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ignore the joint again! RAW novel - Chapter 116
116. 오늘만은.
“이거 오랜만이외다! 자정 장문!”
밝은 목소리가 몸보다 먼저, 공동의 조천문을 넘는다.
“당가주. 오랜만입니다.”
공동의 장문인 자정은 여느 문파와 같이 도관의 입구에 나와 손님을 맞이한다.
“이거, 이 당모가 제일 먼저 온 거 같습니다? 허허허허! 아닙니까?”
“여전히 기력이 넘치십니다, 당가주. 허나, 일등은 놓치신 듯합니다. 허허허.”
“놓쳤다구요? 허어. 아니 이제야 해가 걸렸거늘, 누가 먼저 왔다는 말입니까?”
뭐든지 관심받길 좋아하는 당천정이다. 그런 당천정이 일등을 놓쳤다는 말을 듣자, 이내 기운이 푹! 하고 꺾여 버린다.
“화산의 운양 도장께서 어제 공동산에 닿으셨습니다.”
“오, 무정검!”
당천정은 자신의 말을 대신 받아주는 정문을 보며 반가움을 표한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손까지 뻗으며 반기는 당천정.
“흠, 그래. 운양 도장과 자정 장문께서는 막역한 사이였지요. 허허. 그런 사이에 끼려는 건 욕심이니.”
“빈도는 이미 당문을 가깝게 느끼고 있습니다. 어찌 아니 되겠습니까?”
“역시, 자정 장문께서는 말이 통하십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밤···”
당천정은 말 대신 손짓으로 잔을 터는 모양을 하며 자정을 향해 고개를 까딱거린다. 한잔하자는. 그런 뜻이다.
“좋습니다, 가주. 빈도가 오늘 모시겠습니다.”
“좋습니다, 좋아! 하하하.”
자정은 사천에서 제자들을 도와줬던 당문의 은혜를 모르지 않는다. 오늘 밤, 당천정의 배에는 제법 기름진 음식이 들어갈 모양이다.
“헌데, 뒤에 분은···?”
정문이 호탕하게 웃는 두 중년인의 사이로 끼어든다. 슬쩍 고개를 기울여 당천정의 뒤로 시선을 던지는 정문. 정문의 시선을 잡는 인물은.
연분홍 의복에 면포를 걸친, 한 여인이다.
“아, 소개하지. 내 딸일세.”
“따님이라면···?”
“강호에서는 독화(毒花)라고도 불리지. 장문인들이 모이면, 응당 후기지수들 역시 모일 터. 당문이라고 질 수 있나! 해서 내 데려와 봤네.”
당천정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딸을 소개했다. 슬쩍 발을 빼며 한 손을 내뻗어 자신의 딸에게 시선이 주목될 수 있도록 비켜 주는 당천정이다.
“당문의 여식, 당소정이 공동의 장문인을 뵙습니다.”
분명 대화는 정문과 당천정이 나누고 있었다. 허나, 당소정은 명문의 여식답게 자정을 바라보며 예법에 맞는 인사를 올린다.
면포를 벗으며 인사를 올리는 그녀의 얼굴에, 정문이 잠시 시선을 뺏기고 만다.
“흠-.”
그런 정문을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 당천정. 자신이 뱉었던 이유만으로 딸을 데려온 건, 아닌 모양이다.
“당문의 영애를 이렇게 뵙는군요. 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자정은 당천정이 한 말을 표면적으로 받아들이며 인사를 나눈다.
그저 자정의 옆에선 정문의 표정만이 조금 좋지 못하다.
그녀의 미모에 잠시 시선을 뺏긴 건 사실이다. 오똑한 코와 큰 눈, 둥글게 내려오지만 깎아지는 턱까지. 황궁에서도 보지 못한 미모가 그녀의 얼굴에 자리했으니까.
하지만, 정문의 눈에 당천정의 검은 속내가 보이기 시작하자, 좋은 표정은 지어 줄 수가 없다.
‘저 아저씨가···!’
일전에 당가타에서도 그렇게 딸에 대해 이야기하더니, 결국 이곳까지 딸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도사를 사위로 낚아채려는, 검은 속내가 뻔히 보인다.
“자, 젊은이들은 차차 인사들을 나누시게. 소정. 우선 들어가자꾸나. 뒤에 또 들어오실 분들이 있을 테니.”
