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touch Eldmia Ega RAW novel - Chapter (566)
하늘은 맑고, 날씨는 화창하며, 이제 슬슬 겨울도 끝물인 터라 기온도 적당하기 그지없는 날.
“음, 간이 아주 좋네. 예전에도 느꼈지만 넌 야영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거 같다.”
나는 간만에 조용한 숲속에 앉아 칼 칸시가 끓여 준 기깔나는 스튜를 마시며 여유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쏘르 영주가 챙겨 준 재료들의 상태가 좋은 것도 한몫했어. 원래 요리는 신선도가 중요하거든.”
스스로 만든 요리에 크게 만족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는 칼 칸시 앞에서 에밋 역시 ‘꽤 하는군.’이라는 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식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쏘르를 벗어난 지 이틀째, 우리는 레비엥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도시에서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레비엥에서 오는 아군의 합류나 돕겠다며 단독행동을 주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데오니 성녀님의 엄청난 반발을 예상했지만, 뜻밖에 성녀님의 반응은 덤덤했다.
뭐… 골치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관자놀이를 누르시긴 했지만 안 된다고 막지는 않으셨으니까. 하지만 무조건적인 수용은 아니고, 혼자는 아직 위험하니 에밋과 칼 칸시를 대동하다는 절충안을 제시하셨다.
원래 칼 칸시는 여행길에 큰 도움이 되다 보니 성녀님의 부탁이 없더라도 동행할 예정이었으나, 에밋은 자기 말마따나 마법진을 비롯한 설치 마법에 일가견이 있다 보니 도시에 남아 방위에 힘쓸 수 있게끔 두고 가려고 했으나… 아예 못을 박아버리시는 바람에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여행길에 오르게 된 에밋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껄껄 웃었고, 칼 칸시는 간만에 집단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게 꽤 만족스러운 것인지 군말 없이 경로를 계산하며 필요한 물품들을 구비했다.
그렇게 이틀 만에 준비를 마친 칼 칸시의 안내를 받아가며 눈에 띄지 않게 오늘 새벽부터 쏘르를 벗어난 우리는, 해가 중천에 떠오를 무렵에서야 식사 겸 휴식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말들도 군마 중에서 튼튼한 녀석들로 골라 준 것인지 상태가 아주 좋던데? 어쩌면 예상보다 하루 이틀 정도는 더 일찍 마주칠지도 모르겠어.”
칼 칸시가 식사하면서 살펴보고 있는 지도는 쏘르 영주가 제공한 군용 지도의 사본이다.
우리 편으로 돌아서기 전까진 엄연히 마왕군을 지지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던 만큼 그에겐 유용한 정보가 꽤 많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일대에 배치되어 있는 마왕군의 군사 거점 정보였다.
마왕군 처지에서는 일부 기밀이 통으로 유출된 꼴이니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을 테지만… 뭘 어쩌겠는가? 거점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니 지들이 감내해야지. 우리의 목적은 저걸 열심히 진격중인 아군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제국과 왕실의 첩자들이라고 해서 만능인 건 아니다. 공간 이동 마법으로 서류나 정보를 받는 건 어떻게든 된다고 쳐도, 이쪽에서 보내는 건 필요 장비나 마력 운용 때문에 위치가 발각되는 등의 자질구레한 문제가 산개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알짜배기 정보들은 아직 제대로 아군의 손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다. 아마 이번에 우리가 전달하고 나면 처음으로 마왕군에게서 약탈한 정보가 가치 있게 쓰이는 걸 보게 되겠지.
그 순간을 기대하며 큼직한 고기 건더기를 만족스럽게 씹고 있었더니 한참 동안 지도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칼 칸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출발하기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말이지 손님… 이거 굳이 손님이 전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딱히?”
“근데 왜 직접 움직이는 거야?”
“거기 아는 사람이 있기도하고, 나는 공격하는 쪽에 있는 편이 더 도움되거든.”
밖으로 뛰쳐나가서 방해 공작을 펼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성벽 안에 틀어박힌 이상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다. 에밋의 표현을 빌려 용사가 신들의 화살이라면, 화살통에 있는 게 아니라 활시위에 걸려 적에게 날아가야 하지 않겠어?
“마음 같아서는 만만한 곳도 털고 가고 싶긴 한데, 그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경기 일으킬 사람이 한둘이 아닌지라 갈 땐 곱게 가려고.”
“성녀님만 난리 치지 않으실까? 다른 성직자들은 뭐라 하지도 못하더만.”
“그쪽 말고. 저쪽.”
“…?”
왕국에서의 내 인간관계를 말한 적은 없었기에 전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칼 칸시는 그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다.
이미 용을 잡은 것만으로도 등짝이 거덜날 수 있다. 지금은 최대한 몸을 사릴 때라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 일과 관련된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뭐가 됐든 아군과 조우할 때까지는 평온한 여행이 될 거라는 말이로군. 불필요한 구경꾼들도 없으니 수업하기엔 안성맞춤이겠어.”
그렇게 우리의 대화가 적당히 마무리되는 기색을 보이자 이번엔 에밋이 입을 열었다. 어지간히 돈 안 내는 구경꾼들이 싫었는가 싶어서 작게 웃었는데…
“산맥 인근은 강한 몬스터들이 꽤 있는 편인지라 마왕군도 결계수정 유지에 열을 올리는 편이지. 그런 마왕군을 피해서 이동 경로를 짰을 터이니, 자연스레 우리들의 앞길에는 몬스터들이 많이 나타나지 않겠나?”
