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68
67. 암살영업인 4
“흠. 귀엽지 못한 녀석이군. 하지만 도움이 되니 고맙다. 종사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군. 필요할 때 부려먹을 수 있으니.”
“…….”
“아, 아자딘. 그렇게 본인 앞에서 말해 버리면… 상처받잖아요.”
“네가?”
“이스마일이요.”
“왜?”
“애니까요.”
아니 너도 애잖아. 아자딘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신나서 말하고 있는 미디암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요새 이스마일은 아자딘에게 열등감을 느낀단 말이에요.”
‘그런 걸 당사자 앞에서 말해 버리면 그게 더 심한 거 아닌가?’
아자딘이 이스마일의 표정을 살피니 과연, 녀석의 표정이 벌레 씹은 듯 우그러져 있었다.
“그래도 자기가 더 잘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걸로 빈정거렸는데 너무 시원하게 상대도 안 된다는 듯 받아들이면 상처받을 수밖에 없죠. 내가 도발했는데 상대가 상처받은 기미도 보이지 않으면 그게 더 수치스러운 거잖아요.”
미디암이 그렇게 말하자 이스마일은 진심으로 상처를 받았다. 사실 이스마일이 아자딘을 고까워하는 것의 태반은 미디암에게 책임이 있다. 그녀가 아자딘에게 마음을 열고 너무 들러붙는 게 열등감의 근원인 것이다.
이스마일은 미디암의 하인으로서 입안의 혀처럼 굴렀는데도 그녀의 관심을 한 조각도 얻지 못했다. 그 반면 아자딘은 너무 쉽게 미디암의 마음을 얻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미디암은 이스마일이 열등감을 느낀다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으니… 왜 열등감을 느끼는지는 전혀 모른단 말인가?
“흠? 열등감? 나에게? 왜 그러지?”
“아마도 당신의 무력이 너무 출중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실제로 저희가 결투 걸었다가 패했고.”
“정확히는 너 혼자였지. 음, 뭐 그런데 딱히 내가 사과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군. 이스마일, 그냥 나는 네 나이에 선견조 마법을 쓰기에 잘한다고 한 것뿐이었어. 오해가 있다면 기분 풀어라.”
아자딘은 진심으로 이스마일에게 사과했다. 이스마일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결국 미디암과 아자딘, 둘 다 이스마일의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이다.
“괘, 괜찮습니다.”
속에서 천불이 나지만 이스마일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자딘과 미디암이 사이가 좋아서 질투하는 거라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럼 나는 스트레칭 하고 쉬겠다. 너희들도 쉬어둬라.”
아자딘은 파란 장미관의 방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휴식을 취했다.
*********
저녁 무렵에 병사 대신 서동 벨돈이 찾아왔다.
“여기, 부탁하신 자료입니다.”
벨돈은 대략으로 표시된 지도를 가져왔다. 손으로 그린 백작 성 내부지도와 하인들의 야간 시 근무 위치였다.
“병력은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백작님은 낮에는 집무실에서, 밤에는 후원 별관에서 애인들과 지내고 계십니다. 후원 별관의 어디에 계신지는 모릅니다. 별관으로 들어가는 길은 최근 철저히 차단되어 있으니까요.”
성안 정보는 상당히 충실했지만 후원 별관에는 정보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즉 후원 별관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봐도 되겠군.’
아자딘은 가져온 정보를 분석해봤다.
‘코젤 공자가 모친에게 알리지 않고 스스로 가져온 정보인가? 아니면 정말 백작 부인이 가담한 정보인가?’
코젤 공자의 스타일과 성격상 성내의 하인들에게 인기가 있을 인물은 아니다.
‘이건 하녀들이 가담해야 얻어낼 수 있는 정보. 백작 부인이 가담했다고 봐야겠지?’
그리 생각한 아자딘은 서동을 떠보기로 했다.
“이걸 가져온 걸 보면 백작 부인께서는 마음을 정하신 것 같군요. 그럼 줘야 할 게 있지 않습니까?”
