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40
1040회. 거친 구석도 많습니다
인기척이 나자 파이어 스톤의 불을 쬐던 엘리오가 고개를 힐끔 돌렸다.
베르나르도 후작가의 기사 복장을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상대가 후작의 기사 중 하나라 생각하고 이내 고개를 돌렸다.
포도알만 한 크기의 파이어 스톤이 내뿜는 열기가 얼굴로 밀려왔다.
이세계의 물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저 파이어 스톤이다.
‘석경장 식솔들이 이걸 봤어야 하는데.’
크기는 포도알만 한데 화력은 모닥불 한 더미를 피운 것 같다.
화력만 좋은 게 아니다.
파이어 스톤은 연기는 물론 불씨도 튀지 않았다.
불씨가 튀지 않으니 당연히 소리도 없다.
사방이 고요하다 보니 기사의 발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저벅 저벅.
이윽고 발소리가 멎으며 굵은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엘리오 경. 나는 불사조 기사단의 마크 스톤 남작입니다.”
두고 온 가족들을 떠올리던 엘리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고집스럽게 생긴 사십 대 남자가 어색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나한테 볼일 있어요?”
“아닙니다. 알파 중대의 상황을 조사하러 왔다가, 여기 계시다기에 인사차 들렀습니다.”
“그래요?”
엘리오는 다시 파이어 스톤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교적인 성격과 거리가 먼 그는 베르나르도 후작가의 엘리트 기사인 마크 스톤 남작을 소 닭 보듯 했다.
상대의 무반응에 마크 스톤 남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불사조 기사단의 남작이라고 하면 다들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데, 엘리오는 너무 뻣뻣했다.
‘소드 익스퍼트라는 건가.’
입맛이 썼다.
그러나 애써 불편한 티는 내지 않았다.
뻘줌하게 서 있던 마크 스톤 남작은 잠시 후 조용히 사라졌다.
***
그날 밤.
베르나르도 후작가 숙영지.
“어떻던가?”
불사조 기사단장 엘런 파레스 백작의 물음에 마크 스톤 남작이 답했다.
“알파 중대장의 빠른 대처로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고의로 엘리오의 공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다.
순간 기사단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북부 최강의 마물이라고 알려진 칼림바움을 퇴치했는데, 인명 피해가 없었다니?
“자네가 보기에도 그렇던가?”
기사단장이 마크 스톤 남작을 지그시 응시했다.
“사상자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알파 중대장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엘런 파레스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알파 중대가 단독으로 칼림바움을 퇴치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데니스 로빈 남작이 알파 중대가 지급받은 파이어 스톤을 끌어모아 칼림바움의 입에 던져 넣었답니다.”
“참, 알파 중대에 엘리오 경이 있지? 그에 대한 이야기는 없던가?”
“잠시 칼림바움의 시선을 끌어 주기는 했던 모양입니다.”
마크 스톤 남작은 별것 아닌 것처럼 가볍게 말했다.
“엘리오 경이 시선을 끄는 동안, 알파 중대장이 파이어 스톤을 칼림바움의 입에 던져 넣었다는 거군?”
“결과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이번에 칼림바움을 퇴치한 사람은 알파 중대장이었습니다.”
그러자 엘런 파레스 백작이 묘한 눈으로 마크 스톤 남작을 보았다.
“스톤 남작은 엘리오 경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 같은데, 맞나?”
잠시 멈칫했던 마크 스톤 남작이 답했다.
“그건, 엘리오 경이 후작님의 총애를 믿고 우리 불사조 기사단을 안중에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중에 두지 않았다?”
엘런 파레스 백작이 쳐다보자 마크 스톤 남작은 알파 중대에서 그와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제가 불사조 기사단원임을 밝히고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건 좀 심했군.”
불사조 기사단은 자타가 공인하는 베르나르도 후작가의 최강 전력으로 자부심이 남달랐다.
엘런 파레스 백작은 불사조 기사단장으로서 마크 스톤 남작의 불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소드 익스퍼트인 그는 같은 소드 익스퍼트인 엘리오의 행동에 마크 스톤 남작만큼 분노하지 않았다.
