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30
1030회. 누가 보면 자기들이 죽인 줄 알겠네
하늘로 도약한 엘리오는 허공에서 해머를 스치듯 흘려보낸 뒤 부드럽게 해머 위에 착지했다.
그리고 마력탄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콰앙―!
해머가 지면을 강타했지만 엘리오의 달음박질은 멈추지 않았다.
타타타탓―.
그는 한 아름이 넘는 해머 자루를 지나, 싸이클롭스의 팔뚝은 물론, 싸이클롭스의 팔을 타고 어깨에 이르렀다.
해머질로 인해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던 싸이클롭스가 급히 상체를 세웠지만 엘리오는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당황한 싸이클롭스의 반대편 손이 어깨로 향할 때다.
돌연 허공으로 훌쩍 몸을 띄운 엘리오가 검신합일의 기세로 싸이클롭스의 눈을 향해 날아갔다.
콰드드득―!
묵직한 파열음과 함께 싸이클롭스의 외눈이 터졌다.
일격을 성공시킨 엘리오는 방심하지 않고 빠르게 뒤로 빠졌다.
그러자 싸이클롭스가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비명을 질러 댔다.
“크아아아아!”
마족 싸이클롭스의 비명에 그보다 하위 종인 마물과 마수 들은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했다.
한편 엘리오가 뛰어들자 멈춰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궁정 마법사 메이지 칼로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가 ‘소드 익스퍼트’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마족 싸이클롭스를 상대로 저렇게 선전할 줄은 몰랐다.
소드 익스퍼트의 힘이 통하는 것은 마물까지다.
마나의 양과 검술의 숙련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소드 익스퍼트에게 마족은 어려운 상대다.
그런데 엘리오는 싸이클롭스와의 일대일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물론 냉정하게 분석하면 계속 피해다니면서 헛칼질만 하다가 마족의 눈에 일격을 가한 것이지만, 현장의 분위기라는 게 있다.
그가 본 엘리오는 싸이클롭스와 거의 대등하게 싸웠다.
‘게다가 저 움직임은 대체…….’
마치 블링크라도 쓴 것처럼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 가는 수법은, 지금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기술이었다.
처음에는 마법인 줄 알고 ‘진실의 눈’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마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육안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인 결과였다.
대체 어떤 수련을 해야 저런 움직임이 가능한지, 보고 있으면서도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나 해머에 뛰어올라 어깨까지 일직선으로 달려간, 중력을 무시한 듯한 달음박질은 마법 같았다.
하지만 저 모든 탈인간적인 움직임은 마법이 아니라 육체와 영기의 조화가 이루어 낸 결과였다.
믿어지지 않지만 엘리오는 순수하게 영기만으로 저 마법 같은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영기가 저렇게 강한 기운이라고?’
천만에.
그랬다면 ‘영기 수련자’들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히르헤라에 떨어진 ‘메테오 스웜’에서 살아남은 건 운 때문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잘해야 소드 익스퍼트인 줄 알았는데……. 그 이상이라는 말인가?’
검술의 극의에 이른 소드마스터들에게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
예컨대 저렇게 육안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움직임이나, 중력을 거스르는 달리기도 가능하다.
믿기 어렵지만 엘리오가 소드마스터라면 모든 게 설명이 된다.
북방의 영주인 마티아스 코드란테스 백작도 부상을 입었지만 그 지옥에서 살아남았지 않았던가!
메이지 칼로스가 엘리오의 경지를 두고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 옵티머스 기사단장이 슬쩍 말했다.
“엘리오 경이군요. 소드 익스퍼트치고는 대단한 움직임이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메이지 칼로스가 힐끔 고개를 돌렸다.
그건 정말 의외였다.
기사단장 조엘 스트림 백작은 마족 앞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엘리오를 소드 익스퍼트라 단정 짓고 있었다.
그래서 메이지 칼로스는 지나치듯 운을 띄워 보았다.
“그러네요. 저 정도면 그냥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믿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기사단장이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말했다.
“소드마스터는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엘리오 경이 소드마스터였다면 해머를 피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단한 몸놀림이네요.”
강대강으로 그냥 맞부닥쳤을 거라는 뜻이었다.
메이지 칼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게 소드마스터들의 싸움 방식에 가깝기는 했다.
소드마스터들은 굽히거나 타협하려 하지 않았으니까.
그 점은 마구스(7서클 이상 대마법사)들을 닮았다.