“네. 백작 부인께서 의뢰하셨습니다. 그런데 줘야 할 거라니요? 정보 말고 또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선금 말입니다.”
“아 그거 말입니까. 이, 일단 이걸.”
벨돈이 주머니를 하나 내밀었다. 안에는 은화가 들어 있었는데 금액이 그리 많지 않다. 다 해봐야 금화 한 닢 정도의 가격이다.
“이건 그 난민들 불량배들에게 줄 돈이었군요.”
“네. 예산이 그 정도밖에 없어서.”
“금화 50닢짜리 의뢰로 일이 커졌으면 선금을 좀 더 주셔야 할 텐데요?”
“그게 좀 곤란합니다.”
“곤란하다고요?”
“네. 백작 부인께서 최근 지출이 좀 많으셨거든요.”
코젤 공자가 데리고 있던 병사들의 무장 수준이 아주 좋았다. 아마도 그게 백작 부인의 지갑에서 나온 것이겠지.
그만한 지출을 했는데 별다른 소득 없이 아들이 불구가 되어 돌아왔으니 속이 쓰릴 만할 것이다. 그래도 아자딘은 선금을 요구했다.
“백작님은 요새 통 집 밖을 나오지 않지요? 이거 단순히 길거리에서 암습하는 거 아닙니다. 선금을 좀 신경 써주시지 않으면 저희도 착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금을 받으시면 그때는 저희 쪽에서도 돈을 떼이지 않기 위해 간섭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희 고용주분들이 그렇게 까다로운 거래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저희 고용주님은, 당신이 찾아오셨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쪽이 암살자를 찾아다녔다면 물론 선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그쪽에서 먼저 제안하고 저희 측에서 고용한 일에 훼방을 놓았으니 이걸로 일단 선금….”
“이쪽도 목숨을 거는 일인데 이 정도 금액을 선금이라고 가져오라면 곤란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일단 주인님께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지요.”
아자딘은 벨돈이 떠나가는 걸 허락했다. 그는 허겁지겁 푸른 장미관을 벗어났다. 암살자에게 선금을 주지 않고 깎으려고 교섭하는 짓은 일개 문관인 벨돈에겐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리라.
“암살자를 선금도 없이 굴리려고 하다니, 어이가 없군. 뭐 백작 부인은 그렇게 치밀한 성격은 못 되는 것 같다. 노르트 남작 부인이 좀 더 역량이 있는 것 같은데.”
아자딘은 코젤 공자와 그 어머니인 백작 부인에 대해서 낮은 평가를 내렸다.
“그쪽도 선금을 많이 주면 우리를 관리하기 힘들 테니까요. 예를 들어서 1할인 금화 5닢만 해도 거금이잖아요? 그걸 떼 먹혀도 어디 가서 백작을 암살하려고 했는데 계약금을 떼먹혔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는 처지잖아요? 소극적인 게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네요.”
미디암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 주었다.
“상대를 너무 자극하면 의뢰 자체를 없었던 일로 하지 않을까요? 본래는 노르트 남작 부인 사저를 습격하려고 했던 일이 아자딘 당신이 그들에게 영업해서 백작 암살로 바뀐 거잖아요? 솔직히 돈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 어차피 신왕진서 사본을 빼앗기 위해서 한 일이니, 저들의 정보를 끌어낸 것만으로도 일차적인 목표를 달성한 건 아닌가요?”
백작 부인에게서 성안 지도와 하인들 근무 정보를 손에 넣었으니 일차적 목표는 달성했다. 그러나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직 주의해야 할 게 또 있어.”
“네? 그게 무슨….”
“데릭 일행이지.”
아자딘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아.”
이스마일이 시전한 선견조의 마법에 한 무리의 병사들이 걸렸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질서정연하게 어느 한 곳으로 이동하는 게 보인 것이다. 노르트 남작 부인 저택이었다.
“노르트 남작 부인 저택으로 병력이!”
“역시. 데릭 놈 소행이군.”
