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03
1103회. 인간을 죽이고, 인간의 땅을 갖는다
거인족 챔피언인 무이플렛은 반대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다른 챔피언들에게 운을 띄웠던 것도 혼자서는 자신이 없어서 였다.
“그대의 말에 동의한다. 나와 함께 인간을 처리할 자가 있는가?”
그의 말에 ‘언데드의 왕’이라 불리는 굴라파후오가 앞으로 나섰다.
무이플렛은 그것으로 성에 안 차는 듯 챔피언들을 둘러보았다.
마몬의 챔피언으로 불사의 몸을 가진 칼레발라가 마지못해 동참했다.
그제야 무이플렛은 만족한 얼굴로 돌아섰다.
챔피언 셋이면 군주도 비벼 볼 수 있으니 이만하면 충분하다 생각한 것이다.
이윽고 무이플렛과 굴라파후오, 칼레발라가 인간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오라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전진하던 엘리오는 뒤쪽에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자 천천히 돌아섰다.
키가 각각 5미터, 3미터쯤 돼 보이는 마족 셋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마족 군주인가?’
다른 마족들과 확연히 다른 세 마족의 기운 앞에 엘리오는 살짝 긴장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무이플렛이 대륙 공용어로 물었다.
“아렉을 죽이다니 대단하구나. 혹시 모쿠바스의 군주인 몰록을 죽인 것도 너냐?”
사실 무이플렛이 챔피언들을 끌어 모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맞아. 너희들도 군주냐?”
“우리는 군주에 도전할 자격을 갖춘 챔피언이다. 오직 챔피언만이 군주와 싸울 수 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여, 죽어라.”
말과 함께 무이플렛이 손가락으로 엘리오를 가리켰다.
순간 엘리오의 머리 위로 한 줄기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번쩍―!
대비를 하고 있어도 막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엘리오의 몸에 경직이 일어난 순간, 설원에서 뼈만 남은 손들이 솟구쳐 엘리오의 하체를 덮었다.
언데드의 왕 굴라파후오가 손을 쓴 것이다.
콰드드드득―!
번개가 떨어지고, 뼈들이 솟아올라 하체를 덮기까지 찰나지간에 벌어진 일이다.
뒤이어 무이플렛의 검지손가락 끝에서 칼날 같은 손톱이 돋아나는가 싶더니, 엘리오의 턱 밑으로 은빛 섬광이 스치고 지나갔다.
파앗―!
무이플렛이 인간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는 자신의 공격이 통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슬쩍 인간의 목 어림을 확인한 무이플렛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목 중앙에 길게 난 실금이 보였다.
‘확실하군.’
‘전격(電擊)의 무이플렛’이라는 이명(異名)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벼락의 충격으로 상대가 멈칫하는 사이, 번개처럼 숨통을 끊는다.
적들은 자신의 목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당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무이플렛이 인간의 지척에 이르렀을 때, 시체였어야 할 인간의 입이 열렸다.
“뭐 하냐?”
“헉!”
깜짝 놀란 무이플렛이 펄쩍 뒤로 몸을 날렸다.
순간 엘리오가 천둔검을 휘둘렀다.
번쩍! 번쩍! 번쩍―!
무이플렛 위로 아홉 가닥이나 되는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빠르기로 소문난 무이플렛이었지만 사발팔방에서 떨어지는 벼락을 피할 수 없었다.
“끄아아아―!”
쉬지 않고 떨어지는 번개에 무이플렛의 몸이 새카맣게 타 버렸다.
뒤늦게 굴라파후오가 언데드들을 소환했다.
설원 위로 꾸물꾸물 올라온 수백 개의 언데드들이 엘리오를 향해 달려갔다.
굴라파후오와 칼레발라가 언데드들 속으로 섞여 들었다.
살집 좋은 굴라파후오와 달리 칼레발라는 주변에 동화되어 ―뼈만 남은― 언데드로 변했다.
언데드들이 몰려오자 엘리오는 오라 블레이드를 길게 뽑아내 채찍처럼 휘둘렀다.
콰자자작―! 콰작!
오라 블레이드에 직격당한 언데드들은 속절없이 부스러졌다.
시간이 지나자 엘리오의 주변에 부서진 언데드들의 뼈가 수북하게 쌓였다.
주변의 언데드들이 쓰러지자 굴라파후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엘리오의 오라 블레이드가 굴라파후오의 몸통을 가격했다.
철썩―!