마법이든 검술이든 극의에 도달한 이들의 싸움 방식은 비슷했다.
좋게 말하면 정정당당이고, 나쁘게 말하면 광오 해 보일 정도로 우직하다.
마치 저 해머를 손에 든 싸이클롭스처럼.
메이지 칼로스가 무심코 싸이클롭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문득 우직한 싸움 방식에 비해 싸이클롭스가 보여 준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건가?’
머리를 움켜잡고 고통스러워하던 싸이클롭스가 돌연 두 손으로 해머를 높게 치켜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모르테 투도스(모두에게 죽음을)!”
순간 싸이클롭스 주변 50미터 안쪽으로 번개 폭풍이 일어났다.
번쩍! 빠지지지직―!
병사들은 물론 마물과 마수까지도 번개에 맞아 새까맣게 타 버렸다.
황당한 얼굴로 보던 엘리오는 즉시 구천구검 육 식 뇌풍상여(雷風相與)를 일으켰다.
싸이클롭스 주변으로 광풍과 벼락이 몰아쳤다.
콰르르르― 꽝! 꽈광―!
뇌풍상여에 맞은 싸이클롭스의 몸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번개 폭풍을 피해 달아나던 왕국군들은 싸이클롭스가 벼락에 맞아 비틀거리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들은 장님이 된 싸이클롭스가 피아 구별을 못 해 자기 자신까지 죽인다고 생각했다.
번개 폭풍이 잦아들었다.
싸이클롭스의 새카맣게 탄 몸에서 하얀 연기가 풀풀 올라왔다.
잔뜩 긴장해 있던 알파 중대 총병 하나가 무심코 마력총을 발사했다.
펑―!
마력탄이 싸이클롭스의 허벅지에 박혔다.
‘퍽!’ 하는 파열음과 함께 싸이클롭스의 허벅지가 뭉텅 떨어져 나갔다.
그것은 싸이클롭스의 몸에서 마력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곧이어 알파 중대의 총병들이 싸이클롭스를 향해 마력총을 난사했다.
퍼퍼퍼펑―!
퍼퍼퍼퍽―!
마력탄에 싸이클롭스의 하체가 찢어져 나갔다.
해머를 들고 있던 싸이클롭스의 두 팔이 천천히 내려왔다.
총병들이 움찔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마력이 완전히 소진된 싸이클롭스는 더 움직이지 못했다.
“놈이 죽어 간다! 숨통을 끊어라!”
근처에 있던 옵티머스 기사단 생존자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일제히 싸이클롭스에게 몰려갔다.
탑처럼 서 있던 싸이클롭스의 몸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알파 중대와 벨라토스 중대의 마력총이 마물과 마수를 향했다.
마물들은 마족이 죽자 전의를 상실한 듯 균열로 달아났다.
그러나 마물에 비해 지능이 달리는 마수들은 도리어 거친 포효와 함께 왕국군에게 달려들었다.
“발포!”
퍼퍼퍼펑―! 퍼펑―!
알파 중대와 벨라토스 중대의 집중 사격에 마수들이 갈팡질팡할 때, 기사들이 롱소드를 말아 쥐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는 여느 때와 같은 풍경이었다.
기사들과 백부장, 십부장 들의 합공에 마수들이 하나씩 쓰러졌다.
뒤늦게 위기를 느낀 마수들이 균열로 줄지어 달아났다.
옵티머스 기사단과 알파 중대는 굳이 마수들을 쫓지 않았다.
균열이 있는 한 계속 반복될 일이기에 멈춘 것이다.
뻘쭘하게 서 있던 엘리오는 알파 중대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알파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은 중대원들이 보는 앞임에도 그에게 묵례를 했다.
“엘리오 경. 수고하셨습니다.”
엘리오의 검술 경지가 다 까발려진 마당이라 이젠 대놓고 그에게 인사를 한 것이다.
엘리오가 머쓱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수고는 뭐 나 혼자 했나요? 다 같이 싸웠는데.”
그때 ‘와아아!’ 하고 기쁨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알파 중대원들의 시선이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옵티머스 기사단이 죽어 늘어져 있는 싸이클롭스의 앞에서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데니스 로빈 남작이 기막힌 얼굴로 한마디 했다.
“누가 보면 자기들이 죽인 줄 알겠네.”
“그들이 마무리를 하기는 했죠.”