일반 기사들에게야 불사조 기사단이 대단하겠지만 소드 익스퍼트에게는 그저 한 개의 기사단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여담입니다만……. 알파 중대에서 이상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상한 소문?”
“엘리오 경이 조만간 제국으로 갈 거라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습니다.”
“제국에?”
“예,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이 엘리오 경을 따로 만났는데, 그때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갔다고 합니다.”
“헤일 공작이 제안을 했겠지. 제국은 인재가 필요하니까.”
“그 이상입니다. 어느 정도 합의를 보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흐음.”
엘런 파레스 백작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왕국이나 공국의 기사들이 출세를 위해 제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걸 금지할 법도 없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기사들에게 죽을 때까지의 충성과 의리를 요구하지도 못한다.
“그 부분에 대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아 오게. 엘리오 경은 후작님뿐 아니라 왕국에 필요한 인재일세. 그를 제국에 빼앗겨서는 안 될 일이야.”
“예…….”
뜻밖의 지시에 마크 스톤 남작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엘리오를 헐뜯기 위해 꺼낸 말이 도리어 그의 가치만 높이고 만 까닭이다.
***
사흘이 지났다.
다시 주둔지로 돌아온 알파 중대는 여느 때처럼 부상자의 치료와 장비를 점검하며 시간을 보냈다.
엘리오는 오전에 파비안에게 대륙 공용어를 배웠고, 오후에는 반대로 파비안에게 검술을 가르쳤다.
오전에 파비안이 언성을 높이면, 오후에는 복수라도 하듯 엘리오가 파비안을 쥐 잡듯 몰아붙였다.
엘리오만큼이나 파비안도 정상은 아니었다.
어지간하면 오후에 당할 걸 생각해서 비위를 맞춰 줄 만도 한데, 파비안은 전날의 복수라도 하듯 엘리오를 야단쳤다.
오후가 되면 처지는 다시 뒤바뀌었다.
엘리오는 실실 웃으며 파비안이 토할 때까지 굴렸다.
무료한 주둔지에서 두 사람의 그런 기행은 꽤나 재밌는 볼거리였다.
알파 중대원들은 누가 먼저 상대에게 화해의 손을 손내밀지를 두고 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엘리오와 파비안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물고 물리는 생활이 한 달을 넘어갔다.
사월 초.
마침내 에스카토스 4세의 사자가 주둔지를 방문했다.
숙소에서 마나 개발서를 해석하던 엘리오는 왕국군 참모장 메토 로베르트 자작의 부름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로 오래요?”
엘리오의 물음에 왕궁 직속 기사가 웃으며 답했다.
“봉작과 관계된 일로 부르시는 걸 겁니다.”
그의 말에 케일과 쿠누트, 리들리가 호들갑을 떨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남작님이 되는 건가요?”
“남작님이 되시더라도 저희를 모른 척하면 안 됩니다.”
“에이, 그럴 리가.”
엘리오가 손사래를 치며 천막을 빠져나갔다.
왕궁 직속 기사는 지휘 통제 막사 앞에서 멈춰 섰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 예.”
엘리오는 기사에게 눈인사를 보낸 후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에는 참모장 메토 로베르트 자작과 처음 보는 두 남자가 앉아 있었다.
엘리오와 눈이 마주친 참모장이 앞자리에 앉아 있는 중년의 기사에게 말했다.
“부장군님, 저쪽이 베르나르도 후작가의 엘리오 경입니다. 엘리오 경, 이분은 주둔지 부장군으로 파견되신 콜린 스트롱 백작님이시오.”
엘리오가 콜린 스트롱 백작에게 묵례를 해 보였다.
콜린 스트롱 백작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엘리오 경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 전하께서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계시오.”
콜린 스트롱 백작의 덕담이 끝나자 참모장은 연이어 백작의 옆자리에 있는 남자를 소개했다.
“그리고 그 옆은 왕실부 서기관 패트릭 듀렌드 남작이오. 남작?”
