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100
99. 나이트 크롤러 1
아자딘은 요새 문을 열고 요새의 경비대와 민간인들을 전부 밖으로 내보냈다.
“나가자마자 백작의 군대가 다 죽이는 거 아냐?”
다들 두려움에 떨며 반신반의했지만 그들이 요새 밖을 나와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 백작은 수수께끼의 마물들, 갑자기 나타난 언데드들과 싸우느라 후방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백작과 동맹을 맺고 있던 전령일족, 아라엘 지파의 인원들은 아자딘을 피해 이동 중이었지만 백작의 병대에 바로 합류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백작의 군대가 위기에 처할 때 가서 도와주면 요새를 함락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훌륭한 변명이 되리라.
‘아, 요새를 함락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후방에서 소란이 일어나서 구원하러 왔다. 당신들만 멀쩡했으면 요새를 함락시켰을 거다.’
이렇게 핑계를 댄다면 아자딘에게 패퇴한 것을 무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요새 문을 열고 나온 사람들은 적들이 물러나 있는 걸 보며 당황스러워했다.
“괘, 괜찮잖아?”
“여, 역시.”
“놀랍군. 이게 전령일족인가? 대단해.”
병사들은 모든 것을 계획대로 착착 진행하는 아자딘에게 경외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해가 떨어져 어두운 밤, 달빛도 흐릿한 이때 어둠을 짚어 가는 그들은 마치 이 끝이 과연 있기는 한지 모를 동굴을 기어가는 기분이었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불안과 공포가 심장을 조여 온다. 그런데도 아자딘은 담대하게 불안한 미래를 향해 앞서 나간다.
‘이 사람은 정말 똑똑하고 현명하구나. 이런 상황이 될 거라는 걸 예측했단 말인가?’
‘게다가 이 담대함, 어떻게 이렇게 자신만만하지?’
사람들이 경외감을 보낼 때 아자딘은 그들을 돌아보았다.
‘일단 저지르긴 했는데… 저건 뭐야? 신왕진서 사본의 봉인을 풀면 젝트가 추격해올 줄 알았는데 아닌가? 언데드 군대는 또 뭐지?’
사실은 아자딘도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당황하거나 불안에 떨면 믿고 따라온 다른 사람들은 아예 광란을 일으킬 게 분명하기에 일부러 태연함을 연기했다.
“자, 그럼 여러분. 여기서 작별인사를 해야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삼위의 대천사의 가호가 있기를.”
“…….”
아자딘이 천사들의 가호를 빌어주자 다들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전령일족들을 영혼 없는 불경자라고 여겼다. 신을 죽이고 황제를 섬기는 끔찍한 것들. 그런데 그것의 입에서 그들이 인정하는 종교, 구난기사단과 천사 신앙의 축사가 튀어나온 것이다.
‘이 남자는 천사 신앙자, 구난기사단인가? 그렇지만 전령일족이 천사 신앙자라니? 영혼 없는 불경자가 아니란 말인가?’
야에가스 신족을 살해하는 신앙도 없고 영혼도 없는 존재. 그것이 전령일족에 대한 선입견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신앙이란 곧 영혼의 증명 같은 것. 그래서 신의 혈족을 거부감 없이 죽여 버리는 전령일족을 사람들은 ‘영혼이 없다’라고 단정 지었다.
그런데 천사 신앙자라니?
이자는 영혼이 없는 게 아니다. 신앙이 있으니 곧 영혼이 있다.
‘어쩐지,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우리를 구하더라.’
‘그런데 여기서 작별인사라니?’
아자딘이 말 안장, 아니 산양의 안장에서 칼을 뽑아 북쪽 길을 가리켰다.
“란타릭을 피해서 북쪽을 따라가세요. 왕의 교회가 통제하고 있는 곳에 도착하면 안전할 겁니다. 저와 제 동료들은 군대가 당신들을 추격하지 못하도록 미끼 노릇을 할 테니, 여기서 작별하겠습니다.”
“아!”
