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6
126회. 젊은이들에게 괴로운 밤
산동성.
맹림(孟林).
해거름 무렵.
맹자와 그 후손들의 묘가 있는 맹림에 사두마차가 들어섰다.
연적하 일행이 탄 마차다.
마부석 옆에 나와 있던 연적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협점촌을 떠난 뒤로 객점이 보이지 않아 제대로 쉬질 못했다.
‘맹림’이라고 적힌 표지목을 보니 마을 같은데, 아무리 봐도 인가가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여기도 객점은 없어 보이죠?”
마부 이사가 좌우를 둘러보며 답했다.
“예, 사람이 많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집들도 듬성듬성 보이고…….”
이사도 하남성 사람이라 산동성 사정에는 어두웠다.
“그럼, 오늘은 이곳에서 쉬죠. 더 가 봐야 소용없을 것 같은데.”
“잘 생각하셨습니다. 노숙하느니 그나마 빈집에서 쉬는 게 나을 겁니다.”
“하아!”
연적하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강호를 떠돌아다닌다는 게 이렇게 고될 줄이야.
마차를 타면 덜 힘들 줄 알았는데 그것도 한 달이 넘어가니 엉덩이가 아플 지경이다.
고작 다섯 개 산채만 돌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땅이 너무 넓다.
이사가 근처에서 가장 커다란 건물 앞에 마차를 세웠다.
곧이어 마차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왔다.
가장 먼저 유근식이 앓는 소리를 했다.
“아구구! 허리야. 엉덩이도 아프고.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네.”
“유 사형, 벌써 힘들어하면 어떻게 해요? 이제 겨우 산채 하나 갔는데.”
“와아! 나는 열 군데쯤 돌아다닌 것 같다. 설 사형, 그렇지 않습니까?”
“쯧! 젊은 녀석이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남궁세가분들과 노선배님도 별말씀이 없으신데.”
설차수의 지적에 유근식은 입을 다물었다.
청운검 남궁천과 심통 앞에서 너무 오두방정을 떨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주변을 둘러보던 남궁천이 중얼거렸다.
“여기는 뭐지? 집은 드문드문 있던데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이네.”
물론 겨울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 사람 사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남궁연이 전각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맹림은 맹자 집안의 묘지예요.”
남궁천이 황급히 따라붙으며 물었다.
“헉! 그럼 여기가 전부 묘지란 말이냐?”
남궁연은 당연한 말을 뭘 묻냐는 얼굴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연적하도 급히 남궁연을 따라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확실히 집이 아니라 사당이다.
맹림은 관리가 잘된 듯 이전의 포씨 사당보다는 훨씬 크고 깨끗했다.
문득 의형제들과 함께 강남으로 가던 긴 여행이 떠올랐다.
그때는 어떻게 두 발로 그 먼 거리를 갔는지 모르겠다.
설차수와 유근식, 진설하가 부지런히 주변을 돌며 마른나무를 주워 왔다.
잠시 후 유근식이 사당 한복판에 모닥불을 피웠다.
사람들이 모닥불 주변에 모이자 괜히 어색해진 설차수가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그래도 맹자의 덕을 보네요.”
그러나 아무도 그의 농담에 반응하지 않았다.
남궁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맹(孔孟)과 거리가 먼 사람들인지라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타닥. 타닥.
사당에 불꽃이 타들어 가는 소리만 울렸다.
그렇게 일각(15분)쯤 지났을까?
멍하니 앉아 있던 설차수가 행낭에서 건량을 꺼내 입에 물었다.
뒤늦게 다른 사람들도 묵묵히 행낭을 뒤적거렸다.
연적하는 건량을 먹자마자 다른 사람들처럼 불가에 자리를 깔았다.
한서불침의 몸이라고는 하지만 차가운 곳은 몸에 좋지 않다. 신체가 밤새 냉기를 밀어내느라 푹 자고 일어나도 몸이 찌뿌듯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위가 높은 사람들이 불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무위가 높으니 양보해도 되지 않냐는 건 가족들 사이에서나 통할 소리다.
