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34
1334회. 하던 대로 하고 살아
강철 군단 군단장의 말에 30사단 참모장 아이런 버트 자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인 것은 틀림없지만 의심스러운 정황도 있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스콜피언 중대를 몰살시킨 게 그렇다.
아무리 대귀족이라 해도 전쟁터에서 제국군 중대를 처단한다는 것은 선을 넘은 행위다.
지휘관을 체포해 제국 법정에 세울 수도 있었다.
아니, 중대장이 행크 스타우런 남작이라면 그러는 게 당연했다.
그에게는 제국법에 따라 재판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해자는 제국군이 아닌 대귀족.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는 스콜피언 중대를 즉결 처분할 권한이 없다.
북부의 대귀족인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더하다.
자칫 베일럼 왕국과 제국 간 싸움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오 라고아 백작 일행은 스콜피언 중대를 즉결 처분했다.
불법적인 방법에 아들을 잃은 테오 스타우런 군단장이 펄쩍 뛸 만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사건을 공론화시키는 건 무리다.
자칫 제국군이 남부 왕국 마을에서 벌인 각종 전쟁 범죄가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은 역마차 협회에서 저항군 소행으로 돌리고 덮자고 제안한 것도 그래서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이런 버트 참모장이 입을 열었다.
“군단장님의 말씀처럼 라고아 백작의 행동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의 능력이라면 스콜피언 중대를 처단하지 않고 제국 법정에 세울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게 상식적이지.”
“하지만 군단장님의 말씀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라고아 백작이 자기에게 불리한 증인들을 모두 처단했으니까.”
“…….”
아이런 버트 참모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사안이다.
그는 군단장의 입에서 새로운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제국군 정보 부대에 조사를 의뢰할 생각이네. 스콜피언 중대가 몰살당한 일을 역마차 협회의 보고서 따위로 덮는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승객들을 조사하다 보면 라고아 백작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 알게 될 걸세. 게으르고 어리석은 경의 상관(30사단장)에게 그런 나의 뜻을 전하게.”
상관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에 차마 ‘예’라고 답할 수 없었던 아이런 버트 참모장은 조용히 군례를 올리고 물러났다.
***
아드리아 왕국.
페로무로스 남부 하르키트.
죽다 살아난 역마차 승객들은 역마차 협회가 보내 준 새로운 역마차로 본래의 목적지인 무역 도시 하르키트에 도착했다.
절반의 승객은 하르키트에 남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역마차를 이용해 북쪽으로 떠났다.
‘혼란의 선봉장’을 찾아야 하는 엘리오 일행은 하르키트에 남았다.
하르키트에서 페로무로스까지는 고작 반나절 거리.
그래서 그런지 하르키트 역시 중무장한 제국군으로 바글거렸다.
북부 히르헤라에서 병영 생활을 오래했던 엘리오와 파비안은 제국군으로 가득한 도시가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라르바 오마르 백작 등은 조금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특히나 하워드와 크레아는 소대 규모의 제국군이 다가오면 살짝 긴장하기까지 했다.
혹시라도 스콜피언 중대의 일로 찾아온 건 아닌가 싶어서다.
거리를 걷던 엘리오는 남부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갔다.
아무리 한서불침의 신체라고 해도 뜨거운 햇살을 오래 받으면 피부가 타기 때문이다.
그늘에 들어가자 파비안이 호들갑을 떨었다.
“와아! 살 것 같다. 이럴 때는 진짜 북부가 그리워진다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엘리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던 제국군들이 크레아를 힐끔거리자 파비안은 이해한다는 듯 중얼거렸다.
“에혀! 불쌍한 놈들. 적과 싸우랴, 고독과 싸우랴, 고생이 많다.”
그러자 하워드가 한마디 했다.
“형님, 고독이 아니라 정욕 아닙니까?”
“너 영지군 생활 해 본 적 없지?”
“예.”
“나중에 한번 해 봐. 그럼 알게 돼.”
“…….”
고개를 갸웃하는 하워드에게 크레아가 말했다.
“오라버니는 영지군 생활 하지 마세요.”
“왜?”
“저랑 떨어져 지내야 하잖아요.”
“아…….”
뒤늦게 하워드는 파비안의 말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안 해. 하더라도 지휘관은 괜찮을 거야. 그렇죠? 형님?”
“큰 사건이 생겨서 소집되지만 않는다면 그렇지.”
“어느 정도 사건요?”
“영지전이 났다거나, 빙벽에 균열이 가서 지켜야 한다거나 하는 거. 그런 상황에서 지휘관이 집으로 가겠다고 할 수는 없잖아.”
“에이, 그거야 당연하죠. 저 그렇게 상식 없는 사람 아닙니다.”
두 사람의 잡담을 듣던 엘리오가 문득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말했다.
“제국군 표정이 밝네요. 남부 왕국에서 어비스의 독점을 포기할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강철 골렘이 제국 손에 들어가면 영원히 제국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말이죠?”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제국 측에서도 이전과 다른 혹독한 조건을 제시할 겁니다. 패전국이 치러야 할 비용은 생각보다 큽니다.”
“이래저래 쉽지 않겠군요.”
“그러니 제국도 사장된 엑시티움까지 끄집어낸 것이겠지요.”
“제국군이 엑시티움의 맛을 봤으니……. 다시 묻어 두기는 어렵겠죠?”
“제국에서 막아도 암거래로 풀릴 겁니다. 기사와 마법사 들이 지배하던 시대도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테지요.”
“마탑에서 만들지 않으면 되잖아요. 장기적으로 보면 마법사들에게 해가 되는 물건인데, 그걸 왜 만들어서 팔죠?”
