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15
1215회. 세 가지 재능의 검(Three Talented Swords)
엘리오는 싱크레어 지터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일 층에서 쉬고 있던 가드들은 발소리가 나자 일제히 계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젊은 모험가와 눈이 마주치자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급히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에 운송 책임자 레온 토로스가 가드들에게 ‘모험가들의 근처에 가지 말고, 쳐다보지도 말라’고 한 때문이다.
엘리오가 안드리아 지터의 어린 딸을 뒤에 달고 태번(tavern) 출입문까지 걸어갔지만 가드들은 그를 불러 세우지 않았다.
똑똑한 싱크레어 지터는 자신의 행선지를 가드들에게 알리기 위해 말을 걸었다.
“모험가 아저씨, 어디로 가는 거예요?”
“밖으로.”
“그러니까 바깥 어디요?”
“나도 몰라. 이 지역은 처음이라.”
“갈 곳도 정하지 않고 나가시려는 거예요? 이렇게 눈이 펑펑 내리는데?”
“어린애들은 눈을 좋아하던데 너는 싫은가 보구나.”
“싫어하지는 않아요.”
“상관없다. 따라오거라.”
엘리오가 문을 열자 싱크레어 지터는 가드들을 힐끔 돌아보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싱크레어 지터는 한숨을 푹 내쉬고 젊은 모험가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기다렸다는 듯 눈발이 몰아쳐 왔다.
움찔하고 뒷걸음질 치려던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눈만 끔뻑였다.
‘눈이 안 내리네?’
아니 다시 보니 눈은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다만 모험가와 자신의 주변으로만 오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새 불안은 사라지고 호기심이 머리를 지배했다.
싱크레어 지터는 씩씩하게 걸어가며 눈으로 손을 뻗어 보았다.
역시나!
활짝 펼친 손바닥 위로 단 하나의 눈도 내려앉지 않았다.
그녀는 토끼처럼 눈을 동그렇게 뜨고 엘리오를 돌아보았다.
“이거 모험가 아저씨가 한 거예요?”
“어.”
“마법도 배우셨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이건 마법은 아니다.”
“마법이 아니면 어떻게 한 거예요?”
“영기로 일종의 보호막을 만든 거라고나 할까?”
“마나가 아니라 영기요? 영기로 그런 것도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으니 하고 있겠지.”
“모험가 아저씨는…….”
아저씨 소리가 듣기 싫어던 엘리오가 꼬마의 말을 끊었다.
“모험가님이라고 해라.”
“아, 네. 모험가님은 영기를 수련하셨어요?”
“맞다.”
“왜요? 마나가 훨씬 좋은 거라고 들었는데.”
신기한 마음에 들뜬 싱크레어 지터는 어린아이답게 재잘재잘 떠들었다.
“나는 야인 부족 출신이다. 야인 부족은 모두 영기를 수련하지.”
“아! 그러시구나.”
싱크레어 지터가 동정 어린 눈으로 모험가를 보았다.
어리지만 그녀도 야인 부족이 어떤 대우를 받고 사는지 아는 까닭이다.
“왜? 야인 부족 출신이라니까 배우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어?”
“아, 아니에요. 그럼 저에게 야인 부족의 검술을 가르쳐 주실 건가요?”
“비슷하다.”
“와아! 야인 부족 검술이라니 신기하다.”
엘리오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반응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싱크레어 지터는 엘리오의 주변을 폴짝폴짝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오는 묵묵히 정면으로 걸어갔다.
한동안 뛰어다니던 싱크레어 지터가 지치는지 엘리오에게 물었다.
“어디까지 가시게요?”
“사람들이 없는 곳.”
“그런 데가 있어요?”
“거의 다 왔다.”
잠시 후 엘리오는 마을 외곽의 공터에 멈춰 섰다.
가뜩이나 외진 곳에 눈까지 내리니 깊은 산속에라도 들어온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싱크레어 지터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꼭 이런 데까지 와서 가르쳐야 돼요?”
“내 고향에서는 다른 사람이 검술 수련을 보지 못하게 했다. 몰래 훔쳐보면 죽이기까지 할 정도로 엄격하게 지켰다.”
“보기만 해도 죽였다고요? 왜요?”
