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63
1263회. 너 밤길 조심해야겠다
삼 년 전.
북부 에스카토스 왕국.
몬타노사 산맥.
기사 서임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왕이나 영주에게 기사로 임명받거나, 기사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공적을 세워 기사가 될 수도 있다.
왕이나 영주에게 임명받을 경우 주종 관계가 성립되어 출세는 빠르지만, 왕이나 영주에게 종속되는 걸 피할 수 없다.
대부분 기사 후보생들은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에 공적을 세워 기사가 됐다.
20세에 기사 아카데미를 졸업한 파비안도 다른 기사 후보생들과 마찬가지로 공적을 세우기 위해 영지군에 지원했다.
그가 처음 배치된 곳은 몬타노사 산맥의 산악 여단.
산악 여단의 훈련소에서도 파비안은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젊은 나이에 기대를 받다 보니 그만 오만해져 버린 것이다.
그 결과 파비안은 그와 함께 훈련을 받던 기사 후보생들에게 찍혀 버리고 말았다.
결국 파비안은 훈련소 생활 내내 후보생들의 따돌림을 받아야 했다.
그 뒤 폰티악 중대에 배치됐지만, 그곳에서의 생활도 훈련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산악 여단 훈련소를 거친 기사 후보생들은 파비안에 대해 나쁘게 말했고, 그 결과 파비안은 기사 후보생들 모임에 녹아들지 못했다.
그건 그를 따돌린 다른 기사 후보생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천재 기사 소리를 듣던 파비안도 동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하지 않았다.
그 당시의 그는 기사 후보생을 거쳐 가는 단계에 불과하다 여겼다.
그래서 검술 실력을 높여 소드 비기너가 되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로 생각했다.
사실 그것도 틀린 건 아니었다.
기사 후보생과 기사의 신분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났으니 말이다.
게다가 기사라고 다 같은 기사도 아니다.
작위에 따라서,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기사 간에도 서열이 정해졌다.
그러니 기사 후보생 시절의 따돌림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건 사실이다.
사고만 없다면 말이다.
산악 여단의 대규모 강습 훈련에서도 파비안의 따돌림은 계속됐다.
그러다 결국 파비안은 몬타노사 산맥 깊숙한 곳에서 낙오하고 말았다.
폰티악 중대 숙영지.
산악 여단 1대대장 올라 아그문 자작이 폰티악 중대장 레인 포레스트 남작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윽!”
레인 포레스트 남작이 답답한 신음과 함께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 개자식아! 여단장님이 직접 지휘하는 강습 훈련에서! 뭐? 소대장이 실종돼? 나를 물먹이려고 작정한 거야? 어?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봐! 이 병신 같은 새끼야!”
“죄송합니다.”
“그것도 산악 여단 훈련소를 수석으로 수료해서, 여단장님 포상까지 받은 새끼를 잃어버려? 이 씨발 놈아! 내가 너 꼭 옷 벗긴다! 알아?”
“…….”
레인 포레스트 남작은 고개를 푹 떨궜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훈련 끝나기 전까지 찾아! 시체라도 가져와! 못 찾으면 너는 내 손에 죽는다!”
“예!”
1대대장 올라 아그문 자작은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레인 포레스트 남작을 노려보다 떠났다.
폰티악 중대장 레인 포레스트 남작은 사흘 동안 중대원들과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몬타노사 산맥은 상급 야수는 물론 마수와 마물까지 목격되는 곳이라 실종자가 살아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시체의 일부라도 찾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나흘째 되던 날, 기적처럼 살아 있는 파비안 클라우드를 발견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깐, 1대대장 올라 아그문 자작은 약속을 지켰다.
폰티악 중대장 레인 포레스트 남작은 영지로 소환됐다.
사고를 치고 영지로 돌아간 기사는 치안대가 아니면 경비대에서 여생을 보낸다.
