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74
1174회. 기사단장의 말이 맞아
여기사의 웃음소리에 엘리오와 파비안은 머쓱한 얼굴로 말싸움을 끝냈다.
한순간 분위기가 묘해지자 벤젤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비웃은 건 아니었습니다. 두 분을 보니 기사 아카데미 시절 생각이 나서 그만.”
그러자 그녀와 가까운 거리에 있던 파비안이 말했다.
“괜찮다. 태번(여관 겸 술집)에서 큰 소리로 떠든 쪽이 잘못한 거지. 그런데 왜 혼자서 식사를 하나? 따돌림이라도 당하고 있는 건가?”
물론 마지막 말은 파비안 식의 농담이었다.
“아닙니다. 급한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식사 때를 놓쳤습니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있던 중입니다.”
“아하! 그래서 혼자 이 인분을 먹고 있었군. 어떻게든 하루 세끼를 먹겠다는 마음가짐, 훌륭하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허기가 져서 떠오르는 대로 시키다 보니 이렇게 된 겁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엘리오가 파비안을 나무랐다.
“파비안, 기사님 식사하게 좀 내버려 둬라. 혼자 이 인분을 먹든 삼 인분을 먹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 배고픈 사람에게 자꾸 말 거는 거 나쁜 짓이다.”
순간 대식가로 오해받았다고 생각한 벤젤이 변명하듯 말했다.
“평소에는 이렇게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엘리오는 물론 파비안도 더 이상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벤젤은 머쓱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절반쯤 남은 맥주와 훈제한 닭요리, 절인 연어, 볶음밥이 눈에 들어왔다.
남작이 이 인분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녀는 다시 식사를 했지만 눈치가 보여서인지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음식을 기다리며 홍차를 마시던 엘리오가 파비안에게 물었다.
“아침에 선장하고는 무슨 말을 한 거야?”
“아, 오늘 출항은 어려울 것 같답니다. 선원들을 새로 뽑아야 한다나.”
“그래, 이참에 싹 갈아 치우라고 해. 마의 해역을 겁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면서.”
“그런데 치안대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모집이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소리?”
“북부 왕국 귀족들을 위해 일하면 나중에 변절자로 몰릴 수도 있다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여기서 변절자가 왜 나와?”
“북부 왕국이 남부 왕국을 도와 전쟁에 참여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선장이 오히려 저한테 묻더라고요. 혹시 나중에라도 북부 왕국이 남부 왕국을 도울 것 같냐고.”
“그래서 뭐라고 했어?”
“모른다고 했죠. 백작님은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파비안의 질문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애매한 얼굴로 답했다.
“그건 나도 모르겠네. 전쟁이 장기화되면 결국 남부 왕국은 북부 왕국에 참전을 요청할 걸세. 그때가 되면 히르헤라의 상황을 보고 참전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네.”
파비안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히르헤라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백작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알겠다.
히르헤라는 이미 안정화되었다.
그 말은 그때가 되면 북부 왕국도 참전할 거라는 소리였다.
때마침 주문한 요리가 나오자 대화는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벤젤은 먼저 식사를 마쳤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는 엘리오 일행이 식사를 마치자 조심스럽게 말했다.
“치안대의 일은 제가 이상한 말이 나오지 않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하데스 항을 이용하시는 데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파비안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그런데 경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에게라도 벤젤을 부르라고 하시면 됩니다.”
“치안대든 기사든 그렇게 말하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알겠다. 그 말을 하려고 남아 있었다면 가도 좋다.”
파비안의 말에 벤젤은 자리에서 일어나 묵례를 하고 떠났다.
그녀가 사라지자 파비안이 중얼거렸다.
“영주를 만나서 그런가 대접이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날 했던 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라고아 경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을 걸세.”
“그렇군요. 그런데 백작님.”
“말하게.”
“북부가 전쟁에 끼어들면……. 그때도 제국이 우리 활동을 묵인해 줄까요?”
