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86
1286회. 신상을 찾았습니다!
그날 밤.
루나 마일러스는 엘리오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 직후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타인록을 언제까지 지켜만 볼 거야?”
“왜요? 누가 뭐라고 했어요?”
“그런 건 아니고. 그 사람이 네 주위를 빙빙 맴도는 게 보여서. 너도 그가 뭘 바라는지 알잖아? 혹시 그가 마음에 안 들어서 못 본 척하는 거니?”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쫓아내지 왜 못 본 척해요?”
“그래서 묻는 거야.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누님, 원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는 거잖아요. 그가 내 가족도 아닌데 내가 알아서 챙겨 줄 이유는 없지 않나요?”
“오홍.”
“뭐예요? 그건? 날 놀리는 거예요?”
“하워드 남작에게는 가족도 아닌데 네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어?”
“제가요? 언제요?”
“하워드라고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 주고, 잘 대해 줬잖아.”
“그건 그가 나를 믿고 따르는 게 보여서 그런 거고요. 타인록은…… 사람이 솔직하지 못해요.”
루나 마일러스가 사랑스러운 손길로 엘리오의 이마를 매만지며 말했다.
“솔직하지 못한 게 아니라 누구와 달리 사교성이 없는 건 아닐까? 제국에서 야인이 어떤 위치인지 알잖아. 상처가 많으면 사람 관계도 위축되기 마련이야.”
“저를 같은 야인 출신으로 알고 있을 텐데요?”
“그랜드 마스터에 제국의 백작이기도 하지. 너와 그는 가깝고도 먼 사이야.”
“그래서 하워드 일행을 밥상에 앉혀 줬잖아요. 그 정도 했으면 됐지, 숟가락으로 밥까지 떠먹여 주라고요? 그 멋대가리 없는 거인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게 강자의 역할이잖아.”
“누님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못 할 것도 없죠. 다른 사람 얘기 그만하고 우리 얘기 해요.”
엘리오가 다시 루나 마일러스의 가슴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얘기하자면서?”
“……뜻은 통하잖아요.”
이윽고 엘리오와 루나 마일러스의 거친 숨소리가 천막 안을 달구었다.
다음 날.
여느 때처럼 루나 마일러스와 걷던 엘리오는 걸음을 빨리해 앞서가던 타인록에게 다가갔다.
“타인록 씨.”
갑작스러운 부름에 뒤를 돌아보던 타인록이 멈칫했다.
아니 그보다 ‘타인록 씨’라니?
그건 하워드 솔론 남작을 ‘하워드’라고 부른 것만큼이나 생경스러운 호칭이었다.
“예.”
“요즘 어때요?”
“…….”
타인록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이건 혹시 왜 아직도 떠나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느냐는 뜻에서 한 말일까?
아니 어쩌면 그냥 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가 질문의 의도를 두고 갈팡질팡할 때 엘리오의 말이 이어졌다.
“잘 지내면 됐고요.”
엘리오는 빠르게 그를 지나쳐 갔다.
그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반응이 없으면 인연은 거기까지인 거다’라고 생각할 때, 타인록의 음성이 들려왔다.
“……잘 지내는 건 아닙니다.”
선두의 아케리오 용병단에게 다가가던 엘리오가 다시 타인록과 보조를 맞췄다.
“무슨 문제 있어요?”
“……예.”
망설이던 타인록은 힘들었지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어비스의 위험을 생각하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성기사와 나란히 걷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문득 물었다.
“하레브 님. 성녀는 어떤 존재입니까?”
“그야 물론 샤스트라 파라크티님의 화신이지요.”
“루나 마일러스 님이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화신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예. 오마르 경도 루나 마일러스님의 신성력을 보셨잖습니까. 그 어느 교단의 대사제도 흉내 낼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루나 마일러스 님과 라고아 경의 관계는…….”
“다른 교단의 전설 중에도 인간을 사랑한 여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신이 인간과 결혼도 합니까?”
