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33
1133회. 미행이 붙은 것 같습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말에 파비안이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고작 그런 일로 한 달이나 기다리자는 말씀이십니까? 마수와 마물은 머리가 좋건 말건 잘만 죽이셨잖습니까?”
“어디다 비교를 해? 길을 잘 들인 다음에 골렘에 처박는다니 그러는 거지. 사람을 졸졸 따르는 야수를 골렘에 처박아야 속이 시원하겠냐?”
“이럴 때 보면 자작님은 보기와 달리 참 마음이 여린 것 같습니다?”
“내가 흉악하게 생겼냐?”
“외모는 무난무난하신데…… 매사에 폭력적이시니까요. 마족들도 자작님만 보면 자지러졌잖습니까?”
“그건 의도적으로 그런 거고. 마족들이 히르헤라에 눈독 들이면 안 되니까.”
“의도적이건 뭐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건 아닙니다. 눈 마주쳤다고 팔다리 자르는 기사 보셨습니까?”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법을 따르라고 했어. 모쿠바스는 원래 그런 곳이라 나도 과격하게 행동한 거야. 나 본래 여린 사람이라고.”
두 사람의 대화에 귀 기울이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파비안에게 물었다.
“타메이온에 있다는 그 모쿠바스를 말하는 건가?”
“예.”
“엘리오 라고아 경이 그곳의 마족과 일전을 벌이셨나?”
그러자 파비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싸움요? 아니요. 그냥 눈 마주치면 달려가서 칼질을 하셨습니다. 나중에는 마족들이 자작님과 마주치면 오줌을 지릴 정도로요.”
“허! 대단하군.”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존경스러운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인간을 가축만도 못하게 여기는 마족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그처럼 두려워했다니! 같은 인간으로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소리였다.
“자작님. 그냥 잡아다 주죠? 뭐하러 한 달이나 멍하니 죽치고 있습니까? 제가 볼 때는 어차피 타불라 마탑도 찾아가실 거 같은데요? 정보를 하나라도 더 알아야 빨리 찾을 거 아닙니까?”
“그런가?”
귀가 얇은 엘리오는 파비안의 말에 흔들렸다.
생각해 보면 파비안의 말이 맞았다.
다른 마탑 탑주들에게 어떤 정보를 얻든 타불라 마탑의 정보는 필요하다.
지금이야 인간만큼 지능 있는 야수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거절한다고 하지만, 자신은 결국 타불라 마탑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한 달이나 멍하니 기다릴 수는 없지.’
고향에서 기다리는 가족을 생각하면 고민할 것도 못 된다.
“아 몰라. 잡으러 가자. 내가 언제부터 야수 생각해 줬다고.”
“잘 생각하셨습니다. 야수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가지입니다. 식용으로 쓰이는 야수도 많은데 골리앗이 대숩니까!”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한마디 했다.
“저도 돕겠습니다.”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페르모사 에스텔라를 떠났다.
***
페트로폴리스 북구.
노르테 용병 길드 사무소.
엘리오 일행은 거리의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용병 길드 사무소를 찾아갔다.
하지만 아직 초저녁임에도 용병 길드 사무소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파비안이 문을 두드릴 때 지나가던 남자 하나가 말했다.
“거기 6시면 문 닫습니다. 아침에 다시 오는 게 나을 겁니다.”
파비안이 머쓱한 얼굴로 엘리오에게 다가갔다.
“아니, 무슨 사무소가 초저녁에 문을 닫는대? 이제 어디로 갈까요?”
“가긴 어딜 가? 페르모사 에스텔라에 가서 자야지.”
“한잔 안 하시고요?”
“페르모사 에스텔라에도 술 팔잖아.”
“제가 원래 집에서는 술을 안 마셔서…….”
“허튼소리. 너 중대장할 때 막사에서 마신 술은 물이었냐?”
“거기가 제 집은 아니잖습니까?”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면 진짜 페르모사 에스텔라에서 술 못 먹게 한다?”
