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63
1163회. 그들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아라곤 공국.
아크레온 영지.
이른 아침, 아크레온 성문으로 이십여 명의 전마(戰馬)를 탄 기사들이 들어왔다.
엘리오 일행을 쫓는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과 그의 루베르 기사단이다.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은 기사단을 가까운 식당에 떨구고, 소수의 호위기사들만 데리고 영주인 에우로스 아크레온 백작을 찾아갔다.
제법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아크레온 백작가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걸 본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를 호위하던 루베르 기사단장 로넌 바크리 자작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직 잠에서 깰 시간이 아닌데 분주해 보이지 않나?”
“백작님의 방문 소식이 전해진 것일 테지요.”
“그렇다면 더더욱 이상하지. 표정들이 너무 어둡지 않은가.”
아크레온 백작가 사람들을 살피던 기사단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다들 똥 씹은 얼굴이었다.
뜻밖의 귀빈 때문이 아니라 백작가에 무슨 사고가 터진 것 같았다.
잠시 후 아크레온 백작가의 집사가 뛰어나와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과 기사단장을 내성의 중앙 홀로 안내했다.
내성 중앙 홀.
아크레온 백작을 본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의 얼굴과 복장은 자신과 만나기 위해 지금 일어난 사람 같지 않았다.
2차 소집령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한 면이 있었다.
손님인 파가누스 백작이 자신을 관찰하듯 살피자 에우로스 아크레온 백작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벌써 우리 소식이 전해졌을 리는 없고, 어쩐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상대가 대귀족들 특유의 장황한 인사말을 생략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자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소식이라니……. 무슨 일이 벌어지긴 했군.’
아크레온 백작을 이른 아침부터 심각하게 만든 일이 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다.
“북부의 기사들을 찾고 있습니다. 아직 아크레온 영지에 남아 있거나, 없다면 떠난 지 얼마 안 됐을 겁니다.”
순간 에우로스 아크레온 백작의 눈이 기이하게 번득였다.
“백작께서 북부의 기사들을 왜 찾고 있습니까?”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은 자신의 체면과도 관계된 일이기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아크레온 백작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들이 키넌 가이어 남작을 공격했습니다. 하여 그들의 뒤를 쫓고 있던 중입니다.”
그는 마차를 부순 일로 쫓는다고 하면 좀스러워 보여 키넌 가이어 남작을 전면에 내세웠다.
어쨌든 그가 마차에 탄 상태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거짓말도 아니었다.
“그자들이 왜 그런 짓을 했답니까?”
“가이어 남작이 자기들보다 빨리 에스파나 영지 검문소를 통과하려 했다는 이유로 공격했다고 들었습니다.”
“허어! 제대로 미친놈들이군요.”
에우로스 아크레온 백작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에스파나의 영주가 파가누스 백작의 가신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 처리다.
그런데 그걸 이유로 에스파나 백작가의 귀족을 공격하다니?
아다부 홀에서 벌어진 테러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북부 기사들이 사두마차를 사용하고 있으니 눈에 띄었을 겁니다. 그들이 아크레온 영지에 있는지, 떠났다면 언제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들은 아직 아크레온 영지에 있습니다. 정확히는 치안대에서 그들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치안대요?”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이 황당한 눈으로 아크레온 백작을 보았다.
치안대의 무력으로는 북부 기사들을 잡아 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제 오후에 테러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물론 자기들은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백작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자들의 짓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조금 전까지 긴가민가했던 에우로스 아크레온 백작은 북부 귀족들이 키넌 가이어 남작을 공격했다는 소리에 확신할 수 있었다.
테러의 배후에 북부 귀족들이 있는 게 분명했다.
파가누스 백작가를 공격한 자들이 아크레온까지 건드린 것이다.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은 아니라고 부인하지 않았다.
그게 아니고서는 북부의 기사들이 아라곤 공국까지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북부 왕국들이 남부 왕국과의 동맹을 되살린 것일까요?”
그게 아니고서는 북부 기사들이 공국 귀족을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취조를 해 보면 알겠지요. 키넌 가이어 남작을 공격한 일까지 들통났으니 아니라고 부인만 하지는 못할 겁니다. 함께 만나 보시겠습니까?”
“그러지요.”
북부 기사들을 추격 중이던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은 사양하지 않았다.
아크레온 백작과 함께 중앙 홀을 가로지르던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그들이 순순히 체포를 당했습니까?”
“저항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좀 이상하군요. 그들의 무력이면 치안대를 뚫고 달아날 수 있었을 텐데.”
“제국에서 도망쳐 봐야 어디로 가겠습니까. 차라리 아니라고 발뺌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증거도 증인도 없으니까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
아크레온 영지.
치안대.
조사관 세틴 피라트 남작이 상대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 아니라고 잡아떼면 우리가 그냥 보내 줄 것 같나? 남부 놈이 알 수 없는 장치로 폭발을 일으키고 자기도 죽었어. 그런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당신들 빼고 죄다 공국 사람들이야. 누가 봐도 당신들 짓이잖아. 안 그래?”
파비안이 답답한 듯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나!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그랬다면 달아났지 왜 거기 남아서 사람들을 구조합니까? 기껏 도와준 사람들을 범인으로 몰아갑니까? 그러고도 안 미안해요?”
그러나 조사관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았다.
“순수한 마음으로 그랬다면야 고맙지.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당신들은 의심을 피하려고 그런 거잖아. 내가 범인과 한패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순순히 자백하고 제국 법정에 서는 게 좋아. 계속 버티면 정신 마법을 사용하는 수가 있어.”
조사관은 정신 마법으로 클라우드 남작을 협박했다.