“예, 가주님.”
소정은 다시 면포를 두르고 당천정의 뒤를 따른다. 아직 정문과 인사는 이른 모양이다.
“당가주님.”
정문이 서둘러 자신을 지나치는 당천정의 옷깃을 잡는다. 무언가 이번 일에 대해 말을 보태려는 것일까. 당천정이 살짝 긴장할 때.
“난주에 사람을 보내셨던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아, 내 정신 좀 보게. 제법 괜찮은 정보를 뽑아낸 모양이더군. 회의 전에 먼저 볼 텐가?”
“그럼, 감사히.”
정문이 포권하며 고개를 숙이자, 당천정은 턱을 들어 자신의 딸에게 무언가를 지시한다.
소매에서 서책을 꺼내 정문의 손에 건네는 당소정. 정문은 이걸 왜 그쪽이 주냐는 그런 표정을 짓는다.
“기술자···를 보내달라 하지 않았나?”
“···그럼?”
“···산세가 아주 좋군. 좋아. 허허.”
당천정은 끝까지 직접적인 대답을 뱉지 않고 도관으로 향한다.
정문은 서둘러 받은 서책을 살핀다. 여성스러운 필체만이 가득한 서책.
아마도.
당소정이라는 여인이 직접 작성한, 그런 서책으로 보였다.
‘여인도···, 당문의 여인은 다르단 건가···.’
독화.
들어 본 적은 있는 이름이다.
그저 당문의 여식이란 정보가 전부였지만.
직접 만나보니.
정문의 생각보다는 더.
무서운 여인일지도 모르겠다.
당문이 입장한 뒤 여러 문파가 연달아 공동산의 조천문을 넘었다.
“정문 형님!”
“오, 허륜!”
일대제자를 앞세워 정문과 친근함을 나타내는 무당부터.
“뭐, 정도의 일이니 오긴 왔습니다만.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닙니까?”
“실례가 많았습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이리 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주, 중원의 평화는 공동이 책임을 지십니다. 그려.”
정문에게 맞을 매를 버는 청성과
“중원 무림의 대사(大事)이니 응당 참여해야지요!”
앞과 뒤에서 말이 다른 종남.
그리고.
“당문과 남궁은 왔소이까?”
“예, 당가주께서 안에···”
“그럼 회의 때 봅시다. 크흡!”
무언가 삐친 듯한 모습의 팽가까지.
공동과 깊은 연은 없는 여러 문파가 빠르게 조천문을 넘어 도관 안에 준비된 처소로 몸을 옮겼다.
여전히 조천문 뒤에서 객을 맞이하는 정문과 자정의 얼굴에는 노곤함이 가득하다.
“장문인! 사형! 또 올라갑니다.”
정문과 자정이 슬쩍 몸을 앉혀 노곤함을 달래고 있을 때, 태청궁에 내려갔던 다른 제자가 뛰어 올라오며 객이 들어옴을 알린다.
몸을 일으키는 두 도인.
노곤함을 지우고 헌헌한 장문인과 대제자의 모습으로 얼른 돌아온다.
한 무리의 무인들이 계단을 올라온다. 웅장한 기세와 함께 다가오는 무인들. 파란 무복을 입은 그들의 가슴에는 ‘창천(蒼天)’이란 글자가 기세 좋게 그려져 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동의 장문인, 자정입니다.”
“남궁의 가주, 남궁걸입니다.”
“이리 걸음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남궁가주.”
“중원의 일이 아닙니까. 정도 문파라면, 당연히 나서야지요. 또···, 공동에 갚아야 할 빚도 있지 않습니까?”
“빚···말씀입니까?”
“제 아들이 무정검께 신세를 졌다고···”
“······?”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허허, 소가주께서 공동을 도와주신 기억밖에는 없군요.”
너무도 순박하게 답해오는 자정을 보자, 남궁걸은 이 이야기를 더 꺼내는 걸 단념하기로 한다.
자정의 뒤에 선 무정검을 바라보는 남궁걸. 무위를 알아보려 눈을 좁히나, 잘 갈무리된 정문의 기도를 남궁걸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남궁걸이 정문에게 다가간다.
“자네가 무정검이신가?”
“공동의 대제자 이정문이 남궁의 가주님을 뵙습니다.”
