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79
1179회. 후작 형님이 그렇게 여자를 밝혀?
엘리오 일행은 약속대로 하루 동안 선원들을 쉬게 했다.
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구 일간의 항해만으로도 충분히 피로한 때문이다.
그건 비단 선원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장시간의 항해로 심신이 지친 건 엘리오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파비안의 경우 마지막 날에는 가벼운 뱃멀미까지 했을 정도다.
그런 이유로 항구에 머무는 하루 동안 엘리오 일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자 엘리오는 느긋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하던 파비안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엘리오가 손을 흔들어 화답한 뒤 그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백작님 봤냐?”
“조금 전에 배를 점검해야겠다고 나가셨습니다.”
“벌써 식사를 마치신 거야?”
“자작님이나 저와 달리 규칙적인 분이시잖습니까.”
“하긴 칼 같은 분이시지. 호랑이가 아니라 시계라고 불러야 한다니까.”
“맞습니다. 뭐 하시는 거 보면 집사장 같다니까요.”
파비안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떠올리며 키득거렸다.
여점원 셀리에게 주문을 마친 엘리오가 생각난 듯 물었다.
“후작 형님은?”
“헐! 자작님. 진짜 크나우프 후작님을 형님이라고 부르시는 겁니까?”
“한번 형님이라고 했으면 형님이지. 남자는 한입 가지고 두말하는 거 아니야.”
“후작님은 피에스트라의 영주를 만나러 가셨을 겁니다.”
“벨라누스 백작을?”
“예, 특무대장이랑 벨라누스 백작 이야기를 하시는 걸 봤습니다.”
“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
“아뇨. 제가 멀찍이서 엿들었죠. 남의 구역에 왔으면 귀를 활짝 열어 두고 있어야 하잖습니까.”
“좀 구질구질한 짓이지만 잘했다. 그런데 왜 거길 갔지?”
“저는 알 것 같습니다.”
“왜?”
“크나우프 후작님의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지고의 검?”
“그것보다 더 유명한 게 있습니다. ‘제국의 타밀’입니다.”
“제국의 타밀?”
“타밀이 누군지 모르십니까?”
파비안이 어이없는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아무리 야인 출신이라도 그렇지! 타밀이 누군지 모르다니?
“누군데? 기사야?”
“기사는 기산데 음란 기사죠. 남부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바람둥이입니다.”
“후작 형님이 바람둥이라고?”
“예, 크나우프 대공가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니, 소드마스터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살해당했을 정도로 난잡한 바람둥이십니다.”
“와우! 그렇게 안 보였는데?”
엘리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지난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여자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의 얼굴도 상당히 지조 있게 생겼는데 바람둥이라니?
“그렇게 안 보이니까 여자들이 넘어가지요. 사기꾼 얼굴에 사기꾼이라고 적혀 있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의외네. 나는 후작 형님이 순정파인 줄 알았는데.”
엘리오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남궁천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전부를 닮은 건 아닌 모양이다.
“이제 백작가로 가신 이유를 아시겠지요? 하데스 항에 쓸 만한 여자가 없으니까, 백작의 성으로 원정을 나가신 걸 겁니다.”
“후작 형님이 그렇게 여자를 밝혀?”
“처녀, 유부녀, 귀족, 평민, 노예, 안 가리는 분입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만 있다’.”
“크크큭!”
엘리오는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의 남다른 정신세계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검술이 뛰어나지 않았으면 크나우프 대공가에서 쫓겨났을 겁니다.”
“검술 실력은 뛰어나신 것 같더라.”
“후작님이 오마르 백작님보다 강합니까?”
“어.”
“케이사 콜드월 백작님은요?”
“그 사람도 오마르 백작님보다 세.”
“하아! 기운 빠지는 소리네요. 세상에 강자가 왜 이렇게 많은 겁니까?”
소드 익스퍼트가 된 뒤로 세상을 얻은 것 같았는데, 그건 베르나르도 후작군에 있을 때뿐이었다.
베르나르도 후작군을 나와 보니 자신보다 약한 사람이 없다.