찰진 소리와 함께 오라 블레이드가 뒤로 튕겼다.
굴라파후오가 징그럽게 웃으며 저돌적으로 엘리오에게 달려들었다.
황당한 눈으로 보던 엘리오가 몇 번이나 검을 휘둘렀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놀랍게도 오라 블레이드는 굴라파후오에게 통하지 않았다.
엘리오는 처음 경험하는 현상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체를 공격한 것과 다른 이질적인 감각이 천둔검을 통해 느껴졌다.
‘뭐지?’
영체도 아닌데 오라 블레이드로 자를 수 없다니!
오기가 치솟은 엘리오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천둔검을 휘둘렀다.
철썩! 철썩! 철썩―!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굴라파후오는 오라 블레이드를 온몸으로 맞으며 엘리오에게 전진했다.
마침내 엘리오의 앞에 선 굴라파후오가 두 팔로 엘리오를 와락 안았다.
아니, 안으려 했다.
그 순간 엘리오는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굴라파후오의 품에서 빠져나갔다.
이윽고 엘리오의 신형이 유령처럼 언데드들 사이에 나타났을 때다.
때마침 가까이 있던 언데드 하나가 엘리오에게 녹슨 검을 휘둘렀다.
쓰아아아―!
다른 언데드들과 달리 칼끝에서 일어난 마력의 블레이드가 엘리오의 등을 강타했다.
언데드와 동화되었던 칼레발라였다.
콰앙―!
폭발음과 함께 엘리오의 몸이 낙엽처럼 앞으로 날아갔다.
그런 엘리오의 뒤를 칼레발라와 굴라파후오가 거머리처럼 따라붙었다.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챔피언들과 지켜보던 에피알이 중얼거렸다.
“굴라파후오의 사념체(死念體)는 언제 봐도 신비롭군.”
‘탐욕의 저울’로 불리는 플레스티아가 눈을 찌푸렸다.
“징그럽기도 하지.”
“너무 그러지 마. 사념체를 완성하기 전의 굴라파후오는 발람보다 미남이었다고. 그나저나 싸움도 이제 끝이 나려나 보네.”
“아직 아니야. 인간이 날아간 건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니까. 그럴 정도로 머리를 굴릴 여유가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야.”
“그래? 저울이라고까지 불리는 그대의 말이니 맞겠지. 그래서 누가 이길 것 같아?”
“군주에게 찍힐 걸 알면서도 구경만 하는 날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해?”
“…….”
에피알은 다시 인간에게 시선을 돌렸다.
플레스티아를 따라가서 손해 본 적은 없지만 이번에도 그럴까?
등짝에 강력한 일격을 허용한 순간, 엘리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군주가 아니라는 소리에 조금 방심했다.
그러니 안 통하는 걸 알면서도 아득바득 천둔검으로 마족을 후려친 것이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고 밀어붙인 것도 그래서다.
상대를 눈 아래로 내려다보니 다른 방법을 찾지 않은 것이다.
오라 블레이드라 불리는 진검강이면 충분하다고 자만했다.
‘쯧! 영과 육의 경계에 있는 육체를 미련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다니…….’
그러니 맞아도 싸다.
아니, 이 정도로 끝나기를 다행이다.
만에 하나 상대가 군주였다면, 조금 전의 그 한 수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으리라.
훨훨 날아가던 엘리오는 언데드 하나의 머리를 박차고 하늘로 치솟았다.
언데드들 속에서 벗어나니 비로소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언데드들과의 싸움은 이런 게 안 좋다.
언데드가 내뿜는 사기(邪氣)에 몸과 마음이 부지불식간 물들어 총기를 잃는다.
어기충소의 신법으로 까마득히 날아올랐던 엘리오가 허공에서 몸을 틀었다.
발밑으로 마족 둘이 기를 쓰고 따라오는 게 보였다.
앞선 놈은 돼지처럼 뒤룩뒤룩 살이 찐 마족이었다.
오라 블레이드가 통하지 않음을 알고 칼받이로 나선 모양이다.
그때 천둔검이 검명을 울었다.
우우웅―.
왠지 그 소리가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그런 천둔검을 보고 있으려니 만감이 교차했다.
본래 천둔검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검선 여동빈이 득물(得物)의 경지에 올라 만든 법보가 천둔검이다.
그래서 허공중에 풀어놓았다가 쓰곤 하지 않았던가.
득물, 법보, 허공…….
그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다.
지금이야 롱소드로 변환해 사용하고 있지만 본래 천둔검은 형체가 없다.
