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80
1180회. 벤젤! 후회할 짓 하지 마라!
다음 날.
기사단장 카밀로 쿠스만 자작은 집무실로 벤젤을 불렀다.
벤젤은 기사단장을 보자마자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단장님, 윌리엄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잘못은 오히려 그쪽이 했습니다. 윌리엄이 아니었으면 제가 칼을 뽑았을 겁니다.”
“네가 그랬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단장님! 윌리엄과 저도 서임받은 기삽니다. 기사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어젯밤에 조사가 다 끝났을 텐데 왜 아직도 풀어 주지 않는 겁니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복잡할 게 뭐가 있습니까? 특무대 기사가 저를 희롱한 걸 보고 윌리엄이 한마디 했던 게 전부입니다.”
“칼까지 뽑았잖느냐.”
“상대가 먼저 뽑아서 윌리엄도 어쩔 수 없이 대응한 겁니다. 선술집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해 보십쇼.”
“확인해 봤다. 특무대 기사에게 윌리엄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들 하더구나.”
“거짓말입니다!”
“그들의 눈에 그렇게 보였든지, 특무대가 손을 썼겠지. 중요한 건 조사해 보니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는 거다.”
“그래서요? 윌리엄을 어떻게 하겠답니까?”
“기사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 교수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말도 안 돼. 거짓 증언으로 한 사람의 기사를 죽이겠다는 겁니까? 그게 황제를 모시는 명예로운 기사들이 할 짓입니까?”
순간 기사단장이 탁자를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꽝!
“벤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 상대는 감찰부의 특무대다. 그들에게 서임받은 기사 한둘 죽이는 일이 어려울 것 같으냐?”
“…….”
벤젤은 부들부들 떨었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중앙의 대귀족만 해도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감찰부 특무대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없는 죄도 만들어서 죽일 수 있는데, 이번의 경우는 증인까지 확보한 상태.
윌리엄의 운명은 특무대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절망에 빠진 벤젤을 응시하던 기사단장이 문득 물었다.
“윌리엄과 어떤 관계냐?”
“기사 아카데미 일 년 선배예요.”
“단지 그것뿐이냐?”
“단지 그것뿐이냐고요? 아니요. 그는 아주 정의로운 기사였어요.”
카밀로 쿠스만 기사단장은 둘 사이가 남녀 관계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만에 하나 그랬다면 정말 비극적으로 끝났을 테니까.
“윌리엄을 살릴 방도가 하나 있다.”
“그게 뭔가요?”
“네가 후작 각하의 연인이 되면 된다. 그렇다면 윌리엄의 하극상도 용서받을 수 있다. 윌리엄이 후작 각하의 명예를 지켜 주려고 나선 것이 되니까. 그때는 남작이 아니라 자작, 백작에게 칼을 뽑아도 용서가 된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
뜻밖의 말에 벤젤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만에 벤젤이 입을 열었다.
“연인인 척하라는 건가요? 진짜 연인이 되어야 한다는 건가요?”
“그야 당연히 진짜지. 크나우프 대공가의 여자가 될 수 있는 기회다. 그 자리를 노리는 귀족가가 한둘인 줄 아느냐? 너를 위해서라도…….”
“지금 저에게 후작이 거쳐 간 많은 여자들 중에 하나가 되라는 말씀이세요?”
“후작님은 자신이 취한 여자를 그냥 버리지 않으신다. 그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하시지. 돈이든 작위든 상대가 원하는 것으로. 후작님과 관계된 여자들은 사교가에서도 주목을 받는다. 너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자리를 마다할 셈이냐?”
“돈과 작위에 몸을 팔라고요? 그게 창부와 뭐가 다른가요? 지금 저에게 창부가 되라는 말씀이세요? 기사단장님?”
흠칫했던 기사단장은 숨을 길게 내쉬며 달아오른 열기를 가라앉혔다.
“윌리엄은 너를 위해 나섰다가 체포되어 교수형을 기다리고 있다. 그와 너 자신을 위해 후작의 연인이 되어 줄 수는 없느냐?”
“없어요. 윌리엄을 위해 창부가 된다면, 윌리엄도 수치스러워할 거예요.”