연적하, 심통, 그리고 남궁천 남매가 가장 안쪽이다.
그 사이사이 온기가 닿는 곳에 설차수 일행이 억척스럽게 끼어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억지로 눈을 붙이려던 연적하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아! 가려워! 가려워!”
연적하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벅벅 긁어 댔다.
모닥불로 따뜻해지자 벼룩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심통은 누워서 ‘클클’거리며 펄떡이는 연적하를 구경했다.
그에게 벼룩은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익숙해진 것일 수도 있고, 늙어서 감각이 둔해진 걸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심통은 견딜 만했기에 연적하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설차수와 유근식, 진설하도 가려웠지만 그들은 입을 꾹 다물고 긁어 대기만 했다.
남궁천의 경우 그래도 십 년 넘는 강호행 경험으로 가끔씩 몸을 뒤척일 뿐이다.
하지만 곱게 자란 남궁연은 또 달랐다.
그녀는 계속된 벼룩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사당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늘에 와서 갑자기 가려울 리가 없지 않은가!
‘왜 벼룩이 있지?’
사당 구석구석을 살피던 남궁연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다.
구석에 버려진 거적때기가 보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니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최근 거지들이 사용했던 모양이다.
한마디로 터를 잘못 잡은 것이다.
‘하아!’
한숨을 내쉬던 남궁연은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대로라면 곱게 잠을 자기는 틀렸으니 산책이라도 할 생각이다.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온 남궁연이 멈칫했다.
사당의 문 앞에 네 사람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연적하와 설차수 일행이었다.
네 사람과 눈이 마주친 남궁연은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강호행의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만 괴로운 밤인 모양이다.
마침 남궁연과 눈이 마주친 연적하가 벌떡 일어섰다.
“누님, 어디 갔었어요?”
“산책.”
“와아. 저는 가려워서 도저히 못 자겠어요. 산채에도 벼룩이 저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여긴 그냥 벼룩 소굴인 것 같아요.”
“최근에 누가 사용했었나 봐. 구석에 거적때기가 몇 개 보이더라.”
“아주 더러운 사람이었나 봐요. 노숙 많이 해 봤는데 오늘이 제일 지독해요.”
연적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진설하가 슬그머니 일어섰다.
“저어, 소저도 벼룩 때문에 나오신 거죠?”
“…….”
잠시의 침묵 끝에 남궁연이 답했다.
“그래요.”
평소라면 대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은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어서인지 마음의 벽이 누그러졌다.
처음으로 대화에 성공한 진설하는 용기를 내서 거듭 말을 걸었다.
“저는 강호행이 처음이라 그런지 너무 힘드네요. 소저는 좀 어떠세요?”
“저도요.”
비록 단답형이지만 진설하는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화용독심 남궁연과 평범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남궁연이 받아 주자 나중에는 설차수와 유근식까지 조금씩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비슷한 또래와 함께한 자리라 그런지 남궁연은 조금씩 사람들 속에 녹아들었다. 물론 여전히 대답은 단답형이었지만 말이다.
새벽이 되자 지친 다섯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쓰러지듯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연적하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잠자리에 늦게 들어서 그런지 눈이 뻑뻑했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주위를 보니 이게 웬일?
사당 안팎이 거지들로 가득했다.
그 숫자는 무려 오십이 넘는 것 같았다.
거지들은 여기저기 퍼져 앉아 제 몸의 벼룩을 털거나,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지난밤의 악몽이 떠오르며, 몸이 다시 가려웠다.
“아, 뭐야.”
연적하가 울상을 짓자 심통이 다가왔다.
“공자님, 거지 떼가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제가 깡그리…….”
심통이 거지들을 손보지 않은 건 순전히 연적하의 눈치가 보여서다.
아니나 다를까?
연적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냅 둬. 어차피 우린 갈 거였잖아.”