“파비안, 네 나이를 생각해라.”
“자작님도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의 경지에 그냥 오른 것 같냐? 너 별들 사이를 돌아다녀 본 적 있어?”
“없습니다.”
“나 그런 사람이야.”
“죄송합니다. 제가 자꾸 깜빡깜빡합니다.”
파비안은 선선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너무 편해서 무심코 자신과 비교를 하게 된다. 그의 실체를 생각하면 그건 정말 터무니없는 짓인데 말이다.
***
피에스트라 영지.
벨라누스 백작성.
내성 중앙 홀에서 예정에 없던 저녁 연회가 갑작스럽게 열렸다.
주인공은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다.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은 영지의 미녀들을 초대해 자리를 꽉꽉 채웠다.
그런데 연회 내내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한껏 치장한 귀족가 미녀들이 시위하듯 그의 앞을 오락가락했지만, 그는 연회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연회 내내 그의 눈치를 살피던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피에스트라가 변방의 촌구석이라 영 수준이 못 미치는 것 같아 송구합니다.”
중앙 정계에 인맥을 쌓고 싶었던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은 모처럼의 기회를 날리게 되어 미치도록 안타까웠다.
그런데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아니야. 아주 마음에 드는 연회였네. 그보다 백작에게 물어볼 말이 있는데 답해 줄 수 있겠나?”
“예, 제가 아는 것이라면 뭐든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특무대와 함께 하데스 항에 머무르고 있다는 말을 했던가?”
“따로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알고는 있습니다.”
“특무대가 하데스 항에 주둔한 뒤로 기사단과 치안대까지 모두 뺐더군.”
“예, 특무대장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알고 있네. 그런데 여기사 하나가 항구 관리인의 집을 드나들더란 말이지.”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기사단에 항구 출입을 금하라고 지시했습니다만……. 제가 조사해서 엄중 조치하겠습니다.”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은 자신의 지시로 그렇게 된 일이지만 시치미를 뚝 뗐다.
“아니야, 방향이 틀렸네. 그 여기사가 항구에 드나드는 걸 문제 삼는 게 아닐세.”
“그것 때문이 아니라고요?”
“그렇네. 나는 그 여기사가 아주 마음에 들어. 그래서 감찰부에 뒤를 좀 캐 보라고 했네.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거든.”
“그, 그렇습니까?”
놀란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에게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말야. 뜻밖에도 그 여기사에게 후견인이 있더라고.”
“…….”
순간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자신의 기사단에서 그런 ‘여기사’와 ‘후견인’은 ‘벤젤’과 ‘카밀로 쿠스만 기사단장’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연회장에서 기사단장을 본 순간 알겠더군. 평민 여기사에게서 왜 기품이 느껴졌는지를 말이야. 눈매가 기사단장을 빼닮았어.”
“그 여기사의 이름이 혹시 벤젤이었습니까?”
“맞네.”
“아, 그렇군요. 벤젤은 기사단장의 혼외자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저와 기사단장뿐이었습니다만, 이제 후작님도 아시게 됐군요.”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 묘한 눈으로 백작을 보았다.
기사단장의 은밀한 개인사를 알 정도면 보통 사이가 아닌 게 분명했다.
“기사단장과 꽤 가까운가 보군?”
“어릴 때부터 친구였습니다. 기사 아카데미에 함께 갔고요.”
“으흥, 벤젤을 왜 기사단장의 가문에 입적시키지 않았지? 그 정도 미모에 재능이면 가문을 빛낼 만도 한데.”
“기사단장의 부인이 후처를 극도로 싫어합니다.”
“부인의 눈치를 볼 정도로 애처가인데 혼외자를 두었다고? 한순간의 실수였나?”
“그보다는 잠깐 외도를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귀족가의 엄격한 생활에 질려 있던 귀족이 평민 여자를 만나 반짝 사랑을 했다가 헤어지는 일은 꽤나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후견인으로 선을 그었다?”
“예.”
“벤젤도 알고 있나?”
