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ignore the joint again! RAW novel - Chapter 136
136. 살아있을까.
조륜은 살아있을까.
막사에 몸을 앉힌 정문의 표정이 제법 어둡다.
오봉학의 말에 의하면, 천검(天劍)이 이끄는 금의위가 흑시창의 본부를 습격했다고 한다.
아마, 정문에게 보냈던 마지막 전서. 그에 관한 조사를 하던 중 뒤를 밟힌 거라. 정문은 그렇게 예상했다.
천검은.
조숭의 수족이나 다름없으니까.
이제 와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전했던 전서가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평소 잘 쓰지 않던 흑응을 쓴 것 하며 흑응이 마지막에 날아갔던 방향까지. 그날을 돌이켜보니 제법 많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차라리 죽었다는 확답을 받았다면, 마음이 이렇게 무겁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주보, 장찬, 부통, 태영.
이전 삶에서 잃었던 다른 아이들처럼.
그저 잘 싸우다 갔노라. 마음으로 그리 빌 수도 있었을 테니까.
“후우우.”
정문이 깊게 숨을 토한다.
오봉학의 말에 따르면, 창두도, 수뇌부도. 흑시창은 너무나 은밀하게 움직였기에 그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만약에 죽었다면, 말 그대로.
죽음까지 꽁꽁 숨긴. 그런 최후였을 것이다.
‘살아 있으려나···’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조륜이 살아있다면, 지금쯤 정문을 향해 연락을 취해오진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정문은 이내 또 불안해진다.
아직 연락하지 못한 이유가 있을 수는 있다. 여기는 국경이고 또, 무림맹의 군영 안이니까. 흑시창이 쉬이 연락할 수 있는 곳은 아닐 것이다.
전서구도 모두 검열하는 이곳에서 흑응 역시 다르진 않을 터.
정문은 조금만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말로, 애써 자신의 마음을 다독인다.
“사형. 계세요?”
그렇게 정문이 쿵쾅거리는 마음을 조금 다독여가고 있을 때. 청아한 명화의 목소리가 정문의 막사를 울린다.
인기척과 기도로 보아서는 다른 사제들 역시, 함께 있는 모양이다.
정문은 얼른 호흡을 가다듬고는 자신의 불안감을 얼굴에서 지운다. 과거를 접어두고라도. 이제는 정문에게 지켜야 할, 그리고 주변에 남은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응. 들어와라.”
정문은 허락이 떨어지자, 천막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오는 명화. 밝은 표정의 명화 뒤로는 묵환과 사풍, 진명과 함께 다른 인물들이 둘. 더 자리를 빛내고 있다.
“대사! 문주!”
정문은 곧바로 그들을 알아본다. 일전에 달뢰라마와 엮이며 연을 맺었던 돈황의 천불사 주지 요공과 이제는 한 간판을 나누는 월아문의 문주, 화벽공이 정문을 찾아왔다.
“아미타불-. 오래만입니다. 무정검.”
“잘 지내셨는지요? 딸 아이를 맡겨 놓고 이제야 인사를 올립니다.”
돈황에 적(跡)을 두고 있는 이들은, 무림맹이 돈황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공동의 무인들을 만나러 이렇게 걸음 한 것이다.
오랜만에 아는 얼굴을 만난 사제들의 표정이 밝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대사, 라마께서는 무사히 서장으로 가셨습니다. 문주. 이제는 한 가족이 아닙니까? 격조했습니다.”
정문 역시 얼른 얼굴의 그늘을 지우고는 이들을 맞이한다. 대제자와 무림맹의 직책을 거친 정문의 정치가, 조금은 서러운 지금이다.
“난설은 잘 지내고 있어요! 이대제자들 중에서도 제일 늠름한걸요! 만해문의 습격 때는 직접 자기 사형들을 인솔해서 숨어있었대요. 참 장하지 않나요?”
명화는 친하게 지내는 사질인 난설의 아비를 만나자, 그가 궁금해할 소식을 명랑하게 전해준다. 경비가 삼엄한 이곳까지 이들이 애써 발걸음 한 여러 이유 중에는, 딸의 소식이 궁금한 아비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공동에서 잘 가르쳐 주신 덕분입니다. 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좋은 제자를 보내주셔, 저희가 감사할 따름이지요.”
만해문의 습격이 강호에 알려지고 난 뒤에는 심장도 철컹했을 화벽공이다. 그럼에도 딸 아이의 사숙들 앞에서 아무런 표를 내지 않는 그였다.
“아미타불-. 소림의 선승들께서는 보이시질 않는군요. 허허. 사실 워낙에 삼엄해 잘 둘러보진 못했습니다만.”
