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31
1131회. 물어보고 싶다는 게 뭔가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다가오자 엘리오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그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자연스럽게 의자를 잡아 앞으로 당겨 앉았다.
그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파비안이 백작에게 묵례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그런 파비안에게 손사래를 쳤다.
“같이 지내는 동안 그렇게 예의 차릴 것 없네. 편하게 가세. 라고아 경 앞에서 그러면 내가 부끄러워진다고.”
“그래도…….”
“어허! 그렇게 하래도. 자네는 라고아 경을 봐도 일어서지 않으면서 왜 나에게 그러나. 나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걸세.”
백작의 거듭된 요구에 파비안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이 엘리오의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다.
머쓱한 얼굴로 백작을 보던 엘리오가 말했다.
“쉬엄쉬엄하세요. 소드 비기너도 저렇게 여유가 있는데 소드 익스퍼트시잖아요.”
순간 소드 비기너인 파비안이 얼굴을 붉혔다.
“저도 할 때는 합니다.”
“검술 수련은 할 때 하는 게 아니라 매일 해야 하는 거야.”
“자작님도 드문드문하시잖습니까?”
“내가 소드 비기너냐?”
“…….”
그 말에는 파비안도 반박하지 못했다.
잠시 대화가 멎은 틈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끼어들었다.
“조금만 더 하면 목표에 도달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물론 이 상태에서 끝날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검사는 소드 익스퍼트로 생을 마감한다.
백 명의 소드 익스퍼트 중에서 한 명 정도만 소드마스터가 된다.
그러니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조바심을 내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과의 동행을 자기 인생에 찾아온 처음이자 마지막 행운으로 생각했기에 필사적이었다.
“서두르면 될 일도 안 돼요.”
무심한 얼굴로 던진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말에 백작은 멈칫했다.
엘리오는 그냥 넘기려고 했지만 300실버라는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파비안.”
“예?”
“너 ‘작은 하늘 회로(small heavenly circuit, 小周天)’를 돌리는 게 검술에 도움이 된다고 했지?”
“당연하지요. 처음에는 어둠의 에테르를 밀어내려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검술에…….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백작님에게 그거 가르쳐 드려 봐. 혹시 알아? 도움이 될지.”
“…….”
파비안은 대답하지 않고 입술만 삐죽거렸다.
이 좋은 걸 왜 다른 사람과 나누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대답이 없자 엘리오가 파비안을 쏘아보았다.
파비안도 지지 않고 맞받았다.
“언제는 가족에게만 가르쳐 주라면서요?”
“너는 내 가족이라서 배웠냐?”
“그래도 저는 슬래시 랜드의 기사 아닙니까? 자작님의 가신(家臣)이니 넓은 의미에서 가족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싫다고? 그럼 내가 직접 백작님에게 가르쳐 준다? 그러다 보면 네가 모르는 다른 것도 가르칠 수 있는데……. 나중에 나 원망하지 마라?”
순간 파비안은 빠르게 태세 변환을 했다.
“언제 제가 싫다고 했습니까? 영주님의 명령인데 따라야지요. 백작님께 ‘작은 하늘 회로’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됐습니까?”
엘리오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들으셨죠? 파비안에게 ‘작은 하늘 회로’를 배워 보세요. 벽을 깨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하다가 막히는 게 있으면 찾아오시고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반색을 했다.
“라고아 경을 찾아가면 됩니까?”
“예, 파비안은 이제 막 걸음마를 배워서 제대로 된 답을 못 해 줄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백작은 갑자기 찾아온 행운을 놓치지 않고 꽉 잡았다.
사실 ‘작은 하늘 회로’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그보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과의 관계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게 더 중요했다.
이윽고 세 사람은 저녁 식사를 주문하고 느긋하게 담소를 이어 갔다.
6시가 되자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바르도스가 무대로 올라갔다.
돼지고기 통구이를 포크와 나이프로 찢던 파비안이 알은척을 했다.
“아리에트 알바노 양은 또 어떤 노래를 불러 주시려나.”
디리리링―.
감미로운 하프 소리가 식당을 휘감았다.
바르도스는 10분 가까이 하프만 연주할 뿐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백작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연주만 하는 바르도스인가 보군. 어쩐지 연주 수준이 다른 바르도스와 다르다고 했더니…….”
파비안이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연주만도 합니까?”
“본래 바르도스는 연주를 하는 것에서 시작됐네. 그 뒤에 연주에 맞춰 시를 읊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노래로 변했지.”
“아…….”
파비안은 노래가 좋았던지 아쉬운 얼굴이다.
그래도 엘리오는 연주가 마음에 드는지 웬일로 고개를 끄덕이며 흐름을 타기까지 했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본 파비안이 물었다.
“자작님은 연주가 꽤나 마음에 드나 봅니다?”
“어, 뭐랄까. 오래된 감정을 하나씩 꺼내서 씻어 주는 것 같은 느낌?”
“과장이 심하시네요. 연주로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있습니까.”
그때 뒷자리에서 누군가 말했다.
“가능해요. 지금 바르도스가 연주하는 곡의 제목이 ‘메모리아(기억)’거든요. 그걸 느꼈다니 굉장한 예술적인 감성을 가졌네요.”
파비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짙은 보라색 로브의 중년 여자가 빙긋 웃으며 그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파비안은 얼떨결에 묵례로 화답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또래라면 또 모를까?
중년의 여자에게 굳이 말을 걸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다.