“위험합니다.”
“으, 은인께서는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델메르가 그렇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다만 샤티, 당신은 저와 함께 가야 합니다.”
“…….”
다른 이들은 다 보내주겠지만 나가 요원인 샤티는 잡아두겠다. 아자딘이 콕 집어 말하자 샤티도 체념했다.
“알겠어. 알겠다고. 당신들을 따돌리고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럼 다시금, 여러분들의 앞길에 천사들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아자딘이 우아하게 인사하자 다들 감격해서 물러났다. 다만 사람들 사이에 물러나지 않은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놋쇠의 기사 브란드 경이었다.
“브란드 경?”
“나도 자네와 함께 가겠네.”
“예? 절 따라오시겠다고요?”
아자딘은 브란드의 억지에 당황했다.
‘으음. 어쩐다?’
그는 브란드 경을 좋아했다. 가혹한 세상 속에서 올바른 일을 행하기 위해서는 미치지 않고서는 어렵다.
‘세파에 굴하느니 미치기를 선택한 사람은 아무리 광인이라 할지언정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요구를 들어주긴 어려운데. 무사 계급이 아니라 그저 문필가에 서기였던 노인이 앞으로의 여정에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잘 달래서 보내야지.’
그래서 아자딘은 핑계를 대었다.
“저 브란드 경, 당신께는 저 사람들의 피난을 엄호하는 일을 부탁드립니다. 무명(武名)이 드높은 란타릭의 브란드 경이 아니고서 누가 저들을 보호하겠습니까?”
아자딘이 그를 어르고 달래서 사람들과 피난을 가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브란드가 말했다.
“먼저, 나는 기사가 아니네. 나는 란타릭 백작의 서기였던 브란드라고 하지.”
“…….”
아자딘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들었다.
‘제정신 아닌 줄 알고 허튼소리를 늘어놨는데… 부끄럽네.’
브란드가 헛기침을 했다.
“어흠. 정신이 온전하다고는 말하지 않겠네. 믿을 수 없겠지. 하지만 아주 약간은 돌아왔다네.”
“괜찮으십니까?”
“물론… 음, 이건 정말 악몽 같군.”
브란드는 자신의 머리를 짓누르며 인상을 썼다.
“지금도 광기가 속삭이는 게 느껴진다네. 내 가족이 몰살당하고 유린당한 데다가 내가 그….”
“진정하세요. 정신이 되돌아왔단 말입니까? 그럼 왜?”
“나는 란타릭 백작의 서기라 그의 비밀들을 많이 알고 있지. 그래서 란타릭 백작이 날 제거할까 봐 두려워 온 가족을 데리고 피난 가던 중 도네어 그 작자에게 붙잡히고 말았지.”
브란드는 아자딘을 돌아보았다.
“그건 정말 지옥 같았네. 그 지옥에서 날 해방시켜 준 자네에게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네.”
“보답이요?”
듣고 있던 미디암이 의아해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전령일족을 혐오하고 있었네. 그런데 설마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날 도와준 이가 전령일족일 줄이야. 부끄럽네. 내 목숨을 다하더라도 은혜를 갚고 싶어.”
“보답이라니, 뭘 해주실 건가요? 란타릭 백작이 숨겨둔 재산?”
미디암은 의아해했다. 현재 브란드는 뭐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보검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수로 보답하겠다는 걸까?
“왜 란타릭 백작에게 전령일족이 붙어 있는지 알겠나?”
“네?”
“만약 황제의 금화를 만들던 원판이 존재한다면 어떻겠나?”
“……!?”
“어?”
미디암과 이스마일, 아자딘은 이 노인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았다.
“황제의 조폐국?”
그것은 전령일족들 사이에서는 마치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황제의 금화에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면서도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어서 어설프게 복제해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황제의 조폐국을 찾아내 황제의 금화에 얽힌 비밀을 밝힌다면?