“어이쿠! 그냥 웃자고 해 본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쯤 바르도스 공연도 다 끝났을 텐데……. 술맛이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어차피 우리 나올 때 남자 바르도스가 노래했어. 너는 남자 바르도스의 노래 들으면서 술 마시고 싶냐?”
“아니죠. 차라리 조용한 게 낫죠. 그런데 술값은 누가……?”
백작이 나서기 전에 엘리오가 말했다.
“오늘 술은 내가 산다. 백작님, 내가 살게요. 나 때문에 헛걸음들 했으니까.”
“아닙니다. 제도에서의 경비는 끝까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대수림에 가려면 제도에서는 돈을 쓰지 마십쇼.”
“아이고, 뭘 그렇게까지.”
호들갑을 떨면서도 엘리오는 사양하지 않았다.
어비스의 조사에 경비가 얼마나 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 급하면 영지를 팔 생각도 있지만 그건 정말 최후의 선택이었다.
***
다음 날.
엘리오 일행은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노르테 용병 길드로 향했다.
다행히 전날 저녁과 달리 용병 길드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여름철이라 그런지 문을 열어 아예 고정시켜 둔 상태였다.
파비안이 앞장서 용병 길드로 들어갔다.
이른 시간임에도 실내에는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가장 안쪽은 중앙 부분 3미터 폭만 남기고 좌우편이 담장으로 막혀 있다.
중앙 3미터 폭의 공간은 허리 높이의 가림막이 세워져 있는데, 그 안쪽에 중년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얼굴에 기름기 좌르르 흐르는 중년 남자가 삐딱한 눈으로 세 남자를 보았다.
“어디서 게으른 새들이 단체로 날아오셨네. 쓸 만한 일거리는 한 시간 전에 다 풀렸소. 남은 건 위험한 일들 뿐인데……. 능력이 된다거나, 굶어 죽느니 해 보겠다는 각오면 오고. 아니면 내일 일찍 다시 나오슈.”
그나마 일행 중에 초로의 남자가 있어서 하오체를 썼지, 청년들만 왔으면 반말로 나무랐을 터였다.
파비안이 중년 남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나는 아나톨리아의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이다. 당신이 이곳의 책임자인가?”
중년 남자, 질리언이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나톨리아라고요? 이제 보니 북방의 귀족이셨네. 호위라도 구하러 오셨습니까?”
“호위가 아니라 정보를 얻으러 왔다. 그 전에 당신이 이곳의 책임자인가?”
“비슷합니다. 제가 이곳의 사무장이니까요.”
“그럼 이야기가 통하겠군. 드라코의 서식지를 알고 싶다.”
“드라코요? 용종(龍種)을 말하는 거 맞습니까?”
“맞다. 사람만큼이나 지능이 뛰어나다지? 그 드라코를 찾고 있다.”
질리언이 애매한 눈으로 남작을 올려다보았다.
타불라 마탑의 의뢰를 처리하느라 드라코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이 북방의 남작이 왜 그걸 찾느냐는 점이다.
‘타불라 마탑에서 다른 곳에 의뢰를 했나?’
만에 하나 그런 거라면 고분고분 정보를 내어 줄 수는 없었다.
그는 일단 상대를 돌려보낸 뒤에 뒷조사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드라코의 서식지를 왜 찾으십니까?”
“그건 알 바 없고, 장소나 말해라.”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드라코 같은 희귀종은 제국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포획 허가를 받지 못한 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정보를 제공할 수가 없습니다.”
“포획 허가? 그건 어디서 받을 수 있나?”
“관청으로 가셔야지요.”
파비안이 떨떠름한 얼굴로 엘리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렇다는데요?”
엘리오가 인상을 찌푸릴 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나섰다.
“사무장이라고 했지? 자네 이름이 뭔가?”
“질리언입니다.”
“그래, 질리언. 지금부터 똑바로 말해야 할 게다. 내가 알기로 드라코는 희귀종이 아니라 최상급 야수다. 최상급 야수는 토벌 대상이지 보호 대상이 아니지. 그래도 우리가 포획 허가를 받아야 하나?”
