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26
1226회. 마나석 감정사의 딸이라고 하지 않았나?
불안한 예감은 늘 들어맞는다.
치안대를 지나칠 것처럼 감속도 하지 않고 날아오던 비공정이 돌연 수직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급강하에 글레디스 크로노어 남작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마치 추락이라도 하는 것처럼 떨어지던 비공정은 지면에 닿기 직전 정지하더니, 이내 깃털처럼 치안대 앞마당에 내려앉았다.
말로만 듣던 최상급의 전투 기동이었다.
풍압으로 일어난 흙먼지가 사방으로 날리지만 않았다면 본래 그 자리에 정박해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헉!’
뒤늦게 비공정 옆면에 그려진 두 자루 검이 교차하는 문양을 발견한 글레디스 크로노어 남작은 미친 듯 치안대 안으로 달려갔다.
“크, 크나우프 대공가의 비공정이 착륙했습니다!”
순간 모여 있던 대귀족들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치안대 밖으로 이동했다.
글레디스 크로노어 남작은 대귀족들의 뒤에 조심스럽게 따라붙었다.
백작이라고 다 같은 백작이 아니다.
세습으로 작위를 받은 백작 중에서도 소드마스터는 같은 백작들 위에 군림했다.
동등한 작위를 가진 귀족들끼리는 설사 주먹다짐을 해도 사소한 다툼으로 치부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백작들 간에도 보이지 않는 서열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오데사에서 피닉스 기사단 단장인 베르트 폰스 백작이 같은 백작인 엘리오에게 ‘각하’라고 부르며 굽실댄 것도 그래서다.
크나우프 대공가의 기사단장 데이먼 아이작 백작은 소드마스터다.
그에 반해 파티마 공국의 대귀족들은 모두 소드 익스퍼트.
데이먼 아이작 백작이 비공정에서 내리자 궁정백, 대법관, 행정 장관이 그의 앞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아이작 백작 각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궁정백 발터 골드만 백작입니다.”
“각하! 황태자 전하의 취임식에서 뵈었는데 기억하십니까? 대법관 스탠 다이어 백작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행정 장관 호드 캄프스 백작입니다.”
데이먼 아이작 백작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대귀족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곳의 실무 책임자가 누구요?”
그러자 대귀족들은 뒷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글레디스 크로노어에게 눈짓을 보냈다.
얼떨결에 글레디스 크로노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제가 이그나스 동부 주거 지구 치안대 대장 글레디스…….”
“인사는 됐고, 왕궁에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제자가 납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왔다. 현재의 상황을 설명해라.”
“아, 예. 그러니까 오늘 오후 6시 30분경 동부 주거 지구의 음식점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 중이던 싱크레어 지터가 정체불명의 납치범들에게 납치당했습니다. 그 직후 피해자 부모가 치안대에 신고를 했고, 현재 북부와 남부를 포함한 세 개 치안대와 왕궁 기사단에서 범인들을 쫓고 있습니다.”
“범인들에 대해 알려진 게 있나?”
“아직은 없습니다만, 안드리아 지터 가족이 알고리움에서도 납치를 당한 바 있기에 그것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납치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이유는 뭔가?”
“피해자 부친인 안드리아 지터가 코랄 상회 소속의 마나석 감정사인데, 그를 협박하거나 회유하기 위한 범죄 조직의 수법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그나스 동부의 범죄 조직의 짓일 가능성이 높겠군.”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면 치안대는 범죄 조직을 조사하고 있는 건가?”
“예, 세 개 치안대는 동부의 삼대 범죄 조직으로 출동했고, 기사단은 식당 주변을 탐문하고 있습니다.”
“동부 주거 지구에서 외부로 통하는 길은 다 차단했겠지?”
“예? 거기 까지는 아직…….”
글레디스 크로노어 남작이 말끝을 흐렸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제자라고는 하지만, 고작 마나석 감정사의 딸이 납치된 일로 그렇게까지 일을 벌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 동원령이 내려진 뒤로 치안대에 그럴 인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직이라고?”
데이먼 아이작 백작이 황당한 눈으로 치안대장을 보았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제자가 납치당했는데 아직 길도 막지 않았단다.
그는 즉시 행정 장관 호드 캄프스 백작에게 따지듯 소리쳤다.
“행정 장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제자가 납치됐는데 범인들이 돌아다니게 두었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요! 범죄 조직은 대가리가 비어서 치안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소? 전시라고 이렇게 공국을 개판으로 운영해도 되냐 말이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제자가 다치기라도 하면, 당신들이 무사할 것 같소?”
