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30
1330회. 불멸의 신물질 아르테늄
남부 아드리아 왕국.
왕성 크라시온.
초저녁.
왕의 관저에 두 중년인이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드리아 왕국 국왕인 라울 브로스넌과 블랙마켓의 관리자인 마젠타다.
블랙마켓은 불법 암거래 시장의 원조이자 공공의 적으로 알려져 있다.
국왕이 블랙마켓의 관리자와 독대를 했다는 게 알려지면 브로스넌 왕가의 체면은 땅에 떨어질 터였다.
그런데 단지 놀랄 일은 독대만이 아니다.
분위기를 보면 라울 브로스넌 국왕이 마젠타에게 사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엑시티움을 판매해 주게. 구입가의 세 배를 지불하겠네.”
엑시티움이 제국의 전략 병기임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요구다.
가뜩이나 제국과 전쟁 중인 아드리아 왕국의 국왕이 그런 황당하기까지 한 제안을 할 수 있는 것은, 엑시티움의 생산자가 마탑이기 때문이다.
용병에게 조국이 없듯, 마탑 또한 제국에 충성하지 않는다.
남부 왕국군이 마탑의 마력총으로 무장을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제국에 근거지를 둔 마탑은 제국과 협력 관계지 종속된 게 아니다.
그건 황실 마법사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엑시티움이 전략 병기인 만큼 제국의 통제 아래 있지만 마탑에서 빼돌리려 마음먹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특히나 블랙마켓을 거치면 추적도 불가능하다.
라울 브로스넌 국왕이 비밀리에 ―그것도 국왕의 관저에서― 블랙마켓 관리자를 만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전하. 엑시티움은 불가합니다. 마력총은 제작처를 파악하기 불가능하나, 엑시티움은 그렇지 않습니다. 삼대마탑에서만 생산되는 엑시티움을 남부 왕국에서 사용한다면, 제국과 삼대마탑의 관계도 끝납니다. 남부 왕국에서 삼대마탑을 후원할 수 있습니까?”
“…….”
라울 브로스넌 왕은 대답하지 못했다.
삼대는커녕 한 개의 마탑을 후원하는 것도 힘에 겨운 까닭이다.
애당초 마탑이 제국에 몰려 있는 것은 왕국의 지원을 받지 못해서다.
군소 마탑 하나의 운영비만 해도 왕실 재정에 맞먹는다.
삼대마탑은 추측 불가다.
현실적으로 제국의 재정이 아니고서는 그들을 감당할 수 없다.
빈약한 왕국 재정으로 마탑을 후원하다가는 왕조가 멸망할 터였다.
“브로스넌 왕가에서 삼대마탑 중 하나의 후원을 책임지겠다면, 엑시티움의 밀반출을 시도해 볼 수는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제작처가 확실한 엑시티움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럼 제국에 왕국을 바치라는 말인가? 이대로라면 아드리아 왕국이 제국군에 짓밟히는 것은 시간문제일세. 그대도 남부 왕국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나? 도와주시게.”
“그렇다고 끝이 뻔한 엑시티움을 넘겨 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드리아 왕국이 패망한대도!”
울컥한 라울 브로스넌 국왕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
순간 마젠타가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전하께 필요한 것은 엑시티움이 아닙니다. 남부 왕국에는 이미 지상 최강의 병기인 강철 골렘이 있지 않습니까?”
“있으면 뭐하나? 엑시티움 때문에 쓰지도 못하는 것을.”
남부 왕국은 엑시티움에 된통 당한 뒤로 강철 골렘을 최전선에서 뺐다.
강철 골렘이 없는 상태에서 남부 왕국군은 제국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가뜩이나 소드마스터의 숫자도 제국군이 앞서는데,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부대까지 있어 남부 왕국의 소드마스터들은 몸을 사렸다.
과거와 달리 이번 전쟁에서는 소드마스터들이 총병 부대를 피해 다녔다.
그들의 마력총에서 마력탄이 나올지, 엑시티움이 나올지 모르니 그러는 것이다.
