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o Machine RAW novel - Chapter (193)
# 59장 구음절맥 (2) #
가슴을 파고드는 좌수는 여군의 혈도 제압술을 펼치기 위함이었다.
천여운의 손이 그녀의 가슴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쩌저적!
그녀의 가슴 쪽에 하얀 서리들이 응집해서는 얼음으로 된 막을 만들어냈다.
천여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기이한 능력이구나.’
잠시 멈칫했던 천여운이 손가락에 공력을 발산하여 얼음 막을 단숨에 꿰뚫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짧은 틈에 여군이 붙잡고 있던 분왕을 놓고서 천여운을 향해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그를 얼리려는 게 아니었다.
-휘이이잉!
“이건?”
여군이 손을 휘두르는 순간에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한기의 바람이 회오리처럼 일어나며, 그녀의 곁에 있던 분왕과 천여운이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으아악!”
두 팔이 반쯤 얼어붙었던 분왕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뒤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그의 몸이 부웅 떠올라 날아가는 것을 백기가 잡아냈다.
-팍!
“큭!”
분왕을 잡기는 했지만 그의 몸에 실려 있는 강대한 진기의 여파로 백기 또한 한참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진기다.’
주변의 공기를 일렁이게 할 만큼 강한 것을 알았지만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거의 스무 보 가까이 바닥을 질질 끌고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고, 고마워.”
분왕이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인사했다.
백기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전의 말투를 생각했을 때 건방지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꽤나 솔직한 유형인 것 같았다.
-파스슥!
“끄윽!”
분왕이 얼어붙은 자신의 팔목을 바라보았다.
내공으로 최대한 보호했으나 피부 쪽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고통스러워하는 분왕의 모습에 백기가 말없이 그의 얼어붙은 부위에 내공을 불어넣어서 체온이 올라가도록 도왔다.
“너 정말 괜찮은 녀석이구나.”
낯간지러운 말투로 고마워하는 분왕에게 백기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답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운기해서 한기나 몰아내라.”
“그, 그래. 그런데 이러고 있을 틈이 없어. 누이를 막지 못하면 더 안 좋은 사태가 벌어질지도 몰라.”
전에도 한 번 폭주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자신의 아버지가 함께 있었기에 음기가 완전히 개방되기 전에 혈도제압술로 어떻게 막아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버지가 자리를 비웠을 때 일이 터졌다.
‘약으로 양기를 보충하는 것은 임시처방에 불과해요.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누이 분은 음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폭주할 겁니다.’
죽은 감미양이 했던 경고였다.
당시에 그녀는 자신의 의술 실력으로는 완치시키는게 무리라고 했다.
오직 신의만이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기에 그를 찾기 위해서 아버지가 근 일 년 동안이나 백방으로 중원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그 정체를 숨겨야 했기에 혼자서 신의를 찾아내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크윽.”
완전히 폭주한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끝없는 음기는 아버지가 아니고는 감당할 수 있는 자가 없을 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의 눈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이럴 수가?”
방금 전의 음기의 폭풍에 날아가리라 여겼던 천여운이 고작 다섯 보 정도만 밀려난 상태에서 새하얀 도를 뽑아서 차가운 한기를 막아내고 있었다.
‘강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괴물이었다.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머릿속에서 아버지와 비교하고 있었다.
백기가 담담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분이 막을 수 없다면 안 좋은 사태가 벌어지겠지. 그럴 일은 없다고 보지만.”
천여운을 알게 된 이후로 그의 패배를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아무리 구음절맥이라고 할지라도 천여운이 죽이지 못할 적은 없다고 믿고 있는 백기였다.
‘내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가.’
그런 강한 믿음에 분왕이 입을 다물고 운기에 집중했다.
단번에 날려버릴 요량이었는데 천여운이 한기를 잘 막아내자 여군의 하얀 눈동자가 차츰 투명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고오오오!
그러자 그녀의 주변의 공기가 더욱 일렁이며 사방으로 하얀 서리들이 일어났다.
자신의 주위만 두르고 있던 것이 그 반경이 굉장히 넓어졌다.
이에 천여운의 눈빛이 더욱 무거워져갔다.
‘내공이 정말로 무한정인건가.’
이 정도의 진기를 발산하면서도 더욱 강대해지는 것이 믿기 힘들 지경이었다.
무인이 내공을 갈고 닦아서 기운을 발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여군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팟!
사방으로 떠오른 하얀 서리들이 응집하더니 살아있는 것처럼 수백 개의 얼음파편이 되었다.
“이런…..”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는 천여운조차 인상이 굳어졌다.
그저 음기가 폭주했다고만 치부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백기와 분왕 또한 입이 벌어졌다.
이게 정녕 사람의 손에서 펼쳐지는 능력이 맞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얼음 파편에 천여운이 둘러싸여 있다.
‘이걸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분왕 자신이 저 한 가운데에 있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공격을 막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때 여군이 손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그 순간 수백 개의 얼음 파편이 일제히 천여운을 향해서 쇄도했다.