“그야 검술을 보물로 여겼기 때문이지. 크나우프 대공가와 같은 검술 명가도 그럴 게다.”
곧이어 엘리오는 나뭇가지를 꺾어 아이의 체구에 맞는 목검을 만들었다.
그리고 삐뚤어진 데가 없는지 확인한 후 아이에게 목검을 건넸다.
싱크레어 지터는 목검을 들고 멀뚱멀뚱 모험가를 보았다.
“내가 너에게 가르칠 검술은 ‘세 가지 재능의 검(Three Talented Swords)’이다.”
엘리오는 멈칫했다.
삼재검을 말했더니 ‘세 가지 재능의 검’이라고 통역이 되어 나왔다.
어감이 조금 이상하지만 딱히 수정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삼재검이라고 해 봐야 내리찍고, 옆으로 베고, 찌르는 동작이 전부다.
하지만 무초식의 경지에 들면 그 세 가지 동작만으로 살아가니 허투루 여길 것은 아니다.
반신의 경지인 엘리오가 볼 때 삼재검은 검술의 시작과 끝이었다.
그는 롱소드를 뽑아 삼재검의 세 가지 초식을 펼쳐 보였다.
“산봉우리를 누르듯 내려찍는 게 그 첫 번째다.”
그가 롱소드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자 눈으로 가득하던 허공이 반으로 갈라졌다.
쓰아아아―.
비단을 자른 것처럼 갈라졌던 허공의 균열은 이내 메워졌다.
“…….”
싱크레어 지터의 입이 쩍 벌어졌다.
가드들이 야수와 싸우는 걸 몇 번 봤지만 저런 건 맹세코 처음이었다.
멍하니 서 있는 아이에게 엘리오가 한마디 던졌다.
“뭐 해? 본 것처럼 휘두르지 않고.”
“예? 예…….”
싱크레어 지터는 모험가의 동작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스무 번쯤 목검을 휘두르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이 정도면 됐으려나 싶어 목검을 내리자마자 모험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흉내만 내지 말고, 목검에 마음을 담아야지. 그런 흉내는 원숭이도 낼 수 있다.”
원숭이라니?
울컥한 싱크레어 지터는 이를 악물고 다시 목검을 들어 올렸다.
오후 5시 즈음.
엘리오와 싱크레어 지터가 태번으로 돌아왔다.
가드들은 ―익사 직전에 건져 올린 것 같은 몰골의― 싱크레어 지터를 보고는 흠칫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다가가 ‘괜찮으냐?’고 묻지 않았다.
가드들은 모험가와 싱크레어 지터를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싱크레어 지터를 숙소로 올려 보낸 엘리오는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잠시 후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점원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다가왔다.
“뭐 드시겠어요?”
“맥주와 적당한 안주 줘요.”
“손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고요, 원하는 메뉴를 말씀해 주세요.”
어딘지 날카로운 여점원의 응대에 엘리오는 고개를 슬쩍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지만 여점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백기를 든 건 배가 출출했던 엘리오다.
“안주로 뭐가 잘 나가요?”
“오리구이나 말린 육포요.”
“오리구이로 줘요.”
“맥주 20코퍼, 오리구이 1실버 20코퍼, 도합 1실버 40코퍼예요.”
여점원의 말에 엘리오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맥주는 제도와 같았지만 안주는 20코퍼가 더 비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한마디 하고 말았다.
“안주가 제도보다 비싸네요?”
“제도에 가서 드셔도 돼요.”
여점원의 말에 엘리오는 한순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강호는 물론 구주, 이세계 통틀어 이렇게 대책 없이 몰리기도 처음이다.
결국 엘리오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조용히 돈을 꺼내 여점원에게 내밀었다.
여점원은 돈을 받자마자 찬바람 나게 돌아서 멀어져 갔다.
머쓱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던 엘리오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점심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도무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눈발은 바쁘게 쏟아지고 있지만 세상은 정지해 있다.
저런 것도 정중동(靜中動)이라 말할 수 있을까?
1층에서 엘리오가 창밖을 보며 한가하게 망상에 잠겨 있을 때, 2층의 안드리아 지터 부부는 딸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샤인 코울스로는 남편이 커다란 통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우자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스스로 팔 하나 들 힘 없어 축 늘어진― 딸을 조심조심 씻겼다.