아직 바탈리온 부대가 알려지지 않았기에 남부 왕국에서는 제국군이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강철 골렘을 전장에 세울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엑시티움에 파괴되지 않을 방법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마탑 최고의 연금술사가 최근에 아르테늄이라는 신물질을 연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르테늄?”
“불멸의 신물질로 엑시티움에도 단번에 파괴되지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그렇게 강력한 물질이라면…… 원하는 형태를 만들기도 어려울 텐데.”
“액체 상태라 강철 골렘의 장갑에 바르기만 하면 됩니다. 공기와 만나면 일 분 이내에 완전하게 굳습니다. 그러니 애써 원하는 형태를 만들 필요도 없지요.”
“바르기만 하면 굳는데…… 엑시티움조차 버텨 낼 정도로 강하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내구도를 실험해 봤는데……. 엑시티움으로 같은 자리를 두 번 쏘니 그제야 구멍이 뚫렸습니다. 강철 골렘이 바쁘게 움직이는데 같은 자리를 두 번 맞겠습니까?”
“절대 못 맞추지. 그 전에 ‘죽음의 빛’으로 적진을 초토화시킬 걸세. 그 아르테늄을 남부 왕국에 팔아 주게.”
“그러려고 제가 찾아왔습니다. 제국의 황태자가 엑시티움만 찾으니 연금술사도 다른 판매처를 물색 중입니다.”
“남부 왕국에서 사겠네.”
흥분한 라울 브로스넌 국왕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졌다.
강철 골렘뿐 아니라 소드마스터의 갑옷에 바른다면, 더 이상 제국군 총병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전세를 뒤바꿀 보물이니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손에 넣어야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뭔가?”
“물량이 많지 않습니다. 강철 골렘의 장갑을 다 도포하지 못할 정도로요.”
“다 도포하지 못한다니? 그럼 얼마나 할 수 있다는 건가?”
“골렘의 코어가 있는 부위만 하셔야 할 겁니다.”
“가슴만 하라는 건가?”
“그것도 가슴 전체가 아닌 코어가 있는 부위만 가능합니다.”
“…….”
라울 브로스넌 국왕이 아쉬운 눈으로 마젠타를 보았다.
그 정도로 적은 양이라면 소드마스터는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철 골렘의 코어 부위만 도포하라……. 알겠네. 양이 적다면 코어만이라도 보호해야지. 남부 왕국이 보유한 강철 골렘은 스무 기네. 스무 기를 도포할 수 있겠나?”
마젠타가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이 정도 크기의 병으로 서른 개를 공급하겠습니다. 병당 가격은 천 골드를 주십시오.”
“음…….”
천 골드라는 말에 브로스넌 국왕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혹시 말일세. 엑시티움에 한 번이라도 피격당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
“아르테늄이 부서지지는 않겠지만 많이 약해지겠지요.”
“그러다 같은 자리를 한번 더 피격당하면 부서진다?”
“그렇습니다.”
“반드시 같은 자리를 피격당해야 파괴되나? 아니면 근처에 맞아도 파괴되나?”
“그것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근처에라도 두 번은 피격당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느낌상 비슷한 자리에 피격당해도 파괴될 것 같아서 해 본 소리였다.
“그런 식이라면 아르테늄을 자주 도포해야 할 것 같은데……. 가격을 조금 낮춰 줄 수는 없겠나?”
“저도 그렇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천 골드는 연금술사가 제시한 금액입니다. 참고로 남부 왕국을 위해 블랙마켓의 중개료는 단돈 일 쿠퍼도 넣지 않았습니다.”
“그랬군. 남부 왕국을 대신해 그대의 애국심에 경의를 표하네. 대신이라고 하면 뭐하지만, 이번 전쟁이 끝나면 블랙마켓과 관계된 수감자들을 사면해 주도록 하겠네.”
“이왕이면 남부 왕국 연합 차원에서 사면을 추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물론 ‘사면’이 아니라 ‘사면의 추진’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다른 남부 왕국들이 그걸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런 라울 브로스넌 국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젠타는 더 묻지 않았다.
***
어비스를 빠져나간 엘리오 일행은 대수림을 지나 남부 아드리아 왕국에 도착했다.