순간 질리언은 당황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드라코가 희귀종이 아니었습니까? 이런 실수를. 죄송합니다. 지능이 사람만큼 뛰어나다는 말씀에 그만 착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포획 허가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훗! 그럴 줄 알았네. 그럼 이제 드라코가 어디 있는지 말해 보게.”
“저어, 아시겠지만 저희 용병 길드에서는 정보 제공에도 수수료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알지. 나도 페트로폴리스 중앙구에서 용병 길드를 이용한 적이 있으니까. 그래서 얼마인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질리언을 지그시 응시했다.
허튼소리를 하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눈빛에 질리언은 눈을 내리깔았다.
“야수의 정보료는 10실버입니다. 제도 어디를 가도 이 정도 금액을 부를 겁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돈주머니에서 10실버를 꺼내 가림막 겸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질리언이 돈을 쓸어 담으며 말했다.
“이곳 북구에서 가까운 드라코 서식지는 발도벤토입니다. 말을 타고 서쪽 대로를 따라 하루 정도 가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문득 멈춰 섰다.
“질리언이라고 했지? 발도벤토보다 더 좋은 곳이 있는데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팔 하나는 내놔야 할 게다. 우리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나?”
섬뜩한 협박에 질리언은 목울대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발도벤토가 험지이긴 하지만 가장 좋은 서식지입니다. 우리 용병들도……. 아,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 용병들도 그곳에서 드라코를 잡아 왔다’고 하려다 얼른 말을 돌렸다.
***
엘리오 일행은 즉시 용병 길드 사무소에서 얻은 정보대로 서쪽 대로를 따라 말을 달렸다.
쉬엄쉬엄 정오까지 달렸지만 제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세 사람은 점심 식사를 위해 거리의 음식점 앞에 멈춰 섰다.
말뚝에 말고삐를 매던 파비안이 지친 얼굴로 말했다.
“와아! 제도가 이렇게 큰지 몰랐습니다. 어떻게 반나절을 달려도 끝이 안 나지?”
엘리오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게.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큰 식당에서 식사도 할 수 있잖아.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변두리로 나가면 뭐든 해 먹어야 한다고.”
이윽고 세 사람은 식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창밖을 힐끔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미행이 붙은 것 같습니다.”
“미행요?”
엘리오가 황당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강호에서, 왕들의 하늘을 거쳐, 지금까지 미행당하기는 처음이었다.
모험가로는 초보자인 파비안이 노련한 척을 했다.
“용병 길드에서 사람을 붙였나 봅니다. 드라코를 노리는 사람이 많은가 보네요.”
희귀종이라는 거짓말로 방해를 하더니 이젠 미행까지 붙였다?
의심의 여지 없이 용병 길드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점원에게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여행자로 보이는 청년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속삭이듯 말했다.
“저들입니다.”
두 사람은 엘리오 일행과 거리를 두고 앉았다.
잠시 후 주문한 요리가 나오자 엘리오 일행은 묵묵히 식사에 열중했다.
배가 차오르자 엘리오는 청년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열심히 음식을 먹던 밀튼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짧은 순간 밀튼과 엘리오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밀튼이 급히 얼굴을 돌리려 했지만 엘리오가 한발 빨랐다.
엘리오가 청년에게 가까이 오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좌우를 둘러보던 밀튼은 다른 손님이 보이지 않자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보다 몇 살 많아 보이는― 청년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형씨들이 우리를 미행하고 있다면서?”
“미행요? 아닙니다. 무슨 그런 흉측한 말씀을. 방향이 비슷했나 본데, 저희는 진짜 그런 사람 아닙니다.”
“아니면 말고. 그런데 앞으로 내 눈에 띄지 마라? 다시 만나면 말로 안 끝난다? 알았지?”
“예, 예. 걱정 마십쇼.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겠지만 마주치는 일 없게 하겠습니다.”
밀튼은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허리까지 굽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