-슈슈슈슈슈슉!
“위, 위험합니다!”
분왕의 운기를 돕던 백기가 놀라서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앞뒤 할 것 없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얼음파편들은 빈틈조차 주지 않고 천여운을 단숨에 얼음꼬챙이로 만들 기세였다.
찰나의 순간 천여운의 선택은 지극히 단순했다.
‘나노. 증강현실 개안. 얼음파편 경로분석.’
[사용자의 두 눈에 증강현실을 개안합니다.]나노의 목소리와 함께 천여운의 동공이 떨리면서 증강현실이 개안되었다.
[얼음 파편의 공격 경로를 분석해서 표시합니다.]-삐삐삐삐삐삐삐삐!
하얀 빛의 입자가 선을 그리더니 이내 사방에서 쇄도해오는 얼음 파편의 이동 경로가 붉은 선으로 그려졌다.
‘보인다.’
공격 경로가 파악되자, 육안으로 미처 판별이 되지 않는 활로가 보였다.
-탓!
천여운이 발이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번개처럼 뻗어나갔다.
현경의 경지에 오르면서 경공이 훨씬 빨라진 천여운의 시야로 얼음 파편들이 천천히 그를 향해 쇄도해왔다.
-채채채채채챙!
천여운이 백룡도를 휘두르며 얼음파편을 부쉈다.
애초에 가만히 서서 전 방위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천여운은 앞으로 치고나가면서 앞과 양 옆으로 날아오는 공격만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그 선택은 옳았다.
-채채채챙!
백룡도의 도결에 닿은 얼음 파편들이 쉽게 부서졌다.
천여운의 신형은 빠르게 파편들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갔다.
“대, 대단하다!”
분왕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설마 저것을 정면돌파 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대단한 배짱이라 할 수 있었다.
-채채채채채챙!
부서지는 얼음 파편들을 가로지르며 천여운은 예상이 들어맞음을 다행스러워했다.
‘얼음 파편에 진기가 실린 것은 아니다.’
겉으로만 본다면 꼭 이기어검처럼 보였으나 아니었다.
무한한 음기의 내공으로 수많은 얼음파편을 만들어내 단순히 물건을 날리는 수준에 불과한 공격을 행하고 있었다.
여기에 진기마저 실려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말이다.
-고오오오!
천여운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꼈는지 그녀의 투명한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대로라면 금방 닿을 것만 같았다.
여군이 다른 한손을 앞으로 뻗으며 위로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바닥에서 새하얀 김이 흘러나오더니 이내 서리들이 빠르게 응집하며 거대한 얼음장벽이 위로 솟구쳤다.
-쿠쿠쿠쿠쿠쿠!
“세상에! 저런 것도 가능한가?”
은발을 휘날리며 보이는 그녀의 능력들은 정말 기이했다.
얼음 장벽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보이는 그대로 얼음의 마녀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수법은 그녀에게 악수였다.
자신의 시야마저도 가려지면서 천여운의 경로를 향해 무한정으로 쇄도하던 얼음파편들이 멈춰지고 말았다.
‘기회다.’
천여운이 눈앞에 가로막고 있는 얼음장벽을 향해 백룡도를 약간 비스듬하게 일(一)자로 휘둘렀다.
백룡도에서 생성된 푸른빛 도강이 그것을 갈랐다.
-촤아아아악!
-쿠르르르르!
갈라진 얼음장벽이 옆으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천여운이 무너져 내리는 얼음 장벽 사이를 통과해 여군의 앞을 파고들었다.
“!?”
-솨아아아아아!
“늦었어!”
당황한 여군이 전신에서 강한 한기를 발산하며 막아내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천여운의 손이 더욱 빨랐다.
-타타타탁!
천여운의 좌수가 그녀의 가슴을 비롯한 단전 쪽에 있는 혈도를 눌렀다.
심후한 공력이 담긴 손길에 경맥 사이에 흐르던 진기가 막히면서 여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한기가 줄어들었다.
‘무슨 음기가 이렇게 강하지?’
보통 혈도를 짚을 때 화경의 고수라도 오성의 공력 이상을 쓴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근 칠성에 가까운 공력으로 타혈을 했는데도 음기가 완전히 끊이지 않고 전신에서 흘러나왔다.
-움찔움찔!
더군다나 마혈(痲穴)도 같이 짚었는데도 몸이 움직였다.
천여운이 다시 구성의 공력으로 기절하도록 훈혈을 타혈했다.
-스르륵!
그제야 여군의 하얀 눈꺼풀이 무겁게 덮이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를 보면서 천여운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휴우…..”
겨우 사태를 진정시킨 것이었다.
이것을 지켜보던 백기와 분왕이 얼른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분왕이 다소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저, 정말로 제 누이를 제압하실 줄이야. 정말 대단합니다!”
거의 반신반의 했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고는 폭주가 계속 이어질 거라 예상했던 그였다.
