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touch Eldmia Ega RAW novel - Chapter (557)
딱히 의미 있는 행동이라 여기고 고민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반사적으로, 그냥 습관적으로. 지금 내가 지닌 이점이 어디서 비롯되었으며 이걸 최대한 잘 응용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다가 뻗어진 추측은 의외로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마족령 내의 성물들을 마왕군이 회수했다고 데오니 성녀님께서 말씀하셨었지. 그 행동을 회귀 이전에도 했었으면 똑같이 우리 마을에 있었던 신전의 성물을 통해 내가 에파가께서 주신 힘을 받게 되었을 테니, 성물 회수는 이번 회차에서만 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 우리 마을 인근에 있었던 성물의 존재를 알아내고 찾으러 올 수 있었던 게 설명되지 않는다. 설령 내가 정말 마족령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용사는 우리 마을의 성물을 통해 탄생해야 하며, 그 사실을 어떻게든 알아낸 마왕이 이번 회차에서 선수를 쳤다는 구도가 되어야 그림이 제대로 그려진다.
하지만 전쟁 시작 전이었다고 한들 마족은 여전히 이티스엘에서 찾아보기 힘든 종족이었다. 심지어 어린 마족? 그런 녀석이 있을 만한 곳이 대체 어디에…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기억이 솟구쳤다. 몸이 멍청해져서 그런지 요즘 머리가 고생을 많이 한다.
“노예 상인.”
우리 마을 언저리를 지나가고 있던 와중에 의문의 습격을 받아 괴멸한 덕에, 거기에 잡혀 있던 아실리에가 도적들의 손에 들어가며 나와 만나는 계기가 되었던 노예 상단.
그곳에 소하가 있었다면 말이 된다.
‘애초부터 마왕군은 성물뿐만 아니라 소하도 같이 회수하는 게 목적이었다.’라고 전제를 깔고 가면, 내 돌발행동에 대해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달아 터지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 내가 마족으로 태어났다면 모든 게 달랐을 테니까.
혼자 머리 굴려 가며 얻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꽤 그럴싸 하다.
그리고 이 추측들이 대충 들어맞는다면…
“마왕 새끼가 문제인 게 맞겠는데…?”
[뭐?]“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이 좀 더 명확해진 거 같다.”
뭐 얼마나 대단한 결과값을 도출하고 싶으셔서 이 사달을 낸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놈을 방해해야 하는 이유만큼은 나날이 명확해지는 중이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일단은 이 가설을 이리저리 다듬어서 성녀님 에디션으로 조정한 뒤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여긴 나는, 회의를 끝마치고 성녀님께 별도의 면담을 요청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지휘소에 둘만 남을 때까지도 데오니 성녀님은 평온했다.
하지만 내 뇌피셜 가득한 이야기를 들을수록 얼굴 위로 심각함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이미 오두막에서 멘데르 사제와 대화를 나눌 때 회귀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같이 들은 입장이라 새로울 건 없었으니, 그 심각함은 오롯이 나라는 존재가 진짜로 마왕의 족쇄로 작용하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서 비롯된 거였다.
“용사님의 가설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마왕이 회귀를 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만한 변화가 발생했다면 이미 그가 알고 있던 역사와는 다른 게 되어 버렸을 것이다, 맞죠?”
“예, 맞습니다.”
자기 입맛대로 이점을 쥐는 순간 그에 맞게 역사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는,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회귀의 문제점.
“제가 보기엔 그게 접니다.”
놈이 취한 행동으로 인한 다른 문제가 어디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모든 일의 시발점에서부터 시작하여 극한의 이득을 땡기고 본다 하더라도, 결국은 거기서 비롯된 변수들이 애로사항으로 다가오게 되는 건 기정사실이고, 내가 보기에 나라는 존재는 그 변수의 집합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저 역시 용사님께서 일궈낸 위업과 돌발 행동이 가져오는 변칙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동감하는 바입니다만…”
그리고 그걸 이해시키려면 일단 지금까지는 두리뭉실하게 넘어왔던 내 태생에 대한 문제부터 성녀님에게 설명해야 했다.
아직 말하지 않은 전생의 영역을 알지 못하는 이상, 성녀님의 추측은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으니까.
“마왕이 회귀자일지도 모른다고 했잖습니까.’
“예? 예, 그러셨죠.”
“저는 전생자입니다.”
“……예?”
“참고로 에테의 용사인 지크프리트랑 동향 사람입니다. 걔도 전생자거든요.”
장담컨데, 지금 성녀님이 보여주는 표정은 평생에 걸쳐 가장 얼빠진 표정임이 분명할 것이다.
◈
데오니 비레는 상식인이다.
성녀로 발탁될 만큼 신앙에 진심일 뿐이지 비상식적인 일에는 면역이 없다.
아무리 많은 것을 이해하고 납득하려고 노력한다고는 해도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건, 그것도 마법이라고는 전혀 없으며 신의 존재조차 불분명한 것으로 취급받는 끔찍한 불신자들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말은 망상에 불과한 이야기였다.