치안대와 경비대에서는 공을 세울 기회가 없으니 승작은 물 건너간 셈이다.
***
현재.
레인 포레스트 남작을 보는 파비안의 마음은 좋지 않았다.
그도 자신의 잘못으로 중대장 레인 포레스트 남작이 폰티악 중대를 떠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은 아니다.
몬타노사 산맥에서 동료 소대장들이 따돌리는 바람에 낙오되었던 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소대장들과 잘 지내지 못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때의 경험은 좋은 약이 되어, 그 뒤로는 기사들과 두루뭉술하게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레인 포레스트 남작은 인사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어정쩡하게 서 있는 파비안을 데리고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설마 폰티악 중대에 계속 남아 있던 건 아니겠지?”
레인 포레스트 남작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파비안을 보았다.
대대장이 사고를 제대로 친 소대장을 그냥 뒀을것 같지 않아서다.
“예, 일 년을 못 채우고 다른 곳으로 전출 갔습니다.”
“새로운 중대장이 갈구던가?”
“…….”
파비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걸 갈구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레인 포레스트 남작 후임으로 온 중대장과는 단 한 번도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으니까.
다른 소대장들과도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그 사고 이후로 따돌림은 사라졌지만 사적인 교류도 없었다.
“아마 대대장 때문에 그랬을 거야. 만약 네가 작위를 받았다면 그냥 두지 않았을 거다.”
“그 반대가 아니고요?”
파비안이 의아한 눈으로 레인 포레스트 남작을 보았다.
귀족이 아니라서 그냥 넘어갔다니?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마, 생각해 봐라. 자작쯤 되는 귀족이 평민 나부랑이에게 신경이나 쓰겠냐? 내가 남작이니까 짓밟은 거라고.”
“아, 그렇습니까?”
파비안은 완전히 납득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당한 당사자가 그렇게 느꼈다는데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너는 복수할 가치가 없는 거지. 아무것도 아니잖아.”
“복수요?”
“대대장도 네 사고로 여단장에게 박살이 났다고 들었다. 소대장이 산악 여단 강습 훈련 중에 실종된 일로 여단장도 대귀족들에게 개망신을 당했거든.”
“쩝…….”
파비안은 입맛이 썼다.
기사 후보생들의 따돌림이 그렇게까지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다니.
“그러니 복수할 만도 하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 옷만 벗은 게 다행이었다. 감옥에 갔으면 작위를 박탈당할 수도 있었거든.”
“중대장님 잘못도 아니었잖습니까.”
“윗분들이 그런 거 생각하겠냐? 누구 하나 제물로 찢어 놔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인데. 네가 시체로 발견됐으면 나도 감옥에 갔을 게다. 너를 따돌린 소위 새끼들 소식은 좀 아냐?”
“전혀요. 몬타노사 산맥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습니다.”
“크큿! 씨발, 나도 그런다.”
파비안은 레인 포레스트 남작이 자연스럽게 욕을 하자 그를 힐끔 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입이 좀 거칠어지신 것 같아서요. 전에는 욕을 잘 안 쓰셨잖습니까.”
“용병이 되면 악밖에 안 남아.”
“영지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잘 안 됐습니까?”
“갔더니 경비대 조장 자리를 주더라. 씨발. 그래도 큰일 하다가 왔으니까 기사단에 자리 하나 내줄 줄 알았거든? 그런데 경비대 조장이나 하래. 소드 비기너인 남작에게 경비조장이라니? 차라리 그냥 영지를 떠나라고 하지. 사람 약 올리는 거도 아니고.”
“경비대 조장은 좀 심했네요. 저는 그래도 중대장님이 기사단으로 가실 줄 알았습니다.”
“인생이 꼬인 거지. 산악 여단 여단장님이 우리 영주님의 먼 친척이라네? 아니 씨발, 먼 친척이면 완전히 남 아니냐? 그런데 왜 여단장님 눈치가 보인다고 나를 내치냐?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파비안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자신도 피해를 봤지만, 눈앞의 레인 포레스트 남작만큼은 아니었다.