이곳은 국경이고 또 전쟁을 앞둔 무림맹의 숙영지다. 함부로 사람을 들이지 않고 또 들인 이들 역시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한다.
공동과 연관이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면. 감히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상황이 상황이니,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소림의 대사들은 이진(二陣)에 머물고 계십니다. 아마···, 곧 합류할지도 모릅니다.”
“아미타불-. 부디 무림맹 모두의 앞길에 평안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고개 숙이며 포권하던 정문의 시선이 이들의 뒤에선 묵환에게 닿는다. 무언가 잔뜩 짐을 들고 땀을 흘리고 있는 묵환. 정문은 그게 무엇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조용히 바라봤다.
“대사께서 천불사에 있는 돈황과 서역 지리에 관련된 사료들을 모아오셨습니다. 서역에 관한 지리서도 있으니,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진명은 미리 이를 들어서 알고 있는지, 뿌듯하게 웃으며 정문에게 이를 소개했다.
무림인의 포상은 별다른 게 아니다. 그저 강호행과 속가행을 다니며 쌓은 인맥이 이렇게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올 때.
그때 느끼는 뿌듯한 감정이, 무인의 진정한 포상이라 진명이 그렇게 느끼며 설명을 이어갔다.
“국경 밖에 관한 자료 역시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군부에서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는 와중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정문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진다. 그렇지 않아도 막막했던 것이 서역과 돈황 근처의 지리와 정보였다. 이를 이렇게라도 손에 넣으니,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감사히 쓰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공동이 서장과 천불사에 베푼 은혜에 비하면 별 게 아닙니다. 부디 요긴하게 쓰시길 바랍니다.”
화벽공과 요공은 약간의 담소와 차를 나누고는 무림맹의 숙영지를 떠났다. 요공은 달뢰라마와 서장으로 향했던 여정에 대해 귀를 기울였고, 화벽공은 근간에 나아진 월아문의 상황을 열변했다.
전장에 나서기 전, 사제들이 긴장을 풀기에 좋은 시간이었노라, 정문이 그렇게 여기며 자리를 정리했다.
모두가 떠난 막사 안.
정문은 해가 지고 이제는 잠이 들 시간에도 여전히 책상에 앉아 있다.
여전히 조륜의 일을 머리가 완전히 잊은 건 아니다. 그저 사무에 묻혀 그를 조금 머리에서 떼어놓으려는 정문. 별다른 일이 없는 오늘임에도 정문은 애써 일을 만들며 요공이 두고 간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묵환이 한 곳에 쌓아둔 사료는 종류가 다양했다. 서책으로 된 것 하며 서신처럼 돌돌 말려 있는 것들까지.
정문은 하나씩 이들을 살피며 필요한 자료와 그렇지 않은 것들을 분류한다.
어차피 눈으로만 보면 머리에는 모두 입력된다. 그런 생각에 무아지경으로 손에 잡히는 것들을 펼치던 정문.
그런 정문의 손에.
무언가 익숙한 감촉의 종이가.
들어오고 만다.
‘이건···?’
새까만 천으로 장식된 서신 뭉치를 내려다보는 정문. 유독 먼지가 묻지 않은, 근자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서신이 정문을 맞이한다.
최근에도 이런 재질의 종이에 적힌 글을 읽은 적이 있던 정문은, 이게 어떤 종이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까만 천에 금색 자수가 놓인 외관. 그리고 안에 재질은 손으로 훑었을 때 느끼기 쉽도록 조금은 투박한 재질.
이는 흑시창이.
주로 쓰는 것임을 정문이 모르지 않았다.
빠르게 눈으로 서신을 읽어가는 정문.
이건 흑시창이 보낸 서신이 맞을까.
혹여나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비보는 아닐까.
그런 생각도 잠시.
서신을 모두 읽은 정문의 얼굴이.
완전히 밝아졌다.
* * *
국경의 긴 관문을 지나자, 비로소 사막의 고장이었다. 하늘의 아래쪽이 황색으로 물든다. 무사대는 사막에서 조금 떨어진, 국경 밖의 녹주를 찾아 짐을 푼다.
주변은 황량하다.
뭐, 관문 하나 지난 풍경이 무에 크게 다르겠냐마는, 국경 밖이라는 상징적인 위치 덕분에, 더욱 삭막하게만 느껴지는 이곳이다.
다행히 녹주(綠注)는 국경 밖에도 존재했다. 천불사에서 받은 지리서를 토대로, 정문과 오봉학은 오랜 회의 끝에 한곳에 정착해 군영을 열기로 결정한다.