참모장이 부르자 패트릭 듀렌드 남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패트릭 듀렌드 남작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에스카토스 4세 전하께서는 히르헤라의 상황이 좋지 못하므로 주둔지에서 간소하게 봉작 절차를 진행하라 하셨습니다. 하여 금일 오후 4시에 에스카토스 공작께서 국왕 전하의 대리로 봉작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작위는 남작이시고, 봉토는 슬래시 랜드로 정해졌습니다. 참고로 남작에게 봉토를 하사한 것은 제국과의 전쟁 이후 처음입니다. 엘리오 경의 작위가 공훈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전하께서 봉토를 하사하시기로 한 것이지요.”
“감사합니다.”
엘리오의 짧은 감사 인사에 패트릭 듀렌드는 고개를 까딱인 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참모장 메토 로베르트 자작이 엘리오에게 물었다.
“더 궁금한 게 있소?”
“없습니다.”
“요즘 대륙 공용어를 공부하느라 바쁘다고 들었소. 그래서 그런지 말투가 좀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구려.”
“하하. 감사합니다.”
엘리오는 작위를 받을 때보다 더 좋아했다.
그런 엘리오의 인간적인 모습에 참모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럼, 이따가 봉작식을 할 때 다시 보도록 합시다.”
메토 로베르트 자작은 엘리오가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인지라 시종일관 하오체를 사용했다.
엘리오는 부장군과 참모장, 왕실부 서기관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갔다.
엘리오가 나가자 부장군 콜린 스트롱 백작이 슬쩍 운을 뗐다.
“야인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매너가 좋구려. 얼굴도 순해 보이고.”
참모장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인상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겉보기와 달리 거친 구석도 많습니다.”
“거친 구석이…… 많소?”
부장군이 반신반의한 얼굴로 참모장을 보았다.
뒷배가 없는 야인 출신 기사가 거칠어 봐야 얼마나 거칠다고 참모장이 저렇게까지 말하는지 모르겠다.
“푸토코아 백작가와의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하셨나 보군요?”
“그가 푸토코아 백작령 출신이라는 것은 알고 있소만. 푸토코아 백작가와 무슨 일이 있었소?”
“있다마다요. 아주 큰 일이 있었지요.”
참모장은 주둔지에서 벌어진 엘리오와 푸토코아 백작가 사이의 싸움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 뒤 푸토코아 백작의 후계자가 에스카토스 공작께 중재를 요청하여 겨우 덮을 수 있었습니다. 공작께서 나서지 않았다면 푸토코아에서 새로운 후계자를 내세워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허! 기사 하나가 푸토코아 백작가를 쥐락펴락했다? 놀랍구려. 코드란테스 백작가에서는 별말이 없었소?”
콜린 스트롱 백작이 참모장을 빤히 보았다.
평소 푸토코아 백작가와 코드란테스 백작가가 베르나르도 후작가를 견재해 왔기에 해 본 소리였다.
“코드란테스 백작이 부상으로 주둔지를 비운 탓에 코드란테스 백작가는 나서지 않았습니다. 엘리오 경과 싸워 봐야 득 될 게 없기도 하고요.”
“푸토코아의 후계자도 보통이 아니지 않나? 그의 자존심이 꽤나 상했을 텐데 중재로 끝내겠소?”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요. 푸토코아에는 엘리오 경의 상대가 없습니다.”
“하기야 그 나이에 소드 익스퍼트는 반칙이지. 그것도 ‘영기 수련자’가 ‘마나 유저’와 동급의 경지라니. 조금 전에 만나지 않았다면 과장이라고 했을 게요.”
“확실히 엘리오 경의 영기는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설마 흑마법은 아닐 테고.”
“그렇지 않아도 푸토코아의 후계자가 한때 그런 주장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궁정 마법사 메이지 오스번 칼로스 경과 코르보 마법 병단의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님이 흑마법과 무관한 영기라고 확인해 주셨습니다.”
참모장 메토 로베르트 자작은 부장군의 오해가 무르익기 전에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왕국군 지휘부와 기사들 간에 불화가 생기면 그것도 골치가 아픈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