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57
1257회. 그러니까 혼자 남을 내 걱정은 하지 마
고개를 떨군 채 울고 있는 연적하의 머리로 손을 뻗던 남궁연이 멈칫했다.
함께 생활할 때는 동생 같았지만 지금은 자식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을 그와 함께 보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왔는데, 막상 젊은 그를 보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비록 연적하가 백년해로를 약속한 남편이지만, 딸보다도 어린 그를 이전처럼 대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석경장에서 주변 사람들의 생멸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심통과 당운망이 노환으로 사망하고, 월아와 금아가 혼례를 치러 독립해 나가고, 뒤늦게 석경장에 입문한 풍연초의 아들은 결국 총관이 되었다.
육체는 ―영기지체를 거친 탓에― 노화가 멈췄지만, 마음은 또 다르다. 그녀는 스스로를 환갑을 넘긴 노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내뻗으려던 손을 살며시 거두어들였다.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던 연적하가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심 노인과 당 노인은요?”
“네가 떠나고 칠 년 후에 두 분 다 노환으로 돌아가셨어. 심 노인이 죽고, 이튿날 당 노인이.”
“오늘내일하더니 칠 년이나 더 살았군요.”
“그래도 월아와 금아가 혼인하는 걸 보고 돌아가셨으니까 다행이지.”
“월아와 금아는 잘 살아요?”
“그럼. 명절마다 가족들을 데리고 인사를 왔어. 월아가 아들을, 금아가 딸을 낳았지.”
“다른 제 의형제들은 어떻게 됐어요?”
“풍 대협의 아들이 석경장에 입문했다가 나중에 총관이 됐고, 합비에 석경장이 가지고 있던 객점을 풍 대협과 탁 대협이 인수를 했어. 너와 심 노인이 객점 운영하는 게 부러웠었대.”
“그냥 드리지 그러셨어요.”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두 분이 완강하게 거절해서, 반값에 넘겼어.”
“채연이와 소백이는요?”
“상단에서 은퇴한 뒤에 그동안 모은 돈으로 노후를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네요. 오봉산채의 다른 형님들은요?”
“네가 떠나고 십칠 년 뒤에 하남성에서 대대적인 도적 토벌을 벌였어. 오봉산채도 그 대상 중에 하나였는데, 토벌군과 싸우다가 화공에 당해 모두…….”
“……살아남은 사람이 없어요?”
“바람이 세게 불어서 토벌군도 피해를 입을 정도였다고 들었어.”
“…….”
연적하는 산채를 지키고 있던 의형들의 사망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
산적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 대가치고는 너무 컸다.
산적들에게 토벌군과의 싸움은 일상이지만, 의형제들이 죽었다니 착잡했다.
“토벌군이 오봉십걸을 두려워하지 않았나 봐요?”
“십칠 년이나 지났으니까. 네 이름도 잘 모르는데, 오봉십걸이 뭔지 알 리가 있겠니?”
“하아! 세월이 무섭네요.”
연적하는 세월의 무상함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고작 십칠 년 만에 잊혀지다니.
유명교, 마교와 치열하게 싸우던 지난날들이 허망하기만 하다.
멍하니 과거를 회상하던 연적하가 뒤늦게 생각난 듯 물었다.
“참! 월아와 금아가 혼인을 했다고 했죠? 지안이는요? 지안이도 혼기를 넘겼을 텐데, 혼인은 했나요?”
“지안이는 혼인한 지 이 년 만에 남편을 돌림병으로 잃고…… 석경장으로 돌아왔어.”
“아이는요? 우리에게 손주가 있어요?”
“아니.”
남궁연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지안이 다시 석경장으로 돌아온 것도 후손을 남기지 못해서였다.
연적하는 소리 없이 탄식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천하를 구한답시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자신을 봐서라도 좀 잘해 주면 어디 덧나나?
왜 그렇지 않아도 힘든 지안이를 악착같이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씨발! 우리 가족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
이를 악물고 분을 삭이는 연적하에게 남궁연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도 지안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좋다고 했어. 아이가 있었더라면 시댁에서 평생 살아야 했을 텐데, 없어서 다행이라고. 제 딴에는 나를 위로한다고 그런 거겠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영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아. 지안이가 곁에 있어서 나도 좋았거든.”
남궁연이 희미하게 웃었다.
시집을 갔다가 온 뒤로 딸과는 친구처럼 지냈다.
외형으로만 보면 자매라고 해도 될 정도로 둘이 비슷해서 더 그랬다.
“사위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합비에 있는 조양상방 기억하지?”
“네.”
“조현덕이라고 조양상방 조 방주의 셋째 아들이야. 학문에 뜻을 두고 글공부를 하던 문사였어. 시장에서 지안이를 먼발치에서 본 뒤로 삼 년을 따라다녔지. 순수하고 착한 사람인데 몸이 좀 약해서…….”
남궁연이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조현덕은 몸이 허약한 것만 빼면 썩 괜찮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었다니 다행이네요. 살아 있는 동안 지안이 맘고생은 안 시켰을 테니까.”
“그래. 그동안 너는 어떻게 지냈니? 천자마와 금사를 찾았니?”
“네, 천자마는 찾아서 처리했어요.”
연적하는 태양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세계 마법사는 어둠의 에테르가 뇌에 침범하면 자아가 분열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봐도 태양신의 몸 속에 천자마의 인격이 숨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서 걱정이에요.”
연적하가 한쪽에 서 있는 파비안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힐끔 쳐다보았다.
“왜?”
“사실 제가 북부에 있을 때요…….”
연적하는 마족 군주가 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 뒤로 화가 나면 꼭지가 핑 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다 때려죽여야 직성이 풀리더라고요. 그때는 눈빛도 마족처럼 빨갛게 변한대요. 말들은 안 해도 저 사람들도 그걸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강호에 있을 때도 네 기분대로 했잖아.”