“용사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면 당장 어디 이상한 저주에 걸린 게 아닌가 고민부터 해봤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이런 건 이해를 하면서 대체 왜 충격적인 이야기가 대뜸 튀어나오면 감당하기 힘들다는 건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순간 오만가지 불만이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려 하는 것을 꾸역꾸역 참으면서, 데오니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머리를 부여잡고 생각을 정리했다.
용사의 말은 진실이었다. 성녀인 데오니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조건이 맞지 않아 계시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한들, 다양한 형태로 신의 권능과 의도를 곡해 및 왜곡하는 시도만큼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그녀다.
그랬기에 마족으로 태어났어야 하는 엘드미아가 인족으로 태어나서 빚어낸 수많은 결과들을 최대한 냉철하게 분석하는 데에 온 힘을 쏟을 수 있었고, 진심으로 두려워했다.
대체 마왕은 얼마나 큰 죄업을 쌓고 있는 것일까.
세상의 시간을 뒤집고, 역사를 바꾸고, 죽은 악신을 파헤칠 뿐만 아니라 이를 사용하기 위해 멀쩡히 존재하는 신께서 하사해주신 성물마저 강탈한 뒤 남용하고 있다.
“이게 정말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란 말입니까…?”
그보다 대체 무슨 힘이 작용해야 이런 일을 벌이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저 신의 힘을 강탈하는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건 침식체나 신의 권능을 유사하게 흉내 낼 수 있는 마도구같은, 다른 형태의 결과물들에서 그치는 문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선신들의 눈마저 속이지 않는 이상, 이런 죄악을 저지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결과물만 놓고 보면 실제로 세상은 한 번 다시 시작된 거에 가까웠고 심지어 신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계시는지 언질조차 하지 않으셨다.
죽은 악신에게 그 정도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죽었다고 한들 신이지만, 아무리 신이라고 한들 결국 죽은 존재였기에.
“지금까지는 그저 마왕의 일탈에서 비롯된 잘못만 바로 세우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용사님의 가설대로라면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건 마왕이 아닌 초월적인 무언가입니다.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진 않지만… 이미 한 번 돌린 세상, 두 번이라고 못 돌릴 이유가 있을까요? ”
어쩌면 지금이 두 번, 세 번째의 세상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를 그저 감시만 하는 것도 다음 회귀를 위한 밑 작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신의 눈조차 속이는 존재를 어떻게 예상할..
“성녀님. 정신 차리십시오.”
끝없이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사고를 멈춘 건 엘드미아였다.
“적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과대평가하는 것도 문제죠. 신의 권능은 결코 무한하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성녀님이 잘 아시잖습니까.”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엘드미아의 손이 맞잡고 있던 두 손을 풀어 주고 나서야, 그녀는 손끝이 하얗게 질리도록 힘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당장 눈앞의 사실들만 놓고 보면 무시무시한 힘처럼 느껴지겠지만, 그건 일종의 착각입니다. 당장 마스터 급에 다다르지 못한 제가 풍왕이라 불리던 용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뭐겠습니까?”
남들은 짐작도 하지 못할 정도로 뛰어난 상성의 능력과 용의 오만이 겹쳐진 변수. 그를 치유하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 데오니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엘드미아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를 파악했다.
“마왕이 회귀를 했다고 하더라도, 여러 조건들이 겹쳐진 끝에 생긴 기회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게 맞을 겁니다. 회귀를 마음대로 혹은 원하는 시점으로 할 수 있었다고 치면 저희는 단 한 번도 마왕군을 이길 수 없었을 테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교단이나 이티스엘의 군대가 이길 때마다 마왕이 시간을 돌려 문제를 보완했을 테니까. 하지만 전선은 수 년간 고착 상태였고, 마왕군은 지금 되려 위기에 처했다.
“오히려 이런 가정을 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건 기회입니다. 적극적이고 필사적인 대응이 없으면 놈에겐 한 번 더 회귀의 가능성이 남아 있을 수 있겠죠. 반대로 어떻게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면…”
“회귀를 못 하거나, 아직 회귀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거나.”
“금방 정신을 차리셨군요.”
순간 몰아친 혼란 때문에 그 뻔한 정보들을 놓쳤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 데오니는 작게 웃는 엘드미아에게 잡혀 있던 두 손을 조심스럽게 빼내면서 헛기침을 했다.
“요, 용사님의 말씀이 옳군요. 순간적으로 두려움에 눈이 멀었던 모양입니다.”
“그럴 수 있죠. 그러니 저희도 한번 시도해 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예?”
자연스럽게 다시 맞은편에 앉은 엘드미아는 자연스럽게 탁자에 팔을 올리고 깍지를 끼며 웃어 보였다.
“저희가 지금까지 일궈온 모든 우연이 계획된 행동이었던 것처럼… 양념 좀 쳐보자는 거죠.”
무의식적으로 방금 전 자신의 두 손을 감싸고 있던 큰 손에 시선이 꽂혔던 데오니가 그의 발언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주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