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11
1111회. 자작님, 괜찮으십니까?
엘리오가 문득 샤모스를 보았다.
조금 전과 달리 포만감 가득한 얼굴을 보니 배부르게 먹은 모양이다.
“마족들은 뭘 먹어?”
“마수나 마물을 주로 먹어요.”
“야생동물은?”
“정말 배가 고플 때가 아니면 야생동물은 잘 먹지 않아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다 같은 육식 아냐?”
“마수나 마물의 고기에는 소량의 마력이 있거든요. 육질에 배어든 그 마력의 맛이 일반 고기에는 없어요. 군주님에게도 조만간 마수나 마물의 고기를 대접해 드릴게요. 한번 맛들이면 일반 고기는 못 드실 거예요.”
“그래? 궁금하네.”
나름 미식을 추구하던 엘리오는 사양하지 않았다.
고기에 밴 마력의 맛이라는 게 뭔지 벌써부터 궁금했다.
그때 뭔가 은밀히 다가오다 샤모스의 마력에 놀라 후다닥 멀어졌다.
소리에 놀란 파비안이 움찔거리자 샤모스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명백한 조롱이지만 파비안은 발작하지 않았다.
자신이 마족 군주의 입가심감도 못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고개를 꾸벅이던 엘리오가 파이어 스톤 불 옆에 스르륵 드러누웠다.
착잡한 표정으로 엘리오를 보던 샤모스도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파비안은 바로 옆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샤모스의 마력에 대항해 마나를 순환시키며 밤을 꼬박 지샜다.
다음 날.
시체처럼 자던 엘리오가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으아아! 잠자리가 불편해서 한숨도 못 잤네. 파비안, 넌 눈이 왜 빨갛냐?”
“밤새 ‘작은 하늘 회로(small heavenly circuit, 小周天)’를 돌리느라 한숨도 못 잤습니다.”
“그랬구나. 열심히 하다 보면 자면서도 돌릴 수 있어. 더 열심히 해.”
“그 전에 죽을 것 같습니다.”
“걱정 마.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으니까.”
“하아…….”
엘리오의 위로 아닌 위로에 파비안은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마족 군주와 함께 다녀야 한다는 걸 알았다면 기를 쓰고 주둔지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이젠 무조건 자신이 적응해야만 했다.
앓는 소리를 했지만 ‘작은 하늘 회로’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지금도 ―숨 쉬는 것처럼―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작은 하늘 회로’를 돌릴 때가 있다. 그게 몇 시간 만 지속돼도 잠들 수 있을 터였다.
눈을 뜬 샤모스는 또 먹고 오겠다며 슬며시 사라졌다.
엘리오와 파비안은 어제처럼 에너지 볼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식사를 마친 엘리오가 파비안을 향해 말했다.
“오가는 길에 뭔가 먹을 만한 게 보이면 바로 준비해라.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에너지 볼만 계속 먹을 수는 없잖아.”
“예.”
파비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왕복하는 데 최소한 열흘 이상 걸릴 텐데 그동안 에너지 볼만 먹는다는 건 자기가 생각해도 못할 짓이었다.
잠시 후 샤모스가 돌아오자 엘리오 일행은 다시 블러디 카리브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북쪽으로 반나절쯤 들어가자 혹독하던 한기가 수그러들었다.
지면에도 드문드문 초록색 이끼가 보였다.
하얀 눈밭에 질려 있던 엘리오는 이끼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북쪽으로 들어갈수록 마수와 마물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심지어 군락을 이룬 곳도 있었다.
군락을 지날 때면 수백 수천의 마물과 마수가 구경하듯 목을 길게 빼고 엘리오 일행을 쳐다보았다.
마물과 마수들은 샤모스의 마력에 눌려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엘리오는 샤모스를 길잡이로 남겨 둔 것을 뿌듯해 했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천둔검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을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던 샤모스가 멈춰 섰다.
식사 때가 된 것이다.
블러디 카리브에서 내린 샤모스가 사냥하러 가기 전에 엘리오에게 말했다.
“이 근방에는 빅풋이 있어요. 빅풋의 고기는 별미 중의 별미라 군주님에게 추천드리고 싶은데……. 드셔 보시겠어요?”
“알았어. 기다리면 되는 거지?”
