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309
308. 기적의 인도자 1
삼위의 대천사는 본래 물질적인 신체를 가지지 않는 고차원의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땅에서 고대신들에게 고통받는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지상에 강림했고, 그를 위해서 육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육신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삼위의 대천사들은 이제 이 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추방당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천사들에게서 기적의 힘을, 백색 마력의 힘을 받아 쓰는 구난기사단의 힘이 꺾이게 될 것은 명약관화. 강대한 네더의 마물들이 남아있는 이때 그 힘이 사라지는 건 구난기사단들에게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삼위의 대천사들은 고차원적인 존재인 자신들이 이 세계에 속박되는 것을 각오하고 얼마 남지 않은 육체를 석화시켜 자신들의 존재를 그 안에 봉인했다.
세 미덕의 교리를 지키는 한 백색 마력의 힘은 끊기지 않을 것이라는 가르침을 남기고, 신적인 존재들이 오로지 인간들을 위한 희생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렇게 천사들이 한계에 다다른 육체를 스스로 석화시켜 봉인한 곳이 바로 세인트 말로리 요새. 요새의 지하에는 삼위의 대천사들이 석화된 석상이 있어 오직 가장 위대한 공적을 세운 성기사만이 일 년에 한 번, 그 천사상을 배알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린다고 하였다.
하지만 삼위의 대천사를 따르던 일반 천사들도 스스로 석화를 선택한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석상은 삼위의 대천사를 중심으로 곳곳에 형성되었지만… 이후 세인트 말로리 요새가 대도시로 변화하면서 도시의 확장 공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었고, 결국 천사상을 이동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지혜의 교단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석화 천사를 삼위의 대천사 근처에 모았으며,
부득불 삼위의 대천사에 가까이 두지 못하게 된 천사상들은 자신들의 교단으로 갖고 갔다.
그런데 석화된 천사상들을 움직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천사상에 손상을 가하게 되었다.
그 누가 감히 불경하게 천사상을 파괴하려 하였겠냐만 돌로 된 것들을 옮기다 보면 가느다란 부분이 깨지고 부러지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부러진 천사상의 단면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경건한 성직자와 성기사들이 화들짝 놀라 그 상처를 막으려 했지만, 돌로 된 이가 흘리는 피를 막을 길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흘리는 천사의 피에 닿은 사람의 상처가 치료되고, 절단된 팔과 손가락이 다시 자라는 기적이 일어났다.
천사의 피에 신묘한 효능이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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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
자비와 용기의 기사단은 천사의 피가 흐르게 된 것에 부끄러워하며 속죄하고자 하였으나, 그들의 능력으로 돌이 된 천사상을 수복할 방법은 없었다.
이에 지혜의 기사단은 이러한 천사의 피를 연구하고자 하였으니, 세 기사단 간에 칼부림이 일어날 정도로 격심한 의견 다툼이 벌어졌다.
‘이미 우리는 천사상을 훼손하는 죄를 범했으나, 더 크고 무거운 죄는 천사들의 이념을 더럽히는 일이다! 흐르고 있는 저 피를 헛되게 하는 것이야말로 숭고한 천사들의 희생을 더럽히는 반역 행위다!’
지혜 기사단은 그러한 주장을 펼치며 천사들의 피를 연구했고, 다양한 마법의 진보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들은 세라마이트의 제법을 알아내었다.
본래 성스러운 힘으로 불타오르는 금속, 세라마이트는 삼위의 대천사들이 인간들에게 만들어 하사하는 검이었다.
그 성스러운 불길은 왕의 교회와 팔왕신족이라는 강력한 세력에게도 감히 구난기사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성스러운 검으로 마물을 물리치고 인간을 수호하는 성기사의 모습이 민중들에게 이들이 정녕 성스럽고 정의로운 존재임을 각인시킨 것이다.
그 세라마이트 장검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천사의 피, 그것도 천사상을 훼손해서 나오는 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알려지는 건 좋을 게 없다.