거지들이 들락거리며 일으키는 소란에 늦게 잠든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 둘 일어났다.
진설하와 남궁연은 사당에 가득한 거지 떼를 보고는 기겁을 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그런 얼굴이다.
연적하는 처음 보는 남궁연의 약한 모습에 실실 웃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온몸의 가려움이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연적하 일행이 주섬주섬 짐을 챙길 때다.
오십 대로 보이는 의복이 깨끗한 거지 하나가 다가와 인사를 했다.
“하하하. 이거 아침부터 실례가 많소. 맹림을 추성에 있는 개방의 근거지로 쓰고 있어서. 나는 추성 분타의 서창이오. 손님들은 어디의 뉘시오?”
백의개 서창은 사당에 늦게 난입해서는 오히려 주인 행세를 했다.
심통이 그의 아래위를 훑어보고는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너는 서가라면서 왜 맹씨의 무덤이 너의 것인 것처럼 말하느냐?”
“아하하! 말씀드리지 않았소? 추성의 개방에서 이곳을 사용한 지 꽤 된다고. 그런데 초면에 말을 그렇게 막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오?”
“흥! 대가리 수만 믿고 아무 데나 머리를 들이미는 네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순간 서창이 눈을 찌푸렸다.
다짜고짜 반말도 참았는데, 점입가경이라더니 이제는 욕까지 하고 있다. 그것도 개방의 안방이라 할 수 있는 맹림에서 말이다.
‘이 늙은이의 눈에는 개방 방도들이 보이지 않나?’
사당에만 오십여 명이지, 맹림 전체를 합치면 무려 이백이 넘는다. 그들이 죄다 고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문파 하나쯤은 털어먹을 수 있다.
그런데도 저렇게 광오한 태도라니?
서창은 화가 난 와중에도 늙은이와 그의 일행들을 세심히 살폈다.
‘응? 아무도 놀란 기색이 없어?’
개방과 시비가 일어났는데 다들 태연자약하다.
심지어 만사가 귀찮은 얼굴로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애송이까지 있다.
은근 부담을 느낀 서창이 정중하게 물었다.
“혹시 유명교 분들이시오?”
그는 유명교의 무리들이 어디론가 가던 중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유명교가 아닌 다음에야 맹림에서 저렇게 당당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자 심통이 버럭 소리쳤다.
“이놈! 우리가 그따위 덜떨어진 병신들로 보이느냐! 미친 게로구나!”
서창의 입이 쩍 벌어졌다.
당금 천하에서 유명교를 ‘덜떨어진 병신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허면 빙빙 돌리지 말고 속 시원히 말해 보시오! 당신들은 누구요?”
심통이 한쪽 손으로 연적하를 척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공자님의 존성대명은 연적하! 녹림의 총순찰이시자! 유명교도들에게는 저승사자와 같은 분이시니라!”
“헛! 저 공자가 정말 녹림 총순찰이란 말이오? 그럼, 당신이 구천노도 심통?”
“그렇다! 감히 공자님이 주무시는 잠자리에 난입하다니. 공자님의 명만 아니었으면 네놈들은 모두 내 손에 죽었을 것이다.”
말과 함께 심통이 꾹꾹 눌러 두었던 살기를 쏟아 냈다.
츠츠츠츠-.
가까이에 있던 서창은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숨이 턱 막혔다.
사당 안에서 거들먹거리고 있던 개방 방도들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쓰러졌다.
털썩. 털썩…….
홀로 공력을 끌어 올려 저항하던 서창이 힘겹게 말했다.
“그, 그만하시오. 개방은 당신들의 적이 아니오.”
그제야 심통은 의형살인의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무형의 압박에서 겨우 풀려난 서창이 숨을 헐떡이며 심통과 연적하를 번갈아 보았다.
‘녹림에 이런 고수가 있었다니!’
연적하야 총순찰이니 그렇다 치고,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는 심통의 무위도 듣던 것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