데이먼 아이작 백작의 호통에 파티마 공국 대귀족들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상황 파악에 급급했을 뿐 실제로 뭘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치안대장은 크나우프 대공가의 기사단장에게 저 무서운 대귀족들이 찍소리도 못 하는 걸 보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대단한 사람인가 보구나. 아니 그런데, 크나우프 대공가는 이 실종 사건에 왜 끼어들었지?’
그녀가 잠시 딴생각을 할 때다.
돌연 행정 장관 호드 캄프스 백작이 치안대장에게 다가가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소리와 함께 치안대장의 머리가 한쪽으로 홱 돌아갔다.
“너 이년! 아직 도로도 봉쇄하지 않고 지금까지 뭘 한 것이냐!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어떤 분인지 몰라서 그러느냐! 아니면 알고도 나를 물 먹이려고 고의로 그런 것이냐! 당장 남은 병력을 보내 동부 주거 지구를 봉쇄해!”
글레디스 크로노어 남작이 자세를 바로 하고 답했다.
“각하, 저도 그러고 싶은데 치안대에 남은 인원이 없습니다.”
“예비 인력을 다 끌어모으란 말이다!”
“전쟁 동원령 이후 치안대에 예비 인력은 없습니다.”
“이게 시키면 할 일이지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꾸야! 죽고 싶나! 예비 인력이 없으면 다른 치안대를 동원해도 되잖나! 대가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
“동부 지구, 북부 지구, 남부 지구 치안대는 범죄 조직의 근거지로 급파되었습니다.”
“그럼 서부 지구 치안대를 보내면 되잖아!”
“서부 지구는 귀족가 밀집 지역이라 치안대도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각하의 명령서가 있어야 움직일 겁니다.”
“너 이 씨……. 따라와!”
이를 갈던 행정 장관은 명령서 작성을 위해 부랴부랴 치안대로 뛰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데이먼 아이작 백작이 멈칫했다.
멀리서 웬 기사들이 도끼눈을 하고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나우프 대공가의 기사단장과 눈이 마주친 파티마 공국 기사단장 스커드 헌터 백작은 급히 그에게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소개했다.
“백작 각하, 이분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 각하십니다.”
크나우프 대공가 기사단장 데이먼 아이작 백작이 먼저 머리를 조아렸다.
“라고아 백작 각하. 크나우프 대공가의 기사단장 데이먼 아이작 백작입니다. 연락을 받자마자 비공정으로 날아왔습니다. 그런데 싱크레어 지터 양이 납치를 당했다면서요?”
“예, 식당에 들렀다가 오는 길입니다. 그사이 혹시 다른 정보가 있을까 싶어서.”
“이그나스의 세 개 치안대가 동부 지구의 삼대 범죄 집단을 조사하러 갔고, 공국 기사단은 납치 현장을 탐문 중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행정 장관이 동부 지구의 길목을 봉쇄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데이먼 아이작 백작은 마치 자신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참모인 것처럼, 그간의 경과를 설명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파티마 공국의 궁정백과 대법관이 쭈뼛쭈뼛 앞으로 나섰다.
“궁정백 발터 골드만 백작입니다. 라고아 백작 각하를 뵐 면목이 없게 됐습니다. 최대한 빨리 싱크레어 양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대법관 스탠 다이어 백작입니다. 범인들은 물론 납치와 관계된 자들을 극형으로 다스리겠습니다.”
묵묵히 듣던 엘리오가 데이먼 아이작 백작에게 물었다.
“치안대 담당자는 어디 있습니까?”
“치안대장은 행정 장관과 함께 잠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곧 나올……. 아, 저기 나오고 있군요. 치안대장! 치안대장! 이리 와 봐라!”
행정 장관의 명령서를 들고 나오던 글레디스 크로노어 남작이 데이먼 아이작 백작의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멈춰 서자 데이먼 아이작 백작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 각하시다. 묻는 말에 빠짐없이 답하도록.”
“예! 엘리오 라…….”
“됐고. 치안대가 조사한다는 동부의 삼대 범죄 집단으로 안내해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동부 주거 지구의 도로 봉쇄를 하라’는 행정 장관님의 명령서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와도 되겠습니까?”
행정 장관에게 한차례 얻어맞은 치안대장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그녀 역시 지금은 도로 봉쇄가 우선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두 발 달린 짐승이 도로가 막혔다고 안 움직이겠습니까? 마음은 고맙지만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저어, 각하. 지금 상황에서는 도로 봉쇄가 최선입니다. 안에 다른 근무자가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그에게 맡기고 오겠습니다.”
하지만 엘리오는 잠시도 지체할 마음이 없었다.
지금은 촌각을 다투는 상황인지라 설명에 쓸 시간도 아까웠다.