“어쩌면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지도 모르네. 우리가 마의 해역에 발이 묶여 있기를 바랄 테니까.”
“아, 그런 겁니까?”
“무엇보다 우리는 대륙의 안위를 위해 천공성을 찾고 있지 않나. 제국의 수뇌부들도 뭐가 더 중요한지 정도는 알고 있을 걸세. 한편으로 그보다 좋은 명분도 없지.”
“하데스 항구의 치안대처럼 방해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지는 않을 걸세. 당장 치안대의 문제도 여기사가 해결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제국이 우리 활동을 돕기로 한 모양이니 잘될 거라고 보네.”
묵묵히 듣고 있던 엘리오가 말했다.
“문제는 제국이 아니라 마의 해역이야. 소문과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나는 십 년 이십 년 마의 해역에 매달릴 생각이 없다고.”
“자작님, 수천 년 동안 소득이 없었는데 십 년 이십 년을 못 참으시면 안 되죠.”
“헛소리하지 마. 그런 일로 농담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백작님에게 재정 지원을 받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벼룩도 낯짝이 있지 몇 년이나 그러고 싶지는 않다고.”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이야 자신이 돈을 대고 있지만 지원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
몇 년간 탐사를 계속하면 자신도 빈털털이가 되고 말 터였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정색하자 파비안은 얼른 잘못을 빌었다.
“죄송합니다. 잘될 겁니다. 마의 해역이 잠잠해 봐야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조만간 미친 말 날뛰듯이 뒤집어질 겁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거들고 나섰다.
“라고아 경,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수천 년간 마의 해역에 괴소문이 따라다닌 걸 생각하면, 기다리던 순간은 반드시 올 겁니다.”
“나도 그러기를 바라요.”
자리에서 일어난 엘리오는 태번 밖으로 나갔다.
고깃배들의 부두 반대편 계류장에 마력범선이 홀로 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이끌리듯 터벅터벅 마력범선을 향해 걸었다.
훌쩍 몸을 날려 갑판 위에 올라선 그는 먼 바다를 응시했다.
수십 년은 고사하고 수 년을 견딜 수 있을까?
아무런 소득 없이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얼마나 오래할 수 있을까?
이렇게 세월을 보내다 돌아가면 가족들과 만날 수나 있을까?
갑자기 ‘울컥!’한 그가 소리쳤다.
“샤스트라 파라크티님! 똑똑히 들어요! 나는 당신에게 실망했어요! 이세계가 카마 데비아스(천자마)와 우샤스 운드라(금사) 때문에 망할 거라고 했죠! 나는 이세계가 꽤나 높은 상계라기에 극락정토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아! 그런 세계에 카마 데비아스나 우샤스 운드라 같은 게 돌아다니면 개판 되겠구나!’ 싶어서 도와주겠다고 했다고요! 그런데 아니야! 이세계는 내가 있던 곳처럼 개판이야! 사방에 쓰레기 천지라고! 이런 좆같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가족과 헤어져 왔다고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을 발로 찬다고요! 이거 알아 둬요! 카마 데비아스와 우샤스 운드라를 못 찾으면, 내가 이세계를 부숴 버릴 겁니다! 그러니까! 날 좀 도와 달라고! 가족을 떠나서 이 먼 곳까지 왔잖아! 그럼 좀 도와줘도 되잖아! 씨바알―!”
먼 바다에서 일어난 높은 파도가 계류장을 철썩 때리고 사라졌다.
***
다음 날.
엘리오 일행은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계류장으로 이동했다.
계류장에서 엘리오 일행을 맞이하는 알트헬름 선장의 표정은 밝았다.
“어서 오십시오.”
일행을 대신해 파비안이 확인하듯 물었다.
“선원은 다 구했나?”
“예, 어제 갑자기 치안대에서 북부 귀족을 도와도 괜찮으니 일하라고 했답니다. 덕분에 지원자가 많아 골라내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잘됐군. 이번에는 며칠이나 바다에 있을 예정인가?”
