색은 태연했다.
우우웅.
이내 그 손에 쥐어진 검 끝에서 태극의 장막이 펼쳐졌고 호신강기처럼 송영영의 몸을 감쌌다.
후욱, 카가가가가강.
그리고 마침내.
태극혜검의 공능으로 말미암아 검이 닿을 거리까지 이벽에게로 다가선 송영영이 그 즉시 검을 뻗었다.
후욱.
태극의 묘리를 품은 검이.
나뭇잎 사이를 파고들었다.
훅, 카아아아앙.
허나 그 순간.
당연하다는 듯 이벽의 검이 마주 휘둘러졌고, 너무 쉽게 송영영의 검이 쳐내어졌다.
말인즉슨 이벽의 몸은.
무수한 나뭇잎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면서도, 송영영의 검이 파고드는 것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흥, 역시 그렇구나?”
송영영이 콧방귀를 뀌었다.
허나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다. 찰나의 순간, 이벽과 눈을 마주했다.
무아지경에 빠진 눈빛 안쪽에서, 서서히 드리워지는 ‘낯설지 않은 존재감’을 엿보았다.
으득.
송영영이 이를 악물었다.
이벽의 저항으로 말미암아.
등천의 힘을 손에 넣지 못했을 뿐, 육신의 통제가 넘어가 버린 이상, 상대는 이미 천마와 다를 바가 없다.
그저 보통의 일검만으로.
쉬이 쓰러뜨릴 수 있을 리 없다.
끼기긱, 끼긱.
이내 다음 순간.
송영영이 왼손을 뻗었다.
그 끝에서 다시금 태극의 장막이 펼쳐졌고 음과 양이 뒤집히며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역태극의 기예를 통해.
찰나의 순간 이벽의 움직임을 봉쇄함으로써, 나뭇잎이 단전을 파고들게끔 유도할 생각인 것이다.
울컥.
“…쿨럭.”
허나 그 즉시.
한 움큼의 피가 송영영의 입 밖으로 터져나갔다. 기실 천마의 씨앗으로부터 해방된 지금.
다시금 역천의 힘을 일으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목숨을 깎아 먹는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카가가가가가강.
쩌저적, 쩌적.
심지어는.
심력이 분산되자 나뭇잎으로부터 송영영의 몸을 보호하고 있던 태극혜검의 장벽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송영영의 눈 위로 찰나의 동요가 스쳤다. 허나 이내 다시금 평소의 고요함을 되찾았다.
조금 전, 이벽은.
자신을 위해 천마의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송영영 또한 망설이지 않았다.
애당초.
구해달라고 하지도 않았음에도 멋대로 구해졌을 뿐, 천마와 함께 공멸하는 것은 처음부터 자신의 역할이었다.
“…멍청이 대주 같으니.”
송영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훗, 허나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 * *
우우우우웅.
한편, 송영영이 궁지에 몰리는 것을 지켜본 나머지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예를 일으켰다.
어쩌면 더 늦기 전에 다시금 누군가가 안으로 뛰어들어야 할지 모른다는 직감이 스친 것이다.
후욱, 쐐애애액.
허나 바로 그때였다.
“…뭐, 뭐야?!”
일순 혁대웅이 당혹스런 목소리를 내었다. 정체불명의 인영 하나가 갑작스레 발아래에서 솟구친 것이다.
허나 지척에 이를 때까지 인영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은 혁대웅을 퍽 당황케 했다.
“하, 이거 오랜만에 뵙는군요.”
“…당신 누군데? 날 알아요?”
혁대웅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기억 속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으나 좀처럼 그 정체가 떠오르지 않았던 탓이다.
아니, 그러나 물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누군지도 모를 이와 대화나 나누고 있을 여유는 없는 것이다.
“하핫! 그렇군요. 유감이지만 자기소개나 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군요. 그보다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허나 상대 또한.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긴 뭘 어떻게 해요? 됐고 여긴 위험하니까 괜히 휘말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지던가―”
“그야 여기 있는 모두가 우리 ‘형님’을 구하려는 것 아닙니까? 분명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텐데요?”
“……!”
흠칫.
그제사 혁대웅은 마침내.
사내의 정체를 떠올렸다.
“당신… 아니, 네놈―!”
“…잠깐, 곰탱이! 가만 있어 봐!”
허나 그때였다.
제갈소미가 다가서며 혁대웅의 앞을 가로막았다. 물론, 그녀 또한 사내의 정체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내 제갈소미는 사내의 눈빛에 서린 광기를 감지했다. 허나 그 너머에 자리하고 있는 기세 또한 읽어내었다.
사라락, 사락.
또한 무엇보다도.