그러자 파비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꿈도 꾸지 마쇼. 우리 자작님 화나면 당신들 영지만 망하니까.”
“아크레온 영지를 망하게 하겠다고? 그럴 재주나 있고?”
“부탁이니까 일 크게 벌이지 맙시다. 우리가 치안대 말에 따라 준 건 떳떳하니까 그랬던 겁니다. 그만 갈 길 가게 냅둬요. 없는 죄 뒤집어씌우다가 진짜 큰일 나는 수가 있어요.”
“당신들이 아다부 홀에서 체포된 것보다 더 큰일은 없어.”
“죄 없는 사람 잡아 두지 말고 그냥 보내 줘요. 당신이 상상할 수도 없는 큰 파도가 밀어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 파도에 휩쓸리면 아크레온은 폭삭 망한다고요.”
조사관은 그 말을 다음번 테러의 예고로 받아들였다.
“테러를 예고하는 건가? 좋아, 그렇다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무엇으로 그런 폭발을 일으켰나? 마력포에 버금가는 위력이라고 하더군. 뭘 어떻게 한 거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우리는 공연 구경 갔다가, 사람들 죽어 가는 거 보고 불쌍해서 도와주다가 잡혀 왔다고!”
“제정신으로는 말하기 싫다? 정신 마법을 사용해서 알아내라 이건가?”
“미쳤어요?”
“미친 건 내가 아니라 테러를 감행한 너희 북부의 귀족들이지. 남부 왕국과 동맹이면 그냥 참전하지, 왜 뒤에서 테러질이야!”
흥분한 조사관이 버럭 소리 지르며 탁자를 후려쳤다.
그제야 파비안은 상대가 진심으로 북부의 귀족들을 테러의 배후로 믿는다는 걸 알았다.
‘골치 아프게 됐네.’
조사받다가 풀려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면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다.
어쩌면 저들은 전시를 핑계로 정신 마법을 사용하려 들지도 몰랐다.
조용히 넘어가려고 치안대까지 따라와 줬건만 이런 결말이라니.
조사를 마친 파비안은 치안대 내에 있는 숙소로 돌아갔다.
그를 본 엘리오가 시큰둥한 얼굴로 물었다.
“뭐래? 언제 보내 주겠대?”
“그게…… 상황이 이상해졌습니다.”
“왜?”
“조사관은 테러의 배후에 우리가 있다고 믿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왜? 우리가 뭘 어쨌다고? 공연 보러 갔다가, 사람들 구하는 거 도와준 것밖에 없잖아.”
“아다부 홀에 테러범과 우리 빼고 죄다 공국 사람들이랍니다. 북부 왕국과 남부 왕국이 동맹이니 우리가 배후일 거라고 하더군요.”
“돌겠네.”
엘리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좋은 일을 했기에 당당하게 동행했는데 테러범과 한편으로 몰리다니!
이야기를 듣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정황상 의심받을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만. 그래도 이건 백작과 자작의 신분에 맞지 않는 대우입니다.”
파비안이 쐐기를 박았다.
“조사관은 우리가 죄를 시인하지 않으면 정신 마법을 사용하겠다고 했습니다.”
“정신 마법? 이것들이 가만히 있으니까 만만해 보이나. 어디 내 앞에서 정신 마법의 정 자만 꺼내 봐. 가만두나.”
엘리오가 씩씩거릴 때 치안대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윽고 병사들 중 하나가 말했다.
“모두 나오십시오. 영주님께서 직접 여러분을 만나겠다고 오셨습니다.”
엘리오가 뚱한 얼굴로 물었다.
“보내 주는 게 아니라 영주와 만나라고?”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저희는 모셔 오라는 지시만 받았습니다.”
엘리오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말단 병사들에게 무슨 죄가 있나 싶어서 참았다.
그래도 대귀족 일행이라고 포박당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결박하려고 들었다면 진즉에 때려 엎었을 것이다.
***
치안대 앞마당.
치안대장 더글라스 안톤 남작이 북부의 귀족들을 에우로스 아크레온 백작과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에게 소개했다.
“가장 좌측이 베일럼의 라르바 오마르 백작, 그 옆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 그리고 마지막이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입니다.”
말을 마친 치안대장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크레온의 영주인 에우로스 아크레온 백작이 근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아크레온의 영주인 에우로스 아크레온 백작이다. 그대들은 아크레온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전승 기념관을 파괴하고, 시민들을 살해한 죄로 잡혀 왔다. 그런데 조사관의 말에 의하면…… 지은 죄가 명백한데 모든 혐의를 부정한다고?”
그러자 파비안이 참지 못하고 말을 쏟아 냈다.
“지은 죄가 명백하다니요? 우리는 아다부 홀에서 부상자들을 구해 주다가, 함께 가 달라고 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시민들을 구해 준 것도 죄가 됩니까?”
그러자 에우로스 아크레온 백작의 옆에 있던 조사관이 끼어들었다.
“테러를 사고라고 하다니! 뻔뻔하구나! 백작 각하, 범인들이 테러를 사고로 호도하고 있음을 알아주십시오.”
“뭘 호도합니까? 사고든 테러든 우리는 관계가 없다니까!”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의 말대꾸에 에우로스 아크레온 백작이 눈을 찌푸렸다.
제국의 대귀족들 앞에서 한낱 왕국의 남작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드니 심기가 불편한 것이다.
‘이자들을 어쩐다.’
아무리 제국의 백작이라 해도 북부의 대귀족을 심증만으로 체포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진짜 북부 왕국들이 들고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가 망설일 때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이오. 오마르 백작, 귀하는 열흘 전 파가누스 백작가의 집사인 키넌 가이어 남작을 공격해 마차를 부수었소. 그것도 아니라고 발뺌할 생각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