정작 그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한 말은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 고용주님 검술이 잘난 건 잘 알았으니… 가는 동안은 최대한 마법으로 상대해 보세나.”
너무나도 뜬금없는 실습 선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사적으로 질문하고 말았다.
“예? 저 아직 에밋한테는 기초 마법조차 제대로 안 배웠는데요?”
“중급까지도 디스펠에 성공한 사람이 그런 소리하면 눈치가 없거나 머저리인 거라네.”
자뭇 뻔뻔하게 들릴 수 있는 발언이었으나 과거 세네란과 함께 바늘 사출을 위한 주문을 짜봤던 적이 있었기에 에밋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금방 이해했다.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조합해 보게나.”
자칫 잘못하면 시전자의 눈앞에서 폭주한 마법이 펑! 하고 터져 버릴 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고 안정성은 개나 줘버리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입에 담는 사람이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마법사들 중에서도 수준급의 경지에 오른 자였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
쏘르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취했던 휴식 뒤로 이어진 여행길에 대한 에밋의 예측은 아주 정확했다.
산맥 인근에 주둔한 마왕군들이 쓰는 결계수정의 성능이 대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몰라도 드넓은 땅 위에 불가침의 영역이 존재하는 탓인지 몬스터의 밀집도가 남달랐다.
여행길에 오른 지 삼일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렌기에 에파가시에라로 향했던 시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막 엄청나게 귀찮고 강한 몬스터는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전투는 대부분 나의 몫이었다.
덕분에 마법 조합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나는, 오늘도 우리의 야영지를 습격한 늑대인간들을 전기 통구이로 만드는 중이었다.
“키에에엑!!”
“전격 계열 마법은 화염 계열와 비슷한 듯하면서 많은 차이가 있지. 까딱 잘못하면 제멋대로 튀어 나간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고, 다음으로는 알아서 번지는 불과 달리 원하는 위력을 위해서 그만큼의 마력과 술식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 정도겠군.”
과도한 위력 탓에 수분이 증발 되어 눈과 온몸에서 수증기를 내뿜으며 쓰러지는 늑대인간을 보면서도 에밋은 태연하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능숙하게 요리를 준비하는 칼 칸시 옆에서 어디서 꺼냈는지 알 수 없는 찻잔을 기울이는 에밋은 다른 늑대인간 한 마리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걸 보면서도 시큰둥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걔를 막는 것도 내 수업이었으니까. 이번엔 출력을 조절하고 안정성을 대폭 강화한 전격계 마법을 시전하자, 순식간에 뻗어 나간 마법에 직격한 등허리 부근에 거대한 상처가 생겨나며 늑대인간의 몸뚱이가 저 멀리 날아갔다.
전기 통구이가 된 놈과 달리 그 늑대인간은 스턴건에 맞은 것처럼 바들거릴 뿐 죽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잠깐 고개를 돌린 에밋은 무슨 의미인지 모를 끄덕임과 함께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런 까다로운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화염 계열보단 바람 계열과 흡사한 면이 있지. 바람 계열 역시 압축과 속도 그리고 범위를 신경 써야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쪽은 사실 압축과 속도만 무식하게 보정해도 쉽게 위력이 나오지. 공격용으로 바람 계열의 절단 마법이 자주 보이는 이유이기도하고.”
나에게 마법을 선택할 권리 따윈 없다. 손님의 주문에 맞춰 요리를 내놓는 요리사처럼 에밋의 지시대로 주문을 구성할 뿐.
그것도 한창 열심히 주문을 생성하면서 에밋이 말해주는 주의사항에 맞춰 실시간으로 수정까지 해야 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크르르르릃…!”
마지막 남은 늑대인간은 침을 질질 흘리면서 나를 바라본다. 우두머리였던 거 같은데, 앞서 달려든 늑대인간 세 마리가 순식간에 겉바속촉하게 되어 버리고 나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저하는 모양새였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마법은 완성될 텐데.
출력 최대. 보정 최대. 퍼지는 게 아닌 꿰뚫는 걸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법의 안정성 강화까지 빠르게 시도한순간, 갑작스레 내가 추가하지 않은 부가 술식 하나가 마법에 얹혀졌다. 그와 동시에 티잉! 하는 동전 튕기는 소리가 나며 뒤에서부터 동화 하나가 튕겨 날아왔다.
“하지만 그 모든 조정만 완벽하게 맞출 수 있다면 더럽게 강하지. 번개 맞고 멀쩡할 수 있는 생명체가 얼마나 되겠나?”
그렇게 튕겨진 동화는, 구성중이던 마법에 닿기가 무섭게 내 의지와는 별개로 강제 사출되어 늑대인간의 가슴을 꿰뚫고 바람구멍을 내었다.
의도와 다르게 레일 건이 되어 버린 마법에 황당해서 뒤를 돌아보니 차를 다 마신 에밋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예시일세. 돈은 잃게 되지만, 졸지에 마법이 아니라 물리력이 되어 버리지.”
왕국에 있을 땐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발상이었다. 사실 이 작자도 전생이라든가 뭔가 엮인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구심이 들려는 찰나, 요리 준비를 끝마친 칼 칸시가 허리를 펴며 말했다.
“마침 딱 맞춰서 다 끓었으니 식사나 합시다.”
주변에 탄내를 흩뿌리며 쓰러진 늑대인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