아자딘은 이번 일이 데릭이 저지른 짓이라고 단정 지었다.
“너무 논리를 비약하는 거 아닌가요? 데릭이 그랬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좋아. 우선 내가 모욕을 가했는데 순순히 물러난 점.”
“네?”
듣고 있던 미디암이 당황했다.
“사실 그들을 모욕할 때 나는 그 자리에서 그놈들의 버릇을 고쳐줄 생각이었거든. 원래 데릭의 성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덤벼들고도 남았을 도발이었어. 특히 막 아라엘에게 발목이 고쳐진 데릭이라고. 전령을 하다 부상 때문에 은퇴해야 했던 자가 몸이 다시 나았는데 그 힘을 쓰고 싶지 않겠어?”
“그, 그건 그렇네요. 하지만 그것만으로요?”
“아라엘이 날 회유하려고 했는데 데릭 일당이 자기들 손으로 날 공격할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어부지리를 생각하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니냐.”
“아.”
아자딘에 반대하던 미디암이었지만 그 말에는 설득되고 말았다.
아라엘이 아자딘을 회유하려 한다. 아라엘을 추종하는 이들은 그녀의 말에 따르고 있지만 아자딘이 회유당해서 자신들 조직에 들어와 혈육이라는 이유로 한자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들이 아자딘을 제거했다는 흔적이 남으면 후환이 두려우니까… 자연히 남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수법을 생각하기 마련.
“즉, 데릭이 당신을 백작에게 밀고했고 그것 때문에 병사들이 당신을 잡기 위해서 노르트 남작 부인의 저택으로 향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신다는 거지요? 어쩌실 건가요?”
“내가 데려온 고아들의 후견인이 되어준 노르트 남작 부인을 해치게 놔둘 수는 없지.”
“대체 왜 전령이 그런 일을 하는 겁니까?”
이스마일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박해받는 아라가사들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을 박해하는 휘브리스 백성들까지 챙기는 아자딘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냐니? 휘브리스 백성들을 보살피는 게 황제의 전령의 진짜 임무니까?”
“하지만 그건….”
“그게 아니더라도 이게 올바르고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이지. 내 미학에서는 말이지.”
“미학 말입니까?”
“그래. 그런 면에서 아이들의 후견인이 되어준 노르트 남작 부인을 지키는 건 내 사명이라고 할 수 있지. 자, 그럼 시작해볼까?”
아자딘은 투구를 벗고 전령의 상징인 매의 가면을 썼다.
“가자, 미디암 이스마일!”
“예!”
“화살 많이 들고 따라와라.”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푸른 장미관을 박차고 나갔다.
*********
데릭 일행은 백작에게 다음과 같은 정보를 전달했다.
그저께 밤, 지하수로를 통해 메제리의 사도들이 움직였으며 그들은 신왕진서 사본을 가지고 있었다. 메제리의 사도들은 사람들을 납치해 제물로 삼아 신왕진서 사본의 힘을 손에 넣으려 했고, 이는 제물로 잡혔다 구조당한 이들의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 와중에 한 남자가 메제리의 사도들을 쓰러뜨리고 사람들을 구출했는데 그를 노르트 남작 부인이 자신의 사저로 초대했다더라.
이렇게만 말하면 뒤는 자연히 데릭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리라.
과연 데릭의 예상대로 백작은 병사들과 기사들을 노르트 남작 부인의 사저로 보냈다.
“무슨 일입니까, 기사님?”
노르트 남작 부인 사저 앞에는 아직 어린아이들이 하인복을 입고 청소 중이었다. 아자딘에 의해 여기로 옮겨진 고아들이었다.
“비켜라 꼬마들아.”
“여, 여기는 노르트 남작 부인의 사저입니다. 백작님의 연인이기도 하시지요.”
“왜 모르겠느냐? 수상한 놈들이 여기 잠입해 있다는 소식 때문에 조사하고자 왔다.”
그들은 막무가내로 하인 아이를 밀치고 저택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