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88
1288회. 금줄이 안 보이는 건 좋네요
7서클 흑마법사 찰스 맨슨이 손가락으로 라리사의 손을 지그시 밀어내며 답했다.
“하루에 십 골드가 맞다.”
“열흘이면 백 골드를 지불하셔야 하는데요?”
“그만큼 어려운 일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느냐?”
“어려워 봤자 거기서 거기죠. 어비스에서 목숨을 걸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라리사가 도발적인 눈으로 노인을 보았다.
술집을 통한 의뢰는 불법적인 일이 태반이라 당연히 위험천만하다.
설사 합법적인 일이라 해도 어비스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러니 하루 십 골드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네 말이 맞다. 그래도 나는 십 골드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
찰스 맨슨이 여주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무려 그랜드 마스터를 암살하는 일에 돈을 아낄 생각은 없었다.
의뢰인의 눈에서 진심을 읽은 라리사는 종이를 들고 벽으로 걸어갔다.
“의뢰인과 만나게 해 달라는 용병단이 많을 거예요. 선착순으로 할까요? 아니면…… 특별히 원하는 기준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마력총을 잘 다루는 용병단이어야 한다.”
“재밌는 조건이네요. 보수가 커서 많은 용병단이 지원할 텐데요?”
“총병이 열 명 이상인 용병단으로……. 세 개 용병단까지 계약할 수 있다.”
찰스 맨슨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인원을 정해 주었다.
그런데 여주인의 대답이 묘했다.
“선착순으로 결정할게요.”
“총병이 열 명 이상인 용병단이 그렇게 많다는 거냐?”
“영지전에 참여하면 마력총 쏘는 법을 배우게 되니까요. 사격 솜씨를 따로 측정하지 않는 이상, 총병의 머릿수를 채우는 건 어렵지 않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마력총을 가진 용병단으로 주선해 줬으면 한다.”
“설마 마력총이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니죠?”
“그건 걱정 마라. 마력총은 내 쪽에서 지급해 줄 터이니. 내가 원하는 건 마력총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실력 있는 총병이다.”
“아하! 알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총병들로 무슨 일을 하시려고……. 설마 마나석 운송 마차라도 털 계획이세요?”
“흐흐흐. 마나석을 훔치기 위해 수천 골드를 쓰는 멍청이가 있을라고.”
하루 십 골드의 인건비는 둘째치고, 마력총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가에 거래되니 어리석은 소리였다.
“아, 그렇네요. 제가 마력총 생각을 못 했네요. 그런데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인데…… 용병들을 너무 믿지 마세요.”
“그건 무슨 소리냐?”
“의뢰를 마친 뒤에 용병들이 마력총을 순순히 돌려줄 것 같지가 않아서 하는 말이랍니다.”
“후후,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너는 쓸 만한 용병단을 연결해 주기만 해라.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물론 그러시겠죠. 자아, 이렇게 한가운데 붙여 두었으니 곧 연락이 올 거예요.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요.”
종이를 붙인 라리사는 손을 탁탁 털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던 찰스 맨슨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사흘 뒤, 이 시간에 다시 찾아오마. 그때 지원한 용병단과 만났으면 한다. 계약이 성사되면 너에게도 오늘 준 금액만큼의 돈을 더 주겠다.”
“어머! 감사해요. 모집 기간이 길지 않지만……. 일거리를 찾는 용병단이 많으니 잘될 거예요.”
라리사는 양손을 풍만한 가슴 앞에 모으고 환하게 웃었다.
***
대수림.
툼스톤.
엘리오 일행은 툼스톤을 떠나지 못했다.
식료품과 어비스에서 필요한 물자들을 구입하느라 그런 것은 아니다.
미개척 지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일정이 늘어졌다.
의외로 미개척지에 대한 정보가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개척 지역은 포화 상태라 할 수 있다.
파르톤 산만 봐도 곳곳에 금줄이 쳐져 있고, 에브리마 평원도 용병과 모험가로 북적인다.
그래서 꽤 오래전부터 용병과 모험가 들은 미개척지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들은 미개척지에 대한 기록을 일체 남기지 않았다.
자신이 개고생해서 발견한 것을 남들에게 공짜로 알려 주고 싶지 않아서다.