황제의 금화를 양산해서 전령일족들을 복무의 저주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 황제의 목소리와 청원의 이적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신왕진서 사본을 찾아서 해석해서 복무의 저주를 풀어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신왕진서는 휘브리스 대륙 최강의 마도서, 야에가스 신족들의 힘의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황제의 조폐국 또한 확보해둬서 나쁠 게 없다.
“황제의 조폐국에 관심이 있겠지. 전령일족이라면?”
“설마 란타릭에 조폐국이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니고… 아디로프에 그 단서가 있다네.”
아디로프는 란타릭 백작 가르나헤어가 소유하고 있는 또 다른 영지다.
“알겠습니다. 같이 가시지요.”
“고맙네.”
브란드가 아자딘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럼 브란드, 여기 타세요.”
아자딘은 자신의 산양에 브란드를 태웠다.
“그럼 란타릭으로 가세.”
“란타릭으로 말입니까? 위험할 텐데요?”
“백작이 군대를 물린 지금이 오히려 이동하기 좋은 때네. 아마 백작은 살라스마 주민들을 모조리 말살하려고 하고 있겠지만 그대라면 어렵지 않게 병사들을 우회할 수 있을 것이네. 그렇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만.”
“황제의 조폐국을 찾는 단서가 거기에 있다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지요.”
아자딘은 브란드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대체 어떤 언데드가 습격해왔는지 알고 싶었는데 확인은 뒤로 미뤄야겠군.’
비전투 요원인 브란드를 받아들였으니 가급적 싸워야 할 상황은 피해야 한다. 아자딘은 브란드를 자신의 산양에 태우고 일행과 함께 란타릭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아자딘 일행은 코라 강의 인근에서 멈춰 섰다. 강을 건너기 위한 부두에는 이미 란타릭 백작의 병사들이 깔려 있었다.
란타릭과 살라스마를 연결하는 교두보인지라 백작이 상당수의 병력과 믿을 만한 지휘관을 배치했음이 분명했다. 만약 여기가 함락되면 란타릭에서 보급을 끌고 올 수 없고, 백작은 적지 한복판에서 고립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서 쉬도록 하지요, 샤티.”
“아니 왜 나는 당신 집 개처럼 부르지? 내가 당신보다 더 오래 살았어. 샤티 님이라 부르도록.”
“모가지가 떨어지고 싶나 보군요?”
미디암이 목에 칼을 겨누자 샤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자딘 상처에 치료를.”
“아.”
지벡은 샤티가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는지 보고 싶었다. 그때 문득 브란드가 말을 꺼냈다.
“혹시 목성의 예언을 아시오?”
“그건 왕의 교회에서 금지하는 망언입니다.”
지벡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급하는 것조차 불경한 목성의 예언이란 광인들이 즐겨 말하는 파멸의 예언이다.
목성의 시대가 다가오면 왕의 교회가 힘을 잃고 언젠가 쿠르트 신족들보다 이전에 이 땅을 배회하던 고대의 악이 되살아나리라는 예언.
물론 그것은 왕의 교회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에 제정신 가진 사람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성의 시대가 올 때, 네더스트롬에 가라앉아 있던 옛 주인들이 돌아오고, 왕화의 빛은 약해지며 삼위의 대천사들의 위광조차 사라질 것이다. 그런 예언이오. 왕의 교회와 왕화의 빛만이 아니라 이 땅에 백색의 마력을 제공하는 모든 근원이 약해지리라는 끔찍한 예언이지.”
브란드의 말에 지벡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왕의 교회만이 아니라 구난기사단의 천사 신앙도 공격하는 예언이니 참으라는 뜻인가?
“그건 망언입니다. 미친 자들이나 할 법한 소리란 말입니다.”
“아니 진실이오. 실제로 왕화의 빛은 약해지고 있소.”
“……!”
그 순간 피로에 찌들어 있던 것으로 보이던 지벡의 눈이 크게 떠졌다. 분노 그 자체가 불꽃이 되어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와 눈앞의 노인 브란드를 구워버릴 것 같다.
하지만 브란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지벡의 살기를 받아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