“예,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샤모스가 생긋 웃어 보이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샤모스가 생긋 웃어 보이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블러디 카리브들이 이끼를 보고 킁킁거리더니 이내 뜯어 먹기 시작했다.
“블러디 카리브가 이끼를 뜯어 먹네요? 저런 걸 먹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파비안의 말에 엘리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게. 뭔가 깬다 야. 설마 초식은 아니겠지?”
“블러디 카리브요? 육식입니다. 사람 고기에 환장을 합니다.”
“어우! 야. 그런 말 들으니까 기분 이상하다. 그럼 저것들은 지금까지 먹이를 태우고 다닌 거잖아?”
“샤모스가 아니었으면 벌써 눈깔 뒤집고 달려들었을 겁니다.”
“어제오늘 저것들이 뭐 먹는 거 처음 본다. 배가 고파서 난동 부릴 줄 알았는데 얌전히 이끼만 뜯어 먹네?”
“이끼가 특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말과 함께 파비안이 가까운 곳에 있는 이끼를 한 움큼 뜯어 냄새를 맡았다.
“냄새는 좋은데요?”
“네가 순록이냐? 좋은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먹어 보겠습니다.”
파비안은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이끼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맛있냐?”
“퇫! 그냥 풀 맛이네요. 우리랑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육식을 하는 마물이 저렇게 코를 처박고 먹어? 거참 신기하네.”
엘리오가 황당한 눈으로 블러디 카리브들을 보았다.
때마침 샤모스가 어깨에 뭔가를 짊어지고 돌아왔다.
“그게 빅풋이냐?”
엘리오의 물음에 샤모스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마침 어린 빅풋이 보이길래 바로 잡아 왔어요. 빅풋 중에서도 어린 빅풋의 고기가 가장 맛있는데, 운이 좋았네요.”
말과 함께 샤모스가 어깨에 메고 있던 빅풋을 내려놓았다.
빅풋의 외형은 고릴라를 닮았다.
바람이 살짝 불자 빅풋에게서 마물 특유의 노린내가 풍겼다.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난 파비안이 서둘러 말했다.
“자작님, 저는 에너지 볼이면 됩니다.”
그러고는 말릴 틈도 없이 한 움큼의 에너지 볼을 꺼내 입에 처넣었다.
샤모스가 그런 파비안을 가소롭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흥! 꿈도 크구나. 여기에 너의 몫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아니면 고맙고요.”
파비안은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지만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노린내 나는 빅풋을 먹느니 에너지 볼이 백배 나았기 때문이다.
샤모스가 손톱으로 빅풋의 가슴을 길게 긋자 철판보다 강한 거죽이 갈라졌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빅풋의 가슴에서 붉은 심장을 꺼냈다.
그러고는 공손히 엘리오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수박만 한 심장을 본 엘리오가 조금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이걸 그냥 먹는다고? 요리하지 않고?”
“고기는 익혀도 되지만 심장은 날것으로 먹는 게 가장 맛있거든요.”
“알겠는데 너무 커. 이걸 먹으면 배가 터질 거야.”
“아!”
샤모스가 왼쪽 손톱으로 가볍게 심장을 잘라 냈다.
엘리오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덩어리를 받아 들고 잠깐 망설이다 이내 한입 물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가운데 톡 쏘는 듯한 짜릿한 맛이 혀에서 느껴졌다.
독을 먹으면 이런 맛이 날까?
하여튼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독특한 맛이었다.
뒤이어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취기(醉氣)가 밀려왔다.
심장 한 조각을 먹었는데 취기라니?
엘리오는 이상했지만 그게 마물의 맛이려니 하고 넘겼다.
엘리오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던 샤모스가 물었다.
“어떠세요?”
“뭐가?”
“입에 맞으세요?”
“보기엔 흉칙한데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맛이네.”
“다행이네요.”
샤모스가 환하게 웃었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싶다.
샤모스는 파비안을 다그쳐 불을 피우게 하고, 빅풋의 고기도 굽게 했다.
엘리오는 공간 창고 마하담에서 소금을 꺼내 빅풋의 고기에 뿌렸다.
샤모스가 신기한 눈으로 엘리오를 보았다.
“군주님의 아공간 창고에는 별게 다 들어 있네요?”