“명령서를 줘 봐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말에 치안대장은 들고 있던 봉투를 건넸다.
엘리오가 봉투를 치안대장의 뒤에 엉거주춤 서 있는 중년인에게 던졌다.
이제나저제나 인사할 기회만 엿보던 행정 장관이 얼떨결에 봉투를 받았다.
“어이! 아저씨, 명령서는 당신이 전해요. 치안대장과 나는 가 볼 데가 있으니까. 이제 삼대 범죄 집단으로 가 봅시다. 앞장서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말에 치안대장은 행정 장관에게 꾸벅 머리를 숙인 후 상업 지구로 걸음을 옮겼다.
***
늦은 밤.
동부 주거 지구 외곽 벌목장.
허름한 창고.
텁석부리 중년인이 거꾸로 들고 마시던 술병을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이거 괜히 똥 밟은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 젠장!”
맞은편에 앉아 있던 냉막한 인상의 사내가 그를 비웃었다.
“언제는 느낌이 좋았고? 배부른 소리 하는 거 보니 일이 쉬웠나 보네. 하기야 한 대 치니까 떨어져 나가더만. 좀 악착같이 덤비고 그래야 재밌는데……. 친부모가 아니었나?”
그러자 인자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빈 술병을 툭 던지며 말했다.
“이분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 각하시다. 묻는 말에 빠짐없이 답하도록.”
“예! 엘리오 라…….”
“됐고. 치안대가 조사한다는 동부의 삼대 범죄 집단으로 안내해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동부 주거 지구의 도로 봉쇄를 하라’는 행정 장관님의 명령서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와도 되겠습니까?”
행정 장관에게 한차례 얻어맞은 치안대장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그녀 역시 지금은 도로 봉쇄가 우선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두 발 달린 짐승이 도로가 막혔다고 안 움직이겠습니까? 마음은 고맙지만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저어, 각하. 지금 상황에서는 도로 봉쇄가 최선입니다. 안에 다른 근무자가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그에게 맡기고 오겠습니다.”
하지만 엘리오는 잠시도 지체할 마음이 없었다.
지금은 촌각을 다투는 상황인지라 설명에 쓸 시간도 아까웠다.
“명령서를 줘 봐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말에 치안대장은 들고 있던 봉투를 건넸다.
엘리오가 봉투를 치안대장의 뒤에 엉거주춤 서 있는 중년인에게 던졌다.
이제나저제나 인사할 기회만 엿보던 행정 장관이 얼떨결에 봉투를 받았다.
“어이! 아저씨, 명령서는 당신이 전해요. 치안대장과 나는 가 볼 데가 있으니까. 이제 삼대 범죄 집단으로 가 봅시다. 앞장서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말에 치안대장은 행정 장관에게 꾸벅 머리를 숙인 후 상업 지구로 걸음을 옮겼다.
***
늦은 밤.
동부 주거 지구 외곽 벌목장.
허름한 창고.
텁석부리 중년인이 거꾸로 들고 마시던 술병을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이거 괜히 똥 밟은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 젠장!”
맞은편에 앉아 있던 냉막한 인상의 사내가 그를 비웃었다.
“언제는 느낌이 좋았고? 배부른 소리 하는 거 보니 일이 쉬웠나 보네. 하기야 한 대 치니까 떨어져 나가더만. 좀 악착같이 덤비고 그래야 재밌는데……. 친부모가 아니었나?”
그러자 인자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빈 술병을 툭 던지며 말했다.
“무식한 로이블, 네 주먹을 보고 그런 소리를 해야지. 마나석 감정사 대가리가 터진 줄 알고, 내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
로이블이라 불린 냉막한 인상의 사내가 차갑게 말을 받았다.
“왜? 터졌으면 먹게?”
“내가 아무거나 먹는 줄 알아? 어른 살은 질겨서 사양이야.”
“자랑이다. 미친놈.”
로이블이 역겨운 눈으로 인자한 인상의 사내, 스테프너를 노려보았다.
생김새와 달리 스테프너도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눈싸움을 하자 텁석부리 사내, 액티브가 근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어이, 둘 다 그쯤 하라고. 그보다 계집애가 하는 말 들었어? 무슨 백작의 제자라고 하던데. 두목이 마나석 감정사의 딸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말에 스테프너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둘 중에 하나가 거짓말을 한 거겠지. 계집애든 두목이든. 백작의 제자면 또 어때? 뒤탈이 날 것 같으면 내가 먹을게. 그러면 누가 알겠어? 감쪽같잖아. 어때?”
식인을 즐기는 그의 말에 액티브와 로이블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정말 그래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