“너는…… 꽤나 이기적인 사람이구나.”
“창부가 되지 않겠다는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하시다니……. 부끄럽지 않으세요? 누가 이기적인지 제가 말해야 하나요?”
기사단장은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다시 한번 설득에 나섰다.
“크나우프 대공가는 제국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황제 폐하를 만날 때 무장을 해제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가문이지. 한 사람의 여자로서 크나우프 대공가 씨를 받는다는 것은 영광이다. 네가 창부라고 말하는 그 자리를 얼마나 많은 귀족가 영애들이 노리는지 아느냐?”
그건 사실이었다.
크나우프 대공가의 ‘비전’과 혈통으로 이어지는 ‘재능’을 얻기 위해 제국의 귀족들은 후작에게 자신의 딸들을 바치려 했다.
“저를 단장님과 같은 귀족들로 생각하지 마세요. 단장님은 더 높은 작위를 위해서 부인을 버릴 수 있나요?”
“닥쳐라! 감히 누구 앞이라고 그따위 망발을 하는 것이냐! 마지막으로 묻겠다. 후작 각하의 구애를 받아들이겠느냐? 아니면 이대로 윌리엄이 죽게 내버려 둘 것이냐? 만약 네가 후작 각하의 구애를 받아들인다면, 너를 내 딸로 입적시켜 주겠다. 어떻게 할 테냐?”
기사단장은 이번에야말로 벤젤이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벤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거절합니다.”
“벤젤! 후회할 짓 하지 마라!”
“단장님은 제 어머니를 버린 걸 후회하시나요?”
“후회하지 않는다. 네 어머니와 나는 살아가는 세상이 다르다.”
“저도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살아가는 세상도 단장님과 다르거든요.”
“뭐가 다르다는 거냐? 작위를 받으면 너도 귀족이 될 텐데?”
“저는 소신대로 살지만, 단장님은 오락가락하시잖아요.”
의미심장한 비난에 카밀로 쿠스만 자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아! 벤젤. 너는 대귀족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른다. 그런 식으로 네가 끝까지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결국 윌리엄이 너를 대신해 죽게 될 게다. 너는 정말 윌리엄이 교수형 당하기를 바라느냐?”
“말씀드렸잖아요. 누구를 위해서라도 제가 창부가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설사 단장님의 목숨이 걸려 있다 해도 제 결심은 변하지 않아요.”
“후작 각하의 여자를 창부라 부르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게다.”
“사랑 없이 대가를 바라고 몸을 주면 그게 창부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카밀로 쿠스만 자작이 손을 휘저었다.
“가라.”
벤젤은 기사단장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돌아서 나갔다.
집무실 밖으로 나간 벤젤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말은 매몰차게 했지만 마음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틀린 건 자신이 아니라 기사단장이었다.
윌리엄을 구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후작의 여자가 되라니?
명예로운 기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이 악물고 왔는데 고작 창부들이나 할 법한 짓을 권유받다니!
‘그것도 기사단장이자 아버지인 사람에게서…….’
기사가 되기 위해 지금까지 했던 자신의 모든 노력이 부정당한 느낌이다.
***
마의 해역.
하데스 항이 윌리엄의 체포로 시끌시끌할 때 마력범선은 조용히 마의 해역을 떠돌고 있었다.
벌써 세 번째 항해라 선원들이나 엘리오 일행 모두 차분했다.
특히 엘리오는 이전과 달리 좋은 날씨에도 안달복달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갑판을 오가는 선원들 표정도 부드러웠다.
마음을 비웠을 때 바라던 일이 생기곤 한다.
탑캐슬에 오른 라이트는 식곤증을 견디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지 않아도 졸기로 작정한 라이트인지라 잠을 깨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달게 잠들었던 라이트는 묘한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누군가 지켜보는 섬뜩한 느낌에 눈을 떴는데 아무도 없었다.
‘아! 씨발! 깜짝이야!’
아래를 살피니 북부 귀족들은 여전히 차양막 아래에 있는 것 같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의 눈에 뭔가 들어왔다.
수평선 위에 검은 점이 찍혀 있었다.