문제는 그 폭주의 끝에 여군이 목숨이 다할 지도 몰라서 걱정을 했었는데, 모든 기운을 소진하기 전에 막아서 다행이었다.
‘이 녀석도 상태가 좋지 않군.’
분왕의 오른팔의 움직임이 어색했다.
백기가 내공을 불어넣어서 도왔지만, 얼었던 피부가 보랏빛으로 변색되어 치료가 시급해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심각한 것은 여군이었다.
-불룩불룩!
혈도제압술로 음기의 흐름을 통제했더니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여전히 체내의 음기가 폭주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천여운이 심각한 목소리로 백기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서둘러서 지부로 가야겠다.”
이대로 내버려뒀다가는 혈도를 제압해놓은 것이 풀려서 다시 폭주가 이어질 우려가 있었다.
동의하는지 백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여운이 쓰러져 있는 여군의 몸을 어깨에 걸쳤다.
백기에게 맡기기에는 여전히 음기가 흘러나와서 상당히 위험했다.
“저기 제 누이를 어쩌시려고?”
“감미양의 조모에게 데려가려고 한다.”
“아! 하지만 그 여자의 조모가 뛰어난 의원이라고 해도 지금 제 누이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을지…..”
분왕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죽은 감미양의 말했던 대로 약은 임시조치에 불과해보였다.
그런 분왕에게 천여운이 담담하게 말했다.
“뭐, 신의도 고칠 수 없다면 정말 어찌할 수 없다는 거겠지. 서둘러야 하니 따라오기나 해라.”
“넷? 시, 신의?”
-팟!
그 말과 함께 천여운이 나머지 일행들이 있는 황산 쪽으로 먼저 경공을 펼쳤다.
신의라는 말에 당황해하는 분왕에게 백기가 말했다.
“……감미양의 조모가 신의다.”
“뭐라고?”
이에 분왕의 두 눈이 커졌다.
그렇게 아버지와 자신이 찾아 헤매던 신의가 감미양의 조모란 말인가.
놀라는 한편으로 어이가 없었다.
몇 차례나 그녀에게 약을 받아갈 동안 한 번도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진작 알려줬으면 좋았잖아!’
감미양이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원래는 분왕의 아버지가 수적들인 용호채를 없애려고 하는 것을 감미양이 여군에게 약을 제조해주는 대가로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만 놀라하고 따라오기나 해라.”
백기의 말을 듣고서야 분왕은 정신을 차리고 일단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죽어가는 누이를 살려야 하니 말이다.
* * *
황산에 있는 일행들과 합류한 천여운은 서둘러 나루터를 찾았다.
황하만 건너서 서둘러 남하하면 반나절 내로 호남 최북부에 있는 마교의 지부로 갈 수 있다.
그곳에 신의 감로수와 문규, 호상화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두운 새벽이었기 때문에 배를 구할 수 있으려나 걱정했는데, 밤늦게도 운영하는 나루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강을 건너서 쉬지 않고 경공을 펼친 그들은 마교의 지부에 도착했다.
“미천한 신도가 신교의 교주님을 뵙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이른 아침이었지만 천여운의 방문에 호남 최북부 지부장 대원이 의복도 제대로 갖춰입지 못하고 버선발로 대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수장인 교주가 친히 왕림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 일행 앞으로 백 명이 넘는 교도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마, 마교의 교주라고?’
덕분에 분왕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마교의 영역인 호남성으로 건너간 것도 모자라서, 그 지부에 들어가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었다.
설마 십만대산의 주인일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역시 환골탈태를 한 게 틀림없어.’
더욱 그를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
여군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기에 천여운이 서둘러 신의가 머무는 거처를 물었다.
“지금 제 일 객당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가시지요.”
지부장 대원이 앞장서서 지부 내 객당으로 안내했다.
천여운이 뒤쫓아서 걸어오고 있는 사 장로 양단화와 백기에게 말했다.
“양 장로와 백기는 잠시 다른 객당에서 아기와 시신을 가지고 대기하고 있으세요.”
“아! 알겠습니다.”
“충!”
당장에 음기가 폭주하는 여군을 치료해야 하는데, 신의 감로수에게 용호채에 있었던 자초지종을 설명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급한 불부터 꺼야 하기 때문에 천여운은 그들을 대기하게 했다.
“아 저기 계시는군요.”
지부장 대원이 손바닥으로 객당의 대청 쪽을 가리켰다.
마침 제 일 객당에서 신의 감로수가 문규, 호상화와 함께 대청 위에 상을 펴놓고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신의의 안위가 중요하기에 항시 붙어서 그녀를 지키고 있는 문규와 호상화였다.
“아! 교주님!”
뜻밖에 이른 아침에 천여운이 나타나자, 문규가 식사를 하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는 환한 얼굴로 뛰어내려왔다.
“앗?”
그런데 그의 어깨에 걸치고 있는 은발의 미녀, 여군을 발견하고는 인상이 딱딱하게 굳어져서 물었다.
“……이, 이 여자는 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