“못 할 것도 없지요.”
“그렇습니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루나 마일러스를 보았다.
누가 봐도 지금의 루나 마일러스는 라고아 경과 사랑에 빠진 여자였다.
뜬금없이 출현한 성녀도 신기하지만, 평소 여자를 멀리하던 라고아 경의 태도가 바뀐 것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신님과 루나 마일러스 님을 따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두 분이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알던 신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저도 놀랍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저기 앞서가는 라고아 경도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았습니까?”
“그렇군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도 성녀만큼이나 신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신과 인간을 떠나 둘이 잘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마물들과 싸우며 전진하던 아케리오 용병단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지평선 너머로 산이 보여서다.
“페트라 산이다!”
“다 왔다!”
축 늘어져 있던 용병들의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페트라 산을 끼고 가다 보면 곧 엑소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 시간에 우레아 단장은 엘리오 일행을 찾아갔다.
우레아 단장은 아직 엘리오의 정체를 모르기에 ‘저어’라는 말로 운을 뗐다.
“페트라 산을 끼고 돌면 엑소도가 나옵니다. 엑소도까지 사나흘 정도 걸릴 겁니다.”
페트라 산을 보던 엘리오가 물었다.
“마물들이 페트라 산을 넘어온다면서? 엑소도와 가까운데 엑소도는 괜찮나?”
“마물들이 대거 출현하는 협곡이 에브리마 평원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광산이나 엑소도 쪽으로는 거의 가지 않습니다.”
“가긴 가나 봐?”
“어쩌다 그리로 빠져나가는 것들도 있는데, 광산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광산에 투입된 남부 왕국군 병력이 많으니까요.”
“용병단과 모험가 들이 아니라?”
“용병단과 모험가는 요리로 치면 전식입니다. 메인은 남부 왕국군이죠.”
“몰랐네.”
“그러시다면 광산에서 골렘이 출토된 것도 모르시겠군요?”
“골렘?”
엘리오는 모른 척 되물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그냥 골렘이 아니라 강철 골렘이라고 외쳤다.
“그 골렘 때문에 출입 금지 구역이 생겼다고 합니다. 물론 아직은 소문뿐이지만요.”
“골렘이 나왔다면 출입을 금지시킬 만도 하겠네. 그래도 출입이 자유로운 광산도 많다면서?”
“용병단과 모험가들의 반발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들이 화가 나서 손을 떼면 그 좋은 광산 개발도 불가능해지니까요.”
“다른 광산에서 골렘이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거야? 남부 왕국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거금을 주고 사들일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차피 골렘은 개인 간 거래 금지 품목이라서……. 남부 왕국에 광산을 팔 겁니다.”
“거래 금지라고?”
“예. 전쟁이 터진 뒤로 그렇게 공고를 했습니다. 남부 왕국 연합에서.”
“제국은 뭐 하고?”
“제국에서 끼어들기 전에 전쟁이 났잖습니까. 어비스에서 제국의 입김은 약합니다. 제국군도 없고, 제국 출신 용병과 모험가 들 뿐입니다. 그들은 남부 왕국군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내쫓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제국이 완전히 뒤통수 맞은 셈이네?”
“골렘이 제국 용병단의 광산에서 발견됐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겁니다.”
“그나마 남부 왕국 출신이 개발하던 광산에서 나온 걸 다행으로 알아. 골렘이 제국 용병단의 광산에서 나왔으면 여기도 전쟁터로 변했을걸?”
“아…….”
우레아 단장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제국군이 발 빠르게 어비스에 입성했다면 지금의 평화도 없었을 터였다.
“신상이나 잘 찾아봐.”
“저어 그런데 신상은 왜 찾으시는 겁니까? 그것도 돈이 됩니까?”
우레아 단장이 비굴한 눈으로 청년 모험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엘리오가 뚱한 얼굴로 답했다.