그럼 돈을 받고 팔면 되지 않느냐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국이나 왕국은 위험천만한 미개척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장 돈벌이에 급급한 용병단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미개척지 탐사는 호기심 많은 용병과 모험가 들의 불장난으로 남았다.
처음에 엘리오 일행은 별 기대 없이 미개척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런데 파면 팔수록 새로운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페트라 산에서 가까운 곳은 물론, 꽤 멀리까지 갔던 사람들도 있었다.
한 중년 사내가 술기운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침까지 튀겨 가며 말을 이었다.
“……케라톱스 서식지를 지나서 사흘쯤 더 가면 용두산이 나와. 왜 용 머리 산이라고 부르냐면, 산 정상이 딱 보면 용 대가리를 닮았어. 이 용 머리 산까지 가 본 사람이 한 손에 꼽힌다 이 말씀이야. 그런데 거기에 나도 들어가거든.”
“케라톱스라면 그 뿔 달린 도마뱀을 말하는 거죠?”
파비안이 알은체하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하급 마물이지만 온순해서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괜찮아. 그런데 어쩌다 한 마리 건드리면 그냥 거기서 죽었다고 봐야 돼. 그 근방에 있는 케라톱스들이 죄다 몰려오거든. 왕국군 한 개 연대가 케라톱스를 건드렸다가 전멸당한 적도 있다니까.”
“엄청나네요. 그럼 모험가님은 용 머리 산까지 가 본 겁니까?”
“솔직히 나는 용 머리 산은 오르지 못했어. 산기슭에서 테라독을 잡아먹고 있는 팔렉스 맨티를 봤거든. 주먹만 한 두 개의 눈과 딱 마주쳤는데……. 진짜 오줌을 쌀 뻔했다니까. 그때 놈의 배가 부르지 않았다면 나는 이곳에 있지도 못했어.”
중년 사내가 부르르 떨었다.
팔렉스 맨티는 사마귀를 닮은 중급 마물로 포악하기로 유명했다.
더 끔찍한 건 먹이를 산 채로 조금씩 야금야금 뜯어 먹는다는 거다.
당연히 죽은 동물의 사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팔렉스 맨티가 포식하는 장면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평생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더니, 사내의 눈동자에 공포가 어렸다.
사내의 숨소리가 거철어지자 파비안은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래도 용케 빠져나왔네요? 용 머리 산 너머에는 뭐가 있다고들 하던가요? 아, 정상에 올라가 본 사람은 아직 없으려나?”
“정상에 오른 사람이 없을 거라고? 넘어간 사람도 있는데 무슨 소리야.”
“그런 사람이 있다고요? 누굽니까? 그 사람이?”
“오래전에 죽었지.”
“엥? 죽어요?”
“호테른 필이라는 모험가야. 왕족을 죽인 범죄자라서 세상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툼스톤과 엑소도에서 그를 모르면 애송이 취급 받으니 머릿속에 새겨 두라고.”
“그 정돕니까?”
“그 정도냐고? 용병에게 크리스 두나미스가 있다면, 모험가는 호테른 필이야. 자네는 모험가라면서 호테른 필도 모르나?”
“북부 출신이라서요.”
“제국 북부? 아니면 그보다 더 위?”
“더 위요.”
“어이쿠! 멀리서도 왔네.”
남부 왕국의 귀족들이 지운 이름이니 북부 사람이면 모르는 게 당연했다.
“어쨌든 그 이후로 용 머리 산을 넘어가 본 사람은 없는 거네요?”
“왜? 자네가 넘어가 보게?”
중년인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모험가 청년의 아래위를 살폈다.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꿈 깨. 호테른 필이 넘어갔다고 자네도 그럴 수 있다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를 봐. 나도 용병이지만 크리스 두나미스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안 돼. 못 돼. 사람은 주제를 알아야 해. 호테른 필 흉내 내다가 미개척 지역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어?”
파비안은 중년 용병의 술잔에 맥주를 가득 부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테른 필 이후로 용 머리 산을 넘어간 사람이 없다니 툼스톤에서 얻을 정보는 다 얻은 것 같다.
다음 날.
엘리오 일행은 다시 어비스로 향했다.