“공국의 기사 아카데미를 졸업하던 날 모친이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다른 영지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랬는데……. 벤젤이 거부하고 피에스트라에 정착했습니다. 정말 벤젤에게 관심이 있으십니까?”
“왜 그러면 안 되나?”
“그럴 리가요. 오히려 벤젤에게는 잘된 일인데 제가 어찌.”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후작을 뒷배로 두면 벤젤이 작위를 얻는 것은 확정적이라 할 수 있다.
자신에게도 후작과의 연줄이 생기게 되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아참, 그리고 어젯밤 북부 귀족들과 만났네. 특별히 다른 의도가 느껴지지는 않더군. 북부에서 피에스트라를 노릴 이유도 없고.”
“그렇기는 합니다.”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의 말처럼 현 상황에서 피에스트라는 전략적으로 큰 가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섣불리 점령했다가는 바다로 내몰려 익사하기 딱 좋은 위치였다.
“그래서 말인데 기사단과 치안대가 다시 항구를 맡았으면 하는데. 경의 생각은 어떤가?”
“후작 각하의 생각이 그러시다면 기사단과 치안대를 보내겠습니다.”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후작이 벤젤을 취하기 위해 기사단에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했다.
***
피에스트라 영지.
하데스 항.
이른 아침 계류장.
돛을 올린 마력범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꽤나 입소문을 탄 배지만 항구에 있는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처음 한두 번이면 모를까?
세 번이나 연속으로 출항을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다.
그날 오후 영주 직속의 보리스 기사단이 다시 항구로 돌아왔다.
항구 관리 책임자 깁슨 캐넌과 벤젤의 계약도 자연스럽게 파기됐다.
벤젤은 북부 귀족들의 조사를 위해 항구에서 살다시피 했다.
하데스 항은 개항 이래 가장 조용한 분위기였다.
치안대와 기사단에 이어 제국 특무대까지 삼중으로 순찰을 도니 그 흔한 술주정뱅이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반 시민들의 삶은 평화롭기 그지 없었으나, 기사단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긴장의 연속이었다.
치안대는 대부분이 평민이라 특무대와 얽힐 일이 없지만 기사단은 다르다.
특무대가 중앙의 귀족이라면 기사단은 지방의 귀족.
같은 귀족이라도 지방의 귀족이 몸을 사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토록 조심했건만 기어코 항구 외곽의 선술집에서 기사단 기사와 특무대 기사 간에 시비가 붙고 말았다.
특무대 남작 하나가 마침 지나가던 벤젤을 희롱했고, 그에 참지 못한 기사단의 기사가 한마디 하면서 싸움이 나고 만 것이다.
그 일 직후 싸움을 벌인 보리스 기사단의 기사 윌리엄은 특무대로 끌려갔다.
윌리엄이 특무대에 끌려가자 기사단장 카밀로 쿠스만 자작은 즉시 태번으로 찾아가 특무대 대장 케이사 콜드월 백작을 만났다.
“백작님, 후안 카사스 남작이 보리스 기사단의 여기사를 희롱하여 생긴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정상을 참작하여 그를 풀어 주십시오.”
그러자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차갑게 말했다.
“쿠스만 자작. 기사라고 다 같은 기사가 아니네. 후안 카사스는 남작이지만 윌리엄은 평민이야. 평민이 남작에게 칼을 뽑았어. 기사단끼리의 문제라면 유야무야 넘어가 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 제국의 감찰부야. 제국 감찰부의 남작에게 평민이 칼을 들었다? 그 자체로 반역이나 다름없네.”
“윌리엄은 기사 서임을 받은 기사입니다.”
“경도 알 텐데. 기사 서임을 받았다고 귀족이 되는 건 아니잖나.”
“기사는 신분상 귀족에 준하는…….”
“씁! 귀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고 귀족은 아닐세. 하물며 상대는 감찰부 특무대의 남작이야. 기사 서임의 박탈은 물론 참수까지 당할 일이라고.”
“물론 법으로는 그렇습니다만 정황상…….”
“법을 초월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는데. 물론 그자를 살릴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기사단장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