결국 용기와 자비의 교단은 지혜 교단의 행동을 묵과하는 대신 세라마이트를 공평하게 나누어 받기로 약속했다.
모든 것은 교단의 정의를 위해.
그런데… 이제 세라마이트가 아닌 셀레스티얼들, 반인간 반천사의 존재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자비 교단으로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불경이었다.
사실 세라마이트 무구의 생산량이 계속 유지되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자비 교단에서는 지혜 교단이 천사의 피를 얻고자 의도적으로 천사상을 훼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셀레스티얼이라니?
처음에 지혜 교단은 뻔뻔스럽게 신성한 처녀 수태의 의식으로 셀레스티얼이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초기 셀레스티얼의 연구가 끝나자 어째 그 후, 셀레스티얼이 동시다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세라마이트 장검을 위해 의도적으로 천사상을 훼손한 것만 해도 끔찍한 불경인데 셀레스티얼은….’
하이네는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질 지혜 교단의 추악한 진실을 상상하며 몸서리쳤다.
이것이 외부인에게 새어나가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젝트, 지벡, 저 빌어먹을 오크 놈, 그리고 아자딘까지.
아자딘은 형식상 구난기사단의 일원이지만… 하이네는 아자딘도 결국 처리해야 할 것이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아자딘은 지금 하이네에게 등을 보인 채로 잠겨진 문을 열고 있었다.
“자물쇠에… 마법과 쇠사슬로 잠겨있군. 보통은 여기서는 열 수 없게 되어있는데.”
아자딘은 문의 상태를 확인해 보고 조용히 정신을 집중했다.
아라엘의 목소리가 아자딘의 의식에 따라 구현화 되어 자물쇠에 걸린 마법들을 풀어내고, 문짝 안쪽의 쇠사슬을 분리했다.
마법과 기계장치, 물리적인 빗장과 쇠사슬까지 전부 무력화한 아자딘은 간단히 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지혜 교단의 마법이 꽤나 정밀했지만 전령일족 최강의 마법사 중 한 명이던 아라엘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자딘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놀랍군요. 아자딘 경. 참으로 훌륭하고 정밀한 마법 솜씨입니다. 신왕진서의 도움 없이 단기간에 그만한 발전을 이룩하다니 참으로 뛰어난 마법학자군요. 온 세상의 모든 마법학자가 당신의 재능 앞에서는 빛을 잃을 겁니다.”
젝트가 뒤에서 빈정거렸다. 아자딘이 신왕진서 사본을 가져갔다고 여기는 젝트의 빈정거림이었지만 아자딘이 코웃음 치며 답했다.
“젝트 경도 신왕진서를 좀 봤다면 알 텐데. 신왕진서에 문 여는 마법이 있던가? 아 하긴, 젝트 경의 힘은 사령술과 네더 마법에 기인하지?”
“대장.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둘 다 닥치는 게 어떨까? 아무리 인간들이 감정에 쓸려 다니는 금수들이라고 해도 떠들 때 안 떠들 때 분간은 해야 하지 않겠어?”
스콧이 아자딘과 젝트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 말이 백번 옳은 말이라서 둘 다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안에 들어서니 드넓은 지하창고가 나왔다. 본래 있던 거인시대의 건물 위에 새 건물을 올리기 위해서인지 돌로 만들어진 기초가 잔뜩 쌓여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 틈에 젖어도 무방한 여러 잡동사니가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다.
아마도 마법연구를 위한 실험생물들을 내다 버리기 위한 길인지 피투성이 생명을 끌고 다닌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짐승의 역한 분비물과 배설물 냄새도 났다.
‘사교들의 연구실과 큰 차이가 없는 냄새군.’
아자딘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를 죽인 채 앞으로 나갔다.
-철컥.
-카랑.
아자딘과 하이네는 소리 없이 이동할 수 있지만, 슬프게도 지벡과 젝트가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난다.