“식재료의 보관 문제가 있어서 열흘 이상은 어렵습니다. 항구로 돌아와 하루 동안 보급을 해야 합니다.”
“열흘간 항해하고 하루를 쉬자는 말이군. 맞나?”
“예.”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힐끔 보았다.
엘리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파비안이 선장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기로 하지. 참, 견시를 할 선원의 보강은 어떻게 됐나?”
“하루 삼교대를 할 수 있게 뽑았습니다.”
“잘했다. 이번에는 다치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잘해 보자.”
“맡겨 주십쇼.”
알트헬름이 큰소리치자 엘리오 일행은 더 말하지 않고 그를 스쳐 지나갔다.
잠시 후 마력범선이 천천히 항구를 빠져나갔다.
***
마력범선이 하데스 항을 떠난 다음 날.
정오 무렵, 피에스트라에 황실 문양이 새겨진 비공정 한 대가 나타났다.
비공정은 벨라누스 백작성 위를 한 바퀴 돌더니 앞마당에 내려앉았다.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과 그의 가신들이 비공정 앞에 도열했다.
잠시 후 비공정에서 마주 보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차가운 인상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숫자가 무려 30명이나 됐다.
특무대장 케이사 콜드월이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 앞으로 다가갔다.
“특무대장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오.”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이오.”
상호 간에 건조한 소개가 끝나자 케이사 콜드월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북부 귀족들은 어디에 있소?”
“어제 아침에 출항했소. 지금쯤 마의 해역에 도달했을 것이오.”
“그들에 대해 미처 알리지 못한 정보가 있소?”
취조라도 하는 듯한 그의 태도에 벨라누스 백작은 은근 불쾌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상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투기가 범상치 않아서다.
‘설마 소드마스터인가?’
소드 익스퍼트 중급인 자신이 저항하지 못할 정도인 걸 보면 소드마스터가 분명했다.
‘이름이 낯선 걸 보니 최근에 소드마스터가 된 것 같군.’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 서둘러 답했다.
“며칠 전 북부 귀족들의 배가 마의 해역에서 해적선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오마르 백작이 마나 블레이드로 포탄을 막아 냈다고 합니다.”
상대를 소드마스터라고 확신한 그의 말투가 겸손해졌다.
“그게 전부요?”
“아닙니다. 그때 라고아 자작이 바다 위를 백여 미터나 달려가 해적선을 두 동강 냈다고 합니다.”
“아무런 장치도 없이 맨몸으로 바다 위를 달려갔다는 거요?”
“그렇게 들었습니다.”
“알겠소. 마검사라더니 마법이라도 썼던 모양이구려.”
“그런 마법이 있습니까?”
“있으니까 쓴 게 아니겠소? 라고아 자작에 대한 다른 이야기가 더 있소?”
“없습니다.”
“알겠소. 지금부터 하데스 항의 관리는 우리 특무대가 맡도록 하겠소. 이의 있소?”
“치안대와 기사단을 철수시키라는 말입니까?”
“그렇소.”
“알겠습니다. 나중에라도 우리 기사단의 협조가 필요하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럴 일은 없소. 로렌 공국군을 동원한다면 모를까. 그럼 이만.”
케이사 콜드월 백작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곧이어 내려앉았던 비공정이 다시 날아오르고, 특무대 기사들도 벨라누스 백작성을 떠났다.
텅 빈 내성 앞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는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에게 카밀로 쿠스만 기사단장이 다가갔다.
“영주님. 아무리 특무대의 요청이래도 하데스 항에서 치안대와 기사단을 전부 빼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특무대가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특무대장은 소드마스터네.”
“…….”
“그런데 비공정에서 내리기 직전, 특무대장을 손짓으로 부르던 기사가 있었네.”
“헉!”
“기사단장의 말이 맞아. 그래도 내 영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도는 알아야지. 안 그런가?”
“그냥 다 빼시지요.”
“믿을 수 있는 한 사람 정도만 남기고 모두 철수시키게.”
영주의 지시에 기사단장은 자신의 입방정을 원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