남궁연은 짐짓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다.
어둠의 에테르로 태양신의 자아가 분열된 걸 생각하면 사실 심각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혜로운 그녀는 연적하의 불안을 잠재우는 데 주력했다.
의심과 불안 만큼 심력을 소모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때와는 조금 달라요. 강호에 있을 때는 누굴 죽이면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젠 아무 느낌이 없어요. 죽어 마땅한 나쁜 놈이니까 괜찮다는 식이에요.”
“어쩌면 네가 이세계의 사람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몰라.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면 충격이 덜할 수 있어. 구주에 있을 때도 비슷하지 않았니?”
곰곰 생각하던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때의 감정이 잘 떠오르질 않아서…….”
“괜찮아. 잘될 거야. 신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기지 않아.”
“제가 태양신처럼 미치지는 않겠죠?”
“아무렴. 너는 연적하야. 지금까지 네가 해 온 일들을 돌이켜 봐. 어둠의 에테르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너를 어쩌지는 못해.”
“누님은 나를 믿어요?”
“당연하지.”
그제야 굳어 있던 연적하의 표정이 풀어졌다.
자신보다 남궁연을 더 믿는 그에게 그녀의 말은 위로 이상이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에게 누님을 뭐라고 소개해야 돼요? 샤스트라 파라크티? 아니면 내 부인?”
“그 전에 네게 해 줄 말이 있어.”
“뭔데요?”
“너는 내가 어떻게 이세계에 올 수 있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해.”
“구천현녀에게 부탁해서 온 거 아니에요?”
“구천현녀가 나를 닮았다고 한 말 기억나?”
“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어쩌면 나는 구천현녀의 환생일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다른 세계의 내가 득도해서 구천현녀가 됐을 수도 있어. 중요한 건 내가 구천현녀라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남궁연의 걱정과 달리 연적하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도 작용했지만, 솔직히 기이하리만치 똑같이 생긴 구천현녀와 남궁연을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구천현녀가 득도해서 도달한 존재가 샤스트라 파라크티고. 그러니까 나와 구천현녀와 샤스트라 파라크티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거야. 이해했니?”
“누님이 샤스트라 파라크티라고요?”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근원을 파헤치면 같지만 지금의 나는 석경장의 남궁연이니까. 어쨌든 내가 이세계로 올 수 있었던 건, 나와 구천현녀와 샤스트라 파라크티가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이야.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오래된 기억 속에 나라는 존재가 있었거든. 그래서 지금의 내가 이세계에 육화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럼 저 사람들에게 뭐라고 해요?”
“샤스트라 파라크티라고 해.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신상이 육화하는 걸 봤으니 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을 거야.”
“그럼 나는요? 누님이 샤스트라 파라크티가 되면 나와 함께 못 있잖아요?”
“괜찮아. 이세계의 신들은 어쩌다 인간과 사랑을 하는 모양이니까. 우리가 함께 다녀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야.”
“아! 그래요? 그럼 괜찮겠네요.”
밝은 얼굴로 웃던 연적하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언제까지요?”
“응?”
“나는 금사를 처리하면 강호로 돌아가잖아요. 하지만 누님은요? 그때가 되면 누님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설마 나도 없는 이세계에 혼자 남을 생각인 건 아니겠죠?”
연적하가 근심 어린 얼굴로 남궁연을 보았다.
자신이 돌아갈 때 그녀를 데리고 갈 수도, 남겨 두고 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궁연은 연적하가 처음부터 그 질문을 던지자 조금 당황했다.
“…….”
남궁연이 머뭇거리자 연적하는 해법을 찾아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냥 누님과 함께 이곳에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나와 지안이의 운명이 지금처럼 되기를 바란다면 그래도 돼. 네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와 지안이는 돌아오지도 않는 너를 기다리며 살겠지.”
“내가 돌아가면, 누님은요? 누님을 이곳에 혼자 남겨 두고 가라고요? 그럼 나는 평생 누님을 버리고 떠난 걸 괴로워하며 살 거예요. 누님은 내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요?”
남궁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실을 다 말해 주지 않으면 자신과 그의 인생이 꽤나 뒤틀리게 될 것 같았다.
“적하야.”
“뭐라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절대 누님을 혼자 두고 가지 않아요.”
“나는 오래지 않아 나였던 걸 과거의 기억에 묻고 신으로 살아가게 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지금의 나는 샤스트라 파라크티가 잊은 아득히 먼 과거의 일부에 불과해. 지금은 내 의지로 샤스트라 파라크티를 밀어내고 있지만……. 머지않아 샤스트라 파라크티로 돌아가게 될 거야.”
“무, 무슨 소리예요? 누님이 샤스트라 파라크티로 돌아가다니요?”
“나는 육화한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시간을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거야. 그게 나와 구천현녀와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약속이었어.”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육화한 몸을 잠깐 빌린 거라고요?”
“맞아. 그리고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거야. 길어야 일 년? 그 뒤에 나는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기억 속으로 녹아들게 될 거야.”
“누님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요?”
“너와 함께하는 일 년이 홀로 지낼 수십 년보다 값지다고 생각했거든.”
“나는, 나는, 누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설령 누님이 샤스트라 파라크티가 된다 해도 나를 기억할 수 있잖아요. 과거라면서요.”
“샤스트라 파라크티에게 너는 스쳐 지나간 무수히 많은 인연들 가운데 하나일 거야. 영생을 사는 신이니까, 너와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할 테지. 그런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곁에서 사도로 살고 싶니?”
연적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연이라면 자신의 대답이 무엇인지 알고도 남을 터였다.
“그러니까 혼자 남을 내 걱정은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