“손 한 번 잡아도 되겠나?”
“···예?”
“그저 인사로 말일세.”
“······.”
정문은 갑자기 손을 잡아보자는 남궁걸의 말에 잠시 말문을 잃는다. 아들이 있다. 즉, 남색은 아니란 말인데···.
망설이는 정문을 향해 남궁걸이 손날을 세운 오른손을 내민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는 무언의 변명이다.
‘아.’
“예, 그럼 감사히.”
남궁걸은 수룡에게 모든 일을 들은 모양이다. 정문은 아들에게 가르침을 선물한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는 거라, 그렇게 생각하며 남궁걸의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 우우우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남궁걸의 손을 타고 정문을 향해 흘러오는 무거운 기운. 마치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무형의 기운이 정문의 팔을 타고 흘러온다.
‘이 사람이···?’
이건 뭐 하는 걸까. 정문은 그에 대한 답을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었다.
‘가늠해보겠다는 건가.’
평소라면. 그러니까 얼마 전 묵룡자와의 일만 없었다면. 정문은 적당히 맞춰주며 일부의 기운만을 남궁걸에게 보여줬을 것이다.
허나, 이제는.
딱히 감출 필요도 없는 정문이다.
– 우우우우웅!
정문 역시 단전을 열고 자신의 내기를 흘려보내 남궁걸의 기운을 몰아낸다. 어깨까지 타고 왔던 남궁걸의 기운이 정문의 기운과 만나 점점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
당황하는 남궁걸. 점점 밀려나며 이내 자신의 손을 타고 오는 찌릿한 기운에 남궁걸은 그만 입을 벌리고 만다.
– 팟!
딱 자신의 기운이 남궁걸의 손을 타고 팔로 향하려 할 때. 정문은 손을 놓으며 자신의 기력을 회수한다.
여기까지만.
보여주겠다는 정문의 의사표시다.
“송구스럽지만, 몸이 버겁습니다. 부디 용서하시길.”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 이런 말을 남궁걸이 믿지도 않을 것이고. 그래도 밖으로 보여지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나.
정문은 남궁걸의 체면을 세워준다.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군.”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허어.”
남궁걸은 자신의 기력을 거칠게 밀어낼 때는 언제고 이제는 시치미를 뚝 떼는 정문을 보며 혀를 차고 만다.
“과례는 비례라 했네. 적당히 하시게.”
“높이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남궁걸은 잠시 정문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이내 자정과 인사하고 조천문 안으로 들어선다.
지나가며 정문에게 목례하는 수룡. 정문 역시 밝은 표정으로 목례하며 수룡을 반긴다.
“과연···, 크게 배웠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더구나.”
“저는 아무런 가늠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배웠다는 말밖에는.”
처음 아들이 무정검이라는 무인에게 크게 배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패배했다는 뜻으로만 들었던 남궁걸이다.
헌데, 오늘 그를 직접 겪어보니, 무정검이 큰 가르침을 내렸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그는 알 수 있었다.
– 짤랑.
– 짤랑.
남궁이 지나간 자리에 쇠방울 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법장(法杖)으로 땅을 짚으며 계단을 오르는 승려들. 저마다 황포를 두른 승려들의 모습이 경건하기 그지없다.
“귀한 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동의 장문인, 자정입니다.”
“아미타불-. 빈승은 소림에서 온 공초라 합니다.”
“바, 방장께서··· 직접 오셨군요.”
“허허허,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혹여 늙은이가 눈치도 없이 자리한 건 아니겠지요?”
“그, 그럴 리가 있습니까? 권조···, 아니. 대사께서 이렇게 자리를 빛내주시니, 정도 대회가 더욱 풍부해질 것입니다.”
자정은 조금 전 정문이 일러준 것처럼 권존이라는 말은 뱉지 않고 공초와 인사를 나눈다. 당가타에서 고상이 정문에게 전해준 작은 조언 덕분이다.
공초의 눈이 여느 무인들과 같이 자정의 뒤에 선 정문에게 향한다.
“공동의 대제자, 이정문이 공초 노사(老師)를 뵙습니다.”
“허허허! 노사라 하셨습니까?”
“예, 노사.”
“이런, 이런. 고상입니까? 아니면 고암입니까?”
“고상 대사십니다.”