“에이, 싸이클롭스가 앞이 안보여서 자해를 한 덕분에 끝난 것 아닙니까? 옵티머스 기사단이 죽인 게 아니라 자살입니다. 자살.”
엘리오는 피식 웃었다.
기껏 싸이클롭스를 뇌풍상여로 지져 놓았더니 자살을 했단다.
하지만 그는 굳이 자신의 공적을 밝히지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눈에 띄고 있는데, 여기서 더 주목을 끌 필요는 없었다.
엘리오를 대신해 다시 기수가 된 파비안이 달려왔다.
“알파 중대 피해 현황은 사망 다섯 명, 부상자 십오 명입니다.”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족 싸이클롭스에 마물과 마수를 퇴치한 것치고는 거짓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적은 희생이었다.
모두 엘리오가 싸이클롭스의 눈을 파괴한 덕분이다.
“부상자를 주둔지로 돌려보내고, 찰리 중대에 통보해. 비는 숫자만큼 그쪽 병사들 올려 보내라고.”
“알겠습니다.”
파비안이 찰리 중대가 있는 후방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지금은 알파 중대 사상자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게 우선인 까닭이다.
싸이클롭스의 시체 앞에서 난리를 치던 옵티머스 기사단이 벨라토스 중대와 함께 주둔지로 내려갔다.
멀어져 가는 그들을 보던 데니스 로빈 남작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설마, 자기들이 싸이클롭스를 죽였다고 하지는 않겠죠?”
“숨통을 끊은 건 사실이잖아요.”
엘리오의 답에 데니스 로빈 남작이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이럴 때 보면 고지식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모르겠다.
***
중앙지휘통제막사.
옵티머스 기사단 부단장 하워드 버넌 자작이 주둔지의 고위 귀족들 앞에서 보고를 이어 갔다.
“……마족 싸이클롭스가 메이지 칼로스께서 세운 ‘아이스 월’을 부수고 로디나 대륙으로 건너왔습니다. 싸이클롭스는 곧바로 인근의 마물과 마수 들을 불렀고, 이내 왕국군과 싸이클롭스의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
마족의 출현에 귀족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집중했다.
“최전방에 있던 옵티머스 기사단과 벨라토스 중대가 싸이클롭스를 저지했고, 후에 알파 중대가 합류하였습니다. 혼전의 와중에 알파 중대의 엘리오 경이 싸이클롭스의 외눈을 터뜨려 싸이클롭스가 실명했습니다. 상처를 입은 싸이클롭스는 광역마법인 ‘번개 폭풍’을 전개했으나, 실명한 관계로 자신의 몸까지도 번개에 노출시키고 말았습니다. 번개 폭풍에 맞아 마력을 소진한 싸이클롭스를 옵티머스 기사단이 죽였습니다. 마족이 죽자 마물은 균열로 달아났고, 저항하던 마수들은 알파 중대와 벨라토스 중대가 마무리했습니다. 이상입니다.”
부단장의 보고가 끝나자 에스카토스 공작이 물었다.
“피해 상황은 어떻소?”
“옵티머스 기사단에서 사망자 열세 명, 부상자 다섯 명이 나왔고, 베르나르도 후작가의 부대에서 사상자가 삼십 명 가까이 나왔습니다.”
“수고했소. 마족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그 정도 피해라니, 제국의 마법 병단에서 알면 놀랄 전공이구려. 옵티머스 기사단과 베르나르도 후작가의 공적에 대한 포상은 추후에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소.”
마족의 출현으로 긴급하게 소집된 회의의 끝을 알리는 소리였다.
부단장은 에스카토스 공작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올린 뒤 자리로 돌아갔다.
궁정 마법사 메이지 칼로스가 옵티머스 기사단장을 힐끔 보았다.
부단장이 마치 옵티머스 기사단과 벨라토스 중대가 싸이클롭스를 처치한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물론 엘리오의 이름이 거론되기는 했지만, 그가 벌인 실제 전투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묘사였다.
소드마스터라고 생각될 정도로 뛰어난 전투를 보여 주었는데, 그걸 ‘혼전 중에 눈을 터뜨렸다’로 넘기다니?
이윽고 메이지 칼로스와 기사단장 조엘 스트림 백작의 시선이 마주쳤다.
기사단장은 반갑다는 듯 희미한 미소까지 지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메이지 칼로스가 가볍게 한숨을 지으며 화답할 때, 토비아스 푸토코아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