몇 달 전의 평화롭던 모습과 달리 아드리아 왕국은 전쟁으로 정신이 없었다.
까칠해진 국경 검문소 병사들은 짐마차의 바닥까지 뒤졌다.
그러나 엘리오 일행은 애초에 짐이 없는 관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남부 아드리아 왕국.
이시카.
승객들을 태운 마차 세 대가 ‘잊혀진 신전’이 있는 도시 이시카에 멈춰 섰다.
이윽고 역마차 협회의 가드들이 마차 사이를 오가며 소리쳤다.
“한 시간 후에 출발합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다시 모이십쇼!”
“꾸물거리다 늦지 마십쇼! 전시 역마차 운영 지침에 의거해 바로 출발할 겁니다!”
무심한 얼굴로 듣던 엘리오가 파비안을 돌아보며 물었다.
“전에도 저런 소리를 했었냐?”
“어떤 소리요?”
“꾸물거리다 늦지 말라잖아. 전시 역마차 운영 지침에 의거해 바로 출발한다고.”
“전에는 그런 말 없었는데요?”
“그렇지? 마력포 요란하게 쏘던 토렌스에서도 못 들었지?”
“그럴걸요?”
의아하게 생각하던 엘리오가 마침 지나가던 가드를 불러 세웠다.
“여기요.”
“무슨 일입니까?”
가드는 모험가의 부름에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진철하게 응대했다.
“늦어도 몇 달 전에는 찾아다니고 그랬던 거 같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왜 시간 되면 바로 출발한다고 그러는 거예요?”
“시간 끌다가 길에서 제국군과 마주칠 수 있어서 그러는 겁니다. 길에서 제국군과 마주치면, 화물을 징발당하거든요.”
“예? 화물을 빼앗아 간다고요?”
“도시에서는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런 경우가 없는데……. 도시 밖에서 마주치면 거의 징발당한다고 보면 됩니다.”
“승객들 짐도 건드리나요?”
“그건 괜찮습니다. 역마차의 화물만 징발해 갑니다.”
“아하! 제국군 사정이 좋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대요?”
“너무 좋아서 그러는 겁니다. 전투 부대의 행군 속도가 빠르다 보니 보급에 차질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역마차의 짐을 징발한다나요? 뭐, 핑계 같기도 하지만, 본인들이 그렇다니 믿어야지요.”
“역마차 화물을 자기 마음대로 처분해도 돼요?”
“징발 확인서를 써 주기는 하는데……. 그걸로 얼마나 보상해 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역마차 협회에서 짜 준 시간을 엄수하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엘리오가 말을 마치자 가드는 다른 마차로 빠르게 이동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입을 열었다.
“제국군 군기가 엉망인 것 같습니다.”
“징발 때문에요?”
“식량이나 군수품이라면 모를까? 화물을 징발한다는 건……. 뒤에서 그걸 민간 업자에게 판매한다는 뜻입니다. 말이 징발이지 실은 강도 짓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걸 판 돈으로 식량을 살 수도 있잖아요?”
“모든 거래에는 차익이 발생하기 마련이지요. 그 차익은 징발군 지휘관이나 군수 담당자 손으로 들어갈 겁니다.”
“떡고물 정도야 손에 묻을 수도 있죠.”
뜻밖의 말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힐끔 보았다.
보통 사람보다 양심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다.
“라고아 경은 그런 쪽으로는 관대하시네요?”
“융통성이 있는 거죠.”
융통성이 아니라 도적 출신이라 작은 비리에 둔했지만 본인은 몰랐다.
“그런 행동이 쌓이면 자연히 군기가 문란해집니다. 그럼 사고가 날 수밖에 없지요.”
“사고요?”
“군기가 문란해진 부대는 언제라도 강도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타락한다고요?”
“본국과 달리 남부 왕국은 적진 아닙니까? 빼앗고 죽인 뒤에 ‘적과 아군을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하면 그만이니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제야 엘리오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예민하게 군 이유를 알았다.
그러고 보니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하지 않던가.
‘단순한 떡고물 문제가 아니구나.’
욕망에 휘둘리기 시작한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많이 봐 왔다.
그걸 융통성이라고 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우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