오라 블레이드는 그 형체 없음에 덧씌워진 힘이다.
자신은 마족들에게 그 오라 블레이드를 길게 뽑아내 채찍처럼 휘둘렀다.
그리고 저 마족에게도.
저 마족의 육체가 영과 육의 경계라면, 천둔검 역시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 있다.
엘리오는 들고 있던 천둔검을 힘껏 내던졌다.
오라 블레이드를 걷어 낸 천둔검이 거구의 마족을 향해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쐐애액―!
언데드의 왕 굴라파후오는 롱소드가 날아오자 도리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이까짓 롱소드쯤은 오라 블레이드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퍼억―!
배를 불로 지지는 듯한 화끈함에 굴라파후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는 급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아랫배를 보았다.
믿을 수 없게도 자신의 자랑인 사념체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끄아아아―!”
뒤늦게 그의 입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굴라파후오의 배를 관통하고 지나갔던 천둔검이 다시 돌아왔다.
퍽! 퍼억―!
천둔검이 좌우로 오가며 굴라파후오의 몸에 구멍을 냈다.
어느 한순간 굴라파후오의 몸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폭발했다.
순간 칼레발라는 급히 방향을 바꿨다.
굴라파후오마저 죽은 지금 일대일로 인간과 맞붙는 것은 자살행위인 까닭이다.
달아나는 칼레발라의 뒤로 천둔검이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칼레발라는 뒤가 잡히자 급히 돌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콰차창―!
단 일격에 칼레발라의 검을 박살 낸 천둔검이 칼레발라를 덮쳤다.
콰곽―!
칼레발라는 천둔검에 어깨를 맞았지만 불사의 몸답게 뚫리지 않았다.
“히익!”
검에 맞은 칼레발라는 괴상한 비명과 함께 지면으로 추락했다.
천둔검을 회수한 엘리오는 즉시 마족이 떨어진 곳에 내려섰다.
그러나 또다시 형체를 바꿨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쳇! 미꾸라지 같은 놈.”
엘리오는 포기하지 않고 즉시 천산검영을 펼쳤다.
자신의 몸에 칼까지 꽂은 놈을 이대로 놓아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주변으로 ‘검의 화신’들이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 바람에 애꿎은 마족들만 죽어 나갔다.
“크아악!”
“악!”
엘리오를 중심으로 사방 백여 미터 안쪽에 있던 마족들이 몰살을 당했다.
그제야 분이 풀리는지 엘리오는 다시 정면으로 치고 달려 나갔다.
촤아악! 촤악―!
천둔검에서 길게 뻗어 나간 오라 블레이드가 마족들을 베어 넘겼다.
그가 마족들 속을 종횡무진으로 휩쓸고 다니자 마족의 진군도 결국은 멈춰 섰다.
그런 마족의 행동은 마물과 마수에게 영향을 미쳤다.
마물과 마수의 움직임이 소극적으로 변했고, 치열하던 싸움은 자연히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던 흐름이 깨지자 마족 군주들은 발람을 중심으로 모였다.
거인족의 군주인 랍바가 마몬과 샤모스를 향해 책망하듯 말했다.
“인간을 피해 다니는 챔피언들이 보이는데……. 도대체 마족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마몬은 못 들은 척 딴청을 부렸지만 샤모스는 바로 받아쳤다.
“몰록 군주를 죽인 인간이라면 챔피언들이 피하는 것도 당연하지. 그를 죽이기 위해 군주가 넷이나 모였다는 걸 잊지 마라.”
“그렇다 해도 챔피언들이 죽는 걸 보고도 피하는 건 마족의 수치다.”
샤모스도 그것까지는 반박하지 않았다.
솔직히 일곱 명의 챔피언들이 수수방관하는 모습은 그녀에게도 충격이었다.
어느 순간 마족 군주들의 시선이 발람에게로 향했다.
그가 이번 원정을 주선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침묵하던 발람이 입을 열었다.
“챔피언들에 대한 처벌은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니 거론하지 않겠다. 설마 군주가 챔피언들처럼 인간 앞에서 꼬리를 말지는 않겠지?”
마족 군주들이 ‘흥!’ 하고 냉소를 쳤다.
군주들의 얼굴에서 투기를 읽은 발람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잊지 마라. 몰록의 복수를 한 자가 인간의 땅을 분배하기로 했음을. 인간을 죽이고, 인간의 땅을 갖는다. 그것이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