“당신들은 여기서 대기.”
“무슨 어리석은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젝트는 아자딘의 제지를 거부했다.
“저는 구난기사단의 기밀을 보기 위해 당신들과 협력하고 있는 겁니다.”
“그 기밀을 보려면 여기저기 절그럭거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당신들끼리 보고 와서 입을 다물면….”
“솔직해지지 젝트 경. 당신이나 나나 사실 이미 구난기사단이 무슨 짓 하는지는 대충 예측하고 있잖아?”
아자딘이 그렇게 물어보자 젝트가 흠칫 놀랐다.
“당신이 육안으로 직접 본다고 하더라도 기사단이 잡아떼면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불경하고 끔찍한 일을 벌이고 있다면 기사단은 어지간한 증거 없이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
“뭘 말하고 싶은 겁니까?”
“내가 찾으려는 것은 북제와의 연결고리지. 그 정보는 당신과 공유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젝트가 구난기사단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약점을 잡는 데는 협력하지 않겠다. 어차피 그런 약점을 잡는 건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반면 지혜 교단과 북제의 연결고리, 어떻게 협력하고 있고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고리는 얼마나 단단한지?
그런 다양한 북제 관련 정보는 공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자딘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슬프게도 아자딘이 하는 말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여기서 기다리지요.”
“아니 그전에 대장. 젝트 경이 우릴 인질로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리고 저 인간도 사령술사잖아. 죽이거나 심령금제를 갈려고 할 수도 있어.”
“그러지 않을 거요.”
젝트가 그리 말하자 아자딘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다는데?”
“못 믿겠는걸.”
“그렇다니까 당신의 명예를 걸고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젝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상황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오늘 여기서 아자딘 경의 부재를 이용해 이들을 속박하거나 제압하지 않겠소.”
“위해를 끼치지 않고 공동의 임무에 대해서 적극 협조하겠다는 약속도.”
“…….”
이 오크놈이 지금 왕의 교회의 이단심문관인 날 우롱해?
젝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아쉬운 건 그였다.
사실 그도 여기까지 이렇게 무사히 잘 들어올 줄은 몰랐다. 부패의 천사와 싸운 후, 지하에서 또 다른 부패의 천사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그도 임무의 실패를 직감하고 있었으니까.
설마 별 피해 없이 이렇게 구난기사단의 심장부까지 들어올 줄은 몰랐다.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야지 여기서 괜히 오크랑 티격태격하다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맹세하겠소.”
“그렇다면야.”
아자딘은 하이네와 함께 안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들어가는 곳마다 문이 잠겨있고 심지어 한쪽에서만 열리도록 빗장이 걸려 있지만, 아자딘은 마법으로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에 들어섰다. 제아무리 뛰어난 자물쇠 따기 장인이라도 빗장 걸린 문은 열 수 없기 때문에 보통 빗장을 걸거나 쇠사슬로 봉인하거나 하면 방심하기 마련이라서 안에 특별한 경비인원들은 없었다.
“아자딘 경. 잠시….”
“무슨?”
“정말 젝트 경 앞에서 기사단의 치부를 드러낼 셈입니까? 일이 알려지더라도 기사단 내부에서 해결해야지요?”
“아 그런…?”
아자딘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성과도 내지 않았는데 벌써 뒷일을 생각하다니.”
“물론 저도 이게 숲을 보고 모피값을 헤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뒷일을 멀리 내다보지 않고 일을 벌이는 것도 오만하고 어리석은 짓. 젝트 경은 감당하기 힘들 겁니다. 그는 부패의 천사와 싸웠음에도 상처 입지도 않았고 소모도 크지 않았어요.”
젝트 경은 감당하기 힘든 강자다. 하이네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자딘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하이네가 아자딘의 손바닥에 글씨를 써서 물어보았다.
‘우리가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군.’
아자딘이 그녀의 손바닥에 글씨를 써주곤 조심스럽게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