“뭘 했길래 이렇게 온몸에 힘이 없어? 검술 연습하고 온 거 맞아?”
“네.”
“무슨 검술을 사람 몸이 이렇게 될 때까지 한대?”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코울스로 남작가의 남자들도 검술을 연습했지만 이렇게까지는 아니다.
하물며 딸은 이제 열두 살.
열두 살짜리 어린애를 팔도 들어 올리지 못할 정도로 혹사시키다니?
사람이 맞나 싶다.
“내가 한다고 그랬어요.”
“네가? 왜?”
“원숭이보다는 잘하고 싶어서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원숭이도 같이 검술을 배웠어?”
“아뇨. 모험가님이…….”
싱크레어 지터는 모험가가 했던 말을 엄마에게 들려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발끈한 샤인 코울스로가 말했다.
“더는 배우지 마. 뜨내기 모험가 주제에 누구더러 원숭이래?”
“원숭이라고 한 게 아니라…….”
“그게 그거지. 이제 그만 배워. 엄마가 아카데미 보내 줄게.”
“아니에요. 그래도 모험가님에게 배우고 싶어요. 배우게 해 주세요.”
싱크레어 지터는 자신도 모험가처럼 하늘을 자르고 싶었다.
샤인 코울스로가 애원하는 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싱크레어, 오늘 이 꼴이 되고도 또 그 사람에게 배우고 싶다는 거니?”
“네.”
“그 모험가가 뭘 가르쳤는데?”
“이렇게 휘두르는 거요.”
싱크레어 지터가 허공에 팔을 흔들다가 ‘아야야!’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오후 내내 그거 하나만 했어?”
“네.”
“하아! 그래, 네가 좋다면 배워야지. 다른 이상한 소리는 하지 않든?”
“조금 했어요.”
“뭐어? 내 당장 이 인간을!”
딸의 말을 오해한 샤인 코울스로가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그러자 싱크레어 지터가 황급히 설명을 이어 갔다.
“모험가님이 야인 부족이래요. 제가 배우는 게 야인 부족의 검술이라고 했어요.”
“이상한 소리가 그거야?”
“네.”
굳어 있던 샤인 코울스로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그녀는 모험가가 음탕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야인 부족이 아니라 수인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다른 말은 안 했어?”
“야인 부족은 다른 사람들이 검술 훈련을 훔쳐보면 죽인다고 했어요. 그건 크나우프 대공가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라고.”
“흥! 어린애 앞이라고 허풍을 있는 대로 다 떨었군. 어디 야인 부족을 크나우프 대공가에 비교를 해? 크나우프 대공가의 검술을 훔쳐보면 죽여도 할 말 없지만, 그깟 야인 부족의 검술을 누가 탐낸다고?”
“정말 검술을 훔쳐보면 죽여요?”
“그 모험가의 말처럼 크나우프 대공가쯤 되는 검술 명가라면 죽일 수도 있지.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별로 신경 안 써. 왜? 검술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면 안 된대?”
“네, 보물이랬어요.”
“풋! 네 외할아버지가 마당에서 검술을 연습할 때, 마을 사람들이 멀리서 구경하고 그랬거든? 외할아버지는 누가 보든 말든 신경도 안 썼어.”
“야인 부족은 다른가 봐요. 훔쳐보면 진짜 죽인대요.”
“쯧! 어린애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네. 그건 그만큼 검술을 진지한 자세로 대하라는 뜻에서 한 소리일 거야. 아무리 야인 부족이라도 누가 훔쳐 본다고 사람을 막 죽이지는 않아.”
“아, 그럼 다행이고요. 그래도 저는 남들 앞에서 검술 훈련하지 않을 거예요.”
“모험가님이 그러래?”
“네.”
샤인 코울스로는 기가 막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딸이 혼자 검술을 수련하게 내버려 둘 생각도 없었다.
“이건 어때? 모험가님에게 배운 건 남들이 안 보는 데서 하고, 아카데미에서 배운 건 외할아버지처럼 아무 데서나 수련하는 거야.”
“그럼 되겠다. 그렇게 할게요.”
딸의 눈치를 살피던 샤인 코울스로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주하는 길에 이상한 모험가를 하나 만나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