정문은 공초와 알 수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본다. 자신이 생각해도, 조언을 받은 걸 너무 티 내는 인사였다.
“아미타불. 빈승은 노사란 말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암요. 허허허.”
공초는 기력 없어 보이는 노승의 모습을 지우고 호쾌한 탕승(蕩僧)의 모습으로 정문과 대화를 나눈다. 노사란 말이. 대놓고 뱉었음에도 공초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고상과 서장에 다녀온 일은 전해 들었습니다. 불가가 무정검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또 돈황에서 일까지···. 모두 감사드립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너무 추켜 올리시면 부끄럽습니다.”
“아미타불-. 불···, 아니. 도기로군요. 도기. 허허허.”
백미권존이라는 이름에 그저 조용한 노승을 예상했던 정문. 이렇게 직접 마주하니. 그다지 꽉 막힌 노승은 아닌 것 같다.
공초가 불장으로 땅을 누르며 정문을 스쳐간다. 조금은 가까운 거리에서 스치는 둘. 이제는 공초를 지나, 뒤에 따라온 고암이 정문을 지나려던 그때.
– !!
공초의 기감에 무언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 스윽.
돌아서 정문의 옆면을 바라보는 공초. 분명 강하게 느껴지는 이 정순한 기운은 도기일 것이다. 무정검의 기도가 밖으로 새고 있는 건 아니지만, 공초는 그의 기운이 도가의 기운임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도가의 기운 말고도. 공초의 기감을 간지럽히는 다른 기운이 있었으니. 공초는 이 기운이 불기(佛氣)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어찌 도사의 몸에서 불기가···?’
늘 자신이 마주하는 불기와는 다르다.
허나, 같은 뿌리임은 확실한 상황.
공초는 도사의 몸을 뚫고 흘러나오는 저 기운의 발원을 알 수가 없다.
‘아미타불···, 알 수 없는 무인이로다···’
멈췄던 공초의 법장이 다시금 소리를 낸다. 이들의 행렬이 도관에 들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겠구나.”
“예, 스승님. 조금만 더 고생하시지요.”
“조금만 더는 무슨. 인사가 끝나면 또···”
저들을 대접하는 자리가 펼쳐져야 한다. 자정은 그곳에서도 바른 모습을 갖추려, 또 대접이 소홀하진 않을지. 온갖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후우우. 힘들구나. 어째, 네가 좀 일찍 장문인을 맡으면 안 되겠느냐?”
“스승님···, 보통 힘들면 자신이 짊어지겠다고 해야 멋있는 법입니다.”
“공동은 다르지 않으냐.”
“······.”
그건 그렇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않냐는 말이 정문의 목에 걸렸다.
마지막 손님이 계단을 오른다. 마지막으로 공동의 조천문을 넘은 이들은 개방의 사절단들. 개방 방주 대신 오봉학이 전권을 가지고 공동산에 올랐다.
“전권···입니까? 제법 통이 크군요, 방주도.”
“뭐, 내가 유능하니 그런 게 아니겠나?”
“예, 예.”
“그보다, 줄 선물이 있네만.”
“선물이요?”
“서장이 움직였네.”
!!
“설마?”
“그래, 자네의 예상대로 내전을 수습한 반선라마가 서역을 향해 진격했다는 소식일세.”
“생각보다 이르군요.”
“뭐, 자네에게는 좋은 시기가 아닌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전면전이 되진 않을 걸세. 그저 발을 묶어 놓는 정도. 우리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사천까지 말을 흘렸다는 거로 보아, 자네에게 보내는 선물 같더군. 잘 전달이 되었나?”
“잘 받았습니다. 아주 요긴한 선물이네요.”
“잊지 말게. 내가 전달했다는 걸.”
“물론입니다.”
만족스럽게 웃은 오봉학이 도관으로 들어선다. 이미 한 번 와본 곳이기에 편안히 걸음 하는 오봉학의 뒷모습이 가볍다.
– 끼이익. 탁!
도관과 속세를 연결하는 유일한 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굳건하게 닫힌다.
중원.
크게는 황실의 지배력이 닿는 모든 곳을 일컫는 말이고, 또 작게는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일부 지역만을 가리키는 말이다.
크게는 몰라도 작게만 본다면, 늘 중원에 속하지 못했던 것이 공동.
하지만, 오늘만은.
공동이 작은 중원을 품에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