노천 광산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자 예의 그 검은 점이 나타났다.
엘리오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점을 보며 말했다.
“나는 이게 제일 이상해. 봐 봐, 그냥 허공에 점 하나 찍혀 있을 뿐이잖아. 점 뒤에 아무것도 없어. 마법도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웃긴 건 이 점을 통과하면 어비스 내부가 나온다는 거야. 이건 진짜 말도 안 된다고.”
“뭐가 말도 안 됩니까? 텔레포트 같은 거잖습니까? 텔레포트는 말이 됩니까?”
“아, 그런가?”
귀가 얇은 엘리오는 파비안의 말에 금방 납득이 된 눈치였다.
이윽고 엘리오 일행은 한 사람씩 검은 점으로 걸어 들어갔다.
***
어비스.
엘리오 일행은 안전 지역에 있는 엑소도를 그냥 지나쳤다.
어비스에 처음 발을 디딘 것도 아닌 데다, 미개척 지역에 대한 정보는 이미 툼스톤에서 충분히 얻었기 때문이다.
엘리오 일행은 엑소도 좌측에 있는 파르톤 산으로 직진했다.
선두는 파비안과 타인록이 맡았다.
그 뒤로 하워드 솔론 남작과 크레아, 엘리오와 루나 마일러스가 따라붙었다.
일행의 후미는 여전히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의 차지였다.
파르톤 산의 초입에 도착하자 파비안이 시들한 얼굴로 말했다.
“약초밭이라고 여기저기 금줄이나 쳐 놨지 별거 없겠죠?”
“그렇다면 이번에는 지난번과 다른 길로 가 봅시다.”
타인록이 과감하게 산길에서 벗어나 숲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파비안은 자기가 한 말이 있어서 반대하지 못하고 그와 보조를 맞췄다.
뒤따르던 엘리오가 앞쪽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아니! 좋은 길 놔두고 왜 숲으로 들어가! 그러다가 사지타 바이퍼라도 밟으면 어쩌려고!”
사지타 바이퍼는 맹독을 가진 뱀으로 하급 마물.
머리가 화살촉처럼 생긴 사지타 바이퍼는 빛처럼 빠른 마물로, ‘발견한 순간이 이미 물린 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어비스 전역에 걸쳐 서식하는 마물이라 해독제가 개발됐지만, 후유증이 오래 남아 가급적 물리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나 파비안은 발밑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어 답하지 못했다.
선두가 숲으로 들어가니 뒤따르던 사람들도 마지못해 숲에 발을 내디뎠다.
구시렁거리며 걷던 엘리오가 루나 마일러스에게 말했다.
“그래도 꼴 보기 싫은 금줄이 안 보이는 건 좋네요.”
“대신에 뱀이 보일 거야.”
“설마요. 발소리를 내면 뱀이 달아나지 않을까요?”
“보통의 뱀은 그렇지만, 마물은 도리어 자기 영역에 침범했다고 덤벼들걸?”
“그래요?”
엘리오의 말에 호응하듯 앞쪽에서 파비안이 비명을 내질렀다.
“악! 뭐야! 뭐가 이렇게 아파! 저 물렸습니다! 사지타 바이퍼입니다!”
뒤따르던 엘리오는 서둘러 파비안에게 달려갔다.
롱소드로 검은 뱀을 토막 내던 파비안이 분한 얼굴로 말했다.
“이 새끼가 저를 물었습니다.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뱀 같으니!”
“그래도 많이 늘었다? 사지타 바이퍼를 잘게 토막을 내 놨네?”
“지금 검술 얘기할 때가 아닙니다. 해독제나 주십쇼.”
“너 나한테 해독제 맡겨 놓은 사람처럼 당당하게 말한다?”
투덜거리면서도 엘리오는 마하담에서 해독제를 꺼내 파비안에게 건넸다.
해독제를 마신 파비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이거 후유증이 오래간다고 들었는데……. 왜 저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당해야 속이 시원하겠냐?”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환각과 환청이 며칠 간다니까 뭐 하기 전에 항상 확인하는 버릇 해.”
엘리오가 파비안에게 주의를 줬다.
그렇지 않아도 엉뚱한 짓을 잘하는 그에게 환각과 환청이라니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