“그러라고 있는 거잖아. 너는 공간 창고 없어?”
“있지만 양념까지 가지고 다닐 정도는 아니라서요.”
그러자 파비안이 끼어들었다.
“우리 자작님은 천막에 침구류는 물론 탁자, 의자까지 가지고 다니십니다.”
“…….”
순간 샤모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게 큰 아공간 창고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빅풋의 고기를 뜯던 엘리오가 문득 생각난 듯 샤모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블러디 카리브 말야. 아까 보니까 이끼를 엄청 뜯어 먹더라고? 마물이 이끼도 먹어?”
“아! 블러디 카리브는 잡식인데, 고기보다 이끼를 더 좋아해요.”
“그런 놈이 왜 눈만 마주쳐도 못 잡아먹어서 난리래?”
“설원 지역에서는 이끼를 찾을 수 없으니까요.”
“그럼 이끼가 있는 곳으로 가서 살면 되잖아.”
“자기보다 강한 마물이 장악하고 있으면 갈 수가 없잖아요.”
“아하. 마물도 먹고살기 힘들구나.”
“그러니 인간의 땅으로 넘어가려는 거죠. 타메이온보다 그곳에서 먹이를 구하는 게 쉬우니까.”
엘리오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다 멈칫했다.
인간인 자신이 마족의 침략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되겠다 싶어서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그들은 다시 블러디 카리브에 올라 북쪽으로 달렸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눈보다 풀과 이끼가 더 많이 보였다.
저녁이 되자 샤모스는 또다시 사냥을 하러 자리를 비웠다.
이제는 날씨가 포근해 불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파비안은 요리를 위해 파이어 스톤에 불을 붙였다.
엘리오의 맞은편에 앉아 불꽃을 응시하던 파비안이 지나가듯 말했다.
“자작님, 괜찮으십니까?”
“왜?”
“눈이 벌겋게 충혈이 돼서요. 잠도 잘 주무신 분이 왜 눈이 벌겋습니까?”
“내 눈이 빨개?”
“예. 저도 방금 알았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빨갛습니다.”
“그래? 난 술 먹어도 눈이 안 빨개지는데? 왜그러지?”
“지금 자세히 보니 꼭 술 취한 사람 얼굴입니다.”
“진짜? 왜 그러지? 설마 빅풋 때문인가? 그거 먹을 때 톡 쏘면서 약간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거든.”
“점심 먹은 게 언젠데 아직까지 그렇습니까? 뭐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다른 데는 이상 없으시고요?”
“이상? 없어. 그런 게 있으면 내가 먼저 알아차렸지. 게다가 나는 독 저항력이 있어서 중독도 안 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마족이 주는 거 막 받아먹지 마십쇼.”
“뭘 막 받아먹어? 내가 개냐? 먹을 만하니까 먹는 거지.”
“빅풋의 심장은 왜 드셨습니까?”
“별미라잖아.”
“그런다고 먹습니까? 마수와 마물의 고기에 독성이 있어서 그냥 먹으면 안 되는데.”
“독 저항력이 있어서 괜찮대도.”
“자작님 얼굴은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요?”
“취기 같은 거라니까. 그리고 먹어 봤는데 독은 아니었어.”
“누가 독이랬습니까? 독성이 있다고 했지. 마력이 인간에게 해롭지 않습니까? 그래서 흑마법사들도 ‘바디 체인지’로 자기 몸부터 바꾸잖습니까.”
“아, 그래?”
“아 그래가 아니라 지금 자작님 얼굴이 술꾼 같다니까요. 눈도 뻘겋고.”
“몸은 괜찮은데?”
“겉으로 보기에는 잔뜩 독이 오른 마족 같습니다.”
“그럼 안 되는데.”
“그러게 왜 마족이 주는 걸 덥석덥석 받아먹습니까?”
두 사람이 옥신각신할 때 샤모스가 알록달록한 뱀 하나를 팔뚝에 감고 돌아왔다.
어딘지 싸한 분위기에 샤모스가 엘리오 라고아 군주에게 물었다.
“왜요? 무슨 일이 있나요?”
“없어. 이번에는 뭘 잡아 온 거야?”
“희귀 마물인 무지개뱀요. 쓸개가 그렇게 남자한테 좋다네요?”
“줘. 먹고 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