“어비스에서 돈 되는 건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알잖아. 개인적인 문제니까 신경 끄고 신상이나 찾아. 아케리오 용병단에서 찾으면 지금까지 쌓인 보호비를 탕감해 주지.”
“헉! 정말입니까?”
“속고만 살았어? 뭘 물어?”
“알겠습니다! 반드시 찾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우레아 단장은 부리나케 선두로 돌아갔다.
어딘지 모르게 굼뜨던 용병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빠릿빠릿해졌다.
그뿐 아니다.
지불할 보호비를 탕감받을 요량으로 우레아 단장은 따로 수색조까지 운영했다.
그런 우레아 단장의 눈물겨운 노력이 마침내 꽃을 피웠다.
다음 날 오후, 사방을 들쑤시고 다니던 수색조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돌아온 것이다.
“단장님! 찾았습니다!”
“건물터로 보이는 곳에서 신상을 발견했습니다!”
“여신상입니다! 여신상!”
수색조의 용병들이 한마디씩 외쳤다.
깜짝 놀란 우레아 단장은 수색조에게 길 안내를 맡긴 뒤 뒤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행여나 젊은 모험가가 딴소리를 할까 봐 소리부터 내질렀다.
“신상을 찾았습니다!”
엘리오의 앞에 도달한 우레아 단장은 힐끔 뒤에 있는 소드마스터를 보았다.
그가 ―누구에게 보고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고갯짓으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가리켰다.
“저희 용병들이 서쪽으로 3킬로미터쯤 떨어진 건물터에서 여신상을 발견했답니다.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엑소도 방향으로만 갔으면 찾지 못했을 겁니다.”
우레아 단장은 그 와중에 용병단의 공적을 슬쩍 드러냈다.
자신들이 애써서 발견했으니 약속대로 보호비를 탕감해 달라는 뜻이다.
말귀를 알아들은 엘리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신상이 맞다면 약속대로 보호비를 탕감해 주지. 그곳에 도착하면 용병들이 아무것도 손대지 못하게 뒤로 빼.”
“알겠습니다.”
청년 모험가에게 꾸벅 인사를 한 우레아 단장은 급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용병들이 뭔가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딴지를 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아케리오 용병단이 멈춰 섰다.
곧이어 우레아 단장이 우렁우렁한 소리로 용병들을 지휘했다.
“좋아! 잘했어!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이 상태에서 모두 뒤로 물러난다! 손은 물론 발로도 벽돌 하나 건드리지 마라!”
그의 지휘에 제각기 행동하던 용병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케리오 용병단은 마치 병풍처럼 엘리오 일행의 뒤에 자리를 잡았다.
엘리오 일행이 천천히 중심부를 향해 걸어갔다.
밑둥만 남은 수십 개의 석주(石柱)는 이곳이 건물터임을 짐작케 했다.
건물터 끝에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간 여신상이 쓸쓸하게 서 있었다.
“이게 우샤스 운드라야?”
엘리오의 질문에 하워드 솔론 남작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우샤스 운드라가 아닌 것 같습니다.”
“왜?”
“여신의 팔에 뱀이 감겨져 있지 않습니까? 우샤스 운드라가 뱀을 팔에 감고 다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럼 뱀을 팔에 감고 다닌 여신은 있어?”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엘리오가 다른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기만 할 뿐 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성기사님은요? 성기사님도 몰라요?”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가 면목 없다는 얼굴로 답했다.
“부끄럽습니다만 저도 다른 교단의 신들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게 뭐 부끄러워요. 모를 수도 있지.”
성기사를 위로한 엘리오는 여신상에게 다가가 찬찬히 살폈다.
자세히 들여다본다고 아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서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루나 마일러스의 입이 열렸다.
“그녀는 대지의 여신 쿠레아야. 팔에 감긴 건 뱀이 아니라 바실리스크고.”
답을 얻었지만 엘리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여신의 능력을 사용할수록 그녀의 시간이 줄어드니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