경험이 풍부한 그는 검은 점이 먹구름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토록 기다리던 기상이변의 전조였다.
하늘이 도왔다.
5분만 더 졸았으면 다른 선원들이 먼저 알아차렸을 터였다.
그는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3시 방향에 먹구름입니다!”
느릿느릿 걸어다니던 선원들이 ‘먹구름이다!’를 외치며 뛰어다녔다.
그들은 강풍에 대비해 돛줄을 풀고, 바다로 떨어질 만한 물건들을 단단해 맸다.
무덤덤하던 엘리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야아! 이게 얼마 만의 먹구름이야?”
“자작님, 얼마 만이 아니라 우리가 바다에 나오고 처음입니다.”
긴장한 얼굴로 먹구름을 보던 파비안이 입바른 소리를 했다.
“아, 그래? 왜 난 전에 본 것 같지?”
“전에 본 건 안개고요.”
알트헬름 선장은 북부 귀족들을 위해 뱃머리를 먹구름 쪽으로 돌렸다.
항해를 하다 보면 종종 먹구름과 만나게 된다.
먹구름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닌지라 ―항로가 일치할 때는― 지금처럼 피하지 않고 뛰어들 때도 없지 않았다.
“딜로스, 규모가 좀 어때 보이나?”
“큽니다. 내일 아침에나 벗어나겠는데요?”
“필수 인원만 빼고 모두 안으로 들어가라고 해. 괜히 바다에 빠지면 시체도 못 건지니까.”
“알겠습니다. 북부 귀족들은 어떻게 합니까?”
“내버려 둬. 알아서들 하겠지.”
딜로스는 지체 없이 조타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 갑판에 있던 선원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엘리오 일행만 남았다.
파비안이 차양막을 걷어 내자 엘리오가 말했다.
“파비안, 너는 백작님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있어.”
“예.”
파비안은 남아 있겠다고 버티지 않았다.
그건 소드마스터인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먹구름에 다가갈수록 바람이 세졌고, 그런 만큼 파도가 거칠어졌다.
평생을 육지에서 살아온 오마르 백작은 미친 듯 날뛰는 바다가 두려웠다.
큰 파도로 갑판이 기우뚱거리는 탓에 파비안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서로를 붙잡고 위태롭게 걸음을 떼어야 했다.
엘리오는 돛대 옆으로 이동해 한 손으로 기둥을 잡고 뚫어져라 바다를 노려보았다.
널뛰는 이 바다 어딘가에 천공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피가 끓었다.
마침내 마력범선이 먹구름 안으로 들어갔다.
쏴아아아―!
휘이이잉―!
철썩―! 철썩―!
비와 바람과 파도가 쉬지 않고 마력범선을 때려 댔다.
마력범선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시커먼 바다를 나뭇잎처럼 떠돌았다.
알트헬름 선장은 두 손으로 방향타를 움켜잡고 파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금은 천공성이건 뭐건 살아남는 데 집중해야 했다.
알트헬름은 때로는 파도에 순응하고, 때로는 파도에 맞섰다.
파도가 어찌나 높았던지 갑판 위를 쉬지 않고 넘나들었다.
보다 못한 그는 조타수 딜로스에게 소리쳤다.
“돛 올릴 일 없겠다! 선원들 전부 안으로 들여보내!”
“예!”
선장의 명령에 딜로스는 다시 밖으로 튀어 나갔다.
돛줄을 붙잡고 버티던 선원들이 한 사람씩 안으로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딜로스가 막 몸을 돌릴 때, 갑자기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순간 딜로스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가 바다에 처박혔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날아가는 딜로스를 본 선원들의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잔잔한 바다라면 모를까?
폭풍우 속에서 바다에 빠졌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때다.
갑판에 남아 있던 엘리오가 밧줄 꾸러미를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곧이어 허공으로 도약한 그는 들고 있던 밧줄을 던졌다.
휘리릭―.
일직선으로 날아간 밧줄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딜로스를 휘감았다.
엘리오가 손을 까딱이자 딜로스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렇게 딜로스를 낚아 올린 엘리오는 허공을 밟아 갑판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