옥문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초원 옆의 녹주에.
무림맹의 무사들은 서둘러 천막을 둘러 막사를 만들고 국경 안에서 조달한 나무로 목책까지 만들어 제법 그럴듯한 군영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이전의 숙영지가 그저 야숙을 위한 숙영지였다면, 이제는 정말, 전쟁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있는 이들이다.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겠습니다.”
맹천검대의 대주를 맡은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수룡이 무사대를 이끌고 숙영지 주변을 살핀다. 서역의 땅은 그야말로 무법(無法)의 지대(地帶)다.
주변을 경계하는 군벌들도 넘치고, 또 상행을 노리는 마적까지 자리하고 있다.
무림맹은 이들을 견제하며 서역 저 안쪽에 위치한 신궁의 무림인들까지, 견제해야 할 것이다.
“신궁의 위치는 파악이 끝났습니까?”
“예상가는 지점이 몇 군데 있네. 당가의 영애께서 알아내 주신 정보를 기반으로 탐색을 펼칠 예정이네. 토로번(吐魯蕃) 정도라는 말이 신빙성이 있으니, 여기서 멀지 않을 걸세.”
정문은 어느새 얼굴에 그늘을 지우고 막사에 들어 장문인들과 회의를 나눈다. 전해진 서신이. 그가 기다리던 소식을 담았었던 모양이다.
“서장과의 전쟁은 어떻습니까?”
“음, 끝물이네. 우리 당문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끝난 전쟁을 반선라마가 제법 잡아주고 있는 모양이더군.”
“끝물이라면···, 보름 정도가 한계겠군요.”
“그래도 곧바로 서역이 원래의 힘을 되찾지는 못할 걸세. 서장과의 전쟁이 소모전으로 끝이 났으니, 우리에게는 기회인 셈이야.”
“허면, 위치를 정확히 찾는 대로 진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중원의 무사들은 전력이 온전한 상황입니다. 저들은 아직 태세를 정비할 시간이 필요할 터이니, 이때를 노려야 합니다.”
정문과 오봉학, 당천정과 운양까지. 모인 이들은 저마다 말을 보태어가며 앞으로 무림맹의 무사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토로한다.
하나씩 질문을 던지며 조용히 지도를 응시하는 정문. 마치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그의 입이 닫혀 있다.
“우선은 탐색과 경계에 신경을 씁시다. 당장에 저들의 전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진격하는 건, 자충수(自充手)가 될 수 있으니까요.”
“흠, 저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은 것도 문제라네. 이제야 구성을 겨우 파악했다지만, 어떤 이들인지. 또 어떤 성향인지를 알 수가 없으니.”
“해서, 지금부터가 중요한 법입니다. 주변에 유목민들을 비롯한 작은 군락들이 있을 터이니, 개방은 그곳을 중심으로 탐문에 나서주십시오. 작은 정보라도 좋으니. 끌어모아주세요.”
“그리 명해두겠네.”
“당문은 주변의 수원지(水源池)를 살펴주십시오. 녹주라고는 해도 식용이 가능한지, 또 풍토병과 관련해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릅니다.”
“내 의원들을 시켜 이를 살피겠네.”
분명 이런 대규모의 전쟁은 처음인 당금의 무림이다. 특히나 이립도 되지 않은 청년이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정문은, 마치 이런 일에 능숙한 군략가처럼 무림맹의 맹도들을 지휘한다.
그의 모습이 마치, 무인이 아닌 행정가로 보일 정도였다.
“화산과 종남은 무얼 하면 되겠나?”
“주변의 경계와 군영의 경비. 그리고 옥문관으로 통하는 보급로를 지켜주시면 됩니다. 우선은 그거면 될 겁니다.”
정문은 하나씩 역할을 나눠 각 문파에 나눠준다. 저마다 문파의 특색에 맞춘 정문의 지시가 너무도 현장에 잘 맞아떨어져,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 규모의 전쟁을 겪어 본 적이 없는 당금의 세대들이다. 다들 무얼 알겠나. 그저 막힘 없이 명령을 내리는 정문의 말에, 무림맹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수원지를 확보하고 주변을 경계하며 탐문을 펼친다. 그리고 보급로의 확보와 퇴각에 용이한 위치의 선정까지.
예상보다 빠르게 나선 덕분에 이들은 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있었다.
모든 게.
중경에서 일을 잘 처리하고 빠르게 결단을 내린 덕이다.
원래라면 그저 국경 안이나 감숙의 끄트머리에 저들을 맞아 방어에만 힘썼어야 하는 것이 무림맹.
누군가가 그린 그림이.
점점 다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북경의 누군가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