사내의 검과 몸 주변에 서린 기운은 이벽의 그것과 같은 종류의 나뭇잎이었다.
“뭐, 저를 믿지 못하시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허나… 제가 만일 형님을 해치고자 한다면 이 상황에서 굳이 나설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사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잠시, 제갈소미는 침묵했다.
“…이벽을 구하고 싶다면 저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직접 단전을 부숴야만 해. 너, 할 수 있겠어?”
허나 이내.
판단을 마친 제갈소미가 굳은 목소리를 내었다. 움찔, 사내의 표정이 흔들렸다.
“…핫, 크하핫, 아하하핫―!”
이내 허리를 젖히며 웃어 재꼈다.
“으하하핫! 그것참… 공교롭군요. 할 수 있겠냐고요?! 그야 물론이지요! 이미 한 번 해냈던 일을… 두 번 못 할 이유는 없지요! 아하하하핫!”
후욱.
그리고 다음 순간.
허리가 도로 펴짐과 동시에 사내의 신형이 쏜살처럼 솟구쳤다. 그대로 일행을 지나쳤다.
‘나뭇잎의 강’ 안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미, 미친!”
혁대웅이 기함했다.
말마따나 그 모습은 마치.
광인의 자살행위와 같았다.
후우욱. 서걱, 파아아아앙.
그리고 당연하게도 강물을 이루는 무수한 나뭇잎이 사내의 몸을 마구 난자하기 시작했다.
서걱, 파아아앙.
“…크하! 으하하!”
허나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사내는 괴소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맨몸으로 기예 속에 뛰어들고도 최소한 ‘즉사에 이르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서걱, 후우욱.
또한 그 이유는 퍽 명백했다.
사내의 몸을 두른 기운은 이벽의 그것과 같았으며, 어설프게나마 나뭇잎의 흐름 속에 ‘동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욱.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철컥.
이내 이벽의 일 장 안쪽까지 다가선 순간, 사내의 검끝이 위를 향해 날카롭게 뻗어졌다.
번뜩.
피투성이의 육신 안쪽에서.
날카로운 두 눈이 빛을 냈다.
청강유엽검식(淸江流葉劍式).
창공비검(蒼空飛劍).
후욱, 쐐애애액.
사내의 몸이.
이벽을 향해 솟구쳤다.
“……!”
그리고 그즈음.
마침내 송영영 또한 저만치 아래에서 이벽을 향해 날아드는 사내의 존재를 감지했다.
후우욱, 카아아아아앙.
그 즉시 송영영은 채 완성되지 못한 역태극의 기예를 내뻗었다. 움찔, 찰나의 흡입력이 일어나며 이벽의 몸을 붙들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아주 잠깐의 빈틈을 만들어냈다.
후우욱.
“좋군요. 하핫!”
허나 낯선 사내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으며, 다음 순간 이미 이벽의 등 뒤까지 도달해 있었다.
후욱, 퍼어어어어억.
그리고 사내의 검끝이.
이벽의 등을 파고들었다.
“……!”
번뜩.
이벽의 눈이 흔들렸다.
찰나의 순간 눈빛이 돌아왔다.
“…허억!”
그리 낯설지 않은 고통과 함께 이벽의 무아지경이 깨어졌고, 시선이 자신의 하복부를 뚫고 나온 검을 바라보았다.
한순간, 이벽은.
‘오래된 악몽’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허나.
“형님. 형님! 퍽 간만에 인사드리는군요! 예나 지금이나 뒤가 비어있는 건 여전하십니다. 하핫!”
그 순간.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말했다.
다만 육신은 여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벽은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선우…협.”
사내의 정체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선우세가의 후손이었다. 허나 그 또한 ‘검치의 핏줄’이기도 했다.
“헌데… 이게 웬 추태입니까? 본가의 검이야말로 천하제일의 기예임을 만천하에 증명해놓고선… 마지막에 와서 무슨 꼴이냐구요?”
하핫, 사내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허나 걱정 마시죠. 이 아우가… 도와드릴 테니까요. 예, 힘닿는 데까지… 세가를 높은 곳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이… 형님과 저의 오랜 꿈이었지요.”
부르르르.
그 순간 이벽은.
복부로 파고든 사내의 검이 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사내의 목소리에 섞인 숨결이 서서히 흐려지는 것을 감지했다.
허나 그때까지도.
이벽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퍼석.
그리고 마침내.
단전 안에 틀어박혀 있던 ‘무언가’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소리가 이벽의 귓가를 스쳤다.
창공비검의 여섯 묘리가.
창생검의 기예를 끊어놓았다.
후우욱, 사라라락.
마침내 자유로워진 나뭇잎이.
깃털처럼 온 천하를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