“너도 피해잔데 뭐가 죄송하냐. 잘못한 놈들은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을 테지?”
“모르겠습니다.”
“경비조장 월급으로는 품위 유지가 안 돼. 나보다 못한 기사들에게 굽실거리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때려치우고 용병이 됐다.”
“그러셨군요.”
“용병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 폰티악 중대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해. 씨발. 좋아. 너무 좋아.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진즉에 용병이 될걸.”
레인 포레스트 남작은 쌓인 게 많았던 듯 말끝마다 ‘씨발’이었다.
파비안은 듣기가 거북했지만 옛 상관에 대한 예의로 내색하지 않았다.
“너는? 어쩌다 이곳에 왔냐? 군대는 그만둔 거냐? 저 사람들은 또 뭐고?”
레인 포레스트 남작은 파비안의 표정을 살폈다.
사실 그가 파비안과 따로 자리를 만든 것은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히르헤라 주둔지에서 공을 세워 남들보다 조금 일찍 제대했습니다. 저분들은 모두 모험가로, 히르헤라에서 제가 모시던 중대장님과 그분의 지인들이십니다.”
“용병이 아니라 모험가라고?”
“예.”
“모험가로 시작한 걸 보니 다들 집안이 괜찮은가 보네?”
“다 그런 건 아닙니다.”
“여자들은 뭐하는 사람들이고?”
“한 사람은 모험가고, 다른 한사람은 샤스트라 파라크티 신전의 사람입니다.”
“설마 여사제는 아니겠지?”
“아닙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레인 포레스트 남작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왠지 찜찜한 느낌에 파비안이 입을 열었다.
“중대장님.”
“왜?”
“중대장님 일행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어떤 사람들이라니?”
“대수림에서 용병들이 강도로 돌변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믿을 만한 사람들입니까?”
“파비안, 그거 모욕적이고, 편파적인 질문이라는 거 알고 있냐?”
파비안은 사과 대신 레인 포레스트 남작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건 포레스트 남작의 기분에 맞춰 대충 넘길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반항적인 태도에 레인 포레스트 남작이 되물었다.
“모험가와 용병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 너도 알지? 나도 묻자. 네 일행은 믿을 만하냐?”
“믿어도 됩니다.”
“뭘 보고? 네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그다지 신뢰가 안 가는데?”
레인 포레스트 남작은 기분이 상했는지 삐딱하게 받아쳤다.
감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에게 잘 전달된다.
파비안은 과거 한때 모셨던 중대장과 감정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인생이 자신으로 인해 꼬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책임도 아니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어비스에서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든지.”
그 말을 끝으로 파비안과 레인 포레스트 남작은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파비안이 돌아오자 엘리오가 슬쩍 말을 걸었다.
“아는 사람이냐?”
“처음 배치받은 부대의 중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 모양이야? 중대장하고 사이가 안 좋았냐?”
“그때 제가 사고를 쳐서 중대장이 짤렸었습니다.”
“그래서 용병이 된 거래?”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습니다.”
“대화로 잘 풀지 그랬냐.”
“따지고 보면 제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저도 피해자였으니까요.”
파비안이 과거의 이야기를 간추려 들려주었다.
“……그런데 말끝마다 욕을 하는 게 사람이 변한 것 같더라고요.”
“용병이 원래 거칠잖냐. 그러려니 해. 너도 용병으로 빠졌으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다.”
“제가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파비안이 펄쩍 뛰었다.
자신이 저 입 거친 레인 포레스트 남작보다 더했을 것 같다니!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측이었다.
그때 레인 포레스트 남작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태번을 떠났다.
뒤끝 심한 엘리오가 파비안을 놀리듯 말했다.
“눈길 한번 안 주고 가는 거 보니 화가 많이 났네. 너 밤길 조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