엘리오가 파비안에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들었지? 예술적인 감성이시라잖냐. 너처럼 제삿밥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과 나의 차이라고나 할까.”
“제가 제삿밥에 관심을 둔 적이 있습니까?”
“염불은 하지 않고 제삿밥에만 관심을 둔다는 말 몰라?”
“모르는데요? 염불이 뭡니까?”
“있어 그런 거. 바르도스를 보러 공연에 온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야.”
“에이, 솔직히 추녀가 연주를 하면 누가 보러 옵니까? 백작님, 안 그렇습니까?”
“험, 바르도스 중에 추녀가 없어서 좋은 예는 아니네.”
백작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눈치가 보여 슬며시 말을 돌렸다.
파비안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체면 때문에 그렇지 다들 같은 마음일 겁니다. 그래서 못생긴 바르도스가 없는 거고요.”
엘리오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뒷자리에서 반박이 나왔다.
“바르도스에게 중요한 건 기예지 외모가 아니랍니다. 외모가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바르도스도 제법 있고요. 브리지트 아벨라는 못생겼지만 자작의 작위까지 받았거든요.”
조금 전의 그 중년 여자였다.
그 정도 되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아티오니아스의 영주인 라르바 오마르 백작입니다. 바르도스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은데…….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백작의 자기소개에도 중년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백작을 보던 그녀가 말했다.
“나는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에요. 대화가 재미있어서 본의 아니게 끼어들게 되었네요. 오마르 백작이면 ‘베일럼의 호랑이’라고 불리는 그분인가요?”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다른 두 분의 기사는 일행이겠군요.”
“맞습니다.”
“북방의 귀족들이 소탈하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오늘 보니 알겠네요. 좋은 시간 되세요.”
말과 함께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손을 까딱였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그녀에게 묵례를 해 보인 후 자리에 앉았다.
후작이라는 말에 파비안은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왕국의 후작도 하늘처럼 여기는데, 상대는 무려 제국의 후작.
그녀의 눈짓만으로도 소드 비기너는 가루가 될 수 있었다.
엘리오는 그런가 보다 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그에게 상체를 기울여 속삭였다.
“저분은 제국의 삼대마탑으로 알려진 타불라 마탑의 탑주십니다.”
순간 엘리오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한 달 후에나 만날 수 있는 네 명의 탑주들보다 더 만나기 어려운, 무려 삼대마탑의 탑주라니 놀란 것이다.
엘리오는 백작의 어깨 너머로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을 보았다.
일행과 함께 연주를 듣다가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 후작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엘리오는 조금 무안했지만 후작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언제 말을 걸어야 하나 고민했다.
6서클의 메이지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백작의 호위 기사가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자 괜히 웃음이 났다.
그녀가 호감을 표시하자 엘리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고로 기회란 왔을 때 잡아야 하기 법이다.
엘리오가 뒤쪽에 있는 후작의 자리로 뚜벅두벅 걸어갈 때다.
후작과 함께 있던 중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오의 앞을 막아섰다.
“멈춰라. 무슨 일이냐?”
“후작님에게 뭘 좀 물어보려고요.”
그러자 중년 남자, 5서클 메이지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차갑게 말했다.
“제도는 변방과 달리 신분 질서가 분명한 곳이다. 후작님이 부르지 않는다면 누구도 후작님 앞에 설 수 없다. 물러가라.”
“그럼 여기서 말하면 안 돼요? 여기서 물어봐도 되는데.”
황당한 반응에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책임을 돌렸다.
“오마르 백작, 그대의 기사가 저지르는 무례를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러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꾸했다.
“그분은 내 기사가 아니오. 오히려 내가 모시고 다니는 중이라오.”
순간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북방 왕국이라 해도 백작이 모시고 다닌다는 말에 놀란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젊은 기사에게 정중히 물었다.
“귀하는 누구요?”
“에이, 백작님도 무슨 그런 말을. 동행이지 동행. 나는 슬래시 랜드의 영주인 엘리오 라고아 자작입니다.”
자작이라는 말에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인상을 짜푸렸다.
백작이 자작을 모시고 다닌다니?
두 사람에게 자신이 놀림받았다고 생각한 그가 울컥한 순간이다.
뒤쪽에서 후작의 음성이 들려왔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시라면 히르헤라의 수호자이신 그분인가요?”
타불라 마탑의 탑주이자 6서클 메이지인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의 존대에 놀란 그는 급히 혈기를 가라앉히고 돌아섰다.
“탑주님, 아는 분이십니까?”
알다 뿐인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인사도 앉아서 받던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대 위 아리에트 알바노의 하프 연주가 점점 절정으로 치달렸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님에게 말씀 많이 들었어요. 타메이온의 마족으로부터 대륙을 지켜 주셨다지요?”
후작의 과분한 칭찬에 어색하게 웃던 엘리오가 무심코 되물었다.
“킬리언 헤일 공작님과 친하세요?”
“킬리언 헤일 공작님은 타불라 마탑의 단골이시자, 개인적으로는 저의 마법 아카데미 선배이기도 하답니다.”
“아하! 그러셨구나.”
그의 꾸밈없는 반응에 빙긋 웃던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조금 전까지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앉았던 자리를 가리켰다.
“저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던데 잠시 앉으실까요?”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고 엘리오는 냉큼 후작의 맞은편에 있던 빈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그런 그를 미소 띤 얼굴로 보던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물었다.
“물어보고 싶다는 게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