“마공학자는 마법사들과 입장이 조금 다릅니다. 처우도 다르고요. 마공학자들의 마법 실력이 정통 마법사들에 비해 많이 뒤떨어지거든요. 어떤 정통 마법사들은 마공학자를 대장장이 취급을 하기도 합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마공학자의 경우 엑시티움으로 인해 손해를 볼 일이 없습니다. 설령 있다 해도 손해보다 이익이 더 큽니다. 명예야 진즉에 포기했고, 엑시티움은 큰돈이 되니까요.”
“되돌릴 수 없는 물결이네요?”
“그렇습니다. 엑시티움의 효용성이 충분히 증명됐으니 막지 못할 겁니다.”
하워드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기사보다 총사가 더 대접받게 되는 겁니까?”
“그럴 걸세. 실력 있는 총사라면 소드 익스퍼트쯤은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을 테니까. 소드마스터는 조금 어렵겠지만.”
“와아. 나도 총사로 전향을 해야 하나?”
크레아가 한마디 거들었다.
“요즘 총사로 보직을 변경한 기사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검을 놓지 않으려고요.”
“왜? 여성들은 신체적으로 볼 때 총사가 더 맞을 것 같은데?”
“루나 마일러스 님의 검술을 후세에 전해야 하니까요. 제가 여기서 총사로 전향하면……. 루나 마일러스 님의 검술도 사라지잖아요.”
“오! 그런 깊은 뜻이. 나도 라고아 경의 검술을 전해야 하니 총사는 포기다.”
포기라는 말에 엘리오가 눈을 찡그렸다.
“하워드.”
“예?”
“총사가 되는 건 자유지만, 총사로 성공하기가 쉬운 줄 아냐?”
“마나의 축복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쯧쯧! 그럴 줄 알았다. 총 한번 안 쏴 봤으니 저런 소리를 하지. 파비안, 총사로 성공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설명해 줘라.”
“예! 하워드. 마나의 축복을 받으면 누구나 바로 소드마스터가 되냐?”
“그럴 리가요.”
“마찬가지다. 총사는 일단 마력총을 잘 쏴야 돼. 너 마력총으로 목표물을 쏘면, 열 발 중에 몇 발이나 맞힐 수 있을 것 같냐?”
“못해도 반은 맞히지 않겠습니까?”
“총사로 성공하려면 열 발 다 맞혀야 한다. 그건 타고나야 되는 거야.”
“노력하면 될 겁니다.”
“노력한다고 누구나 소드마스터가 되는 건 아니다. 총사도 마찬가지야. 물론 처음 시작은 검술보다 수월하지만……. 정상에 서는 건 소드마스터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
“아, 그렇습니까?”
“어. 그러니까 ‘라고아 경의 검술을 잇기 위해 총사를 포기했다’는 말은 하지 마라. 정상에 선 총사들이 들으면 속으로 너를 비웃는다.”
하워드가 계면쩍은 얼굴로 말했다.
“그냥 해 본 말인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리고 라고아 경의 검술은……. 아니다.”
파비안은 하워드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검술을 거론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구도 크나우프 대공가의 검술을 두고 저런 식의 농담을 하지 않는다.
크나우프 대공가의 검술 한 동작만 배워도 가문의 보물로 여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뛰어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검술을 가지고 농담이라니.
파비안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뒤늦게 하워드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급히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무심한 얼굴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던 엘리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윽고 엘리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거리로 나섰다.
파비안이 두 사람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뒤처진 하워드와 크레아가 머쓱한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하워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실언을 한 것 같지?”
“몰라요. 오라버니 때문에 괜히 나까지도 이상한 사람이 됐잖아요.”
“내가 뭘 어쨌다고?”
“나는 진짜 루나 마일러스 님의 검술을 잇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거였다고요. 오라버니의 농담처럼 그것 때문에 총사를 못 하는 게 아니라요.”
“내, 내가 언제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
“듣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들릴 수도 있었어요. 대세가 총사인데, 어쩔 수 없이 라고아 경의 검술을 택한 것처럼요.”
“내가? 아니야. 내가 미쳤냐? 그냥 나도 너처럼 라고아 경의 검술을 이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뿐이라고.”
“오라버니는 ‘나도 라고아 경의 검술을 전해야 하니 총사는 포기다’라고 했어요. 포기라는 말이 좀 그렇잖아요. 마지못해 하는 느낌도 들고……. 라고아 경의 마음이 좋지 않았을 거예요.”
“와아, 돌겠네. 진짜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파비안 오라버니가 라고아 경과 편하게 지내는 것 같지만…… 아슬아슬해 보여도 선을 지킨다고요.”
“네가 보기에 나는 선을 넘었냐?”
“그건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오라버니는 평소에 파비안 오라버니와 라고아 경이 친하게 지내는 걸 부러워했잖아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너무 나갔다?”
“아니에요?”
“…….”
하워드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처음에는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어렵기만 했는데, 어비스에서 나온 뒤로 가족만큼이나 편안해졌다.
그러니 방금도 라고아 백작과 오마르 백작이 옆에 있는데 그런 소리를 한 것이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그랜드 마스터이며, 신조차 죽일 수 있는 능력자임을 생각하면 그의 앞에서 죽은 듯 지내야 마땅한데 말이다.
“호의가 지속되면 주제 파악을 못 한다고 하던데……. 내가 그 꼴이네.”
“그 정도는 아니고 조금만 조심하세요.”
“나처럼 얼빠진 놈은 죽어도 싸.”
“적당히 하세요. 너무 그래도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고요.”
“그러냐?”
크레아가 답하기 전에 앞서가던 파비안이 뒤를 홱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볼 때 너는 자의식 과잉이다. 라고아 경의 머릿속에 네 비중이 어느 정도나 될 것 같냐? 너는 바람에 날리는 먼지야. 그러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하고 살아.”